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 칼럼-지금·여기·당신] NH농협은행이 일구는 '디지털 논밭'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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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재 논설위원
입력 2019-08-20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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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H농협은행이 디지털 농사를 제대로, 잘 짓고 있다. 4차 산업혁명과 농업을 융·복합하는 젊은 사업가를 애자일하게 인큐베이팅한다(용어설명은 아래). 그 현장이 바로 NH디지털혁신캠퍼스다.

4차 산업혁명은 정보기술(IT)과 인공지능(AI), 빅데이터, 클라우드, 블록체인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 4차 산업혁명과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농사가 천하의 큰 근본), 농업과는 연결점이 그리 많지 않다고 생각했다. 예나 지금이나 젊은이들이 농사를 지으면 고개를 갸우뚱하는 어르신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을 농업에 접붙이며 자신만의 삶과 꿈을 펼치(려)는 싱글생글, 푸릇푸릇한 청년들이 꽤 많다.

이 젊은이들에게 마음껏 재능을 발휘할 너른 터를 내주고, 가뭄이나 수해를 입지 않게 잘 키우고(인큐베이팅·incubating), 험한 세상에 ‘다리’가 돼 주는 곳이 있다. 서울 서초구 양재동에 위치한 NH디지털혁신캠퍼스(이하 NH캠퍼스)는 ‘IT농업 새싹들’에게 이런 도움을 주고 있다.
 

서울 서초구 양재동 NH디지털혁신캠퍼스 [사진=이승재]


◆NH가 애자일하게 여는 ‘디지털 특구’
지난 13일 찾은 2080㎡(629.2평)의 NH캠퍼스는 금융권 최대 규모의 디지털 특구답게 업무 공간, 회의실, 도서관, 카페, 오디오실 등이 뒤섞인 융·복합-하이브리드 공간이었다. 입구에는 한반도를 무궁화로 둘러싼 LED 안내판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NH디지털혁신 선언문이 한반도를 채우고 그 밖에 입주 기업들의 이름이 모두 적혀 있다. 33인 대표, 3·1독립운동의 민족대표 33인이 오버랩된다.
 

NH캠퍼스 입구에 내걸린 디지털혁신선언문. [사진=이승재]


NH농협과 캠퍼스 입주업체 직원들은 고정석이 없고 업무에 따라 능동적·유기적으로 변신하는 애자일(agile)한 사무실과 조직에서 일하고 있었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 등 세계적인 IT 혁신기업 창업자의 이름을 딴 5개의 회의실에서는 뜨거운 열기가 뿜어져 나온다. 알록달록한 소파가 있는 공간에서는 오는 28일 데모데이 발표를 앞두고 방송촬영 리허설이 한창이었다.
 

NH캠퍼스 스티브 잡스 회의실. [사진=이승재]


금융과 농업 스타트업들을 대상으로 한 서바이벌 프로그램인 NH디지털Challenge+(챌린지 플러스)에 뽑힌 33개 기업이 입주해 있는 동안 NH캠퍼스는 180여명의 직원들에게 24시간·365일 연중무휴 열려 있다. 임대료? 안 받는다. 기본 설비가 다 갖춰져 있어 몸만 들어오면 된다. 도리어 이미 싹수가 파란, 성장 가능성을 보여준 스타트업(A트랙)은 선정과 동시에 3000만원의 시드머니(종잣돈)를 준다.

NH농협은 디지털혁신펀드 200억원을 별도 조성했다. 농협은행이 지원하는 업계 최고 수준의 육성 프로그램이 바로 NH디지털캠퍼스와 혁신펀드인 셈이다. 스타트업을 발굴·육성·데뷔시키는 동시에 핀테크(금융기술)와 농업혁신 생태계를 구축한다는 큰 그림이다.
 

이대훈 NH농협은행장(앞줄 가운데 체크무늬 셔츠)과 입주업체 임직원들. [사진=NH캠퍼스 제공]


◆‘될성부른 떡잎’ 농업 스타트업의 4차 산업혁명
NH캠퍼스 입주 기업들은 농업 분야에 직·간접적으로 응용할 수 있는 농식품(농업 빅데이터, 농산물 가격예측, 농산물 계약재배 O2O 플랫폼), 유통(산지 직거래, 소비자 간 플랫폼), 부동산, 에너지(태양광) 기업 등이다.

이들 농업 관련 스타트업 중에는 부모님을 어려운 농사일에서 ‘해방’시켜 드리거나 농산물 제값받기를 위해 시작한 효자기업들이 적지 않다.

‘싹틔움’은 농산물 계약재배, 생산자와 소비자 간 O2O(Online to Offline) 회사다. 선진 농업국의 경우 계약재배(생산자와 소비자가 재배 농작물 종류와 양을 계약으로 정하는 것) 비율이 전체 생산량의 40%가량 되는 반면, 한국은 10%대에 불과하다. 판로가 불안하고 올해 양파 과잉생산 파동처럼 애써 지은 작물을 버릴 가능성이 적지 않다. IT 강국, 대한민국 농업의 수치다. 그런데 계약재배를 온라인 플랫폼화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농민들이 쉽게 알 수 있는 중개 서비스를 갖추고 생산자와 구매자 간 계약재배를 투명화하면 과잉생산, 농산물 파동 등이 확 줄어든다.

‘에이임팩트’의 구호는 “농업인을 3시간 더 자게 하자”다. 개인과 거래하는 대부분 농·축·수산업 사업자들은 지인이나 단골 고객과 문자메시지로 주문내용, 배송장소 등을 주고받는다. 하루종일 고된 일을 마친 뒤 주문을 확인해 다시 택배송장을 일일이 기입해서 보내야 한다. 잠이 부족하다. 에이임팩트가 개발한 앱 ‘어레인지’는 이런 어려움을 단번에 해결해 준다. 문자나 SNS로 농산물 주문이 들어왔을 때 어레인지 앱만 띄우면 고객 정보가 택배용 송장으로 자동 변환하고, 연계되는 택배사에 발송신청까지 할 수 있다.

X-X(엑스바엑스)는 ‘오더플러스’를 통해 외식업소에 식자재유통업체를 추천하고 유통업체별 상품 비교, 분산 구매 및 주문·결제배송까지 한 번에 가능한 식자재 유통 플랫폼을 제공한다. 변하는 시세를 투명하게 확인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상품 품질 규격까지 세세하게 살펴보고 구매할 수 있다. 선금·외상결제 전용마이너스 통장을 통해서 결제 내역도 쉽게 확인하고 관리할 수 있다.

세 회사가 일반 농산물의 유통에 기여하는 곳이라면, '시소앤팜토리'는 약이 되는 농산물, 약재에 주목한다. 비염 치료를 목표로 하는 스타트업인데, 면역력을 키워 생활 속에서 비염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회사까지 만들었다. 비염환자들의 체질 분석결과를 토대로 맞춤형 농산물을 추천하는 플랫폼이다. 비염 환자와 한의사의 매칭도 진행할 예정이다.
 

이대훈 NH농협은행장. [사진=NH캠퍼스 제공]


◆‘프로구단’ NH디지털 감독 이대훈
이런 디지털 혁신 기업들을 키우는 NH농협은행은 흡사 프로야구단 같다. 이대훈 NH농협은행장이 농협이라는 프로야구단 감독을 맡으면서, 동시에 2군 이하 육성군까지 키우고 있는 모양새. 야구장(NH디지털캠퍼스)도 최신·최첨단 시설을 갖췄고, 선수도 잘 뽑았다(실제로 농협야구단은 1946년 창단, 1993년 해체될 때까지 한국 아마야구의 역사를 장식했다).

매주 월요일 NH캠퍼스로 출근하면서 이 행장은 ‘변신’한다. 이 공간에서만큼은 은행장이란 근엄한 타이틀을 버리고 ‘디지털 익스플로러(Digital Explorer)’라고 불린다. 사무실도 행장실이 아닌, 그저 회의실 중 한 곳에 ‘디지털 콕핏(Cockpit)’이란 문패만 달았다. ‘비행기 조종석’이란 뜻의 콕핏, 말 그대로 디지털 전략과 방향을 협의하고 조종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이대훈 행장은 지난 4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을 선포했다. ‘혁신을 통한 초격차 디지털 리딩뱅크 도약’을 경영비전으로, ‘디지털 뱅크 혁신’ ‘디지털 신사업 도전’ ‘디지털 운영 효율화’ ‘디지털 기업문화 구현’ 4대 전략을 내놓기도 했다.

쉽게 말해 외부인들이 보수적이고 고루하다는 선입견을 가진 농협은행을 완전히 확 바꾸겠다는 말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NH농협은행의 변화가 단순히 이 은행의 변화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도전하는 창업보다는 안전한 9급 공무원을 선호하는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 ‘디지털 비즈니스’의 기회를 활짝 열어준다는 의미가 있다. 그렇다고 NH농협이 사회적 기업 역할을 하는 건 아니다. NH농협과 스타트업이 상생·동반성장하는 것이다.

동네에서 힘깨나 쓰는 유지들이 모인, 고루한 농협의 이미지를 완전히 탈바꿈하겠다는 시도다. '디지털 비료'로 잘 자란 '스타트업 논밭'에서 풍성한 수확을 거두는 날이 머지않아 보인다.
 

신형춘 NH디지털R&D센터장 [사진=NH캠퍼스 제공]


*P.S NH디지털의 살림꾼
신형춘 NH디지털R&D센터장은 농협중앙회에 입사한 1994년 이래 25년 동안 농협의 IT, 디지털화 역사를 이끈 살림꾼이다. 경기도 의왕시 통합IT센터 구축 등 굵직굵직한 프로젝트를 성공리에 수행했다. 디지털캠퍼스 역시 신 센터장의 ‘옥동자’다. 신 센터장은 “젊은 친구들한테 정말 많이 배운다. 새로운 세상을 열어 가려는 꿈많은 청년들에게 NH가 도움을 주고 있다는 것에 큰 보람을 느낀다. NH농협이 더 좋은 디지털 세상을 앞당기는 데 앞장서겠다”며 활짝 웃었다.

칼럼 '이승재의 콜라보'는 NH디지털혁신캠퍼스에서 탄생한 유망 스타트업을 시리즈로 집중 조명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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