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박현주 기자 =“결국 내 작품은 시간의 흐름에 관한 이야기이다. 시간에 의해 변화하는 모든 것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화가출신 조각가 홍승혜(55)가 서울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회상(回想)'전을 연다. 1997년부터 시작한 '유기적 기하학' 프로젝트의 과거 행적을 돌이켜보는 전시다. 일종의 회고전인 셈이다.
"돌이켜 보면, 나는 늘 돌이켜 보고 있었던 것 같다. 과거는 주어졌고 미래는 한없이 불확실하다."
무언가에 한번 꽂히면 무한반복과 재생하며 푹 빠진다는 작가는 스스로를 '과거 지향적인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미래에 대한 계획이나 추측보다 과거에 대한 시선이 많다"는 게 작가의 말이다.
이번 전시는 차분하다. 흑백의 조각과 평면, 영상 설치에 이르는 매체적인 특성에 따라 총체적으로 조망하여 마치 오래된 흑백영화처럼 무채색의 '회상'의 공간을 연출했다.
회화를 전공했던 작가는 물감으로 그릴 대상을 찾는 과정에서 방황하다 조형 자체의 형식적이고 구조적인 면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컴퓨터 포토샵을 이용하여 작업한 작품들은 군더더기없이 깔끔하다. 프로그램의 기본단위인 픽셀의 결합과 축적을 통해 이미지를 구현했다.
"컴퓨터 그림판에서 색깔을 클릭하면서 놀다가 이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형태를 만들어 가는 방식이 내가 살아가는 방식과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에는 "시공간의 레이어를 넘고, 분절과 결합을 거듭하고, 그리드의 안과 밖을 넘나들고, 음악적 질서를 수용하며, 끊임없는 프레임을 갱신해왔던" 과거의 작업을 다양한 변형을 거쳐 선보인다.
작가의 '유기적 기하학'이 하나의 전시 안에서 재생, 복제, 증식되면서 유기적 진화가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2000년에 만든 서랍모양의 알루미늄 패널 작업은 실재 가구로 재현됐다. 서랍도 열어지며 실생활에서도 사용할수 있는 '가구 작품'으로 변신했다.
2004년 벽화 '회상'은 다시 알루미늄 패널로 구현되어 평면과 입체 사이를 유희한다. 2008년 '파편'의 벽면 부조들은 바닥으로 내려와 건축적인 모습으로, 텍스트 조각은 다시 파편화 되어 증식했다. 이전 나무 조각 작품들은 무채색의 철제로 탈바뀸해 공간 속에서 격자구조를 넘나든다.
작가는 1990년대 후반 사용했던 원형 프레임을 아예 전시장 벽에 구현해 전시장 안팎을 연결하고, 2000년에 제작된 타일로 벤치를 만들어 설치하기도 했다.
전시장 2층에는 작가가 지난 10여년간 제작한 플래시 애니메이션 6편에서 색을 빼 흑백으로 전환하고 한데 묶은 영상 설치 작업 '6성 리체르카레'도 선보인다. 마치 '테트리스' 게임을 보듯 서로 다른 크기의 픽셀이 차곡차곡 쌓이고 흩어지고 움직이는 6개의 영상과 서로 다른 음악 6곡이 빚어내는 '느림의 미학'을 선사한다. 전시는 8월 17일까지.
◆홍승혜=195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1982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한 후 프랑스로 건너가, 1986년 파리 국립미술학교를 졸업했다. 1986년부터 현재까지 20여 회의 개인전을 열었고 다수의 국내외 기획 단체전에 참여했다. 1997년 국제갤러리 개인전 <유기적 기하학>을 시작으로 컴퓨터 픽셀의 구축을 기반으로 한 실재 공간의 운영에 깊은 관심을 보여 왔다. 1997년 토탈 미술상, 2007년 이중섭 미술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조형예술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