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치용의 비욘드 ESG] 빙하에서 부활한 '아이스맨' …21세기 인류에 대한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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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용 교수
입력 2023-04-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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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용 교수]


지난 2월 17일 국내 언론은 영국 데일리메일 등 외신을 인용해 알프스에서 죽은 채 발견된 누군가의 정체를 알리는 보도를 일제히 내보냈다. 이 누군가는 지난해 9월 알프스에서 시신으로 발견됐으며 확인 결과 1974년 12월 그곳에서 실종된 32세 영국 국적 탐험가로 밝혀졌다. 16일(현지시간) 외신에 따르면 당시 스위스 발레주(州) 그랑콩뱅에서 실종 신고된 이 영국인과 2022년 발견된 시신은 동일인이다. 발레주 경찰은 “해당 시신 신원을 파악하기 위해 실종자 명단을 확인하였고 영국 경찰과 협력해 DNA 분석을 마쳤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 알프스에서 시신이 자주 발견된다. 지난해 7월 스위스 마터호른봉 북서쪽 슈토키 빙하에서 발견된 시신은 1990년 실종 신고된 27세 독일 산악인으로 밝혀졌다. 이어 지난해 8월에는 융프라우 인근 알레치 빙하에서 1968년 추락한 경비행기 일부가 형체를 드러냈다. 2017년엔 1942년 초원에서 소젖을 짜고 돌아오다 행방이 묘연해진 스위스 부부가 빙하에서 미라 상태 시신으로 발견됐다.
이러한 잇단 시신 발견은 유족에겐 그나마 반가운 소식이지만 인류 전체로는 꼭 반길 일이 아니라는 데에서 마음이 착잡해진다. 지구온난화로 알프스 빙하와 얼음이 녹으면서 그 속에 갇혀 있던 시신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어서 더 많은 시신의 발견은 더 심각한 경고를 뜻한다. 알프스의 얼음이 녹으며 발견된 시신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외치(Ötzi)다.


 

[발굴 당시 외치의 모습]



◆아이스맨의 부활=1991년 9월 19일 독일인 헬무트·에리카 지몬 부부는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 국경을 따라 흐르는 외츠탈 알프스 산맥을 등반하다가 피나일봉 근처 해발 3210m 지점에서 시신을 발견했다. 얼음에 묻힌 채 상반신을 드러낸 시신을 보고 지몬 부부는 조난된 등산객이거나 제1차 혹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낙오된 병사일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 시신이 요즘만큼 자주는 아니어도 더러 이 지역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다음날 신고를 받고 출동한 지역 경찰과 인근 산장 관리인 등이 전동 드릴과 도끼를 이용하여 시신을 꺼내려 했지만 날씨가 나빠 포기하고 철수하였다. 산악인으로 구성된 전문 발굴팀이 와서야 시체를 얼음에서 꺼낼 수 있었다.
냉동 상태인 시신을 빙하 밖으로 온전히 꺼내면서 함께 발굴한 그의 소지품을 보고 발굴팀이 깜짝 놀란다. 가공되지 않은 동물 가죽으로 만든 옷과 구리 도끼 등 고대인 것으로 보이는 물건이 잇달아 나왔다. 팀은 시신과 유류품을 발굴 현장에서 가까운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대학으로 보냈다. 이 대학 고고학자들은 유류품을 분석하여 이 물건들의 주인이 약 4000년 전 청동기 시대 사람일 것으로 추정하였다. 이후 시신의 피부에서 추출한 세포와 소지품을 대상으로 방사성탄소연대측정을 한 결과 최초 추정보다 1000년 이상 올라가는 5300년 전 사람인 것으로 밝혀져 유럽 고고학계와 언론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발견된 곳 지명을 따라 외치(Ötzi)로 명명된 이 고대인 시신은 유럽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미라다.
발굴 당시 시신과 유류품은 두 바위 더미 사이 도랑 같은 곳에 있었다. 그 위로 눈이 쌓이고 세월이 흐르며 빙하가 자리하면서 시신과 사망할 때 소지품이 5000년 넘도록 온전하게 보존되었다. 시신은 빙하의 무게에 눌려 두개골을 제외하고는 전반적으로 납작한 모습이었고, 왼쪽 엉덩이와 허벅지 살이 야생동물에게 뜯어 먹혀 없어진 상태였다.


 

[전시중인 외치]



◆외치는 어떻게 죽었을까=외치의 키는 160㎝에 몸무게 50㎏ 내외, 혈액형 O형인 남성으로 사망 때 나이는 45세였다. 마지막 식사로 밀과 고사리, 염소와 붉은 사슴 고기를 먹었으며 사망 원인은 여러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등에 박힌 화살촉이 가장 유력한 것으로 추정됐다. 분석 결과 외치는 죽기 며칠 전부터 누군가와 격투를 벌였고, 운명(殞命)의 날에 등 뒤에서 쏜 화살에 치명상을 입고 쓰러졌다. 두개골에도 큰 상처를 입었다.
‘유럽인의 조상’ 발견은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 사이에 외치 소유권을 두고 분쟁을 일으켰다. 안정적이지 않은 빙하 지대라 국경선이 모호했는데, 항공사진으로 판독한 결과 시신 발굴 지점이 이탈리아 영토 92.56m 안쪽인 것으로 확인된다. 이에 따라 외치는 1998년부터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가 아닌 이탈리아 볼차노의 ‘사우스 티롤 고고학 박물관’에서 귀빈 대우를 받으며 전시되고 있다.
처음에 ‘유럽인의 조상’일 것이란 추측을 낳았지만 ‘아이스맨’으로 불리는 외치가 유럽인의 조상은 아닌 것으로 확인되었다. DNA를 분석한 결과 ‘아이스맨’ 후손이 현재 남아 있지 않다. ‘아이스맨’ 외치가 자손 대신 저주를 남겼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외치를 발견한 헬무트 지몬이 시간이 흘러 2004년에 알프스 등반 중에 조난을 당해 숨진 것을 비롯해 외치의 발굴과 연구에 관련된 여러 명이 숨졌기 때문이다.
‘아이스맨의 저주’는 당연히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꾸며낸 허황한 이야기지만 관점에 따라서는 아주 틀린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다. ‘아이스맨’ 외치가 발견된 것 자체가 일종의 저주다. 빙하(氷河) 속에 묻혀 있던 5000년 전 시신이 발견된 까닭은 빙하가 녹았기 때문이고, 빙하가 녹은 건 지구온난화 때문이다. 인류 전체로는 지구온난화에 이은 기후 위기만 한 심각한 ‘저주’에 직면한 적이 없었다고 하여 틀린 말이 아니다.
◆5000년 전 사람이 현재로 시간여행을 할 수 있었던 이유=아닌 게 아니라 기후변화와 지구온난화로 세계 곳곳에서 빙하(氷河)가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여름철 기온 상승과 마른 겨울이 겹치면서 고지대 만년설(萬年雪)이 계속 줄고 빙하까지 급격하게 손실되고 있다. 외치 사례에서 보았듯 유럽에서는 이 문제가 국가 간 국경선 다툼으로까지 이어진다.
스위스 빙하감시센터와 브뤼셀 자유대학교에 따르면 스위스 알프스 지역 최대 빙하인 모테라치 빙하는 경계선이 하루 5㎝씩 줄어들면서 2022년에는 60여 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크기가 줄었다. 두께가 수년 새 200m 얇아졌고, 빙하 끝부분에 해당하는 빙하설(氷河舌)은 3㎞ 짧아졌다.
서유럽에서 해발 고도가 가장 높아 ‘유럽의 지붕’으로 불리는 몽블랑(Mont Blanc)의 해발 고도가 달라지고 있는 현상 또한 기후변화의 상징적 풍경이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사이에 자리 잡은 몽블랑의 해발 고도는 2021년 9월 기준으로 4807.8m다. 2017년 조사(4808.72m)와 비교해 4년 사이에 92㎝ 줄어들었다. 2007년 4810.9m를 기록한 이후 몽블랑 높이가 계속 낮아져 14년 사이 3m 이상 키가 쪼그라들었다. 몽블랑 꼭대기 만년설이 감소한 것이 전체 신장 감소 원인이란 분석이 설득력 있게 제시된다.
더 큰 문제는 몽블랑 하면 떠올리는 정상의 만년설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것. 스위스 빙하감시센터에 따르면 2022년 폭염으로 알프스 만년설이 유지되는 ‘빙점 고도(기온이 0도로 떨어지는 높이)'는 역사상 가장 높은 해발 5184m까지 올라갔다. 빙하감시센터는 “예년에 3000~3500m였는데 2000m 가까이 올라갔다”며 “이 빙점고도는 몽블랑 정상(4809m)보다 더 높다”고 설명했다. 단순 수치상으로는 몽블랑 정상의 만년설이 녹아 없어질 심각한 위협에 맞닥뜨렸다는 뜻이다.
◆알프스 빙하의 소멸?=빙하가 이렇게 빠르게 녹고 있는 것은 여름이 더욱 더워졌을 뿐 아니라 기후변화로 해마다 ‘마른 겨울’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빙하 위에 쌓인 눈은 여름 햇볕을 반사해 빙하를 보호하고, 또 일부가 자연스럽게 녹았다 다시 얼어붙는 과정을 통해 빙하를 더 두껍게 만든다. 하지만 알프스 지역 겨울 적설량이 눈에 띄게 줄면서 여름에 빙하가 햇볕에 직접 노출된 면적이 늘고 빙하가 얼음으로 다시 보충되지도 않는 악순환이 일어났다.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는 “이런 속도라면 2100년쯤에 알프스 빙하의 80%가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스위스 정부는 “20세기 들어 알프스의 빙하 중 약 500개가 사라졌으며 나머지 4000여 개 빙하도 2100년까지 90%가 사라질 위험에 처해 있다”고 분석했다. 제네바대학 연구팀이 위성사진을 분석해본 결과 알프스에서 겨울철에 눈에 덮여 있지 않은 면적이 지난 22년간 5200㎢ 늘어났다. 서울시 면적(약 605㎢)의 9배에 육박하는 넓이다. 지난 70여 년간 알프스 지역 온도 상승 폭은 1.8도다. 비슷한 기간에 지구 전체로 약 0.5도 오른 것과 비교해 우려스러울 정도로 빠른 속도다.
언론 보도를 통해 알프스 빙하의 손실을 막기 위해 커다란 천을 덮어 빙하를 보호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근본적인 빙하 보호 대책이 아님은 물론이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빙하를 지키겠다는 절박함이 잘 전해진다.
기후변화와 지구온난화가 알프스산맥에 국한하지 않은 전 지구에 걸친 심각한 위협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 현재의 문명을 책임지는 인류는 지구상에 인류가 등장한 이후 처음으로 ‘빚’을 내기 시작했다고. 탄소 빚이다. 흔히 근대인이라고 불리고 현대인이라고 해도 무방한 현 인류는 산업화 이후 독특한 발전의 길을 열었는데 그때는 몰랐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발전이라는 것이 빚을 내서 흥청망청 살았던 것임을 깨닫고 있다. 인류 문명 전체로 보면 짧디짧은 200~300년 전에 빚을 내기 시작했지만 빚의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빚이 빚을 낳고 점점 원금은커녕 이자를 감당할 수 없는 사태로 내몰리고 있다.
미안한 규정이긴 하나 ‘아이스맨’ 외치가 어쩐지 빚을 받으러 온 사채꾼 같기도 하다. 그렇다면 저주가 맞는 셈이다. 다만 후손이 걱정돼 파산하기 전에 미리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러 왔다면, 그래서 우리가 파산을 모면할 수 있다면 저주라기보다는 그 반대일 수도 있겠다.



안치용 필자 주요 이력
 
△ESG연구소 소장 겸 (사)ESG코리아 철학대표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전 경향신문 사회책임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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