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정로칼럼] 행복주택, 우리 사회의 리트머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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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9-01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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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지 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

‘민달팽이 세대’. 새롭게 주거취약계층으로 대두된 청년들을 일컫는다. 집이 있는 달팽이와 달리 오롯이 맨몸으로 살아가는 민달팽이와 청년들의 삶은 사뭇 닮았다. 한없이 높은 주택 가격과 불안정한 노동 시장에 놓인 청년들은 부모세대처럼 소득으로 집을 구매할 수도, 더 이상 빚을 낼 여력도 없다. 비싼 월세와 열악한 주거환경으로 대표되는 청년 주거 문제는 더 이상 통과의례가 아닌 평생에 걸친 문제가 됐다. 이러한 위험을 인지해 박근혜 정부는 대학생과 사회초년생, 신혼부부를 위해 도심 지역에 6년 동안 거주할 수 있는 공공임대주택인 행복주택을 약속했다.

그런데 이 행복주택이 최근 몸살을 앓고 있다. 선정 지역마다 일부 주민들의 반대가 거세다. 하지만 이를 지역 이기주의나 세대갈등으로만 봐서는 해결할 수 없다. 한평생 일한 돈으로 겨우 집 한 채를 마련했거나, 비싼 대출을 받아 이자를 갚아나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집은 유일한 자산이며 노후 소득 보장의 수단이다. 터지기 일보직전인 가계부채와 침체된 주택 매매시장으로 인해 부모세대는 집값을 부여잡고 있으며, 공공임대주택으로 주변 지가가 떨어진 적이 단 한 번도 없음에도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그 사이 청년들은 살 곳이 없어 방황하고 있다.

갈등의 뿌리는 그동안 집을 부동산으로만 다뤄온 잘못된 주택 정책과 허약한 공적연금체계에 있다. 주거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사회적 연대 전략으로서 주거 및 복지 정책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청년들의 지불능력이 높아져야 청년들이 공적연금 제도 안으로 들어오고 튼튼한 노후가 보장되는 길이 열린다. 앞으로 한국사회가 상생의 길로 갈 것인가, 아니면 다음 세대에게 언제 터질지도 모르는 폭탄을 떠넘겨 파국을 맞이할 것인지는 행복주택의 향방에 달렸다. 행복주택은 지금 우리 사회의 현재를 나타내고 미래를 결정하는 리트머스지다.

사회적 합의를 모아야 할 정부는 그 역할을 포기했다. 국토교통부는 행정 소송에서 이기고도 대안도 없이 목동 행복주택 지구 지정을 자진해서 취소했다. 그러자 이미 선정된 지구에서 주민들이 취소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사회적 약자의 이익을 정부가 지켜주지 않는다면 누가 하겠는가. 사회 갈등을 대표하고 조정해야 하는 정당도 마찬가지다. 새누리당은 행복주택이 박근혜 대통령의 핵심 공약임에도 침묵하고 있고 ‘민생정당’이라는 야당들은 지역 주민의 눈치만 보고 있다. 최근 모집이 완료된 송파삼전지구 행복주택의 사회초년생 경쟁률은 208.5:1에 달했다. 청년 주거빈곤의 절박함과 공공임대주택의 절실함이 눈앞에 있는 데도 청년들의 목소리는 반영되지 않고 있다.

이후 국토부는 부랴부랴 행복주택을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 청년 1인 가구는 가구원 수가 적고 거주 기간이 짧아 기존의 공공임대주택 정책에서 배제돼 왔다. 행복주택은 청년에 대한 투자 또는 시혜적인 복지가 아니라 마땅히 그동안 정책 대상이 되었어야 할 청년에 대한 보장의 관점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청년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드디어 청년도 입주할 수 있는 공공임대주택으로 이해돼야 한다.

지난 1일부터 앞으로 3개월간 국회 서민주거복지특별위원회가 열린다. 보통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는 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야가 힘을 합쳐야 할 때다. 먼저 행복주택이 제 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구체적인 제도 개선과 예산 확대가 꼭 필요하다. 다음 세대를 담보로 주택 가격을 빚으로 떠받치는 폭탄 넘기기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집을 중심으로 우리 사회의 드리워진 절망을 걷어내는 그 시작이 행복주택이 되길 바란다. 이제는 불안한 오늘을 공유하는 부모세대와 청년세대가 협력해 안정적인 내일을 같이 만들 수 있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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