<기업 기(氣)를 살리자>정치권 권력 남용 심각…제도적 보완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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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3-11-2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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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이혜림 기자 = # 기업인 A씨는 올해 국회 국정감사가 시작되기 며칠 전 모 당의 중진의원에게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정치 후원금을 요청하는 내용이었다. A씨가 거절하자 이 의원은 '국감장에서 보자'는 엄포를 놓고 전화를 끊었다. 결국 A씨는 '울며 겨자 먹기'로 후원금을 전달할 수 밖에 없었다.

정치권의 기업 옥죄기가 도를 넘고 있다. 국정감사에 '기업인 줄세우기'는 물론 정치권이 기업 고유 권한인 경영권까지 개입하면서 정치권의 보이지 않는 압력 행사에 대한 논란이 가열되는 분위기다.

특히 정치 후원금 모금·정책 실패 무마 등을 이유로 기업에 애꿎은 화살를 돌리는 사례도 적지 않아 재계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이에대해 전문가들은 잘못된 관행을 막기 위한 제도적 보완과 국민적 차원의 의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 '기업 국감' 변질·CEO 인사도 관여…'경영 간섭' 도 넘었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올해 국감에서는 201명의 기업인이 증인으로 채택됐다.

하지만 의원들의 질문은 최대 5분을 넘지 못했고 증인들에게는 제대로 답변할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다. 증인으로 불려온 기업인들 가운데 국감장에서 하루 종일 대기하다가 한 차례 답변도 못한 채 돌아간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국감장에서 몇시간 동안 대기하던 한 기업의 대표는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며 "이미 공정위에서 시정명령 요구를 받은 대로 조치를 취했는데 왜 국감 대상이 됐는지 납득이 안 간다"고 불만을 제기하기도 했다.

정치권의 보이지 않는 손은 기업 고유 권한인 최고경영자(CEO) 인사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KT와 포스코 등 옛 공기업 리더십 재편에 대한 정부의 압박 수위는 도를 넘어섰다는 게 재계의 시각이다.

이달 초 이석채 KT 회장은 청와대와 정치권의 외압에 못견뎌 압수수색 13일만에 사의를 표명했다. 최근 세계철강협회장에 취임할 정도로 강력한 경영 의지를 피력했던 정준양 포스코 회장도 임기(2년)를 채우지 못하고 지난 15일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에 재계는 정권 교체시기마다 되풀이되는 정치권의 낙하산 인사 관행은 근절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민간 기업의 인사는 기업 자체의 몫이지 정치권이 개입할 사안이 아니다"며 "정치권이 인사에 개입하면 수장이 눈치를 보느라 기업 경영을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고 고충을 토로했다.

◆ 정치권 권력 남용 심각…"의원 발의 법안 규제 마련 시급"

전문가들은 이같은 배경에 정치 후원금 마련·정책 실패 무마 등 일부 정치인들의 왜곡된 의도가 담겨 있다고 지적한다.

매년 9월 정기국회 국정감사와 예산심의를 앞두고 국회의원들의 출판기념회가 몰리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김용호 인하대 교수는 "증인 채택을 당한 기업을 직간접적 후원금을 내는 방식으로 빠져나가는 사례가 많다"며 "최근 국회가 기업인을 국감 증인으로 채택한 배경에는 순수하지 못한 의도가 배어 있다"고 꼬집었다.

정치권의 민간기업 흔들기가 사실상 헌법에 위배되는 행위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헌법 126조는 '국방상 또는 국민경제상 긴절한 필요로 인하여 법률이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영기업을 국유 또는 공유로 이전하거나 그 경영을 통제 또는 관리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재계와 학계에서는 정치권의 권력 남용을 막기 위해 국회의원 발의 법안에 대한 사전 규제 등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의원 발의 법안은 정부입법과 달리 규제개혁위원회의 규제심사를 거치지 않기 때문에 정치적 분위기에 따라 쏠림현상이 나타날 소지가 크다. 의원의 과잉 법안 발의는 기업에게 부담으로 작용될 수 밖에 없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0일 현재 19대 국회에서 의원들이 발의한 법안은 7039건에 달한다. 이는 전체 발의 법률안 7524건의 93.6%에 해당된다.

신석훈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정책연구실 부연구위원은 "외국의 경우 국회의원이 법안을 발의하면 국가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세부적인 심사가 선행된다"며 "우리나라에서도 국회의원 입법 사전 규제에 대한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신 부연구위원은 이어 "경제민주화라는 큰 프레임에서 시작해 무엇이든 갑을 관계로 나누는 이분법적 사고가 우리 사회에 팽배하기 때문에 의원들도 여기에 편승하려고 한다"며 "국민들이 먼저 냉철한 시각을 가지는 게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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