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사가 보편요금제와 다를 바 없는 요금제를 출시한 만큼, 보편요금제 법안은 부결될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습니다.”
김도훈 경희대학교 경영대학교수는 3일 본지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김 교수는 최근 대통령 직속 규제개혁위원회에 참고인으로 참석해 보편요금제가 ‘포퓰리즘’ 성격이 강하다며 도입을 반대해온 인물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방송통신위원회 등 정부기관 및 이동통신사의 자문 역할수행은 물론, 한국인터넷진흥원(KISA),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등과 다수의 프로젝트를 진행한 통신 분야 전문가다.
김 교수는 “이번에 KT가 출시한 요금제는 사실상 보편요금제와 똑같다”면서 “정부가 보편요금제의 강력한 드라이브를 거니까 통신사가 선제 대응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KT는 최근 데이터 요금제를 전면 개편했다. 가격적인 측면에서 기존 요금제와 비교해 전체적으로 1만원 이상이 저렴해 고객의 통신비 절감을 극대화시켰다는 평가다.
김 교수는 “이는 KT가 생존을 위한 차선책을 택한 것”이라면서 “경쟁사들도 이에 맞춰 비슷한 수준의 요금제를 출시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결국 보편요금제에 의한 메기효과(막강한 경쟁자의 존재가 다른 경쟁자들의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효과)일 수 있다”면서 “정부의 적극적인 가계통신비 인하 압박이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둔 셈”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김 교수는 “통신사 입장에선 5G 이동통신 등에 대한 신규투자가 줄어들고 낮은 스펙의 장비를 도입할 수밖에 없다”면서 “소비자는 당장의 이득을 보겠지만, 시장의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위험도 커졌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보편요금제의 국회 통과 여부에 대해서는 부정적 입장을 드러냈다.
김 교수는 “법안이 상정돼도 의미가 없는 상황이 됐기 때문에 보편요금제 법안은 결국 무력화될 가능성이 크다”면서 “여당 내에서도 보편요금제에 대한 우려가 상당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보편요금제가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의 일환이었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소모적 논쟁이 번질 수는 있다”면서 “개인적인 가치판단으로 부결되는 게 맞는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현 시점에선 알뜰폰의 경쟁력이 더욱 악화될 것이라고 밝혔다. 알뜰폰 업계는 보편요금제 등 알뜰폰 경쟁력을 저하하는 과도한 통신비 할인 정책을 우려하며, 망 도매대가 인하와 전파사용료 면제 등 지원정책을 요청하고 있는 상태다.
김 교수는 “통신사가 정부의 요구에 맞춘 이상 알뜰폰에 대한 지원에는 소원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알뜰폰의 경쟁 축이 무너지면 국내 이통시장 공급생태계의 연쇄적인 악영향이 나타날 것”이라면서 “알뜰폰이 덩치를 키워 이통사와 결합상품 같은 제휴서비스를 개발하면, 훨씬 더 나은 저가요금제의 등장도 가능하다”고 부연했다.
케이블TV 업계를 중심으로 추진 중인 제4이동통신 진출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란 전망도 내놨다.
김 교수는 “제4이통이 들어오면 정부도 이에 대한 지원에 나설 수밖에 없는데, 지금과 같은 구조라면 새로운 사업자가 시장에 안착하는 것은 더욱 기대하기 어렵다”면서 “결국 국민세금만 낭비된 채 또 다른 좀비기업을 만드는 꼴”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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