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 오디세이 12> 알제리 티파사 해변
온갖 꽃나무 색깔로 지중해는 더 생기차지고
카뮈가 초록빛 박하냉차로 젊음을 찬양하던 곳
<지중해에 면한 북아프리카의 나라 알제리로 떠납니다. 85년 전쯤 20대 초반의 알베르 카뮈(1913~1960, 1957년도 노벨문학상 수상)가 “수영을 한탕 때린” 후 “얼음같이 차가운 초록색 박하냉차”를 마셨던 티파사 해변에 머물면서 그가 보았던 온갖 색채의 지중해 꽃나무들을 구경할 겁니다. 알제리의 수도 알제(Algier)에서 서쪽으로 약 70㎞ 떨어진 ‘티파사(Tipasa)’는 기항지라는 뜻입니다. 옛 로마사람들은 배 대기 좋은 이곳을 점령하고 신전과 주거지, 원형 경기장 같은 건축물을 지었습니다. 유네스코는 1982년 폐허 속에서도 여전히 예전 로마 문명의 찬란함이 어려 있는 이 유적들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정했습니다.
알제리가 프랑스 식민지일 때 알제에서 태어난 카뮈는 지중해와 지중해 사람들을 너무 사랑해 ‘지중해적 인간’으로 불렸습니다. 그를 유명하게 해준 소설 <이방인>과 <페스트>는 각각 알제와, 알제리 제2의 도시인 오랑이 배경입니다. 두 도시 모두 지중해를 끼고 있지요. <티파사에서의 결혼>에는 티파사에 들렀던 카뮈의 젊었던 그날 기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아름답고 힘차며 생각 깊은 문장이 가득합니다. 태양의 작열, 파도의 비말, 모래밭의 뜨거움, 꽃나무들의 눈부심, 바람의 시원함이 폐허에서 번져 나오는 덧없음과 뒤섞입니다. 카뮈는 이 모든 것 속에서 자신이 티파사와 결혼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티파사에 도착한 카뮈는 달아오른 폐허와, 폐허의 돌더미 사이 여기저기에 피어난 꽃나무와 풀숲을 지나 짙푸른 바다에 이릅니다. 강렬한 햇빛 때문에 가늘어진 그의 눈길은 온갖 색깔의 꽃나무와 풀숲에 이끌립니다. “장밋빛 부겐빌레아, 희미한 붉은 빛 부용화, 푸른 붓꽃의 섬세한 꽃잎, 미나리아재비꽃빛 버스, 유향나무와 금작화, 붉은 제라늄, 등대 밑의 노랑 보라 빨강 꽃들 자욱한 살진 식물들(다육식물들), 목구멍을 할퀴는 압생트(향쑥)의 냄새, 끝 간 데 없이 폐허를 뒤덮고 있는 압생트의 회색 솜털, 향꽃무, 샐비어, 소나무, 시프레, 박하, 복숭아 … ”가 “잘 익은 빵 색깔 같은 폐허”를 배경으로 피어 있습니다.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서 몸이 뜨거워진 카뮈는 전라가 되어 바닷물에 뛰어듭니다. 깊숙이 자맥질도 해본 후 물에서 나온 그는 뜨거운 모래밭을 걸어서 작은 카페로 들어옵니다. 모래밭을 걸어오는 사이 다시 뜨거워진 그를 “얼음같이 차가운 초록빛 박하냉차”가 맞이합니다. 투명한 유리잔에는 차가운 이슬이 맺혔을 겁니다.
“정오가 조금 못 되어 우리는 폐허를 지나 바닷가의 조그만 카페로 돌아온다. 태양의 징소리와 온갖 색채로 쩌르렁쩌르렁 울리는 머리에는 그늘이 짙게 들인 홀과 얼음같이 차가운 초록빛 박하냉차 한잔의 환영이란 얼마나 신선한 영접인가! 밖에는 바다, 그리고 먼지로 불타는 듯 뜨거운 길. 식탁에 앉아서 깜박거리는 속눈썹 사이로 뜨겁게 백열하는 하늘의 갖가지 아롱지는 빛을 붙잡아보려 애쓴다. 땀에 젖은 얼굴, 그러나 입고 있는 가뿐한 천의 옷에 감싸여 서늘한 몸으로 우리들은 이 세계와의 결혼 하룻날의 나른한 행복을 한껏 펼친다.”
뜨거운 폐허, 그늘 짙은 카페, 얼음같이 차가운 초록빛 박하냉차! 내 머릿속에서도 온갖 색채가 눈부시게 지나가고, 천장 높은 카페에 드리운 그늘 속 시원함에 이어 차디찬 초록빛 박하냉차의 시원하고 얼얼하게 화한 맛이 입속에서 번집니다.
카뮈가 보여준 지중해의 색깔 중 박하냉차의 초록색이 가장 강렬하게 다가옵니다. 이 초록색에서 생명과 젊음이 진하게 느껴집니다. 티파사의 바다에서 수영을 한 후 더위 속을 걸어 카페로 돌아온 젊은 카뮈는 초록색 박하냉차를 마시며 “최상의 환대, 최고의 영접”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생명의 색깔인 초록색이 젊음을 환영하고 영접하고 있다고 생각한 겁니다. 카뮈가 마신 박하냉차 색깔은 내 젊었을 때 좋았던 날 간혹 입에 댔던 ‘크렘 데 멘테(Crème de Menthe)’ 색깔일 거라고 함부로 상상합니다. 박하(Mente)가 주원료인 이 칵테일은 아주 짙은 초록이어서 신비한 느낌도 있었습니다. 한여름 짙푸른 나뭇잎보다도 더 짙은, 공기와 물 중에서 가장 순수한 성분이 태양의 광합성을 통해 나타난 색깔이 크렘 데 멘테의 색깔이라고도 생각했습니다.
그동안 지중해 영화 몇 편 본 덕에 하늘과 바다의 푸른색, 구름과 모래의 하얀 색으로만 채워졌던 지중해의 색깔은 카뮈의 색깔로 더 풍성해집니다. 꽃나무들의 이름과 그 이름을 꾸며주는 색깔 수식어, 박하냉차의 진한 초록색이 지중해를 더욱 선명하게 눈앞에 가져옵니다.
푸른 바다, 하얀 구름의 지중해가 덜 아름답다는 건 아닙니다. 얼마 전에 개봉한 그리스 작가 카잔차키스(1883~1957)의 일대기, ‘카잔차키스’도 그 바다를 담고 있었습니다. 에게 해의 큰 섬, 크레타에서 태어난 카잔차키스는 크레타에서 벌어진 일들을 그린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로 세계인들에게 에게 해의 아름다움을 전해줬지요. 영화 속 젊은 카잔차키스는 거울 같은 바다를 미끄러지는 요트 위에서 부인 될 사람에게 은은하게 사랑을 고백합니다. 그때 그 바다의 푸른 색깔, 반짝이는 은물결, 하얀 모래는 숨 막히게 눈부셨습니다. 해질 무렵 지중해 하늘은 장엄한 노을로 불타고, 바다는 ‘포도주 빛’으로 변합니다. 이처럼 아름다운 지중해는 카뮈의 색깔들로 생명이 더 가득해지고 활기차졌습니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에도 꽃나무 이름이 많습니다. “오렌지 꽃, 샐비어, 레몬나무, 아직 꽃이 지지 않은 유도화, 야생 무화과와 거뭇한 캐러브콩나무, 갈대, 현삼, 은빛 올리브, 포도넝쿨, 모과나무, 석류, 고추, 박하, 로즈메리, 세이보리, 라벤더, 바나나, 수선화.” 카잔차키스의 꽃에서도 색깔이 느껴지지만 카뮈보다는 덜합니다. 카잔차키스가 대체로 이름만 덤덤히 쓴 것과는 달리 카뮈는 장밋빛, 희미한 붉은 빛, 노랑, 보라, 빨강 등 꽃 색깔까지 우리에게 보여주기 때문일 겁니다.
<티파사에서의 결혼>은 카뮈의 산문집 <결혼·여름> 맨 앞에 나옵니다. <결혼·여름>은 ‘책세상’ 출판사에서 내놓은 스무 권짜리 <카뮈 전집> 제1권입니다. 카뮈 전집을 혼자서 번역한 고려대 명예교수 김화영 선생은 카뮈의 흔적을 확인하려 1974년부터 알제리 여행을 꿈꿨으나 30년이 지나서야 이뤘습니다. 처음엔 알제리가 적성(敵性) 국가였기 때문에, 나중에는 알제리의 정세 불안으로 가지 못했습니다. 마침내 2005년 알제리를 다녀온 그는 <알제리 기행>(마음산책)을 썼습니다. 김 선생이 번역한 <카뮈 전집> 두어 권을 읽고 티파사에 동경을 품어온 나는 <알제리 기행>도 찾아서 단숨에 읽었습니다. 김 선생은 이 책을 “봄철에 티파사에는 신(神)들이 내려와 산다. 태양 속에서, 은빛으로 철갑을 두른 바다며 야생의 푸른 하늘, 꽃들로 뒤덮인 폐허, 돌더미 속에 굵은 거품을 부글거리며 끓는 빛 속에서 신들은 말을 한다”라는 인용문으로 시작했습니다. <티파사에서의 결혼> 첫 줄입니다. 카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절대 잊지 않을 젊음과 생명이 넘치는 문장입니다.
나는 <알제리 기행>을 읽으면서 카뮈와 알제리와 티파사에 대해 내가 알고 싶어 했던 것들, 알게 돼서 좋은 것들을 많이 알게 됐습니다. 김 선생이 티파사 해변에서 찍은 고대 유적과 바다와 꽃나무 사진들을 보면서 티파사의 색깔이 내 상상과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됐고, 내가 밑줄 쳐둔 <티파사에서의 결혼>의 문장을 <알제리 기행>에서 김 선생이 다시 강조할 때면 어린아이처럼 뿌듯해지기도 했습니다.
김 선생도 알제리에서 박하차를 마셨습니다. 그러나 내가 마시려는 “얼음같이 차가운 냉차”는 아니었습니다. “작은 유리잔에 담긴 뜨거운 박하차”였습니다. 알제리와 알제리 양 옆의 튀니지와 모로코 사람들은 뜨거운 박하차를 일상 음료로 마시는데, 녹차 우린 것에 박하잎 몇 쪽을 띄운 것이라고 합니다. 카뮈가 박하냉차를 마셨던 티파사 해변의 작은 카페는 사라졌나 봅니다. 티파사에 간들 나도 그 박하냉차를 못 마실 것 같습니다. 세월이 너무 흘렀습니다.
12편의 산문으로 꾸며진 산문집 <결혼·여름>은 <티파사에서의 결혼>에서 시작돼 <티파사에 돌아오다>로 끝납니다. 티파사 이야기가 카뮈 전집 1권 맨 앞과 맨 뒤를 차지하고 있는 거지요. 문명(文名)이 알려져 파리에서 활동하던 그는 제2차 세계대전의 불길한 조짐이 유럽을 덮기 시작할 때 알제리에 왔다가 티파사에도 들렀습니다. 그래서인지 <티파사에 돌아오다>는 <티파사에서의 결혼>과는 달리 많이 우울합니다. 첫 줄이 “닷새째 알제에 비가 그치지 않고 내리더니 마침내는 바다까지도 적셔버리고 말았다”입니다. <티파사에서의 결혼>을 쓸 때보다 20년도 더 지났고, 비 내리는 겨울이었으니 화려한 꽃 이야기와 생명이 넘치는 표현이 덜 나오는 건 당연할지도 모릅니다. “(티파사의) 요란한 불빛의 카페들에서 나는 이름은 알지 못하지만 낯이 익은 얼굴들에서 내 나이를 읽어내곤 했다. 나는 다만 그 사람들이 나와 함께 젊었었다는 것을, 그리고 이제는 젊지 않다는 것을 알 뿐이었다.”
그래도 이 글 역시 감동이 자욱합니다. 지면이 좁아 그 감동을 전하지 못하는 게 아쉽습니다. 하지만 한 줄은 옮겨야겠습니다. 카뮈의 삶과 사상, 줄여 말하면 인간으로서 그의 매력이 보석처럼 빛나는 문장입니다. “사랑받지 못하는 것은 그저 운이 없는 것이지만 사랑하지 못하는 것은 불행이니까 말이다.” 이 문장은 다음과 같이 이어집니다. “우리는 모두가 그 불행으로 죽어가고 있다. 피와 증오가 마음 자체를 말려 죽이기 때문이다. 정의를 찾으려는 요구가 오래가면 그것을 낳아준 사랑을 메마르게 한다.”
참, 카뮈가 젊었을 떼 알제리 청년들은 “그저 햇빛을 쪼이니 기분이 좋아서” 나체로 수영하고, 수영을 하고 나서는 “수영을 한탕 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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