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엄주연 인턴기자 = 족발과 전 골목으로 유명한 공덕시장. 퇴근길 지친 몸을 이끌고 주린 배를 채웠던 이곳이 몇 년 째 과도기를 겪고 있다.
지난 21일 공덕역 5번 출구에서 나와 공덕시장으로 향하던 중 가장 먼저 시장 입구에 걸쳐진 현수막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현수막에는 ‘마포·공덕시장 정비사업 조합원 분양신청’이라고 적혀 있었다. 도시정비 사업은 다른 말로 재개발·재건축 사업이다. 지금 자리한 공덕시장에서 음식을 맛보고, 즐길 날이 앞으로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날 시장을 찾은 주민들도 아쉬운 마음을 내비쳤다. 30년 이상 이 동네에서 살고 있다는 모덕례씨(68)는 “재개발을 해야 하는 건 맞지만 재래시장이 없어지는 건 아쉽다”며 “옛날에는 시장이 발 디딜 틈이 없었는데 지금은 사람이 많이 줄었다”고 했다. 실제로 시장에는 근처 주민들로 보이는 60~70대 어르신들만 몇몇 보일 뿐, 무거운 장바구니를 든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서울의 5대 명물 시장 중 하나로 꼽히는 공덕시장은 1967년 문을 열었다. 처음에는 재래시장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족발을 파는 식당이 잘 되자 주변 상가들이 업종을 바꿨다. 그래서 지금은 30년 역사를 지닌 족발 골목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공덕시장은 마포시장 건물과 맞닿아 있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은 공덕시장과 마포시장을 구분하지 않고 말하기도 한다.
◆ 재개발에 대한 상인들의 엇갈린 시선
상인들에 따르면 이곳에 재개발 소문이 본격적으로 퍼진 것은 벌써 10년 전 일이다. 공덕시장에서 오랫동안 족발 장사를 했다는 김순자씨(50)는 “건물이 들어와도 건물세가 비싸면 들어가기 쉽지 않다”며 “들어가려면 가격을 올리든지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심지어 시장의 큰 인기 비결 중에 하나인 순댓국 무한리필 시스템도 유지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했다.
반면, 신발가게를 하는 상인 이모씨는 “이곳은 먹는 장사 말고는 다른 장사는 안된다”며 “재개발이라도 빨리 되어서 건물이 올라와야 건물 청소부라도 하지 않겠냐”고 했다. 이렇듯 시장 분위기는 두 부류로 나뉘었다. 장사가 비교적 잘 되는 상인들은 재개발을 꺼려했지만 장사가 잘 안 되는 상인들은 도시정비 사업에 작은 희망이라도 거는 모습이었다.
상인들이 이처럼 절박한 이유는 지속적인 방문객 감소다. 전집을 운영하는 장정희씨(67)는 “우리 집은 고객 수가 반 토막 났다”며 “우리 말고도 각 점포 평균 고객 수가 작년보다 3분의 1은 줄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고객들이 줄어든 이유 중 하나에는 재개발 사업도 포함된다고 했다.
◆ 피해자는 죄 없는 상인들
재개발을 앞둔 공덕시장과 마포시장 건물은 오랜 세월 동안 닳고 닳은 듯 많이 낡은 상태였다. 건물 안의 모습은 더욱 심각했다. 경사가 가파른 계단을 밟고 2층에 올라가자 녹이 슬고 부패가 되어 버린 벽면이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위태로운 모습이었다. 재개발을 앞둔 건물은 폐허와도 다를 바 없었다. 공덕시장 상인 김모씨는 “상인들이 개발한다고 하니까 환경 개선 공사도 하지 않는다”며 “안전을 위해서라도 어서 빨리 재개발이 진행되어야 한다”고 했다.
반면 재개발로 인해 상인들이 입을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은 보이질 않았다. 마포구청 지역 경제과 관계자는 “재개발 관련해서는 조합 측에 모든 것을 일임했다”며 “상인들 관련 대책은 관리처분계획이 끝난 뒤에서야 마련된다”고 원론적인 설명만 했다.
조합 측도 별다른 대책이 없어 보였다. 마포‧공덕시장 정비사업 조합 김대철 조합장은 “조합원들이 8월 8일까지 분양신청을 끝내야 한다”며 “아직 상인들과 의논하고 대책을 세울 때는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나 공덕시장 상인연합회 김도연 사무국장은 “구청에서 책임을 안 지려고 조합 측에 모든 것을 맡겼다”며 “상인들과 협의 없이 조합원들 우선 분양부터 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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