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턴 회고록’ 후폭풍…靑, 당혹감 속 정면 대응 기조 전환

북한 잇따른 ‘대남 도발’ 이어 사면초가

입장문 내고 美정부 ‘적절한 조치’ 촉구

존 볼턴 전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지난해 10월 30일(현지시간) 워싱턴DC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서 열린 포럼에서 북한 관련 발언 도중 안경을 고쳐 쓰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남북 관계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가운데 이번에는 미국발(發) 악재가 우리 정부를 강타했다. 존 볼턴 전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발간한 <그 일이 일어난 방: 백악관 회고록>의 내용이 공개되면서다.

핵심은 대선을 앞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저격’하는 목적이 다분해 보이지만, 회고록에 남·북·미 정상 간 외교 비화가 포함돼 논란이 되고 있다.

청와대는 22일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침묵 기조에서 곧바로 브리핑을 통해 정면 대응기조로 돌아섰다.

소위 ‘제3자’인 볼턴 전 보좌관의 정제되지 않은 주장이 자칫 사실로 받아들여질 경우,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구상에 심대한 타격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청와대는 볼턴 전 보좌관이 회고록에서 문 대통령에 대해 “조현병(Schizophrenic) 환자 같다”고 표현한 것을 두고 “그것은 (조현병 환자 같은 아이디어라고 표현한 부분) 그 자신이 판단해야 될 문제”라면서 “본인이 그럴 수 있는 것 아닌가 싶다”고 맞받아쳤다.

볼턴 전 보좌관은 문 대통령의 대북 비핵화 접근을 놓고 ‘조현병 환자’ 같다고 표현했다. 청와대는 전날까지만 해도 “외교문서가 아니라 개인 의견에 일일이 대응해야 할지 의문”이라는 입장이었다.

◆‘카운터파트’ 靑안보실장 “사실 크게 왜곡…외교 기본원칙 위반”

남·북·미 정상회담 국면 당시 볼턴 전 보좌관의 카운터파트였던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이날 윤도한 국민소통수석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정 실장은 “상당 부분 사실을 크게 왜곡했고, 한국과 미국, 그리고 북한 정상들 간의 협의 내용과 관련한 상황을 자신의 관점에서 본 것을 밝힌 것”이라며 “정확한 사실을 반영하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한 “정부 간 상호 신뢰에 기초해 협의한 내용을 일방적으로 공개하는 것은 외교의 기본원칙을 위반한 것으로 향후 협상에서 신의를 매우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다”면서 “미국 정부가 이런 위험한 사례를 방지하기 위해 적절한 조치를 취해주길 기대한다”고 촉구했다.

정 실장은 “이런 부적절한 행위는 앞으로 한·미 동맹 관계에서 공동의 전략을 유지, 발전시키고 양국의 안보 이익을 강화하는 노력을 심각하게 저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윤 수석은 춘추관 브리핑에서 정 실장이 전날 이와 같은 입장을 미국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도 전달했다고 밝혔다.

청와대도 “한반도 평화와 남북 관계 발전에 관한 한·미 정상 간에 진솔하고 건설적인 협의 내용을 자신의 편견과 선입견을 바탕으로 왜곡하는 것은 기본을 갖추지 못한 부적절한 행태”라는 입장을 내놨다.

◆‘판도라 상자’ 연 볼턴, ‘文 한반도 중재자론’ 무력화

볼턴 전 보좌관의 회고록에서 우리 정부 입장에서 예민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은 크게 세 대목이다. 지난해 6월 30일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회동 과정에서 문 대통령의 참석 요청을 거절했다는 부분이다.

미국 측이 문 대통령의 참석 요청을 세 차례나 거절했고, 김 위원장도 문 대통령 참석을 원하지 않았다는 내용이다.

또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1년 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폐기(CVID)’ 가능성을 물었고 김 위원장이 동의했다는 부분도 논란이 되고 있다. 북한이 핵 관련 문제에 대해 동의까지 했는데 결과적으로 최악의 남북 관계로 귀결됐다는 의미인 셈이다.

그는 볼턴 전 보좌관은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의 평창 올림픽 참석에 대해 “방문 목적이 있었는데 문 대통령을 북한으로 초청하는 것”이라며 “한국 정부는 이미 만들어진 패턴에 따라 북한의 올림픽 참가비용을 지불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청와대 역시 볼턴 전 보좌관의 ‘왜곡’과 ‘편견’이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선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날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볼턴 전 보좌관이 여러 이야기를 했지만 하나하나 사실관계를 다투는 것조차 부적절한 것으로 일단 판단이 된다”면서도 “현재 저희도 회고록 전체를 보지는 못했다. 어느 부분이 관련돼 있는지 내용은 파악하는 중”이라고 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작년 판문점 회담 당시 상황을 화면을 통해서나 보도를 통해 살펴보시면 볼턴 전 보좌관의 역할이 무엇이었는지 저희가 말씀드리지 않아도 쉽게 확인하실 수 있을 것”이라며 그의 역할을 평가절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