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주의 아트Talk]'백남준의 숨은 손' 이정성씨 "백남준 작품 고장나면 고쳐야 가치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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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1-1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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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남준 사후 두각 "백선생이 모니터 고장나면 새것으로 바꿔 끼워라 메모 남겨"

[이정성씨가 학고재갤러리에 전시된 백남준의 1995년작 톨스토이 작품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사진=박현주기자]
 


 아주경제 박현주 기자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이 2006년 뉴욕에서 세상을 떠난후 의문이 생겼다. "그렇다면, 앞으로 백남준 작품은 누가 고치지?". 그때 세상에 드러난 사람이 이정성(71·아트마스타 대표)씨다. 그는 백남준 사후 고장난 작품을 수리하며 일명 '백남준의 숨은 손', '백남준 비디오 설치전문가'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지금도 꼭 작업하려면 꿈에 나와요. 아프지 않은 건강한 모습으로와 함께 작업을 합니다."

 생전 백남준과 함께 세계를 돌아다니며 작업했던 그는 백남준의 '예스맨'이었다. 냅킨에 스케치를 그려줘도 그걸로 작품을 제작할 정도였다.

 그는 "미국에 기술자들이 있어도 못 고친다"며 "뉴욕 휘트니미술관에 있는 작품의 콘트롤러가 고장이 나 미국으로 가 수리한적도 있다"고 말했다. "1989년도에 만든 작품인데 프로그램이 돌아가는 메모리 시퀀스를 모릅니다. 알 방법이 없지요. 지금 스미소니언에 있는 메가트론도 6년전 쯤 신형 컴퓨터로 다시 만들었어요."

"백남준 작품은 고장나면 끝이 아니다"는 그는 "백남준의 작품은 고칠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씨는 "애초부터 미디어아트 작품을 살 때 고장날 수 있다는 걸 전제하지 않았다면 바보"라면서 "고장 나는 게 당연하고, 고장나면 고치고 또 더 이상 고칠 수가 없다면 대책을 세우는 것이 맞다. 고치면 살아나는데 그게 가치있다"고 말했다.  이 지점은 평론가들과 엇갈리는 부분이다. 작가가 아닌 기술자가 작품을 고친다는 게 논란이다. '원작을 손대면 안 된다'는 의견으로 손을 못대고 있는 작품이 많다.

하지만 그는 자부심이 있다. "백 선생이 생전에 종이에 메모를 자신에게 남겨줬다"고 했다. “모니터들이 자꾸 고장나고 부품이 없어 그러니 한국에서 삼성이든 LG든 맞는 게 있으면 그걸로 쓰고 없으면 껍데기를 벗겨 내 새 것으로 끼워달라. 그러면 작가는 그것을 기능이 향상되는 것으로 보겠다. 컬렉터 제위께서는 물심양면 협조를 바란다”는 내용이다. 이씨가 백남준의 작품을 고쳐도 된다는 증명서인셈이다.

 지난 1년간 백남준문화재단에서 예산 5억을 받아 총 55개 작품을 기록했다. 어떤 부품으로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를 기록한 컨디션 리포트(Condition report)다. 하지만 올해는 지원이 끊겨 손을 놓게 됐다. 그는 "작업하던 함께 작업하던 사람들이 떠났다며 다시 시작하려면 또 교육도 시키고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백남준과의 인연은 1986년 서울 국제무역박람회 삼성관 전시때 시작됐다. 세운상가 전파상에서 이정성은 전자업계에서 유명한 중고TV수리공이었다. 당시 삼성관 525개짜리 비디오 월(Wall)을 만들고 있는 이씨를 백남준이 찾아왔다. "다다익선 할 수 있겠냐"며 물었고 그는 겁도 없이 "예"라고 말했다. 이후 1988년 과천현대미술관에 1003대의 모니터로 이뤄진 ‘다다익선’을 함께 제작했고 전파수리공에서 '비디오아트 설치전문가'로 그의 인생이 바뀌게됐다.

  최근 학고재갤러리에서 열고 있는 백남준 개인전 ‘W3’에서 만난 그는 마치 '백남준이 된 듯' 작품을 설명했다.

“백선생님은 관객이 작품과 놀기를 원했어요. 백 선생이 살아있다면 당장 만지라고 할거에요"

 학고재 갤러리에는 백남준이 1963년에 만든 초기작이 전시돼 눈길을 끈다. TV 화면만 달랑있는 4대로 백남준의 개념이 녹아있다. 또 모니터에 태아처럼 융크린 자세의 성인 여성이 달걀 형상안 갇혀 허공을 굴러다니는 듯한 '수평 달걀 구르기 TV'는 관람객이 직접 달걀모양의 형상을 조작할수 있다. ‘스키 타는 사람’들은 이미지가 수직으로, 수평으로 움직이는 속도가 달라진다. ‘풋 스위치(Foot Switch)’라는 작품은 발판 스위치를 누르자 모니터 속 이미지가 순간 사라진다.

 TV화면 아래에 설치된 철판을 열고 비디오 스위치를 조작하는 그는 "관람자와 예술은 하나라고 말했던 백남준의 의지가 들어있는 작품"이라며 "이번 전시가 그동안 백남준 전시와 다른건 바로 (관람객이 함께 할수 있는)이 작품들이 소개되어 있는 것"이라며 반가워했다.
 
[이정성씨가 백남준의 초기작 교류신호 전압의 시간적 변화를 브라운관에 비추는 진동현상을 직접 조작해볼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사진=박현주기자]


 학고재갤러리에서 열고 있는 전시는 백남준의 초기작과 90년대에 제작한 작품을 12점을 소개한다. 지난해 중국 항저우 삼상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우리가 경탄하는 순간들전과 학고재 상하이에서 연 백남준을 상하이에서 만나다전에 선보인 작품이다.

 전시 제목이자 작품제목 'W3'은 보는순간 압도당한다. 검은 벽면에 모니터 60대가 다이나몬드 무늬를 이루며 설치됐는데 화면은 화면끼리 이어져 흐르는 듯한 현란함이 강렬하다. 현시대의 웹문화와 대중매체를 예견한 이 작품은 계획에서 실현까지 20년이 걸렸다. 74년 록펠러 재단에 ‘전자 초고속도로(Electronic Superhighway)’라는 제목의 제안서를 내며 이 작업의 구상을 밝혔지만, 20년 뒤인 94년에야 완성했다.

'보는 즉거움'이 있는 이 작품에는 “내 작품 안에 관람객이 3분간 머물게 하라”는 백남준의 목표의식이 구현돼 있다. 위대한 작가의 작품도 1분을 계속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W3'은 인터넷을 지칭하는 월드와이드웹(world wide web)의 약자다."

 "예술가의 역할은 미래를 사유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던 백남준의 사고가 'IT 세상'에서 새삼 주목되고 있다. 기계를 의인화시켜 따뜻한 감성으로 창조된 '인간 로봇'등 백남준의 작품은 우리의 기술과 미디어가 유피아로 갈수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작가로 평가받는 백남준은 사후 재조명이 활발하다. 2013년 미국 스미스소니언박물관에서 그의 전시가 열린데 이어 지난해에는 뉴욕에서 개인전이 진행됐다. 영국 테이트모던은 백남준의 작품을 처음 사들였다. 또 지난해 10∼11월 세계적인 갤러리인 미국 뉴욕의 가고시안갤러리와 백남준의 전속계약을 맺었다. 국내외에서 백남준 전시가 잇따르면서 동시에 이씨도 떠오르고 있다.

 "백 선생은 전시장에서 사진찍지 말라고 제지하는 것도 싫어했죠. 왜 내 작품을 좋아하는데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하냐며 화를 내곤해 전시장측과 충돌이 많았지요".

 이정성씨는 "백선생님은 자신의 작품을 통해 관람객이 즐기도록 하고 싶어했다"며 우스꽝스런 백남준의 '톨스토이' 작품을 한참을 바라봤다. 전시는 3월15일까지.(02)720-1524
 

[Charlotte, 1995, Mixed Media, 236x180x38cm. 오딩 비디오 퍼포먼스를 함게 한 아방가르드 첼리스트 샐롯 무어만을 추모하기위해 특별히 제작한 작품이다. 마치 해골처럼 보이는 인간형상의 첼로와 11개의 모니터 화면에서는 샬롯의 퍼포먼스 장면이 재생된다. 원색의 화려한 전선들은 무당이 제의식때 입는 의상을 암시한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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