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김아름 기자 = 배우에게 ‘인생작’이라고 불리는 작품이 있다는 건 영광스러운 일이다. 여기에는 작품을 보는 눈은 물론이거니와, 탄탄한 연기력이 뒷받침 된다는 것을 방증하는 예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당연한 걸 하지 못하는 배우들도 종종 있다.
배우 이하늬는 절대적으로 전자에 속한다. 자신이 미스코리아라는, 어찌 보면 아킬레스건이 될 수도 있는 출신을 스스로가 극복해내며 이제는 ‘연기파 배우’라는 수식어가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의 위치에 올라왔다. 특히 MBC ‘역적’은 이하늬에게 새로운 자극이 됐고 또 그를 한 계단 올려놓은 작품이 됐다.
지난 25일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약 4개월간의 시간을 장녹수로 살아온 ‘역적’ 이하늬와 인터뷰를 가졌다. 최근 드라마 종영 후 걸으면서 기부하는 ‘트레이 워커’로 여행을 대신했다는 이하늬는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었다. 온전하게”며 “5월엔 이렇게 인터뷰하고 공연하고 ‘겟잇뷰티’ 상반기 방송을 끝내고 나면 한 달 정도 휴식이 있을 것 같다. 그때 여행을 가려고 한다”고 근황을 전했다.
“런던을 여행지를 정했다”는 그는 “사실 일 때문에 가게 됐지만 겸사겸사 일타 쌍피로 여행을 가볼 생각이다”라며 특유의 호탕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앞에서 언급했던 이하늬는 2006년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서 진을 차지하며 연예계에 입문했다. 뚜렷한 이목구비에 서구적인 몸매로 남성 팬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그는 서울대학교 국악과 석사과정 중인 재원이다. 작품이 없는 다소 한가한 시간에는 가야금 연주와 공연 등으로 시간을 보내며 알차게 자신의 삶을 꽉 채우고 있는 배우다. 특히 가족들 모두 국악 집안이라 공연을 함께 하기도 한다. 현재도 가족과 함께하는 공연을 준비하면서 인터뷰와 연습을 병행하는 등 드라마가 끝났음에도 바쁜 스케줄을 보내고 있다.
이하늬는 “드라마 끝나고 공연이 세 개 잡혀있었는데, 두 개는 잘 끝났다. 가족들과 함께 하는 공연이 있는데 제일 힘든 공연이 남아있다. 이거 끝나고도 연습가야 한다. 출구 없는 인생이다”라며 귀여운 투정을 부리기도 했다. 바쁜 와중에도 싫지만은 않은 표정을 지었다. 이유는 따로 있었다.
“힘들어도 공연을 하면서 얻는 것도 참 많고 많이 기다려왔다”는 그는 “(가야금)은 제가 서 있었던 자리기도 하고 저를 잃지 않는 거예요. 가족들과 함께하는 거라서 오히려 더 좋다. 관계가 확실한 사람들과 하면 원래 포지셔닝으로 돌아가는데 더 수월해서 좋다”는 게 그 이유였다.
이하늬의 분신과도 같은 가야금을 잠시 내려놓는 유일한 시간은 배우로서 설 때다. 그는 이번 ‘역적’을 통해 장녹수 연기를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인생작’이라는 호평을 쏟아냈다. 사극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15년 ‘빛나거나 미치거나’에서도 황보여원으로 분하며 장녹수와 비슷한 연기를 선보인 바 있다. 그러나 분명 장녹수의 그것과는 결이 달랐다.
이하늬는 장녹수 연기의 포인트에 대해 “‘빛나거나 미치거나’ 있었기 때문에 ‘역적’이 있었던 것 같긴하다. 그러나 훨씬 더 풍부한 것들을 갖고 그걸 토대로 ‘역적’에 임할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하고 기본적으로는 두 작품의 캐릭터가 굉장히 다르다”고 입을 뗐다.
그는 “표면적으로 보면 욕심이 많다고는 하지만 굉장히 단면적이지 않다. 장녹수는 정말 열정이 많고 삶에 대한 의지와 열정이 강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사람에 대한 사랑도 많은 인물이다. 연산을 바라보는 녹수의 안에는 사랑도 있었을 거고, 슬하에 자식도 있었기 때문에 그 감정선을 찾아가다보니 사랑의 빛깔이 달라지는 것처럼 녹수가 연산을 바라보는 시각 역시 더 컸던 것 같다. 복합적이어서 어려웠다”고 고충을 털어놓기도 했다.
그간 숱한 사극 속 장녹수 캐릭터가 있었지만 이하늬는 이하늬만의 장녹수를 유려하게 풀어냈다. 부담감도 있었지만 그는 부담감보다 적재적소에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컸음을 고백했다.
특히 국악 전공자였던 이하늬였기에 극중 악기 연주가 조금은 수월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허투루하지 않았다. 땀 흘려 노력해 당시 최고의 장면이 탄생했다. 그러나 이하늬는 아이러니하게도 ‘역적’을 위해서 준비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이하늬는 “되게 치열하게 준비했다. 제게 성실함은 원래 없었는데, 악기를 하면서 정말 많이 배웠다. 악기를 한다는 건 정말 치열한 경쟁이다. 이번 작품은 허투루 하고 싶지 않았나보더라”면서 “‘역적’을 하기 전부터 희한하게도 한국 무용과 판소리 등을 제대로 공부하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취미 아닌 취미, 공부로 시작했다. 판소리 선생님께 제대로 배웠고 한국 무용도 배웠다. 지난해 야금야금이라는 공연을 시작했는데 그 작품을 하면서 배움을 병행했다. 특히 ‘판스틸러’라는 국악 프로그램을 하면서는 더 깊이 빠지게 된 것 같다. 그러다 ‘역적’ 미팅을 하게 됐는데 마치 ‘역적’을 위해 준비한 것처럼 됐다. 그래서 좋은 퀄리티의 장면이 나온 것 같다”며 신기해했다.
그렇게 노력에 노력을 거듭했기에 인생 연기가 탄생했다. 그는 그런 호평에도 겸허하게 대처했다. 이하늬는 “너무 감사하다. 그러나 호평을 해주실 때도 의연하게 지나가야 하는 것 같고, 혹평을 해주실 때도 의연하게 지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호평과 혹평을 다 받아봤는데 배우는 다 교차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며 “언제나 잘 할 수 없고 언제나 못할 수도 없는데 삶을 사는 게 똑같지 않느냐 잘 할 수도 있고 못할 수도 있는데 제가 배우로 뭘 하고 싶고 뭘 말해야 하는지처럼 본질적인 것에 다가가려고 노력한다. 연기를 잘 하고 못 하고 보다는 본질적인 건 처음부터 끝까지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겠단 생각을 많이 했다”고 강조했다.
아직도 ‘역적’ 속 장녹수에서 온전히 빠져나오지 못했다는 그는 “감독님께서 정말 목숨을 받쳐서 작품을 하신 것 같다. 특히 극 초반엔 건강이 좀 안 좋으셔서 입원을 하셨어야 했던 걸로 알고 있는데도 단 한 번도 중요한 감정신과 중요한 포인트들을 한 번도 놓친적이 없으시다. 정말 대단한 분”이라며 감독님에 대한 감사함을 드러냈다.
물론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에너지를 온전히 쏟아부었던 연기였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이하늬는 “마지막엔 가채 때문에 정말 힘들더라. ‘빛나거나 미치거나’ 할때도 고생했었다. 극심한 두통과 근육통 때문에 진통제를 먹어야 하는 상황이기도 했다”며 고생담을 들려주기도 했다.
※ [인터뷰②]로 이어집니다. ◀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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