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박현주 기자 =심장을 찌르는 듯한 아픔, 사무치도록 '슬픔을 포옹'한 그림은 빛나는 참혹이다. 헐벗고 눌리고 병들고 소외된 사람들, 허탈한 인간의 모습, 적막한 내적 감정이 드러나는 그림들은 오늘의 우리의 모습과 겹친다.
그런데 자꾸 그림을 보다면 어떤 힘에 사로잡힌다. 상처에 바람을 쐬주듯 연대감과 공감이 솔솔 일어난다. 이기주의를 떨치는 착한 마음과 '정의는 무엇인가'라는 개념까지 휩싸이게 한다. 흑백의 대비가 뚜렷한, '검은 그림'은 단순한데도 울림이 큰 문체다.
독일의 저항 작가, '민중예술의 어머니'로 불리는 20세기 독일의 대표적 판화가인 케테 콜비츠(1867~1945)의 작품이다.
세상은 반복재생된다. 정치적으로 혼란했던 1980년대 국내에도 민중미술이 활기를 띠고 탄압을 받았던 것처럼 콜비츠도 화가로서 좌절감을 맛봐야했다.
1897년 당시 부녀자들의 이중고를 녹여낸 '방직공의 봉기' '폭동'등 4년간에 걸쳐 제작한 역작은 관객들의 찬탄을 받고 유명세를 탔지만 "민중봉기를 묘사한 현실주의적 그림은 독일제국의 국위를 떨어뜨리는 것"이라며 독일정부는 상을 주지 않았다.
1914년 일차세계대전은 콜비츠를 반전화가로 변신하게 한다. 둘째 아들이 종군해 전사했다. 체구가 작은 콜비츠에게는 이겨내기 어려운 충격이었다. "온 몸이 가루처럼 산산히 흩어지는 듯한 고통을 겪었고 이때부터 작품에 상당한 변화가 시작됐다. 질병과 가난뿐만 아니라 전쟁을 영원히 몰아내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갈구가 간절했다. 평화를 외치며 전쟁열을 가라앉히는 모든 운동 대열에 참가하면서 전쟁반대, 반전화를 제작했다.
"전쟁터에서 18살밖에 되지않은 아들이 목숨을 잃었어요. 살려고 태어나게 했는데 죽음을 먼저 맛보다니요. 세계의 모든 어머니들에게 말해주고 싶었어요."
1922년부터 전쟁에 관한 연작판화를 찍어냈다. '전사'라는 비보에 접한 가족의 슬픔과 한을 안고 있는 '부모', '어머니들', '전쟁은 다시 있을수 없다'등에 잘 형상화되어있다. 음을하면서 무겁고, 암흑속의 인간들을 파낸 판화이기에 더욱 강렬했다.
생전 콜비츠가 "내 예술이 목적을 가졌다는데 동의한다. 나는 인간이 어쩔줄 모르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 시대에 영향을 미치고 싶다"는 그의 말처럼 예술은 '현실을 꿰뚫고 나가는 미래지향의 현실참여'다.
서울 노원구 중계동에 위치한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사진갤러리 1, 2관에서 콜비츠의 작품세계를 조명하는 전시가 열린다. 1800년대 후반에서 1930년대에 걸친, 초기부터 말년까지 총 56점을 선보인다.
서울시립미술관과 평화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가 주최하는 것으로, 출품작은 모두 일본 오키나와에 소재한 사키마미술관의 소장품이며 (사)평화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와 공동 주최로 이루어졌다.
이번 전시는 콜비츠의 사회의식과 전쟁을 겪으며 작품에 쏟아 부은 작가로서의 발언에 주목한다. 예술가로서의 사명감에 여성적시선이 더해져 당대의 현실과 이슈를 작품으로 풀어내었다는 점은 콜비츠 특유의 작가정신으로 꼽힌다.
제1차 세계대전은 콜비츠 작품을 살펴보는 중요한 배경이 된다. 전시는 1914년 1차 세계대전 발발을 기점으로 전쟁 이전과 이후의 작품으로 나눠 보여준다.
전쟁의 참상으로 가난, 죽음, 모성과 같은 문제를 함축적으로 표현한 시기이다. 전쟁 전 주로 노동자 계층의 고된 노동, 질병, 가난과 같은 핍박의 삶을 표현했다면, 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작가는 반전과 평화를 적극적으로 외치기 시작했다. 이 시기의 작품에 등장하는 아이와 부녀자의 대비되는 표정은 전쟁 이후의 비참함을 더욱 고조시킨다.
작가의 주요 연작인 ‹전쟁 War›(1921~1922)은 케테 콜비츠 작품의 백미로, 작가 개인이어머니로서 전쟁을 겪으며 아들을 잃은 슬픔, 모성애를 보편적으로 승화시킨 시기의 작업들이다. 절제된 표현의 목판화는 콜비츠가 겪은 아픔과 절규를 표현하는데 매우 적절한 내용과 형식의 조화를 이룬다.
전시와 연계해 '콜비츠의 고향을 가다', '콜비츠의 삶과 예술', '콜비츠 그림 읽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된다.
서울시립미술관은 "콜비츠의 사회적, 예술적, 개인적 실천을 드러내는 뜻깊은 이번 전시는 미술의새로운 지평을 여는 데 기여한 작가의 삶과 예술이 일체를 이룬 현실 참여 정신이 동시대 미술가들에게 여전히 큰 울림으로 전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소개했다. 전시는 4월 19일까지.(02) 2124-5269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