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시론]'광복굴기'를 꿈꾸는, 한 독립유공자 유족이 대통령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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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원 논설고문
입력 2019-08-15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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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복절 경축사를 '청원'했던 아주경제의 이름으로 다시 올립니다

[사진=김세원 제공]

올해는 광복절 경축식에 가지 못했습니다. 독립유공자 유족으로서 2002년부터 매년 참석해온 광복절 경축식에 불참한 이유는 단순합니다. 1965년 한일수교이후 양국관계가 최악의 국면에 이른 것에는 현정부의 책임이 당연히 있을 뿐 아니라, 여행자제와 일본제품 불매운동으로 극일(克日)을 하겠다는 이 나라의 반사적이고 즉흥적인 움직임들에 마음 깊이 동의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독립기념관에 가는 대신 서대문 독립공원에 있는 현충사를 찾았습니다. 현충사에는 저의 외조부 채덕승 독립군 헌병사령관을 비롯해 순국선열 2835위의 위패가 봉안돼 있습니다. 일본의 침략과 식민지 지배에 맞서 국권 회복을 위해 항거하고 헌신한 독립운동 유공자들 가운데 순국선열은 해방 이전 국내외에서 일제의 국권 침탈을 반대하여 항거하다 목숨을 잃은 분들입니다.
참배를 한 뒤 순국선열유족회 회원 몇 분들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분들은 현재 한국이 처해있는 상황을 깊이 걱정하고 계셨습니다. 자유와 주권을 빼앗긴 일제강점기시절을 떠올리게 할 만큼 외세에 휘들리는 느낌이 있어서 불안하고 조마조마해 보인다고 하시더군요. 대내적으로 볼 때, 성장동력을 잃은 경제는 불황에 허덕이고 국론은 분열되어 곳곳에서 갈등을 빚고 있습니다. 또 대외적으로는 미중 무역전쟁과 환율의 파고에 시달리고 있고, 무엇보다 국제 공급가치사슬에서 밀접하게 얽혀 있는 일본과는 정치적 경제적으로 충돌하는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여기에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거듭되는 미사일 도발에도 불구하고 이 정부가 변함없이 성원해온 북한에게서 계속 무시당해 국민적 자존심이 상처를 입은 것입니다.
마침 TV에서 생중계로, 역사와 민족의 결의를 표현하는 듯 두루마기 한복을 입은 문재인 대통령이 경축사를 낭독하는 장면을 보여주었습니다.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로 한일무역분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광복절 경축식이 열린다는 점에서 주변의 많은 분들이 대통령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을 것입니다. 저 또한 내심 대통령이 이번에는 일종의 ‘광복굴기(光復崛起)’를 선언하지 않을까 일말의 기대를 하고 있었습니다. 외교적으로 사면초가 고립무원의 상황을 타개하고 대내적으로는 반대 세력도 포용하는 국민 통합을 이루어 4차 산업혁명시대에 본격 진입하려면 이번 광복절이야 말로 경축사를 통해 세계 6대 제조강국, 세계 6대 수출강국으로서 ‘광복굴기’를 천명할 적절한 시점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올해는 3·1운동과 상해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이니까요.
아시다시피 굴기(崛起)는 ‘벌떡 일어서다’라는 뜻으로 2006년 11월 중국CCTV를 통해 방송됐던 12부작 역사다큐멘터리의 제목 ‘대국굴기’에서 가져왔습니다. 포르투갈부터 미국까지 15세기 중상주의(重商主義)시대 이후 세계의 흐름을 좌우했던 9대 강대국의 흥망사를 통해 그들이 각종 국내외 위기를 극복하며 어떻게 인류 문명을 개척할 수 있었는지 성공비결과 실패원인을 짚은 내용이었지요. 한국에서도 EBS를 통해 2007년초 방영된 바 있습니다. '광복굴기'는, 이 나라가 명실상부한 독립을 이루는 역사적 전환점이자 현실적인 국난을 타개하려는 국가적 의지의 천명을 담은 선언을 상징합니다.
 이번 경축사에서 문대통령은 남북 평화경제를 거듭 역설하며, 새로운 한반도 문을 열고 임기 내에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확고히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재작년과 작년의 8.15경축사에서 말했던 대북 메시지에서 한반도 평화경제가 극일(克日)을 가능케할 것이라는 신념을 보인 것이 달라진 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기림의 시 ‘새나라송(頌)’에서 가져온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 새로운 한반도”를 만들겠다는 키워드는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자유무역 질서를 지키는 책임 있는 경제강국, 대륙과 해양을 아우르며 평화와 번영을 선도하는 교량 국가, 평화경제를 구축하고 통일로 광복을 완성한다는 세 가지 목표를 제시했습니다. 연설을 들은 이들과 대화를 나눠보니, 이 세 가지 목표를 관통하는 주제는 '경제'라며 '역대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 가운데 최초의 경제연설'이라는 얘기도 나오더군요. 맞습니다. 그간 대통령들의 광복절 경축사 주제는 한반도 평화 내지는 대일 관계와 이를 비롯한 과거사 문제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 사실입니다. 그에 비해 오늘 문대통령의 경축사는 상당 부분이 책임 있는 경제 강국을 이루겠다는 의지와 방법론을 설명하는 점이 시사적이었습니다. 다만 광복절에 경제를 강조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바로 한일경제 갈등의 심각함 때문이라는 사실을 떠올리면, 심경이 복잡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번 대통령의 경축사는 '문학적'이고 '웅변적'이었다고들 합니다. 참담하고 힘겨울수록 근본적인 문제와 광복 100년이라는 '긴 눈'으로 살피는 통시적인 지혜가 필요한 게 사실입니다. 그런 문학과 웅변이, '우리 국민들의 마음을 결연하고 지혜롭게 만들어 두만강을 건너 대륙으로, 태평양을 넘어 아세안과 인도로, 우리의 삶과 상상력이 확장되는' 나라를 만들어가는 '광복굴기'의 힘찬 원년(元年)을 열었으면 좋겠습니다. 

 문대통령의 취임 첫해인 2017년에 했던 광복절 경축사의 일부를 아직 기억합니다. “19대 대통령 문재인은 김대중 노무현이 아니라 이승만 박정희로 이어지는 대한민국 모든 대통령의 역사속에 있다.” 대한민국의 자주성과 함께 정체성과 정통성, 대승적 포용을 모두 담아낸 그날의 결의가 2년 뒤인 오늘에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돌아봐야할 날이기도 합니다. 광복굴기는 '말'의 잔치가 아니라, '행동'의 실천이기 때문입니다. <논설고문· 건국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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