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人100言]성기학 “사양 기업은 있어도 사양 산업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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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2-23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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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경제의 기적을 이끌어낸 기업인들의 ‘이 한마디’ (35)

성기학 영원무역 창업자[사진=영원무역 제공]


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품질이 나쁘면 반품하십시오.”

1975년 경기도 성남의 공터 앞에서 당시 세계 최대의 스키복업체인 미국의 화이트스텍 케네디 회장은 한국인 청년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6개월간 공장을 만들어 옷을 납품하겠다고 호언장담하는 이 청년을 믿어도 좋을까?’

“한번 믿고 맡겨주세요!”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반품할 수 있는 조건이니 손해볼 것이 없었다. 케네디 회장은 청년을 믿어보기로 하고, 스키복 1만벌을 그 자리에서 주문했다.

공장이 들어서기도 전에 세계적인 아웃도어 회사의 계약을 따낸 청년은 불과 1년 전 영원무역을 설립한 성기학 창업자였다. 그는 그날로 동료들과 밤샘작업에 돌입했고, 약속대로 이듬해 가을, 겨울 시즌에 맞춰서 스키복 9600벌을 미국행 배에 실어 보냈다. 신생 의류업체가 고가품 해외 수주에 대성공을 거둔 것이다.

어린 시절 경상남도 창녕에서 대규모 양파농장을 경영하는 아버지 일을 거들며 사업가로서 기본 소양을 배운 성 회장은 서울대 진학후, 산악반에서 위험한 암벽등반을 하며 새로운 길을 내고 도전했다.

“단순한 호기심만 있었다면 산에 오를 수 없다. 암벽을 오르는 끈기와 체력도 중요하지만,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정상에 올랐을 때의 짜릿함도 컸기 때문”이었다. 이는 향후 성 회장의 경영철학의 기반이 됐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골라간다’는 그는 대학 졸업후 고시를 보거나 금융권 취업 대신 1972년 서울통상이라는 가발·스웨터 수출업체에 입사한다.

업무 적응이 빠르고 영어도 잘하는 그에게 회사는 스웨덴 거래처를 맡겼다. 유럽 회사와 국내 스포츠웨어 하청업체를 연결해주는 업무를 맡으며 세계시장이 얼마나 크고 넓은지 깨달았다는 성 회장은 2년 뒤 지인 2명과 함께 영원무역을 창업했다.

사명인 영원은 당시 유행했던 팝 가수 클리프 리차드의 히트곡 ‘더 영 원스(The Young Ones)’에서 따왔다.

단순 무역중개를 하다 한계를 느낀 성 회장은 제조업 진출을 결심한다. 그는 인건비 등 채산성이 낮아지고,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에 섬유 수출을 일정량 할당하는 섬유쿼터로 인해 수출량이 제한을 받는 한국 대신, 쿼터의 영향을 받지 않는 방글라데시에 진출했다.

현재 연 매출 1조5000억원의 규모로 성장한 영원무역은 현재 방글라데시를 비롯해 중국과 베트남, 엘살바도르에 생산기지를 두고 있다. 방글라데시에서만 약 1조원에 가까운 매출을 올린다. 처음 진출할땐 애를 먹었지만, 미래를 내다본 성 회장의 선견지명이 옳았다.

국내 아웃도어 시장을 처음 개척한 주인공 역시 성 회장이다. 대학 산악반 시절 설악산 등반 때 만난 일본인 등반객이 입은 다운재킷에 충격을 받은 그는 언젠가 한국도 이 시장이 뜰 것이라고 눈여고 보고 있다 1970년대말부터 제품을 생산했다.

엄청난 주문을 받아 대박을 터뜨리며 영원무역에 엄청난 부를 안겨줬다. 이를 바탕으로 1990년대 일본 업체와 합작해 골드윈코리아를 설립, 탄생한 브랜드가 ‘노스페이스’다.

성 회장의 성공이 놀라운 이유는 당시만 해도 의류사업이 사양산업이라고 여겨 꺼리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하필 옷을 선택하느냐, 경쟁자가 많아 수익성이 떨어지는 사양산업이라며 주변에서는 말렸지만, 그는 확신에 찬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사양기업은 있어도 사양산업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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