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일 통일은 우연히 이뤄졌다
문화심리학자 김정운은 독일 베를린 유학시절에 목격했던 일을 얘기한다. 1989년 11월 9일 저녁 동독 공산당 대변인 귄터 샤보브스키가 여행자유화를 하겠다는 담화문을 발표하고 있었다. 한 외신기자가 그에게 불쑥 질문을 한다.
언제부터? 샤보브스키는 약간 당황해서 발표문을 들척여보다가 무심코 말을 한다.
“즉시! 바로!”
이 말을 들은 기자는 신문사에 급히 연락을 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습니다.”
뉴스를 접한 동독주민 수만명이 그날밤 서베를린으로 몰려나갔다. 그들 중 일부는 먼저 탈출한 가족을 만나러 난민수용소로 몰려왔다. 당시 베를린 유학생 김정운은 서베를린 슈판다우 지역 공터 난민수용소에서 아르바이트로 야간경비를 서고 있었다. 갑자기 수용소 문앞으로 사람들이 몰려들더니 문을 열라고 했다. 김정운이 거부하자 무리 중 한 사람이 권총을 꺼내 겨눈다. 그는 열쇠꾸러미를 그에게 던져주고 황급히 도망쳤다.
이 사건이 베를린 장벽 붕괴의 시작이었다. 김정운은 유학 초기에 독일사람들에게 수시로 “독일이 통일될 것 같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때 정신나간 네오나치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통일이 될 거라고 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장벽이 무너진 지 한달도 안 걸려 ‘동독의 인민’들은 독일민족으로 바뀌어버리는 것을 그는 생생히 보았다고 증언한다.
# 베이징에서 만난 고3 남남북녀(南男北女)의 순애보
지금부터는 ‘답방’ 소설 속 이야기다.
1987년 한국의 종합무역상사 베이징 사무소 팀장으로 파견된 아버지를 따라 고교생 송지윤은 베이징 제55중학 국제학생부 6학년(우리의 고3)으로 입학한다. 이 학교는 중국어로 학습하며 북한을 비롯한 공산권 국가 자녀들이 다니고 있었다. 당시 한국학생으로는 첫 입학이었다고 한다. 교실에는 12명의 학생이 있었는데, 7명이 북한 학생이었고 나머지 5명은 구소련, 일본, 쿠바, 불가리아, 캄보디아 학생이었다.
여기서 송지윤은 이현주라는 북한 여학생과 짝이 된다. 7월초 상하이와 항저우에 졸업여행을 간다. 항저우에 있는 시후(西湖)에서 배를 타다가 현주가 물에 빠지는 사고가 발생하고 지윤이 그녀를 구하려고 뛰어들었다. 둘은 이 일을 잊지 못했다.
# 온갖 방해와 협박 속에서 이어진 '몰래사랑'
두 사람은 베이징대학에서 다시 만난다. 송지윤은 국제정치학과, 이현주는 의과대학이었다. 당시 북한에선 남쪽 사람과의 접촉을 철저히 금했던 시기인지라 둘은 몰래 만난다. 도서관에서 만났다가 북한 사람들 눈에 띄자, 새벽 호숫가에서 조깅을 하면서 만남을 이어간다. 당시 베이징에서 연수 중이던 북한 연구생 한 명이 한국에서 온 여학생과 사랑에 빠져 한국망명을 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송지윤과 이현주의 만남에 대한 감시가 더 철저해졌다. 현주는 결국 평양으로 소환당하고 만다.
송지윤은 한국의 국가정보원에서 일하다 퇴직했고 1년 뒤 베이징대학 국제정치대학 초빙교수로 온다. 홍콩 국제토론회에 참석하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그는 뜻밖에 이현주와 딸로 보이는 젊은 여성을 만난다. 이들은 나중에 베이징대에서 재회한다. 현주는 베이징대 의대 객원교수로 와 있었다.
현주와 동행했던 김희망이란 여성은, 송지윤의 ‘현대중국 탐구’ 강좌에 수업신청을 한다. 나중에 알고보니, 김희망은 현주의 막내여동생의 딸로, 그 아버지는 김정은이었다. 이 대목은 황당해보이는 설정이지만, 어쨌든 극중 전개를 다이내믹하게 하기 위해 이런 ‘출생의 비밀’을 넣은 것 같다. 하지만 송지윤은 그 이후 오랫동안 그녀가 누구인지 모르고 있었다.
# 서울대 교환학생으로 들어온 '김정은의 딸'
이후 김정은의 딸 김희망은, 자본주의 한국을 실제로 느끼고 싶다면서 한국의 서울대학교 교환학생으로 가고 싶다고 우겼다. 아버지 김정은은 결국 딸을 이기지 못했고 허용을 해준다. 이 내용은 송지윤에 의해 한국 대통령에게도 보고되어 양국 정상이 허용한 가운데 극비리에 ‘김정은의 딸 서울대 생활’이 시작된다. 이후 신문이 이 사실을 냄새 맡으면서 문제가 불거진다.
김희망은 송지윤의 조카인 송주헌과 북한산 산행을 갔다가 실신 직전까지 가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언론의 추적 공개로 신상털기가 시작됐고 결국 김희망은 북한으로 송환된다.
# 남남북녀, 판문점서 남북정상이 주재한 '세기의 결혼식'
이 일을 계기로 남북정상은, 베이징 제55중학 고3 로맨스로 시작한 남한 송지윤과 북한 이현주의 결혼식을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갖기로 합의한다. 그리고 양측 정상이 결혼식을 공동주재한다. 이른바 한반도의 ‘세기의 결혼식’이었다. 그들은 금강산으로 신혼여행을 간다.
남북간의 긴장과 갈등의 한복판을 뚫고 이뤄진 이 남남북녀의 결합은 소설 속이지만, 분단을 극복하는 것은 결국 그 내부구성원들의 사랑과 신뢰임을 낭만적으로 웅변한다. 극중에서 이들은 결국,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아직도 남은 분단 기득권들의 총격에 비극을 맞고 말지만 읽는 사람의 마음에 ‘한반도의 기적’을 깊이 아로새긴다.
이상국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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