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에서는 신흥국 금융 불안을 시작으로 글로벌 경제가 급격히 흔들리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최악의 경우 2008년 금융위기 당시와 같은 악몽이 재현될 수 있다는 해석도 제기되고 있다.
반면 현장의 분위기와 달리 정부에서는 신흥국 금융 불안이 한국까지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며 시종일관 낙관론을 펴고 있다. 정부는 모니터링 강화와 외채 구조 개선 등 다양한 방안을 내놓고 있지만 이를 바라보는 시장의 시선은 냉랭하기 그지없다.
◆정부 낙관론 언제까지…장기화 대비책 있나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4일 "현재 큰 흐름으로 보면 우리나라는 신흥국과 차별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최근 신흥국 금융 불안은 아직까지 외부상 큰 쇼크가 아니다"라고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정부 당국 역시 현 부총리와 같은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재정건전성 등 기초체력이 튼튼하다는 게 정부 관계자들의 진단이다.
현재 정부가 추진 중인 대응 방안은 대외 위험요인에 대한 모니터링 강화와 시나리오별 컨틴전시 플랜을 지속적으로 점검·보완하는 데 국한돼 있다. 당장 가시적 영향이 없기 때문에 시장에 큰 정책을 내놓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의 경기 둔화가 겹치면서 낙관론을 고수하는 정부에 불안한 시선이 쏠리고 있다. 특히 신흥국 금융 불안이 장기화할 경우 현재 추진하는 대응 방안으로는 시장을 안정시키기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정부의 낙관론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터져 나오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 수출액의 41%가 터키·이집트 등 10개 신흥국에 쏠려 있는 만큼 신흥국발 위기에 주의해야 한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가 내놓은 '주요 신흥국의 유동성 위기 발생 가능성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수출액에서 중국·러시아·베트남·인도·인도네시아·멕시코·이집트·터키·우즈베키스탄·브라질 등 10개 신흥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41%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임영석 수은 조사역은 "미국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 개시에 따른 달러화 강세는 현지화 기준 외채규모를 증가시켜 신흥국 채무상환 부담을 심화시킬 것"이라며 "선진국 통화당국이 양적완화 조치를 점진적으로 철회하는 데 실패하면 선진국 시장 채권금리가 급등해 신흥국에서 급속한 자본유출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신흥국에 유동성 위기가 발생하면 환율급변에 따른 환차손, 현지 거래처 지급 거절에 따른 대금회수 위험 증가 등 피해가 생길 수 있다"며 "신흥국에 진출한 기업은 무역금융 관련 상품을 활용하거나 결제통화를 변경해 위험을 관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증시는 떨어지는데…자금경색 시작됐나
4일 증권시장은 신흥국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으며 코스피지수 1900선이 붕괴됐다. 이틀 연속 외국인 투자자들이 유가증권 시장에서 4064억원어치를 매도한 것이 원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는 신흥국의 영향으로 국내 금융시장이 흔들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다만 신흥국 금융 불안이 글로벌 시장으로 확산될 경우 우리나라와 밀접한 미국과 중국의 영향권에 들어서면 위기감이 확산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국제금융센터 관계자는 "미국 양적완화 축소에 따른 글로벌 금리 상승기에 신흥국까지 정책금리를 인상하고 있다"며 "이 때문에 세계 경기 회복세가 약화하거나 국제 금융시장이 불안해질 가능성에도 유의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경상수지 흑자폭 축소 우려와 외채가 외환보유액보다 많다는 점도 신흥국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견해도 나왔다. 국내 기업들의 수익률 하락을 막을 수 있도록 내수 부양책이 서둘러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오정근 한국경제연구원 초빙연구위원(아시아금융학회장)은 "우리나라가 현재 불안을 겪고 있는 신흥시장국과 다른 점은 경상수지 흑자"라고 전제한 뒤 "그러나 엔화 약세와 중국 등 신흥시장국 성장 둔화로 인해 경상수지 흑자폭이 축소된다면 우리도 위험해진다"고 말했다. 또 외채가 외환보유액보다 많다는 점도 위험 요인 중 하나로 꼽았다. 9월 말 현재 대외채무는 4110억 달러다.
김정식 연세대 교수 역시 "신흥국에 대한 무차별적 자본유출이 이어지고 동유럽의 위기로까지 연결이 되면 우리나라도 안심할 수 없다"며 "환율 변동성을 줄이는 한편 국내 기업들의 수익률 하락을 막을 수 있도록 내수 경기를 부양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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