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베이징특파원 조용성 기자 =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이 4년만에 북한을 방문한다. 시진핑(習近平) 지도부 출범 이후로는 처음이다. 중국의 최고 권력기구인 상무위원회 멤버는 국가수반급의 위상과 권력을 지니기에 이들의 방북은 상당한 의미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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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윈산(劉雲山) 상무위원 겸 중앙서기처 서기의 방북으로 그동안 소원했던 북중 양국관계가 다시금 해빙기를 맞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과거 양국관계는 급랭기와 해빙기에 상무위원의 방북이 이뤄졌었다.
이후 한동안 중국 상무위원은 북한을 찾지 않았다. 북한은 독자노선을 걸으며 '고난의 행군'을 했고, 중국은 경제개발에 매진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 남북관계가 호전되면서 양국관계가 다시금 풀어졌다. 2000년과 2001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방중했으며 2001년 9월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이 북한을 답방했다. 지도자들의 교차방문으로 양국관계는 완벽한 해빙기에 접어들었다. 양국 지도자들의 상호방문 역시 잦아졌다.
2003년에는 공산당 서열2위였던 우방궈(吳邦國)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이 북한을 방문했다. 우방궈 위원장은 김정일 위원장으로부터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2차 6자회담 개최에 대한 동의를 이끌어냈다.
2005년 10월에는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이 방북했다. 후진타오 주석은 환영연회에서 연설내용의 많은 부분을 할애해 중국의 경제발전상을 설명하며, 북한의 경제개발을 촉구했다. 또한 북한에 대한 중국의 변함없는 직간접 지원을 약속했다. 이에 김정일 위원장은 5차 6자회담에 참석하겠다고 분명히 약속했다. 북중 우호관계가 최고조를 향해가던 시점이었다.
2007년 10월 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 시진핑 부주석이 차기 총서기 후계자로 낙점받았다. 시진핑은 후계자 등극이후 첫번째 해외순방지로 북한을 택했다. 2008년 6월 평양을 찾은 시진핑은 북핵문제, 베이징올림픽 등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지만 구체적인 합의사항 발표는 없었다. 차기 지도자로서 김정일 위원장과의 상견례 성격이 짙었다.
2009년 10월에는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방북했다. 6자회담과 비핵화라는 명제를 뛰어넘어 양국의 통상관계를 강화하기 위한 행보가 이어졌다. 김정일 위원장은 직접 공항에 영접을 나갔고, 대규모 군중이 거리에 나와 환영을 하는 파격적인 예우가 펼쳐졌다. 당시 원자바오는 북한과 '경제원조에 관한 교환문서' 등 다양한 합작협의서를 체결했다.
2010년 10월 저우융캉(周永康) 정법위원회 서기가 방북했다. 저우 서기와 김정일 위원장과의 회담에는 김정은이 배석했다. 저우 서기는 이 자리에서 "북한의 새 지도부가 편리한 시간에 중국을 방문해달라"는 후진타오 주석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공안을 총괄하는 저우서기는 방북을 통해 탈북자문제를 협의했을 것으로 관측됐다.
이듬해인 2011년 10월 리커창(李克强) 상무부총리가 방북했다. 리 부총리는 차기 총리로서의 행보를 보이고 있었으며, 김정은과의 만남이 부각되기도 했다. 리 부총리의 방북 역시 차기 지도자로서 상견례의 성격이 컸다. 리 부총리는 "양국친선을 공고히 발전시키자는 것이 중국의 확고부동한 방침"이라고 말했다.
리 부총리의 방문후 2개월만인 2011년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했고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집권했다. 그 이후로는 중국의 상무위원이 북한을 찾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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