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당대회 개막 이전부터 25일 공표되기 직전까지의 ‘차기 정치국 상무위원’ 명단 예측과 이후 정국의 향방을 둘러싼 분석 등의 전 과정은 한국 또는 미국의 대선 투표 종료 후 박빙의 개표를 생방송으로 지켜보는 것보다 더 손에 땀을 쥐게 할 정도로 긴장의 연속이었다.
이런 측면에서 이번 중국공산당 19차 당대회는 적어도 한국에서만큼은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10월 한 달 내내 국내 언론에는 한국 사회가 중국 정치에 그처럼 큰 관심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관련 기사가 대량으로 생산됐다.
이번 당대회 전후 가장 많은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든 것은 바로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이라는 길고 모호한 문구다.
수많은 언론들은 ‘시진핑 사상’으로 줄여 그의 정치적 야심의 무게를 저울질하기에 바쁜 모양이다. 하지만 좀 더 주의해서 관심을 둬야 할 것은 바로 ‘특색 사회주의’라는 문구에 있다.
시 주석은 당대회 ‘보고’에서 ‘두 개의 100년’을 강조하며, 2021년 창당 100년까지는 전면 샤오캉(小康) 사회 건설, 2049년 건국 100년까지는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 실현을 목표로 내세웠다. 이 목표들은 이후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담론과 맞물리며 ‘실험’될 것이다.
사실 자유주의자들은 이미 20세기 말에 사회주의가 망했다고 선언했다. 1982년 중국공산당 12차 당대회에서 덩샤오핑(鄧小平)에 의해 제시된 중국 특색 사회주의가 1992년 ‘남순강화(南巡講話)’ 이후의 급진적 개혁·개방 전개 과정에서도 여전히 주창될 때에는 애처로운 시선을 숨기지도 않았다.
그러나 21세기 현재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보호무역을 공식적으로 관철하는 반면, 중국 국가주석인 시진핑이 자유무역 확대를 공개적으로 강조하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이 가운데 극소수의 자유주의자들은 어쩌면 중국 특색 사회주의가 16세기 자본주의 형성 이후 고착화된 ‘국가 간 경제적 위계 체제’를 개조해 ‘미국의 꿈’이었던 인류 공영(共榮)의 길을 열어가고 있지는 않는가라는 의혹도 내비치고 있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시진핑이 덩샤오핑의 ‘선부론(先富論)’을 넘어 ‘공부론(共富論)’을 중심으로 개혁·개방 시기 누적된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심각한 모순을 해결할 정치적·제도적 성과를 도출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도 많은 사람들이 적지 않은 관심을 드러내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19차 당대회는 개혁·개방을 기점으로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을 대척점에 두고 시대를 구획해왔던 시각이 무너질 수도 있는 흥미로운 ‘기점’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시진핑은 덩샤오핑에 의해 제시된 중국 특색 사회주의에 자기 고유 색깔을 덧칠하는 가운데 ‘두 개의 100년’을 실현하겠다는 포부와 비전을 내세웠다. 이는 시진핑이 덩샤오핑보다는 마오쩌둥의 권위에 어깨를 나란히 하려는 의도를 내비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가 ‘사상’이라는 용어를 고집했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중국 특색 사회주의’라는 용어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즉, 시진핑이 지난 5년간 축적한 권력을 결집시켜 중국공산당 당헌에 삽입한 ‘사상’이 덩샤오핑의 아류에 불과한 것이라면, 이는 시진핑 개인의 불행임과 동시에 창당 100년에 이르는 중국공산당 전체의 불행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시진핑의 ‘중국 특색 사회주의’는 덩샤오핑의 ‘중국 특색 사회주의’의 허구성을 넘어 실체성을 채워나가야만 한다.
덩샤오핑의 특색 사회주의가 마오쩌둥(毛澤東) 시대와 거리를 두는 방향, 즉 정반합의 ‘반(反)’ 상태에 매몰됐다면, 시진핑의 특색 사회주의는 마오쩌둥과의 거리를 좁혀가면서도 오히려 새로운 단계로서의 ‘합(合)’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견지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시진핑 시대의 개혁·개방은 중국식 사회주의 이행에 내재된 필연적 과정으로 정당화될 수 있을 것이다.
시 주석의 중국 특색 사회주의 실현 목표는 중국공산당과 중국 사회가 직면한 도전이지만, 동시에 한국 정치와 사회가 직면한 도전이기도 하다.
사실 시 주석이 3연임을 하거나 4연임을 하는 것이 우리 삶에 얼마나 중요한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그의 중국 특색 사회주의가 언젠가 성공해 중국 인민의 삶이 좀 더 풍요로워지고 나아가 혹시라도 ‘인간의 진정한 자유와 해방’이라는 사회주의적 가치가 실현된다면, 우리 한국 사회와 한국인의 삶에 있어서도 의미 있는 ‘정치적 기준점’으로 인식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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