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전쟁] 진격의 K-보일러, 세계 안방 데운다

국내 시장 이미 레드오션…보일러업체들, 美 시장 집중 공략

친환경콘덴싱 기술로 현지인 잡기 집중…中 시장도 전망 밝아

지난 2월 북미 건축설비 전시회 IBS에 참가한 경동나비엔 부스를 방문객들이 살펴보고 있다. [사진=경동나비엔]

보일러업계가 수출에 전력투구하고 있다. 국내 시장이 이미 포화상태 이르러 레드오션(치열한 경쟁시장)이 됐다는 판단이 기저에 깔렸다. 경동나비엔은 친환경 기술을 무기로 현지화 전략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이 회사는 미국 수출 호조로 지난해 해외 매출 비중이 최초로 60%를 돌파했다. 귀뚜라미도 미국과 중국, 유럽 등 저변 확대에 집중하고 있다.
 

◆ 국내 시장 이미 포화…해외로 가는 이유는

국내 보일러 시장은 레드오션이 된 지 오래다. 이익 남기기가 쉽지 않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업계 관계자는 “아파트 건설사에 보일러를 대량 공급해도 상대적으로 납품되는 가격은 낮다”고 전했다. 국내 시장 성장도 이미 한계에 달했다는 평이 중론이다. 인구 증가세가 둔화되고 교체 수요가 많지 않다는 분석이다.
 
환경부에 따르면 국내 가정용 친환경보일러 보급 사업에서 경동나비엔 판매 대수는 지난해 11만3600대다. 이는 전년보다 38%(3만8000대) 줄어든 수치다.
 
보일러업계가 바라보는 유망한 미래 시장 중 하나는 미국이다. 미국에서는 국내와 달리 제값을 받고 제품을 판매할 수 있다는 업계 관계자의 전언이다. 경동나비엔의 지난해 북미법인 순이익은 전년 대비 105.3% 증가한 117억원을 기록했다.
 
미국 다음으로 큰 보일러 시장인 러시아에도 보일러 업체들이 공략 중이지만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로 주춤한 상황이다. 서유럽 시장의 경우 기술력이 뛰어난 독일과 영국 회사가 시장을 장악하고 있어 시장 확대는 쉽지 않아 보인다.

 

◆ 친환경 기술로 현지화…매출 상승 곡선

경동나비엔은 북미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4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경동나비엔은 올해 1분기 북미 지역에서 1851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1173억원 대비 57.8% 증가한 수치다. 1분기 전체 매출 2941억원의 62.9%에 달하는 비중이다.
 
경동나비엔의 북미 시장 매출은 꾸준한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2020년 북미에서 3919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3701억원을 기록한 국내 매출을 처음으로 앞질렀다. 지난해에는 매출 5819억원을 기록하며 회사 전체 매출의 50% 이상을 북미에서 기록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리모델링 수요가 커지면서 해외 각국에서 보일러 수요가 크게 늘어난 영향으로 풀이된다. 경동나비엔은 콘덴싱보일러·온수기 분야 미국 시장 1위 업체다.
 
경동나비엔 관계자는 “고객을 기반으로 한 현지화 노력이 주효했다”며 “북미 시장 진출에 나서며 한국과 다른 난방 문화와 설비 인프라의 차이를 고려했다”고 말했다. 제품 개발부터 서비스 등 모든 부문에서 고객의 니즈를 최우선으로 반영했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콘덴싱온수기를 새롭게 개발한 것이 대표적이다. 콘덴싱 기술은 외부로 빠져나가는 열을 모아 다시 온수를 데우는 데 사용하는 친환경 기술이다. 2006년 북미 법인 설립 당시 시장에서는 친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지 않았다. 하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친환경 기술로의 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회사 측은 판단했다. 결국 친환경 콘덴싱온수기가 현지 시장에 나올 수 있었다.
 
경동나비엔은 버려지는 열을 한 번 더 흡수해 배기가스 온도가 낮은 콘덴싱온수기에만 적용이 가능한 강화 플라스틱 연도(연기가 빠져나가는 통로)를 개발했다. 소비자는 탁월한 경제성으로 가스비 절감 효과를 얻고, 설치업자는 설치 편의성을 높이는 동시에 마진을 확보할 수 있는 선순환의 구조가 만들어지며 콘덴싱온수기에 대한 관심은 빠르게 늘어났다.
 
또 스테인리스 열교환기를 적용해 위생적이고 오래 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저녹스 버너를 사용해 대기오염물질 배출량을 줄이는 친환경성도 갖췄다. 미세먼지와 온실가스 감축 효과가 큰 점도 합리적인 북미 소비자들을 사로잡았다.
 
가스관 교체 없이도 사용할 수 있는 콘덴싱온수기 제품 출시는 북미 시장 판세를 뒤바꿨다. 경동나비엔이 제품을 처음으로 출시한 2008년 당시 연간 2만대 수준이었던 콘덴싱온수기 시장은 매년 성장을 거듭해 작년 80만대 수준으로 40배가량 성장했다.
 
이런 콘덴싱온수기 시장의 성장에 주목한 일본 제조사 모두가 시장에 뛰어들면서 경동나비엔의 점유율은 한때 40% 초반까지 밀리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해 47.5%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하며 현지 시장 1위를 기록했다. 경동나비엔은 올해 시장점유율 50%를 넘어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경동나비엔 콘덴싱보일러 ‘NCB353’ [사진=경동나비엔]

경동나비엔은 일반 온수기 시장으로도 뛰어들며, 해당 시장에서 독보적 성과를 기록하고 있던 린나이 등 일본 기업에 도전장을 내밀기도 했다. 북미 보일러 시장에서의 성과도 두드러진다. 경동나비엔은 북미 시장에서 작년 50%에 가까운 판매량 증가를 기록했다.
 
경동나비엔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외부인 방문을 꺼리는 분위기 속에서 지난해 북미 시장 판매가 크게 늘었다”며 “설비업자의 방문이 반드시 필요한 설치 제품은 기술력·품질이 뛰어난 브랜드를 선호한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귀뚜라미는 위탁개발생산(ODM)을 통해 미국 시장에 보일러를 공급 중이다. 장기적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하고 신제품 공급도 늘릴 방침이다. 대성쎌틱은 이미 ‘베스타’라는 독자브랜드로 미국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보일러 시장이 정체기에 접어든 데다 치열한 가격 경쟁으로 업체들이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며 “미국, 러시아 시장에 이어 중국도 보일러업계가 눈독들이고 있는 시장”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