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해전, 1999년·2002년 6월 그날 무슨 일이? 교전 끝 해군 6명 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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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연 기자
입력 2020-06-25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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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뉸스]


6·25전쟁 70주년을 맞은 가운데, 연평해전이 다시금 관심을 받고 있다.

연평해전은 1999년 6월 15일과 2002년 6월 29일 북방한계선(NLL) 남쪽 연평도 인근에서 해군 함정과 북한 경비정 간에 발생한 해상 전투다. 

먼저 1999년 6월 7일 인천 옹진군 연평도 서북쪽 10㎞ 해상에서 북한 경비정 3척이 NLL을 침범했다. 다음날에도 또다시 침범하자 해군은 고속정을 접근시켜 퇴각을 요구했다. 하지만 북한은 경비정 3척을 추가 투입했고, 9일 해군 고속정을 충돌해 손상을 입히기도 했다.

그 후에도 침범이 계속되자 해군은 11일 북한 경비정 4척에 대한 '함미(선체 뒷부분) 충돌작전'을 실시했다. 15일에는 북한 경비정 7척이 해군 고속정에 접근해 충돌공격을 했고, 해군 역시 맞대응했다. 그러던 중 북한 함정이 사격을 가했고, 해군도 자위권 차원에서 즉각 대응사격을 가했다. 14분간 진행된 교전은 북한 어뢰정 1척을 격침시켰고, 5척은 파손되는 것으로 끝이 났다. 

문제는 2002한일월드컵이 막바지를 달리던 2002년 6월 29일에 일어났다. NLL을 넘어온 북한 경비정은 근접차단을 실시하던 해군 참수리 357호를 향해 사격을 가했다. 해군은 358호를 투입해 대응사격에 나섰고, 인근 제천·진해함과 참수리급 경비정 4척까지 추가 투입해 격파사격을 실시했다. 이 교전은 31분간 진행됐고, 북한 측 경비정이 반파된 채 퇴각하면서 종결됐다. 

당시 교전으로 고속정 357호는 침몰됐고, 고속정에 타고 있던 운영하 소령 등 해군 6명이 사망해 큰 충격을 줬다. 이후 해군은 5단계(고방송·시위기동·차단기동(밀어내기 작전)·경고사격·조준격파사격)였던 교전규칙을 3단계(시위기동·경고사격·조준격파사격) 대응으로 바꾸게 된다. 

한편, 해당 교전은 2015년 개봉한 영화 '연평해전'을 통해 그려진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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