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뉴욕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을 관광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까마득히 높은 102층 빌딩 맨 꼭대기에서 맨해튼과 허드슨강을 바라보며 이 빌딩이 1929년에 착공해 1931년에 완공됐으며 그 당시 맨해튼 거리에는 대량 생산된 자동차가 분주히 오가고 있었고 가로등이 환하게 밝혀져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가슴이 답답해 졌습니다.
일제 강점기인 1929년, 우리 선조들이 일본인 순사에게 머리 숙이던 그 시절, 뉴욕 맨해튼에는 102층짜리 건물이 들어서고 서구 열강들은 자동차와 전기를 비롯한 산업혁명의 눈부신 발전으로 나날이 발전하던 그 시절, 우리 선조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자 절로 한숨이 터져 나왔습니다.
오랜 세월 우리에게 문화와 기술을 배워가던 일본이 우리나라보다 앞선 문명국가가 되기 시작한 시기는 대략 1600년경이 아닌가 싶습니다.
1600년 4월12일 영국 천민출신 항해사인 ‘윌리엄 애덤스’는 네덜란드의 리프데호를 타고 태평양 건너 일본에 좌초합니다. 애덤스는 도쿠가와 이에야쓰에게 기하학과 산수를 가르치고 겔리온 배를 만든 공로로 영지를 하사 받아 한 지방의 영주인 귀족으로 신분이 바뀌고 ‘미우라 안진’이란 이름으로 정식 사무라이가 됩니다.
애덤스가 일본에 좌초되고 27년 후 우리 역사에 ‘박연’이라고 불린 네덜란드인 ‘얀 얀스 벨테브레’와 ’하멜 표류기’로 유명한 하멜이 차례로 제주도에서 좌초해 한반도에 도착합니다.
조선은 이들로부터 대포 제조술 등을 전수 받았으나 당시 조정의 관리들은 발달된 서구 문명에 대한 관심보다는 중국과의 외교문제를 두려워하며 이들을 전라도로 유배 보내고, 결국 하멜은 10여년 만에 탈출해 네덜란드로 돌아갑니다.
그 후 서구 열강들이 제1차 산업혁명을 바탕으로 눈부시게 발전을 거듭 할 때 조선은 성리학에 빠져 고리타분한 공리(空理)와 공담(空談)으로 세월을 보내며, 허구한 날 정쟁과 파벌 싸움에 매달려 시간을 보내다 결국 치욕적인 일제 치하 36년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렇게 1600년대 일본과 조선은 비슷한 시기에 중국을 거치지 않고 직접 서양 문물을 접할 기회가 있었지만, 애덤스의 사례에서 보듯 일본은 그들을 포용하고 우대하며 서양 문물과 과학을 적극 받아들인 반면, 우리 선조들은 사대주의에 빠져 중국 눈치나 보면서 정쟁과 파벌 싸움으로 소일한 결과가 치욕적인 일제 36년이었습니다.
현대와 같은 첨단 과학시대에는 한 나라의 국력과 경제 발전, 그리고 흥망성쇠는 과학 기술의 도입 속도와 산업화 속도 차이에 비례하게 됩니다.
일본과 우리가 서양 문물을 접한 시점이 비슷했으나 새로운 기술과 문화를 수용하는 자세의 차이가 지금의 일본과 우리나라의 국력 차이로 나타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무엇보다 새로운 기술과 문화가 국가에 스며들고 발전해 나갈 수 있는 토양은 산업계보다 나라를 다스리는 관료와 정치가들의 열린 자세 및 지식 수준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최근 블록체인을 비롯한 4차 산업혁명의 최첨단 기술이 물밀듯이 밀려 들어오는데, 관련 스타트업들은 산업계 전 분야에 뿌리 박힌 온갖 규제로 인해 사업 개시조차 못하고 외국 기업들의 발 빠른 행보만 넋 놓고 바라 보고 있는 실정입니다.
정부가 뒤늦게 규제 샌드박스 제도를 도입했지만 정부의 강경한 ICO 금지 정책으로 샌드박스 신청에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관련 사항은 아예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는 분리할 수 없으며 인터넷 이후 세상을 바꿀 새로운 물결입니다.
ICO라는 혁신적인 방법이 다단계의 일확천금 무기로 악용되는 점을 제외하고는 암호화폐가 몰고 올 산업 발전에 끼칠 엄청난 미래의 변화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합니다.
네덜란드의 튤립버블은 물론 영국과 미국의 철도 투기 광풍 등 인류의 기술 발전 과정에는 언제나 투기 세력이 나타나 시장에 버블을 만들고 꺼져 온 것이 역사의 가르침입니다.
이제 ICO 버블도 꺼졌고 최근 삼성 갤럭시 S10 모델에 암호화폐 지갑이 내장된 사례만 보더라도 전 세계는 본격 암호화폐의 실 생활 활용 사례를 접하면서 인터넷 이후 새로운 온라인 산업계 재편 전쟁이 시작될 것입니다.
먼 후일 우리의 후손들이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 올라 지금 세대를 원망하지 않도록 정쟁에만 매달려있는 국회의원들과 자리 보전에 몸을 사리며 규제부터 거론하는 정부 당국자들의 암호화폐에 대한 적극적인 시각 변화와 유연한 정책 운용을 촉구 합니다.
“일본은 잃어버린 20년을 이야기하지만 우리는 1600년 이후 잃어버린 500년을 반성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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