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금리 시대가 계속되면서 돈 굴릴 곳이 마땅치 않은 금융소비자들이 아예 투자를 포기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엔화 약세, 유가 하락 등 각종 대외 악재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공연히 펀드나 주식에 투자했다가 피해를 볼 우려가 높아지자 차라리 잠시 쉬어가자는 의미로 은행에 돈을 그대로 보관하고 있는 것이다.
28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말 기준 요구불예금은 137조5000억원으로 1년 전과 비교해 무려 18조7000억원이 늘었다. 요구불예금은 이자가 연 0%대 초반이지만 원금손실 우려가 없고 원할 때 언제든 돈을 찾을 수 있어 대표적인 단기 안전자산으로 꼽힌다. 수시입출금식 저축성 예금도 같은 기간 36조7000억원 증가한 370조8000억원으로 집계됐다.
한 은행 창구 직원은 "최근 주식이나 펀드의 수익률이 워낙 좋지 않은 탓에 금리가 낮더라도 언제든지 돈을 찾을 수 있는 1년짜리 정기 예금을 들거나 만기가 끝난 적금을 그냥 일반 통장에 넣어두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이같은 단기성 자금의 증가는 연초부터 세계 금융시장에서 잇따라 악재가 터지면서 마땅한 투자처를 찾기가 더욱 어려워졌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이렇다보니 단 0.1%포인트라도 높은 이자를 받기 위해 움직이는 '금리 노마드(nomad·유목민)'의 발걸음도 분주하다. 같은 은행이라도 더 높은 금리를 주는 지점을 찾아 다니는가 하면, 우대금리를 얹어주는 티켓이나 쿠폰을 인터넷 중고 사이트에서 거래하는 진풍경이 연출되고 있다. 본격적인 제로 금리시대 속에서 그나마 조금이라도 이자를 더 받으려는 소비자들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풍속도인 것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시장의 변동성과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안전한 자산에 투자하는 것이 대세가 됐다"면서 "여유 자금을 안전한 단기 자산에 넣어두고 기회를 엿보는 '파킹 투자족'과 조금이라도 이자가 높은 곳을 찾아 옮겨다니는 금리 노마드족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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