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은 정통적인 회화의 소재로 오랜 세월 다루어져 온 만큼 인간이 자신을 둘러싼 외부 세계에 대한 관심의 정도를 보여주고 다양한 욕망을 투사하는 매체이기도 하다.
'풍경의 숨결'은 특히 1964년 사상계를 통해 발표된 김승옥 작가의 소설 '무진기행'과 연계를 통해 주인공의 시점에서 풍경 혹은 내면의 변화를 연상할 수 있는 작품을 선정하여 새로운 관점으로 풍경을 접근할 수 있도록 하였다.
전시는 고산금 작가의 작품 '무진기행'으로부터 시작한다.
소설은 크게 세속의 공간 서울과 가상의 공간이자 탈속의 공간인 무진, 그리고 다시 서울로 복귀의 흐름으로 진행된다.
명이식 작가의 '서초'와 김혜자 작가의 '도시풍경'은 소설 안에서 주인공이 떠나가는 세속의 공간 서울을 상기시킨다.
주인공의 시점으로부터 점점 멀어져가는 현실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공간인 도시의 속성과 본질을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소설의 플롯을 따라가는 접근법을 통하여 소설과 현실 그리고 관람객의 시점에서 바라보는 도시이미지에 대한 간극을 좁혀간다.
도시에서 멀어진 주인공은 무진에 이른다.
이곳에서 주인공과 어린 시절의 기억을 공유하는 사람들, 혹은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게 되며 이야기는 전개된다.
무진은 해안가에 위치한 항구도시로 안개가 유명하다.
도시의 속성을 보여주는 작품들을 따라가다 전시장 중앙에 이르면 문인환 작가의 '바다와 대지' 작품을 만나게 되고, 주인공이 내밀하게 기억하고 있는 무진의 모습을 관람객에게 구체화한다.
무진은 속세와 그 무게감에서부터 벗어나 기대감을 갖게 되는 장소로 이는 또 다른 극중 인물인 하선생과 방죽에서 바라다 본 바다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소설은 주인공이 무진에서 여러 인물들을 만나며 과거의 기억들을 하나둘씩 회상하기도 하고 주인공의 현실에 대해 서술하기도 하며 담담하게 절정으로 치닫는다.
이슬비가 내리던 어느 아침 주인공은 어머니의 묘에 성묘를 다녀오는 길에 자살한 술집 여자의 시체를 보게 된다.
이 장면에서 그의 마음은 형용할 수 없는 변화를 겪게 된다.
이강우 작가의 'Tempest'가 함축하고 있는 바다는 모든 것을 수렴하기도 하고 동시에 태동시키기도 하는 공간으로 가능성들과 가치 사이에서 요동치는 주인공의 내면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러나 그 갈등은 마치 안개 속에서 먼 곳을 바라다 보는 듯 외부로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이윽고 아내로부터 서울로 돌아오라는 전보를 전해 받은 그는 모든 것을 뒤로 한 채 예정보다 일찍 서울로 돌아가게 된다.
고선경 작가의 '앨리스의 섬' 작품은 영화처럼 연출된 현실을 살아가는 인물에 대해 그려내고 있다.
무진에서 일종의 쉼을 허락받은 주인공은 아내의 전보를 통하여 그가 속해있던 현실의 테두리로 빠르게 흡수된다.
소설은 당신은 무진을 떠나고 있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라는 말을 남기며 끝을 맺는다.
이 전시는 문학과 미술이라는 예술의 두 가지 장르를 교차하여 오늘날 풍경의 의미와 그것이 표상하는 바에 대하여 소설 주인공의 내면 변화까지 넘나들며 보다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전시 관람의 형태를 제안한다.
풍경은 우리가 바라다보는 객체이기도 하며 우리가 자발적으로 창조해 낸 주체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회화의 역사속에서 풍경은 지금의 우리를 확인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대상이라는 관점을 확보할 수 있었고, '풍경의 숨결'전은 그 기나긴 맥락을 다양한 시점에서 조망할 수 있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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