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화성 미복원 시설 흔적 발견..완전성 보완 가능성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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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6-05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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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화성 이아(貳衙) 옛터의 독립입사 전경. [사진제공=수원시]


아주경제 김문기 기자= 수원시는 지난 5월 수원화성 미복원시설 가운데 하나인 이아(貳衙) 옛터를 시굴·조사한 결과, 건물지의 기초흔적을 발견하고 이를 토대로 완전성을 보완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6일 밝혔다.

 ‘이아’는 화성유수부의 제2청사이자 실제 수원의 정치가 이루어진 곳으로, 화성유수를 보좌한 수원판관이 주재했던 관청이다. 정조의 명으로 1793년 8월 건립돼 민원 가운데 작은 것은 이아에서 처리하고 큰 것은 유수부에서 처리하는 체계가 만들어졌다.

이아 옛터는 크게 세 번의 변화가 있었는데 1909년 경성지방재판소 수원구재판소가 처음 이아 건물을 그대로 사용하다가 1920년 경성지방법원 신축, 1957년 서울법원 신축으로며 건물지는 완전히 사라졌다. 이후 1980년 현재의 예수그리스도후기 성도교회가 들어서고, 일부는 주택·빌라·상가·도로 등으로 수용되어 화성유수부를 호령하던 이아는 흔적조차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지난 5월 화성사업소는 화성유수부 제2청사 이아 복원을 위한 기초 작업으로 이아터 시굴조사를 진행했다. 1911년 수원 지적도와 1917년 지형도를 바탕으로 근현대시기 법원 등의 신축으로 인한 이아터의 교란범위를 확인한 후 시굴 범위를 선정하고 매장문화재의 잔존 여부를 조사했다. 그 결과 이아 건물지의 기초로 보이는 원형의 독립 입사기초 4기가 발견됐다.

 

독립입사 근경


 입사기초란 생땅이 나올 때까지 기초 웅덩이를 파고 물을 부어가면서 모래를 층층이 다져 올리는 기초방법으로 수원화성의 경우 장안문을 비롯해 여러 시설물과 화성행궁에서 입사기초 방법이 사용되었다. 시굴조사 결과 근현대시기 법원의 석축도 다수 발견됐는데, 이아의 입사기초와 같은 층 또는 그 하부에서 발견돼 이미 조선시대 유구층은 상당부분 파괴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지성호 시 화성사업소장은 “이번 시굴조사를 바탕으로 화성유수부 제2청사 이아 복원을 위한 근거가 마련됐다”며 “1891년에 발간된 ‘화영중기’와 1899년 발간된 ‘수원군읍지’에 이아의 규모가 기록되어 있어, 향후 화성사업소에서는 철저한 고증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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