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화된 양극화가 불씨다. 거기에 불공정이란 기름이 부어졌다. 내재된 갈등이 계기만 있으면 불덩어리가 돼 마치 계급투쟁 양상처럼 터져나온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백선엽 예비역 장군의 죽음을 계기로 노출된 보혁, 남녀, 신구 마찰은 이 같은 우리 사회의 초상이다.
경제 문제를 정치적으로 풀려 했던 게 패착이다. 양극의 중심에 부동산 문제가 있다는 진단은 맞았다. 하지만 소수 다주택 부자를 희생양으로 다수 서민·중산층의 환호를 끌어내려던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21타수 무안타'의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9회말 투아웃에서 22번째 대책을 내놓았지만 삼진아웃될 가능성이 크다. 좌절한 2030세대의 분노는 되레 정부·여당을 향해 활시위를 당기고 있다.
KB부동산에 따르면 지난 1월 기준 서울 아파트 중위값은 9억1216만원이다. 중위값은 모든 아파트를 가격 순으로 나열했을 때 딱 중간에 위치한 아파트값이다.
2030의 상대적 박탈감은 하늘을 찌른다. 평생 월급을 모아도 강남 집 한 채를 사지 못한다. 불안감은 미친 듯한 '막차타기' 광풍으로 이어진다.
서울시 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9125건이다. 5월보다 3600건 정도 늘었다. 4월과 비교하면 3배 가까운 수치다. 세대별로 30대가 가장 많이 샀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 5월 서울 아파트 매매건수(4328건) 중 30대가 29%(1257건)를 차지했다. 27.8%를 차지한 40대보다 많다. 1113조원에 달하는 부동자금이 2030의 패닉 바잉(비이성적 사재기)을 떠받치며 부동산 대책을 번번이 무용지물로 만든다.
불안감은 정부·여당의 불공정을 확인하면서 분노로 바뀐다. 강남·북, 서울·지방 간 부동산 가격차는 갈수록 벌어지는데 강남 집값 잡겠다던 정부·여당 지도층 상당부분이 강남에 집을 가진 다주택자란 사실이 드러났다.
경제정의실천연합과 참여연대에 따르면 민주당과 더불어시민당에서 당선된 의원 180명 중 다주택자가 42명(23%)이다. 청와대 참모 29%(41명 중 12명), 국토교통부와 기획재정부 고위 공직자 31%(16명 중 5명)가 다주택자다. 청와대 비서실장이 고향인 청주 아파트를 팔고 강남 아파트를 지키려다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전 청와대 대변인은 재개발 건물을 사 몇 달 만에 10억원이 넘는 차익을 거뒀다.
뫼르소가 해변에서 방아쇠를 당기듯 구실을 찾아 떠돌던 2030의 분노가 곳곳에서 분출된다. 여론이 악화되자, 정세균 국무총리가 “다주택 고위공직자는 집 팔라”고 으름장을 놨다.
정책 불신에 2030이 규제 직전 집 사재기에 나서고, 강납 집을 파는 게 고위공직자의 행동강령이 됐다. 우리에겐 익숙하지만 대다수 시장경제 선진국의 눈으로 보면 어처구니없는 해프닝이다.
계급 프레임에 갇힌 22번의 규제 퍼레이드가 정권 연장의 최대 위협이 됐다. 재정학 권위자인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최근 개인 홈페이지에서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 마련이고, 주택을 여러 채 보유하고 있는 것은 합리적 이익을 추구했을 따름”이라고 했다. 그는 다주택 고위공직자 규제와 관련해서도 “주택을 여러 채 가진 게 시비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너무한 것”이라며 "불법을 저지른 적 없고 세금을 꼬박꼬박 냈다면 특별히 시비의 대상이 될 이유가 없다"고 했다.
경제학자의 눈에 비춰진 다주택자 규제는 그의 말을 빌리면 ‘근본 처방 없는 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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