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한계 극복과 수명연장 욕구에 찬물을 쏟은 코로나 바이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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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철 전남대학교 연구석좌교수
입력 2021-01-0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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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철 교수]





2020년은 잔인한 해였다. 작금 단 일년 만에 전세계에서 8천만명이 감염되고, 180만명이 사망에 이른 COVID-19 사태는 인류를 처참하게 짓밟은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선진국이라는 구미 국가들마저 의료체계가 마비되고 장례시스템이 붕괴되어 심지어는 시신을 냉동 트럭에 방치하거나 비닐백으로 싸서 외딴 섬이나 지역에 집단으로 매장하는 광경을 뉴스로 보면서 누구나 인간의 존엄성이 매도되는 처절한 심정을 금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전쟁이나 천재지변도 아닌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의 투쟁은 사람들에게 공포를 불러오고 막연한 대응을 무작정 강요하고 있어 불안감만 커져 가고있다. 더러는 지구종말론적인 생각도 하게 되고 생명의 가치에 대한 근원적 의문도 품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랜 역사 동안 온갖 험난한 고난을 극복해왔기 때문에 인간이 여기에서 좌절할 수는 없다. 아무리 어려운 난관이라도 결국은 극복해 온 인류에게 헤밍웨이의 명저 ‘노인과 바다’에서 언급된 마지막 구절이 쟁쟁하게 들려온다. “하지만 사람은 패배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어. 사람은 파멸 당할 수는 있을지언정 패배하진 않아 "

인류가 다른 여느 동물과 차별화되고 인지능력을 가지게 된 결정적인 사건은 바로 주검의 매장이었다. 어떤 짐승이나 영장 동물도 주검을 매장하지 않는데 오직 호모 사피엔스 인류만은 시신을 매장하여 왔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은 모여서 망자를 생각하고 죽음이 끝이 아니고 다음 생이 있을 것을 염원하면서 신화를 빚고 종교와 철학을 이루었다. 그만큼 죽음에 대한 의식과 절차는 인류에게 큰 의미를 부여해온 소중한 일이었다. 이집트나 마야문명의 피라미드, 요르단의 페트라, 진시황릉, 신라와 백제 왕릉 들의 거대한 규모는 모두 죽은 조상과 영웅들에 대한 존경과 불사에 대한 염원을 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문자도 없던 원시 석기시대에 이미 우리나라 산하에 널려있는 고인돌이나 터키의 괴베클리 테페 같은 거창한 매장 시설이 설치되었다는 점은 죽음에 대한 경배가 역사이전부터 이미 원천적으로 인류의 핵심적인 요소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인류는 살아서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을 넓히고 확보하기 위하여 하늘과 땅 그리고 바다를 개척하였고 우주에 대한 도전도 망설이지 않았다. 주어진 공간의 한계를 극복하는 꿈을 현실화하였다. 그러나 인류의 보다 본질적인 욕구는 불로장생의 추구에 있었다. 어떻게 하면 더 오래 더 잘 살 수 있을까 염원하였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노력해 왔다. 이에 부응하여 수많은 편법과 사기술이 판쳐 온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인간에게 주어진 숙명적인 제한 조건인 시간의 한계를 돌파하여 수명연장을 추구하려는 욕구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그로 인하여 일련의 과학기술이 다양하게 개발되어 단계적으로 세상을 발전시켜 온 결과를 가져왔다. 인류는 자연선택에 의하여 만물의 영장이라는 진화의 정상에 도달하였지만 이제는 더 이상 적응과 선택이라는 피동적 입장이 아니라 스스로 직접 디자인하여 종의 본질 자체마저 과학기술을 활용하여 변형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 종래의 진화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빠른 속도로 본질적인 변화를 초래하여 현생인류의 틀을 벗어나 후생 인류로 탈바꿈하려는 새로운 세상에 다가 가고 있다.

인류가 불로장생의 꿈을 추구하기위해 취해온 일련의 역사적인 사건들을 정리해 보면 고대 신화 시대, 중세 연금술 신비주의 시대, 그리고 현대의 논리를 바탕으로 한 과학기술 시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공간을 확대하고 개척하기 위해 반인반수(半人半獸)의 존재를 창안하고, 능력과 시간을 확대하거나 연장하기 위해 반인반신(半人半神)을 상상하면서 대자연의 위대함에 순응한 자연주의 또는 신본주의(神本主義 theocentrism) 시대가 시작이었다. 이후 인간이 자신에게 능력을 부여하고 가치를 고양하기 위해 인지능력을 통한 판단과 추론을 바탕으로 인본주의(人本主義, anthropocentriam) 또는 인간주의의 시대로 이어졌다. 이제는 생체 기능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신체 내외에 보조기구와 기계를 장착할 뿐 아니라 생체 자체의 유전적 본질까지 변형하고 개선하는 반인반기(半人半機)의 존재로 변화한 인간이 스스로 제작한 장치에 역으로 의존하는 기본주의(機本主義, machinacentrism) 시대에 이르렀다. 인간의 능력을 극대화하고 수명을 연장할 수 있는 시대에 인류가 진입한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변천을 해온 인류의 꿈과 야망이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을까 되새겨보지 않을 수 없다. 역사는 반복한다는 논리에 의하면 회귀하여야 하는데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까? 공간 영역의 확대와 생존기간의 연장이 과연 인류를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 정말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 철학의 가장 단순한 명제를 다시 생각하며 불로장생 추구의 보완점은 무엇일까 고민해야 할 때가 되었다고 본다.

작금에 벌어진 COVID-19사태는 지금까지 흘러왔던 인류 발전 사조의 흐름에 엄숙한 경종을 울렸다. 이번 팬데믹이 계절에 상관없이 진행되고 강한 전염력도 특별하지만 특히 고령자군 치사율이 특이하게 높다는 사실은 인류가 면면이 추구해왔던 수명연장 욕구에 찬물을 쏟아버렸다. 더욱 순식간에 죽어간 사망자들의 주검을 적절한 의식이나 절차없이 무차별하게 매장하는 장면들은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인류의 염원으로 절실하게 추구해 왔던 불로장생의 꿈이 와르르 무너지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하지만 인류는 좌절하지 않고 이러한 역경도 극복해 낼 수 있는 과학기술을 개발해 내고 있다. 코로나질환의 치료법과 백신 개발 방법을 찾아 너무 늦지않은 시기에 이에 대응할 준비를 갖추고 있다. 일반적으로 백신의 경우 노인에서의 효과가 젊은 층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미미하여 큰 우려를 가지고 있었는데 최근 화이자사나 모더나사가 개발한 COVID-19백신이 노인에게도 효과가 높을 것이라는 보고는 매우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와 같이 인류 발전의 흐름의 첨단에는 인간이 개발한 과학기술이 있으며, 아무리 험한 역경이라도 결국은 극복해낸 인류의 사조를 도도하게 흐르게 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사태가 발생하면서 고령층 치사율이 현저하게 높은 현상 때문에 인류의 근원적 욕구인 불로장생이 좌절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종식될 것으로 본다. 영국 시인인 셀리가 유명한 시 서풍부에서 “예언의 나팔이여! 오 바람아, 겨울이 오면 봄은 멀지 않겠지? ” 라고 하였듯이 이제 새해에는 역경의 시대가 지나고 환희의 시대가 머지않아 열릴 것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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