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최태민 목사는 1912년 황해도 출신으로,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독립운동의 시기 동안 유년·청년의 시절을 보냈다.
제2차 세계대전, 6.25전쟁, 군사 정권 시기를 지내고, 1971년에 기독교와 천도교, 불교를 종합해 '영세계'라는 것을 만들어 '영혼합일법'을 주장하기도 했다.
10.26 이후 합수부(합동수사부)가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수사자료에 따르면, 고(故) 최태민 목사는 황해도경 순사, 강원도경 소속 경찰, 대전경찰서 경사, 인천경찰서 경위를 지내다가 1949년에 육군 제1사단 헌병대에서 비공식 문관으로 근무한 것으로 나타난다.
이어, 1951년에는 사단법인 대한비누공업협회 이사장을 지내고, 1955년 경남 양산군에 위치한 비인가학교인 개운중학교의 교장으로 재직했다.
이후 대한 농민회 조사부 차장, 전국 불교청년회 부회장, 한국복지사회 건설회 회장으로 있다가 1963년 민주공화당 중앙위원으로 재직했다.
그는 생전에 일제순사, 해방 후 경찰관을 거쳐 기업가, 교육자, 승려, 목사, 신생 영생교 교주로 지내며 7차례에 걸쳐 이름을 바꿨고, 평생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며 지내다가 50대가 넘어서 교주활동을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1975년에는 당시 '큰 영애' 박근혜에게 접근해 함께 대한구국선교회를 시작하고, '큰 영애' 박근혜를 통해 재산을 축적해 온 것으로 보인다.
故 최태민 목사의 가족관계는 베일에 가려져 있지만 여자관계가 복잡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그는 5번의 결혼으로 5명의 부인이 있고 3남 6녀의 9명의 자녀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일각에서는 故 최태민 목사가 생전에 바람을 핀다는 이유로 부인이 신고하자 절로 도망가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됐다는 이야기도 있다.
최태민 목사는 지난 1994년 지병인 만성신부전증으로 사망했다.
한편, 지난 25일 박근혜 대통령은 고(故) 최태민 목사의 다섯번 째 딸인 최순실 씨가 대통령의 연설문을 사전에 받아봤다는 의혹을 받고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해 국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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