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제로 시대'를 피할 수는 없다. 부상하는 중국, 쇠퇴하는 미국이 맞물린 현실이다. 서구가 누려온 정치와 경제, 군사적인 영향력을 더는 발휘할 수 없다는 것은 확실하다."
프랑스 정치·경제 컨설팅 기업인 컴피턴스파이낸스 알렉산더 케텝 회장은 세계를 이끄는 강대국이나 그런 집단을 찾을 수 없는 상황, 즉 G제로를 새로운 국제질서로 본다. 그는 오는 14~15일 본지에서 여는 '2018 아시아·태평양 금융포럼' 기조연설자로 서울을 찾는다. 이에 앞서 케텝 회장은 7일 G제로 시대를 화두로 본지와 서면 인터뷰를 가졌다.
G제로 시대는 치우침 없는 무극성 상태로 볼 수 있다. 뚜렷한 주도 세력이 없다. G제로 시대에는 G20(주요 20개국)이나 G7(주요 7개국)으로 대변되는 강대국 공동체가 아닌 개별국 이익이 먼저다. 국제적인 문제를 해결할 국가나 동맹이 없는 진공 상태다. 금융위기 같은 세계적인 재앙이 닥쳐도 중재할 리더가 없는 'G제로 공포'에 직면할 수 있다.
◆자국 이기주의에 공동체는 뒷전
자국 이기주의에 묻혀 세계 공동체라는 말은 갈수록 무색해지고 있다.
케텝 회장은 "G제로 시대가 전 세계에 던진 시사점은 불확실성"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G제로라는 개념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대두했다"며 "선진국과 신흥국이 모두 반겼던 G20은 추진력을 잃었고, 악영향은 전염병처럼 퍼져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정착돼온 다자 간 질서는 무너져 가고 있다. 전 세계가 안정과 번영을 유지하기 위해 손을 잡아야 한다는 말도 마찬가지다.
금융위기는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분기점을 만들었다. 케텝 회장은 "금융위기 이후 미국 엘리트 층에서는 국제사회보다는 자국 문제에 집중해야 한다는 인식이 커졌다"고 전했다. 그는 "미국은 경제력이나 군사력 없이 빛을 발할 수 없다"며 "즉, '팍스 아메리카나'(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평화)가 작동하기 어려워졌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미국은 내부 문제만으로도 벅차다. 경제 불평등이나 인종 차별, 계층 간 갈등이 심화되면서 고립주의를 갈수록 부추기고 있다.
반대로 중국은 금융위기 이후 다른 길을 걸었다. 케텝 회장은 "중국은 서구 국가보다 위기를 잘 극복했고 강대국으로 성장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렇다고 중국이 G제로 시대에 리더로 나설 국가는 아니다"라며 "도리어 G제로 시대가 주는 교훈은 한 국가가 리더십 공백을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세계 경제 새 균형에 적응할 것
국제 질서는 어떻게 흘러갈까. 성급하게 '신냉전시대'를 우려하기도 한다.
그러나 케텝 회장은 비관만 하지는 않았다. 케텝 회장은 "변동성이 불확실성을 키우는 '뉴 애브노멀 시대'에도 경제권력 공백은 생기지 않을 것"이라며 "세계 경제는 새로운 균형에 점차 적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과거 미국·소련을 축으로 한 냉전체제와 현재 G2 간 갈등은 다르다"며 "중국은 소련과 달리 시장경제 모델을 내세우고 있고, 결국 미·중이 공존하는 방법을 배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걸림돌로 보기도 한다.
케텝 회장은 "미국발 보호무역주의는 '국가 대 국가'가 아닌 자국 내 여러 이익단체가 다투느라 생긴 산물"이라며 "미국을 이끌어온 정치·사회 권력이 이동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보호무역주의 자체에 맞서는 대신 여러 국가에 걸쳐 있는 다양한 관심사를 조정하는 것이 우선"이라며 "개별국가를 넘어 세계적인 차원에서 광범위하고 다차원적인 대화를 끌어내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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