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050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속도를 내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철저한 준비나 제대로 된 시나리오 없이 '탄소중립'만 외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탄소중립기본법 본회의 통과..."2030년까지 온실가스 35% 감축"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규정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 제정안이 지난달 31일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됐다. 이에 따라 전 세계에서 14번째로 2050 탄소중립 비전과 이행체계를 법제화했다.일명 '기후위기대응법'으로도 불리는 이 법안의 핵심은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배출량 대비 35% 이상 수준으로 줄이는 것이다. 35%는 기존 목표(2018년 대비 26.3%)에서 9%포인트 상향한 것으로 여기서부터 사회적 논의를 시작하도록 법에 명시했다. 우리나라가 2018년부터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선형(일직선)으로 감축한다고 가정하면 2030년 목표는 37.5%가 된다. 즉 '35% 이상'이라는 범위는 '2050 탄소중립'을 실질적으로 지향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당장 올해부터 매년 2402만t의 탄소를 줄여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는 2017년 순배출량(6억680만t) 대비 24.4% 감축이다.
환경부, 내년 예산·기금 11조7900억원 편성하며 '박차'
탄소중립 주무부처인 환경부가 '탄소중립' 사회 전환을 위해 박차를 가한다.환경부는 2022년 예산·기금안으로 11조7900억원을 편성했다고 지난 1일 밝혔다. 예산안은 올해 10조1665억원 대비 6% 증액된 10조7767억원이다. 기금안은 2021년 1조49억원보다 0.8% 늘어난 1조133억원으로 정해졌다.
예산안 가운데 탄소중립 부문은 5조원에 이른다. 탄소중립 달성까지 정부가 경제구조를 전환하는 데 투자를 늘리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셈이다. 총지출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내년에 신규로 조성되는 기후대응기금에도 6972억원을 편성했다.
김영훈 환경부 기획조정실장은 "2050 탄소중립은 도전적 과제이나 꼭 가야 할 길"이라며 "내년도 환경부 예산안은 2050 탄소중립 이행 기반을 구축해 나가는 데 재정역량을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국회 심의를 거쳐 예산이 확정되면 집행 단계에서 최대한 효과를 낼 수 있게 사업 준비에 최선을 다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세부적으로 보면 정부는 내년까지 무공해차(수소·전기차)를 누적 50만대, 2025년까지 133만대 보급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내년에 수소차 2만8000대와 전기차 20만7000대를 보급한다. 무공해차 충전 기반 시설(인프라)도 대폭 확충해 주유소만큼 편리한 충전환경을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2024년 노후 경유차 5등급 차량 완전 퇴출을 목표로 정책 효과를 높이기 위해 조기 폐차 지원도 확대한다. 정부는 내년에 3456억원을 투입해 36만대 조기 폐차를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단 매연저감장치(DPF) 부착 지원은 1710억원(9만대)에서 578억원(3만5000대)으로 축소했다.
정부는 '탄소중립 사회' 전환과정에서 필요한 예산을 지원하기 위해 내년에 2조5000억원 규모의 기후대응기금도 신설한다. 이 기금은 탄소배출 감축을 유도하기 위한 탄소배출권 매각 등으로 생긴 수입으로 구성된다. 기금 지출은 탄소 감축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에 사용된다.
산업계 반발 잇따라..."산업 위축, 대량 실직 우려"
'2050 탄소중립'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과제가 첩첩산중이다.거세게 반발하고 있는 산업계를 이해시키는 일은 정부가 반드시 풀어야 하는 숙제다. 산업계에서는 에너지 소비가 많은 제조업 중심의 한국 산업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법안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자동차산업협회(KAMA)는 지난달 23일 해당 법안이 자동차산업 생태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급속한 탄소감축방안으로 산업이 위축되고 대량 실직 등이 발생할 수 있다며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것. 자동차산업협회 추산에 따르면 '2018년 순배출량 대비 35% 이상 감축' 목표를 달성하려면 약 395만대의 전기차가 보급돼야 한다. 충전소를 구축하기 위해 3조3000억~7조원의 투자도 필요하다. 현재 전기차 누적 보급 대수가 17만대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부작용이 클 수밖에 없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역시 지난달 19일 "탄소중립법은 제조업 중심의 우리 산업 구조를 고려할 때 국민 경제에 지나친 부담을 발생시킬 우려가 있다"며 "산업계 의견 수렴이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감축 목표 하한선을 법제화하는 것은 합리적인 목표 설정을 방해한다"는 내용의 입장문을 발표했다.
정부가 내놓은 대안이 뾰족하지 않은 '보여주기식'에 그친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달 23일 환경부가 발표한 탄소중립기본법(안) 4대 시책은 △온실가스 감축 △기후위기 적응 △정의로운 전환 △녹색성장 등이다. 이 가운데 '정의로운 전환'은 급격한 탄소중립 사회로 전환에 따른 실업 피해를 지원하고, 정의로운 전환 특별지구로 지정해 정의로운 전환 지원센터를 설치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그러나 일시적으로 피해를 보상하는 데만 그칠 뿐 전환 조치로 일자리를 잃는 개인이나 기업의 경영위기 등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은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정애 환경부 장관은 이와 관련해 "일반적인 일자리가 전환되는 과정에 있어서 (일부는) 급작스러운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며 "그분들에 대한 준비도 (마련돼) 적용돼야 하지 않겠느냐. 적정하게 (지원 등이)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이외에 구체적인 건 시행령을 만드는 과정에서 경제·산업계, 노동계와 여러 논의를 거쳐서 구체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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