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법원이 키코 소송의 미국 현지 관할권을 인정하면서 국내 중소기업들이 미국 법원에서 글로벌 은행 본사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할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이로인해 지난 2008년 8월부터 1년간 국내 기업이 입은 피해액은 3조3528억원에 대한 키코 소송이 재점화될 전망이다. 특히 글로벌 은행들의 환율조작도 연계됐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글로벌 키코 소송은 은행들이 승소한 국내와 달리 새로운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미국 키코 소송은 중소기업 심텍이 2013년 키코로 입은 손해를 배상하라며 미국 연방법원 뉴욕 남부지법에 8000만달러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부적절한 법정지의 원칙은 해당 법원이 재판을 진행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될 때 판사가 임의로 소송을 기각하는 것이다. 키코가 한국씨티은행에서 판매된 만큼 씨티은행 본사를 상대로 한 소송은 근거가 부족하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이를 "대부분 계약이 한국에서 이뤄졌지만 씨티그룹 본사가 개입돼 있다는 심텍 측 주장에 충분한 근거가 있다"며 1심으로 파기환송했다.
앞서 심텍 측은 소송장에서 △한국씨티은행 키코 광고·마케팅 자료에 '씨티그룹'이 명시된 점 △씨티그룹과 계열사가 작성한 환율전망 보고서가 마케팅 자료로 사용된 점 등을 통해 한국씨티은행의 키코 판매 과정에 씨티은행 본사가 깊숙이 개입했다고 주장했는데 이를 재판부가 일부 인정한 것이다.
특히 씨티은행을 비롯한 글로벌 은행이 2007년부터 2013년까지 런던 외환시장에서 환율조작을 통해 부당한 이익을 냈다는 점도 이번 재판에 영향을 미쳤다. 미국 금융당국은 지난해 5월 씨티은행 등 6개 은행에 6조원대 벌금을 부과하기도 했다. 환율조작 시기에 키코가 판매된 것은 비도덕적 행위이자 사기 행위라는 것이 원고 측 주장이다.
씨티은행 환율조작과 키코와의 연관성을 제기하며 소송을 제기할 경우 승소할 가능성도 커졌다는 평가다.
재판을 진행 중인 심텍 측은 이번 소송 재개 명령에 따라 '디스커버리' 제도를 통해 씨티은행 본사 환율조작과 키코의 연관성에 대한 내부 자료를 찾아낸다는 계획이다. 디스커버리란 원고 측이 재판을 진행하면서 피고로부터 필요한 자료를 요청해 받는 영미법상 제도다. 만약 피고가 요청을 거부하거나 자료를 누락하면 재판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한편 국내 중소기업들은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 달러 대비 원화값 상승에 따른 위험을 피하기 위해 키코에 상당수 가입했다. 하지만 2008년 4월부터 5월 사이 원화값이 급락하면서 은행과 키코 계약을 맺은 중소기업들이 3조원대 손실을 입었다.
특히 원화값이 내릴 때는 은행이 이익을 보고 원화값이 오를 땐 기업이 이익을 보는 구조인데 환율이 약정된 일정 범위를 벗어날 땐 기업만 손해를 보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원화값이 급락하면 기업은 약정 금액의 2배 이상의 달러를 약정 환율에 은행에 팔아야 한다.
2009년 국회 기획재정위 국정감사 당시 2008년 8월부터 1년간 국내 기업이 입은 피해액은 3조3528억원에 달했는데 이 중 중소기업 피해액이 2조4000억원으로 전체의 72%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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