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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21 THR
브랜드칼럼
이두수 작가
이두수 작가 dslee@globalpeace.org
  • 최근 수년간 일용직 건설 노동자 생활을 하며 현장의 일상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해 왔다. 현재는 글로벌피스재단에서 한반도 통일과 동북아 평화운동에 관여하고 있다. 건설 현장에서 몸으로 익힌 절차탁마의 정신을 실생활에 적용하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 진행하고 있다.
  • [이두수의 절차탁마] 일하는 사람이 아름답다

    영주에 내려와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일한 지 4개월이 지나간다. 그간 아파트도 많이 올라가 기본 골조공사는 이제 막바지에 이르고 있다. 할석미장공으로 일하며 주로 땜빵 일을 하고 있다. 땜빵이라고 하면 하찮은 일, 혹은 다른 사람이 해야 할 일을 대신하는 것으로 쉽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게 그렇지 않다. 남이 해놓은 것을 다시 수정해야 하는 것은 정밀하고 세밀하게 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나 정성이 곱절이나 든다. 그렇다고 일하고 나서 좋은 소리를 듣기보다는 핀잔을 듣기 일쑤다. 일한 결과가 좋으면 아무 말이 없지만 잘못되었을 경우엔 한 소리 듣는 공정이 바로 땜빵이다. 영주는 선비의 고장이라고 알려져 있다. 신분제에 의해 사회가 유지되던 조선시대도 아닌 민주공화정의 이 시대에 선비가 어떤 의미를 주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 시대를 이끌었던 지식인의 이미지를 계승하고자 하는 뜻이 담겨있지 않나 생각한다. 주소 이전으로 영주시민이 되었으니 어찌 보면 나도 그 선비의 일원이 되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영주에는 소수서원이라는 유명한 서원이 자리하고 있다. 1542년, 풍기군수였던 주세붕이 고려말 송나라 주자의 성리학을 들여온 유학자인 안향을 기려 그의 위패를 모신 사당을 세우고 유생들을 교육시킬 백운동서원을 세웠다. 이 서원은 후에 퇴계 이황이 명종에 건의하여 소수서원이라는 왕의 친필을 받은 최초의 사액서원이 되었다. 사액서원이란 임금이 서원의 이름을 지은 편액을 하사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왕립학교가 되었다는 것이며 서원운영을 위한 여러 혜택을 받는다는 의미다. 사액서원이 되면 왕의 친필 현판뿐 아니라 서원 운영에 필요한 서적, 노비, 토지는 물론이고 면세, 면역 등의 혜택이 따른다. 때문에 소수서원 이후 세워진 전국의 서원들은 경쟁적으로 사액을 받기 위해 노력하였다. 기록에 의하면 영주지역에만 30여 개의 서원이 운영되었다. 이러한 학풍이 이 지역에 있어서였는지, 조선을 백성이 기본이 되는 나라, 민본을 국가이념과 비전으로 정립한 정도전이 영주 출신이다. 영주 시내를 관통하는 서천의 강변에는 지금도 삼판서고택이라는 집이 있는데 이 집이 바로 정도전이 나고 자란 곳이다. 이 집은 처음 정도전의 부친 정운경이 지은 집으로 그의 사위 황유정에게 물려주었고, 황유정은 또 그의 사위 김소량에게 물려주었는데 그의 아들 김담이 모두 판서를 역임했다는 데서 판서 3명이 나왔다고 해서 붙여진 집 이름이다. 이렇게 걸출한 인물과 지식인들이 많았던 고장이라 그런지 세조 때 단종복위운동이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단종폐위를 반대하던 금성대군(세조의 동생)이 세조에 의해 순흥으로 유배를 오자 이 지역 선비들은 금성대군을 중심으로 단종복위운동을 펼쳤다. 안타깝게도 내부 고변으로 발각되어 역사는 이 일을 정축지변(丁丑之變)이라고 기록하는데 이 일로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등당하며 영월로 유배를 가고 금성대군은 사약을 받는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순흥도호부는 폐부당해 현으로 강등되었으며, 여기에 가담한 순흥의 선비들은 모두 처형당하고 순흥 주민 및 인근 30리 지역 주민들에게도 혐의점을 뒤집어 씌워 많은 사람을 처형했다고 한다. 수많은 백성들을 학살하여 순흥부를 가로지르던 죽계천은 온통 피로 물들어 오랫동안 핏물이 10여 리를 흘러들어갔다고 하는데 당시 상황이 얼마나 처참했던지 지금도 영주시 안정면 동촌리는 피끝마을이라고 불린다. 이런 역사적 유래와 아픔을 머금은 이 지역 사람들은 남다른 교육열을 가지고 있었다.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 수를 기록한 ‘국조방목’에 의하면 이 지역 문과 급제자 수가 153명으로 전국 4위에 이른다고 한다. 당시 평안도의 평양이나 큰 도회지보다도 더 많은 지식인들을 배출했다고 볼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소수서원이 처음부터 과거준비와 국가의 관리를 길러내기 위한 인재양성소 같은 관학적 기능이 강했을 것이다. 당시에도 ‘이 서원에서 공부하면 5년도 안되어 모두 과거에 급제한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과거의 명소로 급부상했다고 한다. 현대판 스카이캐슬의 출현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는 역사적 아픔을 ‘입신양명’으로 대체하고자 하는 지역민들의 욕구가 강했는지도 모른다. 선비란 도대체 무슨 말인가를 곰곰이 생각해 본다. 사전적인 정의에 의하면 ‘학식 있고 행동과 예절이 바르며 의리와 원칙을 지키고 관직과 재물을 탐내지 않으며 고결한 인품을 가진 사람’이라고 되어 있다. 한마디로 말하면 선비란 인격과 지성을 갖춘 도덕적인 사람을 말한다. 조선의 선비들이 추구하는 길은 크게 두 가지라고 한다. 입신양명(立身揚名)과 거경궁리(居敬窮理)다. 현재 입신양명(立身揚名)은 세상에 나아가 이름을 세상에 알린다는 뜻으로 약간은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하는 경향이 있는데 명성을 얻어 이름을 드높인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직장이나 사업, 예술과 창작, 사회적인 활동과 봉사, 개인의 성장과 자기계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적용될 수 있는 말로 열심이 노력하여 얻어지는 명예로운 결과다. 셀럽이 되는 것이다. 입신양명의 과정이 바로 거경궁리다. 거경(居敬) 은 항상 몸과 마음을 삼가고 바르게 가지는 내적 수양이라 할 수 있다. 궁리(窮理)는 사물의 이치를 널리 파악하여 정확한 지식을 얻는 것으로 외적 수양이라 할 수 있다. 이 두 가지를 조화롭게 이루어 나가는 것이 진정한 자기계발이 되는 것이니 예나 지금이나 선비가 갖추어야 할 이 덕목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선비들이 추구하는 인재상이랄까 모델이 군자다. 선비는 군자가 되는 것이 목표다. 군자는 도덕적이고 품위있는 사람을 말하는데 올바른 가치와 도덕을 추구하며 타인과의 관계에서 정직하고 성실하게 행동하는 사람쯤으로 보면 될 거 같다. 이 군자는 세 가지 즐거움을 즐긴다고 한다. 첫째가 부모님 모두 건강하게 살아계시고 형제와 갈등 없이 잘 지낸다는 것이고, 둘째는 하늘과 인간에게 부끄러움이 없는 양심적이며 맑은 삶을 사는 것이고, 셋째는 천하의 영재를 발굴하여 교육하는 것이다. 이것이 군자의 이상적 가치이며 지향점이며 군자의 삶이 완성되는 것이다. 이렇게 고결하고 도덕군자인 양하는 선비도 실제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많아 때로는 추악한 인물상으로 비치기도 한다. 박지원의 양반전을 보면 양반(선비)이 지켜야 할 덕목 몇 가지를 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절기비사(絶棄鄙事) 양반은 농업 사업 공업 등 천한 일을 하면 절대 안된다. 자기 밭에 난 잡초 한 포기도 자신이 뽑으면 안되고 꼭 사람을 불러 뽑아야 한다. 수무집전(手毋執錢) 불문곡가(不問穀價)양반 손으로 돈을 만지거나 세면 안되고, 쌀값이 얼마인지 물어서도 안된다. 소설의 형태로 선비의 위선적인 모습을 꼬집은 내용이긴 하지만 대부분 현실적인 지적이었다. 강상(綱常)은 군신(君臣)· 부자(父子)· 부부(夫婦) 등의 관계를 의리·자애·우애·공경·효도 등을 매개로 파악하는 매우 아름다운 용어로 포장되어 있지만 이 유교 윤리가 사회적 통치의 근간 이념인 조선시대에 있어서 강상을 무너뜨리는 행위는 무엇보다도 위중한 범죄 행위였고 이에 대해서 국가는 범죄의 범위와 내용, 그리고 그에 적용되는 형률을 규정하여 엄벌에 처하였다. 사농공상의 차별적 신분제가 매우 엄격하게 적용된 사회였던 것이다. 구한말 의병들이 각지에서 들고 일어난 명분이 겉으로는 왜양 척결이었지만 실상은 바로 이 강상의 도리였다. 개화사상가들이 내놓은 개혁안에서 남녀차별과 신분차별을 금지하자는 내용을 가장 반대하고 급기야는 거병을 하여 조정을 탄핵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들은 지방에서 거병할 때 가마를 타고 다녔으며 종들이 그 가마를 날랐다. 며칠 전 영주에서 의미있는 일을 해보자고 몇 명의 지인들이 모였다. 선비의 고장 영주의 역사에 대해 나눈 이야기들이 대개 이런 이야기들이다. 이 시대 선비의 고장 영주 시민으로서 시민인 선비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대안을 모색해보자는 의견이 있었다. 모임의 이름도 지어보았다. 큰일을 일으킬 숨어있는 선비라는 의미로 도모거사. 난 며칠 전에 읽은 이시다 바이간의 <도비문답>이란 책을 소개했다. 도비문답에 나오는 비(鄙)와 양반전에 나오는 절기비사의 비는 같은 한자다. 비루(鄙陋)하다의 그 비자다. 비루하다는 말은 행동이나 성질이 너절하고 더럽다, 허름하고 지저분하다, 하찮고 시시하다 그런 의미다. 그러니까 도비문답은 도회지의 세련되고 아름답고 우아함과 시골스런 허름하고 지저분한 것과의 대화라는 의미다. 아름답고 추함의 대화라고 해도 어긋나지 않을 것이다. 한쪽은 유학을 이런 식으로 비루한 것을 다루려고 했고 또 한쪽의 유학은 비루한 것을 아예 자르고 버리라고 하는 이런 노력의 차이가 훗날 두 국가의 운명을 갈랐다고 나는 생각한다. 역사적인 한일관계상 우리가 일본의 중요성과 장점을 거론하는 것은 스스로 토착왜구라는 오명을 뒤집어 쓸 각오를 해야 한다. 일본에 관한 한 학문적인 영역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으며 오직 감정적인 분노로 대해야 한다. 우리는 일본을 알려고도 하지 않으며 알려주려고도 하지 않으며 몇몇의 편견과 무시로 일관된 폄하의 태도를 자랑스럽게 견지해 왔다. 영주에 역사적으로 많은 선비들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영주를 선비의 고장으로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영주의 선비들이 일반인들이 읽을 수 있는 많은 저작을 남겼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지식인으로 일반 백성을 훈화하고 이끌어주려는 역할을 게을리 한 것이다. 이제 한국의 위상은 세계적인 리더국가의 반열에 서려고 한다. 일본을 넘어서려 하고 있고 무시해도 괜찮을 그런 나라가 되었다. 하지만 세계에서 유일하게 일본을 함부로 무시하고 있는 우리는 격동의 근현대사에서 일본이 어떻게 일류국가로 거듭날 수 있었고 조선은 그 식민지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일본도 성리학을 받아들였고 주자학이 독존적인 지위로 보장되던 시기가 있었지만 그들이 근대화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조선과는 다른 면모가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도 사농공상의 신분제가 통용되던 시기가 있었고 상인은 최하위 신분이었다. 이럴 때 이시다 바이간은 상업에서 이윤을 얻는 것은 결코 부끄럽지도 비천하지도 않는 것이라고, 상행위가 경멸의 대상이 아니라고 선언하였다. 여기에 바이간은 중요한 전제를 단다. 아무 이윤이 아니라 정당한 이윤이라는 것이다. 이 정당함을 담보해 주는 것이 도리이고 마음이다. 사무라이에게 무사도가 있듯이 상인에게 상인의 도가 있다고 말한다. 무사가 충성의 도리를 다하고 당당히 봉록을 받듯이 상인들도 손님에 대하여 도리를 다하고 이윤이라는 봉록을 당당히 받으라고 말한다. 그는 상인들에게 의무와 책임, 그리고 긍지를 심어 주었다.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 빗대어 보면 이런 상도가 일본 자본주의 정신의 기틀을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일본인의 이미지가 된 친절, 검소, 근면, 장인정신 등의 가치들은 상당부분 이시다 바이간의 사상에 기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건설노동자를 천하게 보는 것은 먼지 구덩이에서 일하는 그 모습이 비루하게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 시대 가장 비싼 명품은 아파트다. 그 명품을 만드는 사람들이 건설노동자들이다. 이시다 바이간은 사농공상이라는 귀천의 구별이 형태의 차이, 즉 발현된 것의 차이일 뿐 그 근본의 도는 모두 같다고 했다. 무엇이 귀하고 천한지는 상대적인 관계로서 정해지는 것일 뿐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귀는 천의 희생을 통해 자신이 길러지고 있음을 강조하며 그 희생을 언제나 의식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말없이 묵묵히 수고하는 많은 근로자들, 군인들, 공공요원들, 그리고 지식인들 덕분에 세상은 밝게 빛나는 것이다. 요즘 APT. 라는 노래가 세계적으로 유행한다고 한다. 나도 거기서 일한다. 이두수 작가 소개 최근 수년간 일용직 건설 노동자 생활을 하면서 노동 현장의 일상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해 오고 있다. 건설 현장의 안전을 위해서는 규제보다는 노동자의 인문학적 소양 계발이 더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현장에서 몸으로 익힌 절차탁마의 정신을 실생활에 적용하기 위해 다양한 생활실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이두수의 절차탁마] 일하는 사람이 아름답다
  • [이두수의 절차탁마] 어느 건설노동자의 퍼펙트 데이

    나의 매일매일이 퍼펙트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실수도 많고 괜히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무료하기도 한 날이 있다. 무의미하게 하루를 보냈다고 자책하고 반성하며 온전하게 하루를 충만하게 보낸다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퍼펙트(perfect) 라는 말은 ‘완벽하다’라는 말이다. 완벽(完璧)이란 흠이 없는 온전한 구슬을 말한다. 사실 절차탁마(切磋琢磨)라는 말은 이 옥구슬을 만드는 과정을 말한다. 즉 완벽을 만들기 위해 돌을 자르고, 깨고, 쪼고 가는 것이다. 완벽이라는 이 원형 구형체는 완전함을 상징하는 말이 되었다. 그래서 학문이나 인격에도 완성이나 완벽의 의미로 원숙이나 원만이란 말을 사용한다. 결국 우리의 매일매일의 일과 삶은 이 완벽(완전한 구형)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나의 오늘 하루의 일과가 어떠했는가를 뒤돌아보며 일상의 완벽함 혹은 원만함과 원숙함을 추구하기 위해 나는 무엇을 생각했고 일에는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성찰해 본다. 나의 하루는 5:30에 시작한다. 알람소리가 없어도 이 시간에 일어나긴 하지만 알람을 해 놓는 것이 편하다. 간단히 씻고 출근 준비를 한다. 작업복으로 갈아입는 데 고민할 것이 없지만 될 수 있으면 멋지게 입으려고 노력한다. 건설노동자라도 폼을 낼 수 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늘 한다. 복장은 안전과도 깊은 관계가 있다. 후즐근한 냉장고 바지를 입고 다니면서 안전을 기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6:00면 집을 나선다. 작업 현장까지는 뛰어 간다. 현장에서 일하는 것도 몸을 쓰며 하는 일이기 때문에 운동이 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일이 곧 운동이 되는 것은 아니다. 좀 더 건강해지려면 운동을 해야 한다. 운동할 시간을 따로 낼 수 없으니 출퇴근을 달리기로 하면 시간도 절약되고 일하기 전에 몸도 풀어주어 일석이조다. 작업현장으로 가는 도중에 인력센터가 있는데 이른 시간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린다. 저기에 모인 사람들이 다 일자리를 찾아가지는 못할 것이다. 미안한 마음으로 인력센터 앞을 지나간다. 이들을 보면 일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영주역 역사를 최근 새로 지어 며칠 전 축하행사가 있었다. 이 역사의 8개의 기둥은 부석사 무량수전의 기둥처럼 배흘림기둥 양식으로 만들어 독특해 보인다. 솔직이 그리스의 도리아 양식이니 코린트 양식이니 하는 기둥과 비교하면 너무 밋밋하다고 생각되지만 우리나라 최고의 목조양식을 따른 것이니 역사적 의미가 깊은 기둥이다. 기차 굴다리를 지나 골목으로 들어서면 서예교실을 지난다. 간판은 크고 창문에는 붓글씨로 잘 쓴 한시 한 장이 붙어있는데 한 쪽 테이프가 떨어져 비스듬히 걸려있다. 아마 주인장도 지금은 건설현장에 나가나 보다. 홀 안에는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듯한 장비들이 널브러져 있다. 길가에는 많은 가게들이 이렇게 비어 있거나 창고로 쓰는 곳이 많다. 왼쪽으로 돌아가기 전에 ‘발근해마실’이라고 크게 써 놓은 빌라가 있다. ‘밝은 해마실’ 이겠지만 ‘밝은’을 소리나는대로 ‘발근’이라고 쓴 것이 무슨 의도인지 건물주에게 한번 물어보고 싶었다. 좀 더 가다 보면 언덕 밑에 500년된 영주시 보호수인 느티나무가 있다. 나무도 오래 묵으면 영묘한 기운이 도는지 근처에 가면 뭔가 신비감이 느껴지는 그런 나무다. 이 보호수 건너편에 남간서당이 있는데 집 앞에 커다란 중수비가 세워져 있다. 서당 자체는 규모가 작지만 건물에 비해 중수비는 제법 크고 비에 새긴 글자도 많이 적혀 있는데 글자의 대부분은 서당을 중수하는데 참여한 사람들 이름이 대부분이다. 건설 현장은 이 서당 뒤편에 있다. 야트막한 산이라고 해야 할까 비탈을 깎아 여기에 건물 6개동을 짓고 있다. 아직 건물이 올라가고 있는 중이지만 여기서 내려다보면 영주시내가 한 눈에 다 들어온다. 현장엔 출입구 안쪽에 건설근로자공제회에서 만든 출퇴근용 단말기가 설치되어 있어 모든 근로자는 우선 여기부터 체크한다. 여기에 체크를 해야 현장에서 일한 날 만큼 하루 6200원의 퇴직공제금을 받을 수 있다. 이어서 골조회사의 출퇴근용 안면인식기에 얼굴을 디밀어 출근확인을 한다. 오전엔 아침 7시 이전에 오후엔 4:40 이후에 찍어야 하루 공수가 인정된다. 아침식사는 현장식당(함바)에서 먹는다. 되도록이면 음식을 남기지 않도록 적게 뜬다. 함바식당의 음식맛은 전국이 비슷하지만 아무래도 전라도 쪽 현장의 음식 맛이 좀 낫다. 물론 감사한 마음으로 먹으면 음식은 다 맛있다. 식사 후 물통에 물을 채운다. 여기에 믹스커피를 두 봉지 넣으면 마시기 편하다. 6:50이면 아침 티비엠(조회)을 실시한다. 국민체조와 더불어 전날 현장 상황과 오늘 작업 안전에 대한 주의사항을 전파하는 시간이다. 원래는 공종별 현장소장들이 나와 오늘 작업내용과 주의사항등을 이야기하지만 작업자들은 매일 듣는 내용이 같아 따분하게 여긴다. 오늘도 “안전주의, 좋아!”를 세번 외치고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7:00 작업 시작. 나의 작업은 보통은 매일 건물 최상층의 갱폼에 올라가 건물 외벽을 땜방하는 것이다. 외벽 땜방을 위해선 일반미장용 몰탈이 아니라 견출용 몰탈을 사용한다. 타설 후 거푸집(알루미늄폼)을 떼어 낸 후 가장 먼저 손을 보는 사람이 바로 할석 미장공이다. 대부분 면이 깨끗하게 나오지만 건물이 올라갈수록 면이 거칠어지고 어떤 때는 곰보현상이 많아져 발라주어야 할 곳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특히 이음부분 모서리는 파이기도 하고 살짝 층이 지기 때문에 매끄럽게 이어주어야 한다. 땜방을 하다보면 목수나 철근공들의 작업태도나 성격이 보이기도 한다. 벽면에 담배꽁초나 철사등이 삐져 나와있는 경우가 있고, 심한 경우에는 음료수 병이나 장갑 같은 것이 면에 묻혀 있는 때도 있다. 이럴 때는 이물질을 다 파내고 다시 발라줘야 한다. 더 심한 경우는 알루미늄 폼을 고정시키는 핀이 누락되어 면이 불룩하게 나오는 경우가 있다. 이 때는 드릴로 벽면을 까내고 다시 발라줘야 한다. 일을 하면서 느끼는 것은 일상의 생활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적당히 음식을 먹고 충분한 휴식을 취하면 일하기도 수월하지만 과음을 하거나 수면이 부족하면 일하는데 의욕이나 집중도 떨어지고 무엇보다 안전에 이상이 생길 수 있다. 이런 하루가 모여 일년이 되고 일생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일하는 과정이 목표나 결과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결과나 목표 달성을 위해 과정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과정 자체를 즐기거나 일하는 과정이 자신을 수양하는 도라 여기며 수행하는 자세로 일하는 것이 필요하다. 원래 직업이란 말 Vocation은 칼뱅의 종교개혁 이후 생겨난 개념으로, 신에게서 특별한 사명을 부여 받았다는 소명의식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직업의식은 단순히 대가를 바라며 시간당 노동력을 제공하며 일하는 것이 아니라 신의 부름을 받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일하는 천직의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런 가르침의 영향을 받은 개신교도들을 프랑스에서는 위그노라고 불렀는데 이들이 스위스를 중심한 서유럽의 제조업을 이끌었으며 이러한 전통이 유럽의 산엽혁명으로 이어졌다. 프랑스는 이 위그노들을 추방하여 한 때 산업이 형편없이 추락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국부론>과 <도덕철학>을 쓴 스코틀랜드의 아담 스미스는 칼벵과 함께 활동했던 스코틀랜드의 종교개혁가 존 녹스의 영향을 받았다. 서양의 아담 스미스와 비교되는 현대 일본의 노동관을 확립시킨 사람은 에도시대 포목점 점원출신의 이시다 바이간石田梅岩을 거론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가 주장하는 석문심학(石門心學)의 개념은 '제업즉수행(諸業卽修行), 다시 말해서 '모든 노동(일) 자체가 곧 정신수양이며 자기의 완성이므로 일하는 자체가 곧 도를 닦는 것과 같다. 돈보다 귀중한 것은 자신의 인격 완성이니, 일생동안 열심히, 이익이 없더라도 대가를 바라지 말고 정진하라.'는 것이다. 즉, 노동이라는 것은 생산활동이기 이전에 인격의 수양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우선 근면하지 않으면 훌륭한 인격을 연마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의 가르침은 지금도 이나모리 회장이나 손 마사요시 회장을 통해 이어지고 있다. 얼마 전 일본 고시엔 고교야구에서 한국계고등학교인 쿄토국제고가 전체 학생 160명임에도 불구하고 일본 고교야구를 제패했다. 한국에선 한국계 고등학교가 고시엔에서 우승했다고해서 대서특필하고 많은 사람들이 가슴 뭉클해 했는지 모르지만 실제 이 학교 힉생들 중 한국계는 별로 없다. 고교생들이 야구에 미쳐 청춘을 불태운 한편의 드라마였다. 젊은 날 이렇게 동료들과 뜨겁게 여름을 보낸 친구들은 평생 이 추억을 잊지 못할 것이다. 선수뿐만 아니라 응원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공동체의식은 이렇게 형성되는 것이다. 목표나 결과중심의 대학입시로 삶의 질이 결정되는 한국 사회에서 이런 점에 주목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거 같다. 오후 4:40, 하루 일과를 마치고 퇴근한다. 출근할 때와 마찬가지로 뛰어서 집으로 돌아온다. 돌아올 때 코스는 서천을 따라 둑방길을 뛰면 제법 거리가 멀다. 숙소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같이 합숙하는 동료들과 맥주 한 잔을 한다. 이 때 중요한 것은 딱 한 잔으로 그칠 수 있는 용기다. 오늘 일과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을 상기해 보며 그림을 한 장 그린다. 이것은 나의 그림일기며 노동일지다. 오늘 현장에 물통을 안 가져가 한참 일하다가 목마를 때 내게 물 한모금을 권해주던 그 노동자를 떠올려 본다. 그의 넉넉한 웃음이 기억에 남는다. 잠들기 전 이시다 바이간의 <도비문답>(都鄙問答)을 몇 페이지를 읽으며 하루를 정리한다. 일개 포목점 점원도 성리학을 이해하고 국민적 계몽서인 상도에 관한 책을 썼는데, 가방 끈이 제법 긴 건설노동자인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이두수 작가 소개 최근 수년간 일용직 건설 노동자 생활을 하면서 노동 현장의 일상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해 오고 있다. 건설 현장의 안전을 위해서는 규제보다는 노동자의 인문학적 소양 계발이 더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현장에서 몸으로 익힌 절차탁마의 정신을 실생활에 적용하기 위해 다양한 생활실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이두수의 절차탁마] 어느 건설노동자의 퍼펙트 데이
  • [이두수의 절차탁마] 미장공이 '프린지'를 노래하다

    우리 사회에서 골프가 아직은 사치스런 고급진 스포츠로 여겨지고 있지만 영국에서 페이스북으로 만난 지인에 의하면 원래 골프가 스코틀랜드에서 출발했는데 처음엔 노동자들의 놀이였다는 것이다. 양치는 목동이나 나무꾼, 돌 깨는 사람 이런 사람들이 어깨에 막대기를 여러 개 지고 다니면서 이 언덕 저 언덕으로 공을 치며 놀았다는 것이다. 이것이 잉글랜드로 건너오면서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골프장을 만들면서 자동차가 있는 부유층들의 사교거리가 되었다는 것이다. 영국에 도착 후 가장 먼저 찾은 곳은 프로이드 박물관이다. 일부러 찾은 것은 아니지만 런던시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햄스테드 언덕을 가면서 방문하게 되었는데 주변엔 유명인사들이 살았다고 하는 안내판이 붙어있는 집들이 꽤 있었다. ‘공산당선언’과 ‘자본론’을 쓴 마르크스가 묻힌 하이게이트 공원묘지도 가까이에 있었고, 공산사회의 실상을 비판하는 소설 <동물농장>을 쓴 조지오웰이 살았던 집도 근처에 있었다. 프로이드 박물관에서 흥미있게 본 것은 프로이드가 소장하고 있던 여러 나라의 전통 공예품들이다. 그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이 말을 타는 조작품이었다. 프로이드는 정신분석에 있어 정신의 근간을 이드-에고-초자아로 구분했는데 이것을 말과 기수로 설명했다. 본능적인 충동과 넘치는 힘을 지니고 있는 말(이드)과 방향과 속도를 조종하는 기수(자아)의 비유를 들어 자아와 이드의 관계를 “말은 운동에너지를 공급하는 반면, 기수는 목표와 방향을 설정하고 말을 이끌 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자아와 이드 간에는 기수가 어쩔 수 없이 말이 가자고 하는 길로 이끌려갈 수밖에 없는 이성적이지 못한 상황이 너무나 자주 출몰한다”고 설명했다. 아마 이 목각인형을 보고 그런 아이디어를 착상했는지 모른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영국 투어에서 가장 가보고 싶어하는 곳은 대영박물관일 것이다. 영국박물관에 영국 것은 없고 해외에서 수탈해 온 유물들로 가득하다고 말들 하지만 세계의 문물을 수집해 놓은 제국의 수집관으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다. 동서양 세계의 모든 문화를 한 곳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지적인 수준을 깊게 할 수 있는 기회가 큰 것이다. 마르크스도 이곳 ‘리딩룸’을 자주 드나들며 ‘자본론’을 썼다고 하는데 그 자리까지는 가보지 못했다. 나는 박물관은 건성으로 보거나 지나쳤고 눈에 들어오는 것은 미술관 투어였다. 이번 여행에서 4개 도시를 다니며 미술관은 모두 방문해 보았다. 에든버러에선 내 부스가 스코틀랜드 내셔날 뮤지엄 바로 옆에 있어 수시로 들락거렸다. 신기한 것은 모두 인상파 그림이 주로 전시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인상파가 유럽 사회에 끼친 영향이 그만큼 컸다는 얘기일 것이다. 나는 8월 15일 광복절을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맞았다. 축제 기간중이라 내 숙소에서 전시부스까지 걸어 가는 동안 백파이프연주는 내내 듣게 된다. 아니 하루 종일 듣는다. 이날 아침 나는 과거 우리나라 애국가의 곡으로 차용한 올랭자인(old lang syne)을 백파이프 연주로 들었다. 가슴이 울컥했고 눈물이 핑 돌았다. 나라를 잃은 슬픔을 달랠 길 없어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스코틀랜드 민요에 곡을 얹어 국가를 불러야 했던 선인들의 고달픈 심정이 느껴졌다. 스코틀랜드와 한국과의 관계를 찾아보니 기독교가 처음 한국에 선교될 때 한국어 학습서(Corean Primer)를 간행했고 최초의 한국어 성경을 번역한 사람이 바로 스코틀랜드 출신의 존 로스(John Ross) 선교사였다. 그는 한글의 띄어쓰기를 최초로 적용한 분이기도 하다. 스코틀랜드는 물론 영국이긴 하지만 자치권을 가지고 있고 자국 화폐도 가지고 있다. 유럽연합(EU) 속에 자주적인 각 나라가 연합되어 있듯이 영국(UK) 속에는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 북아일랜드가 연합되어 있다. 영국국기 유니온잭은 이 나라들의 깃발을 합쳐 놓은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스코틀랜드는 로마화되지 않은 지역이기도 하다. 로마가 브리튼 지역을 정복하면서 북부지역 사람들의 강력한 저항과 춥고 음습한 기후로 더 이상 사람이 살지 못할 곳으로 여겨 선을 그은 것이 하드리아누스 방벽이다. 로마도 포기한 지역, 지금은 주로 하이랜드라고 불리는 이곳은 기후가 음습한 곳으로 한여름 아침 기온이 12도였다(당일 서울은 35도였다). 춥기 때문에 알코올 도수가 높은 위스키를 만들어냈는지도 모른다. 이런 날씨에 비가 내리면 정말 겨울 잠바를 꺼내 입어야 한다. 축제 기간 내내 우산과 잠바를 가지고 다녀야 했다. 이런 춥고 음습한 환경 때문인지 사람이 자꾸 생각을 하게 된다. 에든버러 대학 기숙사 뒤에는 아서왕이 앉았다는 바위산이 있다. 아침마다 이 산에 오르면서 생각나는 것이 춥고 돌이 많은 지역과 덥고 나무가 많은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대개 어떤 사유를 하게 될까 하는 것이었다. 돌로 집을 지으니 몇 백년을 유지한다. 여러 집을 지어야 되다보니 도시계획을 세워야 하고 거기서 디자인 개념이 생겨나고 도시에 시장이 생기니 질서가 필요했을 것이다. 이런 사유 때문인지 스코틀랜드엔 유명한 과학, 철학, 경제학 등 분야의 학자가 많다. <국부론>을 집필한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 인식론으로 유명한 데이비드 흄, 힉스입자를 제안한 피터 힉스, 증기기관을 개량한 제임스 와트, 페니실린을 만든 알렉산더 플레밍 등이 모두 스코틀랜드 출신이다. 유명한 작가도 많다. 역사소설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연 월터 스콧, <셜록 홈즈>를 집필한 아서 코난 도일, <해리포터>의 저자 조앤 롤링이 해리포터 1권과 2권을 쓴 곳이 에든버러다. 정말 에든버러에 와 보면 해리포터의 세트장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고색창연한 분위기다. 위와 같은 학자들을 배출하는 데 스코틀랜드의 개혁성향을 만든 사람은 역시 존 녹스(John Knox)일 것이다. 시내에는 그를 기리는 동상이나 교회가 많이 있었다. 존 녹스는 종교개혁자로서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의 기초를 놓은 사람이다. ‘하나님의 권위는 군주보다 앞선다’는 그의 가르침은 신앙을 위협하는 군주에 대항할 권리와 의무에 확신을 주었으며, 가톨릭의 권위에 대항한 그의 개혁 신앙은 스코틀랜드인들 특유의 진보적 사고를 가져왔다. 미술에 있어 인상파의 그림이 그러한 것이다. 전통적인 즉 왕과 교회 그리고 귀족을 위한 그림과 기법에서 자기의 시각과 생각을 가지고 색채와 색조 구도 자체를 자유롭게 표현해 보려는 시도는 이러한 개혁성향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여기에 당시 일본 우키요에의 색채와 구도도 인상파 그림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당시 우키요에는 유럽의 화가들이 생각하지 못한 구도로 그림을 그렸다. 인상파의 효시라고 할 모네의 작품이나 고흐의 작품에는 일본풍이 많이 묻어난다. 지금도 유럽에는 일본문화를 좋아하는 마니아들이 많다. 파리시내에 일본영화 ‘멜랑꼴리’ 포스터가 거리마다 붙어 있었다. 한류도 만만치 않았다. 이번 에든버러축제에 가장 인기있는 공연은 정선군에서 제공한 아리랑 뮤지컬 ‘아리’가 아니었을까 싶다. 내 부스에 찾아오는 손님들마다 한국 공연이 너무 재미있었고 감동적이었다고 말했다. 내가 보러 갔을 때에도 만석이었는데 매번 만석이었다고 한다. 하긴 에든버러 대학 구내편의점 한 코너는 한국 라면으로 가득했다. 런던에서 파리로 올 때 유로스타를 이용했다. 국가간의 이동이라 간단한 출국심사를 거치지만 전철 타듯이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좋았다. 현재 영국과 프랑스는 관계가 좋아 보이지만 사실 두 나라는 100년간의 전쟁을 한 나라다. 100년간 잉글랜드가 프랑스를 유린했다. 잉글랜드군은 대부분 용병으로 기사도나 명예 따위에는 관심도 없었고 약탈을 일삼았다. 프랑스 북부는 아예 잉글랜드가 오랫동안 점령하고 있었고 남부 프랑스마저 무너질 절체절명의 순간 프랑스를 구한 것은 오를레앙의 잔 다르크라는 일개 소녀였다. 오늘날의 영국이 섬나라로 국경이 확정된 것이 이 100년 전쟁의 결과다. 그렇지만 두 나라는 역사문제로 감정소비를 하지 않는다. 종교개혁과 계몽주의를 거치면서 이념과 명분이 아니라 현실을 중시하게 된 것이다. 한·일관계도 이젠 좀 바뀌었으면 좋겠다. 언제까지 역사적 울분으로 증오만 키울 것인지 답답하기만 하다. 한·일 두 나라가 영국과 프랑스처럼 협력관계가 되고 철도로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면 세계 최고의 관광지가 될 것이다. 25일간의 긴 여행으로부터 돌아오면서 ‘노동해방’이란 어떤 의미일까를 생각해 보았다. 적어도 난 마르크스가 말한 노동소외에서 제외된 자 같다. 어쩌면 노동에서 해방된 자인지도 모른다. 일당으로 사는 일용직 노동자가 거의 한 달간 일을 안 하고 사치나 공상하고 여행이나 즐기는 덜 떨어진 사람으로 보일지 모르겠다. 나는 노동이야말로 창조 행위이며 예술적 행위라고 생각한다. ‘생산수단’을 공동 소유한다고 노동자가 노동에서 해방되는 것은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세밀하게 바라보고, 섬세하게 느끼며 정성을 다해 일하는 노동은 그 자리가 어디든 빛나는 자리가 될 것이다. 창조는 그런 반복적인 작업을 감사하게 여기며 오늘 더 새로운 생각을 표현해 보는 것이다. 나만의 시각으로. 이번 에든버러 프린지 축제의 캐치프레이즈는 “unleash the Fringe 프린지를 자유롭게 누벼라!” 인데, 프린지(Fringe)의 의미가 ‘자유로운 상상력’, ‘실험정신’ 이런 뜻이란다. 이두수 작가 소개 최근 수년간 일용직 건설 노동자 생활을 하면서 노동 현장의 일상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해 오고 있다. 건설 현장의 안전을 위해서는 규제보다는 노동자의 인문학적 소양 계발이 더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현장에서 몸으로 익힌 절차탁마의 정신을 실생활에 적용하기 위해 다양한 생활실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이두수의 절차탁마] 미장공이 프린지를 노래하다
  • [이두수의 절차탁마] '북송'의 상징 日 니가타 중심에서 '인권'을 외치다

    이두수 작가 소개 최근 수년간 일용직 건설 노동자 생활을 하면서 노동 현장의 일상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해 오고 있다. 건설 현장의 안전을 위해서는 규제보다는 노동자의 인문학적 소양 계발이 더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현장에서 몸으로 익힌 절차탁마의 정신을 실생활에 적용하기 위해 다양한 생활실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이두수의 절차탁마] 북송의 상징 日 니가타 중심에서 인권을 외치다
  • [이두수의 절차탁마] '나의 아저씨' 카즈오…80년만의 북해도 '귀향'

    '보이즈 비 앰비셔스'의 고장 최근 며칠간 가족 친지들과 함께 북해도 여행을 했다. 한국 사람들에게 북해도 여행은 부모님을 모시는 최고의 효행상품이라는 말도 있지만 실은 우리 가족 중에 북해도와 얽힌 이야기가 있어 언젠가 꼭 가봐야 한다는 말도 있고 해서 3대가 함께하는 14명의 가족을 이끌고 다녀왔다. 북해도의 면적은 남한 면적의 80%에 해당할 만큼 넓다. 그리고 일본의 영토가 된 것이 명치유신 이후라서 어찌보면 신생 개척지 같은 곳이다. 물론 아이누 민족의 입장에서 보면 민족이 말살되는 비운의 역사가 깃든 땅이기도 하다. 초기 북해도 개척에는 미국의 영향이 크다. 개척 시기 삿포로 도시계획이나 농업기술을 가르친 것이 미국인이었다.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사람이 삿포로 농학교 (현 홋카이도 대학) 초대 교감이었던 윌리엄 스미스 클라크 박사다. 그가 북해도에 머문 기간은 단 6개월이 채 안 되었지만 그의 가르침은 아주 영향력이 컸다. 그에게 직접 지도를 받지 않았지만 그의 제자가 된 우치무라 간조도 클라크가 세운 삿포로 농학교 출신이다. 클라크 박사가 학교를 떠나 미국으로 돌아가면서 배웅을 나온 학생들에게 마지막 남긴 말이 그 유명한 'Boys be ambitious!'다. 과거 북해도는 일본의 식량기지로서 그리고 자원 채굴의 기지로서의 역할도 톡톡히 해냈다. 지금은 탄광이 모두 폐쇄되었지만 한때는 북해도 탄전이 꽤 유명했다. 2차 대전 말기 미국의 남양군도 봉쇄로 석유 수급이 원할하지 못하자 일본은 석유 대체품으로 석탄 생산에 열을 올렸다. 이 석탄 채굴에 수많은 조선인들이 동원되었다. 그 가운데에도 북해도와 규슈 탄전이 유명했다. 일제의 징용이 본격화된 1939년부터 1945년까지 징용된 조선인 72만여 명 중 14만5000여 명이 홋카이도로 끌려와 유바리를 비롯한 탄광, 항만, 비행장, 댐 건설 노역에 동원되었다고 한다. 이 중 상당수가 사망해 광복된 뒤에도 고국에 돌아가지 못한 채 이국 땅에서 이름 없는 혼으로 떠돌고 있는 이가 많이 있는데 그중에 한 명이 우리 할아버지다. 사실 우리 할아버지는 징용으로 일본에 끌려간 것은 아니다. 그는 돈을 벌기 위해 자진해서 일본행을 택했지만 당시에 조선인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결국 광부나 벌목공, 철도 건설 등 험한 일뿐이었다. 지금부터 말하려는 것은 그의 아들 가즈오(一男)에 대한 이야기다. 가즈오는 나의 아저씨 이름이다. 가즈오는 일남의 일본식 표기다. 아니, 일남은 일본 이름 가즈오의 한국식 표현이다. 그가 태어난 곳은 북해도로 추정하고 있다. 북해도가 아니라 가라후토(사할린)라고 하는 이야기도 있다. 83세인 가즈오씨는 본인도 확실하게 자신의 출생에 대해 알지 못해 곤혹스러워 한다. 어쨌거나 가즈오씨 가족은 그가 북해도나 가라후토 어딘가에서 살았고, 거기서 태어나 세 살 때 엄마와 6개월 된 동생과 함께 광복되던 해, 정확히는 1945년 광복되기 2개월 전에 한국으로 왔다는 것이다. 당시 일본은 전쟁 막바지에 총동원령이 내려진 상태에서 젊은 남성들은 전선에 마구 투입되던 시기였고 그 가족은 전선에서 좀 더 안전한 곳으로 피난시키던 때였다. 가즈오씨는 나의 5촌 당숙으로 아저씨라 부르지만 여기선 가즈오라 칭한다. 우리 할아버지는 두 형제로 가즈오씨의 아버지는 내게 둘째 할아버지다. 두 형제는 부모님을 일찍 여의는 바람에 친척집에 얹혀 살았다. 형은 큰집에 양자로 들어가는 조건으로 땅을 받아 고향에서 농사를 짓게 되었고 둘째는 시골에서 살 수가 없어 일본으로 건너갔다. 할아버지 형제를 키워주시던 친척도 당시 생활이 어려워 몇 년 후 만주로 이주했다. 일본에 간 작은 할아버지는 식민지 조선에서 온 청년으로 쉽게 일자리를 구할 수는 없었을 것이고 이것저것 일을 찾아 일본 전역을 돌아다니다가 북해도까지 갔다. 북해도 탄광에서 일을 하다가 돈을 더 받을 수 있다는 가라후토(사할린) 벌목공으로 가게 되었다. 혼자보다는 가족을 더 우대해준다는 말을 듣고 일시 귀국해 시골에서 급하게 결혼을 했다. 고향에 돌아와 농사를 짓겠다고 땅도 조금 사 놓았다. 그리고 바로 이 신혼부부는 일본 북해도를 거쳐 가라후토에 가서 신접을 차렸고 거기서 두 아들을 낳았다. 첫째는 세상에서 제일가는 남자가 되라는 의미로 일남(一男)이라 했고 3년 후 난 둘째는 언젠가 올 광복의 날을 그리며 광남(光男)이라 붙였다. 가라후토가 일본 땅이 된 것은 최근이었다. 1905년 러일전쟁이 일어나고 승리한 일본은 러시아에 전비청구를 하지 않는 대신 사할린을 할양받았다. 그렇게 해서 사할린 남부가 일본 땅이 되었고 탄광과 벌목이 주요 산업이 되었다. 북해도 북부에 펼쳐진 대지, 사할린. 일본명으론 가라후토(樺太)로 불렸다. 1945년 당시 40만명 넘게 살고 있었다고 한다. 둘째가 태어나고 전황은 일본에 매우 불리하게 돌아갔다. 하와이를 기습공격하여 일본이 연전연승한다고 뉴스에선 말하지만 현실은 식량도 배급으로 바뀌고 생활용품도 공출이라고 해서 구입하는 것보다 오히려 빼앗기는 것이 더 많았다. 들려오는 소문에는 소련이 참전하여 어느 날인가 가라후토로 들이닥친다는 소식까지 전해져 흉흉한 분위기였다. 1945년 6월이 되자 모든 남자는 남고 여자들과 아이들은 보다 안전한 곳으로 피난시킨다고 했다. 일본 내지로 갈 것인지, 조선으로 돌아갈 것인지 선택하라고 해서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어떻게 왔는지는 모르지만 세 살 난 아들과 6개월 된 간난아기를 업고 부산항에 내렸다. 부산에서 두촌까지는 몇 달을 걸어 빌어먹으면서 고향에 돌아왔다. 가라후토에선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종전 선언이 있고 나서도 10일간이나 치열한 전투가 계속되었고 그래서 주민들의 희생이 컸다. 지금도 정확한 숫자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5000~6000명의 민간인이 희생되었다. 최전선에 투입된 소년병들, 지옥의 피란 행렬에서 죽어간 아이들과 어머니들. 소련군들이 상륙하자 많은 가족과 여성들은 자결을 택했다고 한다. 가즈오의 어머니는 돌아가실 때까지 넋두리 같이 말씀하신 내용은 “그때 007가방을 내가 가져왔어야 했어. 일본 가서 번 돈을 거기에 넣어 놨는데, 그 난리통에 가져올 수 없어 그 양반이 가져오기로 했는데 못 왔잖아···. 그 돈이 있었으면···” 어머니는 모든 불행과 가난의 원인을 그 가방에 묻었다. 남편 없이 농사일 하며 애들을 키워내느라 한 평생 고생만 하다 돌아가셨다. 고단한 삶을 산 어머니에게 남은 것은 그 007가방으로 상징되는 그 회한뿐이었다. 가즈오가 부르는 노래, 내 나라 내 고향 인천을 떠나 2시간 30분이면 닿는 북해도는 아카시아 향기가 가득한 늦봄, 어디 가나 꽃으로 가득했다. 기대 반 설렘 반 그리고 미안함도 함께 가지고 왔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날까 해서 북해도로 날아왔다. 북해도 대지와 넓은 하늘 그리고 북양의 바다를 바라보면 혹시 바람이 전해주는 음성이 있지 않을까 해서 귀를 기울여 본다. 희미하지만 북해도 넘어 가라후토에서 일하셨다고 들었지만 기억에도 없는 곳이라 가라후토 가까운 북해도 어딘가에 아버지의 흔적을 느낄까 해서 찾아왔다. 아버지라 불러 본 기억이 없지만 분명 내 아버지는 이 땅 어딘가에 몸을 눕히셨을 거라 생각하면서 80년이 지났지만 용기 내어 이제 찾아왔다. 처음 밟아보는 땅이지만, 처음 만나보는 사람들이지만 내가 세 살까지 이곳에 살았다고 하니 낯설지는 않다. 처음 먹어보는 음식도 그런대로 괜찮다. 소주만 있으면 뭐든 괜찮지만···.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며 아버지 돌아가신 이 땅에 마침내 내가 왔구나. 아니, 내 태어나 자란 곳에 이제야 돌아왔구나. 드넓은 대지를 바라보며 긴 호흡을 해본다. 먼 산에는 아직 눈이 남아 있네. 80년 만에 귀향, 고향에 대한 아무 기억도 생각도 추억도 없지만 내가 태어나고 잠시나마 이곳에서 자랐다고 생각하니 왠지 고향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아버지도 저 하늘 아래 이 공기를 마셨을 거라 생각하니 여기는 낯선 이역 땅이 아니라 아버지와 내가 연결된 곳이다. 일본에선 남자라면 자기 분야에서 최고가 되겠다는 야망을 가져야 한다는데, 내 이름 가즈오(一男) 가 바로 그런 뜻이란 걸 여기 와서 알았다. 아버지는 그런 야망을 가진 분이었을 것이다. 유바리 석탄기념관으로 가는 길은 내 시골길과 비슷했다. 석탄박물관에 검은 얼굴로 웃고 있는 사진을 보니 내 아버지인 줄 착각했다. 석탄갱도를 재현해 놓은 지하에 들어가보니 내 아버지 석탄 캐며 저렇게 고생하셨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탄광을 나와 일본 최고라는 유바리 멜론을 먹어보았다. 달콤하면서 부드럽게 살살 녹는 이 맛을 우리 아버지는 맛보았을까 생각하니 약간 짭짤한 맛이 느껴졌다.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슬픈 시대가 있었음을 나는 잊지 않고 있지만, 어머니와 어린 시절의 가난을 생각하면 떠올리기 싫은 기억들, 하지만 외면하기보다는 역사를 직시하며 극복하는 것이 나의 후손을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북해도 여행 끝에 내 집에 와서 우리 가족을 다시 보니 우리 가족이 내 나라며 우리 세계였구나. 며느리 중에는 일본인, 중국인, 미국인도 있고 미국인 사위도 있네. 한 세대 더 지나면 완전 글로벌 패밀리가 되어 한~가족으로 살겠지. 이것이 우리 조상들이 꿈꾸던 세상 아닌가? 예전엔 시골에서 농사 짓는 것만이 천직이라 생각했지만 내 아버지는 고향을 떠나 북해도 탄광부로, 사할린 벌목공으로 일하면서도 내 후손은 나보다 더 넓은 세상에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리라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으리라. 내 나라, 내 고향이 어디 따로 정해져 있는 곳이 아니라 마음 가는 곳, 살고 싶은 곳이 내 고향이 아닌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내가 아끼고 지켜야 하는 것이 있는 그곳이 바로 내 나라 아니겠나. 이두수 작가 소개 최근 수년간 일용직 건설 노동자 생활을 하면서 노동 현장의 일상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해 오고 있다. 건설 현장의 안전을 위해서는 규제보다는 노동자의 인문학적 소양 계발이 더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현장에서 몸으로 익힌 절차탁마의 정신을 실생활에 적용하기 위해 다양한 생활실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이두수의 절차탁마] 나의 아저씨 카즈오…80년만의 북해도 귀향
  • [이두수의 절차탁마] '잡화'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세상

    이두수 작가 소개 최근 수년간 일용직 건설 노동자 생활을 하면서 노동 현장의 일상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해 오고 있다. 건설 현장의 안전을 위해서는 규제보다는 노동자의 인문학적 소양 계발이 더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현장에서 몸으로 익힌 절차탁마의 정신을 실생활에 적용하기 위해 다양한 생활실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이두수의 절차탁마] 잡화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세상
  • [이두수의 절차탁마] 민주주의라는 나무

    4월에 맡는 라일락 향기는 언제나 신선하다. 어찌 4월에 라일락 향기만이 있겠냐마는 어릴 적 추억은 그만큼 강렬하다. 꽃 향기가 주는 따뜻함, 신선함 그리고 편안함은 봄을 맞는 모든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는 것 같다. 4월을 맞아 국립 4.19 민주묘지를 찾아 참배를 하고 주변 둘레길을 걸었다. 북한산을 걸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산에서 바라보는 서울은 참으로 아름답다. 산은 적당히 높아 나무가 우거지고 계곡엔 물이 흘러 물고기들이 어른거린다. 후덥지근해진 날씨지만 산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꽃 향기와 더불어 4월의 봄을 더 아름답게 만든다. 이런 자유와 여유로움이 민주묘지에 묻힌 선배들의 희생 덕분임을 온몸으로 느낀다. 함께 걷던 배문태 선생은 당시를 회상하며 나지막하게 읊조렸다. “나는 여기 올 때마다 여기 누워 있는 친구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기분이 착잡해지네. 당시 나도 고등학교 3학년이었고 대학에 들어갈 그때였거든. 우리나라가 이만큼 민주화되어 사는 것은 이들의 희생이 크지. 나는 여기 있는 이들을 보며 아직도 살아 있는 게 미안한 거야. 이들에게 더 이상 미안하지 않기 위해 살아 있는 동안 나는 통일된 조국을 만들겠다고 다짐을 하곤 하지.” 나무를 보면 신기하지 않은가. 하늘을 향해 수직으로 서 있는 나무를 보며 나도 인생의 꿈을 향해 수직으로 서는 힘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고 그 환경을 사랑하며 자기 것화하는 바위 위에 굽은 소나무가 얼마나 아름다운가. ‘못생긴 소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 말이 있다. 쓸모없어 보이는 것이 결국 제구실을 한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대부분은 산에 잘 생기고 곧은 나무는 먼저 잘려서 요긴하게 쓰이고 결국에는 제일 못생긴 나무만 남아서 중요한 선산을 지킨다는 이야기로, 평소에 보잘것없어 보이더라도 언젠가 결국에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으니 무시하면 안 된다는 뜻의 속담이다. 과거엔 나라를 생각하며 나무를 심었다면 이제는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 나무를 심으면 좋겠다. 사무실이나 노동 현장에서 일하다가 이렇게 자연으로 나오면 몸과 마음이 리프레시되는 것은 물과 나무를 벗하기 때문이다. RE100이니 지구온난화 방지라는 거대 담론을 떠나서 나를 위해 나무를 심으면 좋겠다. 정원이 없으면 집 안에 화분에라도 심어 내 나무를 한 그루 가꿔보자. 그래도 공간이 없으면 내 마음속에라도 나무를 심고 가꾸면 좋겠다. 그 나무가 민주주의 나무라면 더 좋겠다. 아파트 건설에 있어서도 골조공사는 사실 모든 아파트가 브랜드만 다를 뿐 기본 골조는 거의 비슷하다. 외장이나 페인트 색깔만 다르다. 그래서 요즘 브랜드 아파트는 조경에 신경을 쓴다. 어떤 나무를 심는냐에 따라 아파트 차별화를 가져온다. 건물을 지을 때 수직과 수평이 매우 중요하다. 기둥이 수직으로 서야 보를 수평으로 이을 수 있다. 기둥과 보가 수평, 수직을 이루어야 벽이라는 평면을 만들 수 있다. 수직이란 지구 중력의 중심과 직선을 이루었다는 말이다. 그리고 수평은 이러한 수직과 90도 각도를 맺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기둥과 보가 수직과 수평관계를 이루어 큐브 형태를 이루었을 때가 가장 안정적이다. 수평, 수직이 이루어진 상태에서 굴곡이나 기울기를 달리해 미적 변화를 줄 수도 있다. 지구는 구형이기 때문에 어디에 있든 중력의 중심과는 수직으로 설 수 있다. 바른 자세는 이렇게 중심과 가장 가깝게 서 있는 자세다. 이러한 원리는 자연과학만이 아니라 인문사회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고 본다. 우리가 말하는 원칙과 상식이란 이런 기준에서 나온다. 물론 인간은 상상력과 정이라고 하는 초월적 힘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초월적 힘도 가치라고 하는 인문적 측정 기준을 넘어서거나 남용하면 무리가 생기고 관계는 헝클어지기 시작한다. 우리 사회의 학연, 지연, 혈연의 폐해는 이런 정적인 힘이 과도하게 작용해서 생기는 문제다. 2024년 4월에는 국회의원 총선거가 있었다. 인구가 많아진 것도 있지만 전문화된 현대사회에선 자신을 대신해서 공동체를 이끌어갈 대표자를 뽑고, 그렇게 뽑은 대표자가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하면 해임할 수 있는 것이 선거다. 흔히 선거를 ‘뽑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 ‘떨어뜨리는 것’이기도 하다. 어떤 대표자가 임기 중에 비리와 부정을 저지르거나 대표자로서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면 시민들은 다음 선거에서 다른 후보자에게 투표함으로써 대표자를 교체한다. 이 때문에 선거를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부른다.(나무라고 부르면 더 좋겠다) 이번 선거 결과를 보면, 전국 254개 선거구의 총 투표수는 2923만4129표로, 이 중 더불어민주당의 득표수는 1475만8083표(50.5%), 국민의힘은 1317만9769표(45.1%)로, 양당의 득표율 격차는 5.4%포인트에 불과했다. 하지만 의석수에는 엄청난 차이가 났다. 지역구에서만 민주당은 161석을 얻어 단독 과반을 훌쩍 넘겼고 국민의힘 당선자는 90명에 불과했다. 두 정당 간 지역구 의석수 차이는 약 1.8배에 달했다. 특히 이번 총선의 최대 승부처였던 서울과 충청권에선 득표율과 의석수의 괴리감이 더 컸다. 서울에서 양당의 득표율 격차는 5.9%포인트였지만 전체 48석 중 37석을 민주당이 독식했다. 대전·세종·충남·충북 등 충청권에선 민주당이 단 4.3%포인트를 앞서 전체 28석 중 21석을 휩쓸었다. 반대로 국민의힘은 충청권에서 45.8%의 표를 얻고도 7석밖에 얻지 못했다. 이러한 격차가 나타나는 이유는 득표율 1위만 당선되고 나머지는 사표(死票)가 되는 현행 소선구제의 특징 때문이다. 승자독식에 따른 단순다수대표제가 민의를 대표했다고 볼 수 있을까? 전체 의석이 아닌 비례대표 의석에 대해서만 정당 득표율을 기준으로 배분하는 기존 병립형으로는 민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문제의식 아래 우리나라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했다. 하지만 위성정당이라는 새로운 정당의 출현은 비례대표제에 대한 문제점을 다시 부각시키고 있다. 원래 준연동형 비례제하에서 하나의 정당으로 총선을 치르면 양당의 경우 지역구 당선자로 인해 비례대표 의석 수가 병립형 비례제 시기보다 줄어들게 되고, 소수 정당이 비례대표 득표율에 가까운 원내 의석 수를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원래 취지였지만 위성정당을 만들게 되면 명목상으로는 위성정당에서는 지역구 당선자가 없기 때문에 비례 득표율을 손해 없이 고스란히 비례대표 의석수로 전환할 수 있으며 추후 합당으로 비례대표 의석수를 당으로 가져올 수 있으며, 심지어는 선거 전 일부 의원을 위성정당에 꿔주는 사례도 있다. 창당 과정에 드는 비용이나 기존 정당과의 유사성으로 유권자에게 혼란을 준다. 유권자를 단지 정치 소비자로 취급하는 것이다. 하이예크는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는 개인의 자유를 매우 강조했다. 인류 역사의 전 기간에 걸쳐 사회 발전의 일반적 방향은 각 개인의 자유로운 일상적 활동을 보장할 때이며 관습이나 정해진 방식을 따르게 한 속박에서 그들을 해방시키는 것이라고도 했다. 혹여나 이번 선거가 개인의 의지나 민의가 잘못 왜곡되어 집단화·진영화의 도구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민주주의는 원래 정해진 룰이 없다. 끊임없이 현실과 타협하며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해 가고 진화해 가는 제도다. 며칠 전 우희종 교수는 강연에서 우리 사회의 다양한 시각을 같은 피사체를 보고 피카소와 달리의 표현이 다름과 같은 것이 아니겠냐고 말했다. 폭력이란 공동체의 관계를 단절시키거나 왜곡시키는 것을 말하며, 이런 왜곡에 대한 잘못된 개인적인 신념(어리석음)도 폭력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진보 진영에서 진화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는데 원래 이 진화(Evolution)의 개념은 어떤 특수한 종이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환경, 상황, 위치에서 가장 안정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을 말한다고 했다. 시민운동 차원에서 말하면 옳고 그름이라는 관념의 선택이 아니라 현장에 맞느냐 적합하냐 하는 선택과 이에 따른 실천이며 행동이라는 것이다.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말이 있다. 즉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겸손과 부드러움을 간직하지만 홍수와 같은 대재앙을 일으키는 무서운 힘으로 나타난다는 물의 속성을 도가에선 최고의 선(上善)으로까지 표현하고 있다. 대개는 힘이 있는 권력자들, 특히 정치인들에게 요구되는 품성이라고 말하지만 이런 인품은 70% 이상 물로 이루어진 인체를 가진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말일 것이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은 물만이 아니라 모든 액체, 공기도 고기압에서 저기압으로 흐른다. 높은 데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은 물 자체가 가지고 있는 성격이라기보다는 중력이 있기 때문이다. 질량을 가진 모든 물질은 서로 끌어당기는 힘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지구라고 하는 행성의 중심에서 잡아당기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타난 표상을 우상화하거나 신격화하는 데 집중할 것이 아니라 보이지는 않지만 그렇게 작용케 하는 과학적 힘에 집중하면 좋겠다. 청명한 날 나무를 심는 마음으로 시작한 꽃 향기 충만한 4월도 이제 지나간다. 각자가 물가에 심은 나무처럼 쓰러지지 않는 든든한 나무가 되어보자. 이두수 작가 소개 최근 수년간 일용직 건설 노동자 생활을 하면서 노동 현장의 일상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해 오고 있다. 건설 현장의 안전을 위해서는 규제보다는 노동자의 인문학적 소양 계발이 더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현장에서 몸으로 익힌 절차탁마의 정신을 실생활에 적용하기 위해 다양한 생활실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이두수의 절차탁마] 민주주의라는 나무
  • [이두수의 절차탁마] 건설현장에서 생각해 보는 민주주의 '축제'

    국회의원 선거가 다가왔다. 선거를 국민 축제라고 말은 하지만 즐거움이 빠진 행사여서 국민들의 관심도 자꾸 멀어져 가고 있다. 즐거움은커녕 증오와 분열만 보인다. 원래 정치란 것이 그런 거라고 하면 할말은 없지만… 솔직히 정치인이 TV에 나오면 재미있나. 감동이 있나. 누구 얼굴이 나오면 그를 마땅치 않게 여기는 사람들은 욕부터 한다. 이런 것은 개인 교양 수준의 문제겠지만 옆에서 듣기에는 기분이 편치 않다. 심한 경우에는 근로자들끼리 편이 갈라져 정치적 설전으로 주변이 시끄러워진다. 그래서 그런지 노동자들의 식당에는 늘 가수들의 오디션이나 오락 프로그램만 틀어 놓는다. 선거를 ‘국민축제’라고 하는 말은 아마 선거관리위원회에서 만든 광고 카피가 아닐까 생각한다. 원래 축제는 공동체의 참여와 화합으로 즐거움을 주는 것으로 기획한다. 하지만 우리 선거판은 증오만 키우고 분열만 양산하는 싸움판이다. 국회의원 선거라고 함은 이 나라 민의를 대표하는 일종의 국가대표 선발전이다. 국가대표의 깜(감)이 되는지 함량이 되는지 과거의 이력을 보며 검증하여 뽑는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오디션 프로그램에 익숙해져 스포츠나 예능프로그램에서 대표를 선발하는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봐왔다. 누군가 힘있는 사람의 영입이나 추천을 차단하고 오로지 선수의 실력, 끼, 능력, 열정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경쟁하게 하여 수준을 높여 나간다. 검증의 이 과정이 보는 자체가 감동이고 기쁨이다. 전문가들이 내놓는 엄중한 비평을 들으면서도 겸허하게 자신의 부족함을 채워가며 도전하는 모습, 후보자들 간에 경쟁은 치열하게 하면서도 서로를 격려하며 응원하는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가슴 뭉클한 감동을 준다. 이런 과정이 한류를 세계 최고의 문화 콘텐츠로 만들었다. 한국만이 아니라 세계인들이 같이 보고 즐기고 공감하는 것이다. 이런 스토리나 감동이 없는 쇼 프로그램을 가지고 일반 오디션 참가자들이 우승하여 받게 되는 보상보다 몇 백배의 혜택과 국가를 대표한다는 명예와 국정을 책임지는 막중한 권한을 받는 우리 국회의원 선발과정은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고 화만 돋구며 진행도 아주 후졌다. 기획사를 바꾸고 싶다. 왜 그럴까. 기획사의 문제일까 아니면 팬들의 문제일까. 아니면 민주주의라는 이 판 자체에 결함이 있는 것은 아닐까? 혹시 우리는 정치 스타를 키우려는 팬심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아니면 민주주의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AI 시대에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점점 사라지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고민하는 것이라고 한다. 즉 호기심과 질문밖에 없다는 것이다. 우리 시대 정치에 대해 의문을 가져야 하고 질문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끓는 물에 웅크린 개구리 꼴이 될 것이다. 우리는 그간 산업화와 민주화를 성공한 세계 최초의 나라라고 자랑했고 자긍심을 가져왔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왜냐하면 산업화나 민주화라고 하는 것은 결과물이 아니라 그 과정을 의미하기 때문에 지금도 우린 현재 진행형으로 앞으로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진행형이라 하는 것은 내 몸으로 체화하고 몸으로 익혀 나가는 것을 말한다. 서구의 데모크라시(Democracy)라는 말을 우리는 민주주의라고 번역해 사용하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우리가 번역한 것은 아니고 중국이나 일본에서 번역한 말을 우리는 같은 한자권이라는 혜택으로 그 용어를 음차한 것에 불과하다. 중국에서도 처음에는 데모크라시를 번역할 수 없어 ‘德謨克拉西’ (demokelaxi)라고 표기하다가 고전에서 말하는 民主라고 표현했다. 이때 민주는 ‘백성의 주인’인 군주를 의미했고, 신해혁명 시기에 와서야 ‘백성이 주인’의 의미로 민주를 사용했다고 한다. 일본에서도 민의정치, 민본주의, 민중정치라고 번역해 오다가 민주주의로 정착해왔다고 한다. 민주 뒤에 ‘-주의’라고 붙인 것은 일본인들은 오랫동안 천황제를 신봉해 왔기 때문에 군주의 백성에 대한 통치이념인 유교의 민본주의 영향 때문이라고 한다. 일본인들은 서구의 이 민주정치제도를 백성이 군주에 대항한다는 의미로 처음엔 하극상(下剋上)이라고 표현했다고 한다. 어찌 되었건 우린 이웃나라에서 고심하며 번역한 용어를 손쉽게 음차해서 사용하고 있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고 본다. 어떤 사물이나 개념을 받아들일 때 그 쓰임새와 내력에 대해 충분히 연구하고 고민하지 않으면 그 본질을 알 수 없거니와 내 것으로 만들기 어렵다. 그저 겉모습만 보고 흉내만 내기 때문이다. 선거일이 다가오는데 우린 지금 뭘 하자는 것인가? 자신들의 대표를 뽑아 상대에게 복수하자는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치부를 덮어버리고 자신의 사적이익을 넓히자는 것인가. 내 보기엔 우리 선수들 대부분이 그 정도 함량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민주주주의에 대한 고민이 없다. 자신이 국가대표가 되겠다면 이런 나라를 만들어 가겠다는 출사표가 보이지 않는다. 고작 주장하는 것이 있다면 지역구 민원을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예산을 많이 따오겠다, 혹은 어떤 시설을 유치하겠다는 자신의 힘만을 과시하는 공약이 대부분이다. 우리에게 민주주의는 적당한가. 북한에선 인민이 굶어 죽는 판에 이름뿐인 인민민주주의라는 군주제를 실시하며 인민의 낙원이라고 뽐낸다. 이런 체제를 대면하는 우리 민주제는 우리 국민을 보호하고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까. 우리의 대표들은 180여 개의 특권과 연봉은 세계에서 넷째로 많이 받고 있으면서도 국민과 나라를 위해 도대체 뭘 하는 사람들인지 모를 지경인데 이런 사람들이 굳이 필요할까? 차라리 전문가 그룹에게 위임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그것이 해고하기도 쉽다. 3월이면 우리는 3·1절을 기념하며 시작한다. 하지만 3·1독립만세운동을 벌이며 외쳤던 ‘대한독립만세”가 독립될 나라인 대한민국이 국왕을 옹립하는 군주제인 대한제국이나 조선이 아니라 국민이 주인인 서구식 민주주의 국가였다는 것을, 그래서 우리가 만들어 갈 민주주의가 어떠해야 하는지 더 세밀하게 배려하고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지도자가 보이지 않는다. 세계 문화를 리드할 문화선도국이라고 하면서도 아직까지 과거 한국을 식민통치한 일본에 대한 적개심과 원색적인 비난으로 국론을 분열시키고 있다. 대한민국의 경제를 떠받치는 산업의 중추인 건설업의 노동자는 그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일용직 근로자다. 일용직이라는 것은 날품팔이라는 의미다. 용어 자체가 인스턴트하다. 언제든 쓰고 버리는 존재들이다. 다들 명품 아파트에 살고 싶어하지만 아파트를 만드는 건설인을 명장으로 만들겠다는 국가정책도 없고 교육 프로그램도 없다. 노동자가 더 필요하면 외국에서 수입해서 쓰겠다는 편하고 쉬운 발상만 한다. 그러면서 선거 때만 오면 ‘노동의 숭고한 가치’를 깊이 간직하겠다고 말만 나부낀다. 북한은 미국과 대화하기 위해 핵을 만들었다고 하다가 이제는 남한을 핵전쟁으로 접수하겠다며 위협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통일에 대한 관심은 사라져 가고 있다. 이제는 서로 따로 살자는 여론도 높아져 가고 있다. 그렇다고 통일을 포기할 것인가. 통일된 나라가 어떠해야 하는지, 남과 북이 합의할 수 있는 통일 비전이 무엇인지 모색하거나 연구하는 지도자가 보이지 않는다. 본인의 삶이 타인의 인권을 빼앗거나 무시하면서 민주화를 외치는 사람, 통일의 비전도 없이 통일해야 한다고 외치는 사람은 소음을 양산하는 공해다. 국가의 미래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면서 치적을 쌓겠다고 하는 사람은 사기꾼이다. 세계에 유례 없는 저출산이 계속되고 있음에도 국가인력개발계획도 없이 외국인노동자 쿼터제만 만지작거리는 사람은 생각이 없는 사람이다. 적어도 민주주의를 이끌어가겠다는 선수라면 로버트 달 교수가 말한, 민주주의를 한다고 하는 것은 정직이나 공정의 가치를 실현해 가는 과정이며 이를 위한 시민의 용기와 사랑이라는 휴먼 가치를 어떻게 실행하고 보존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시끄러운 선거 확성기 앞에서 어제 인사동의 전시회에서 한 작가로부터 들었던 말이 떠오른다 "기계로 대량생산된 개성 없는 기성품이 넘쳐나고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며 소비를 강요받고 있는 우리 사회에,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지 돌아보게 하는 고요함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소유의 욕망에서 벗어나 고요와 평안을 느낄 수 있고 시대가 변해도 본질로 거슬러 올라가게 하는 우리 것의 고유한 가치도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우리 정치도 그랬으면 좋겠다. 인류를 위해 봉사하겠다는 홍익인간의 이념을 건국이념으로 채택한 5000년의 역사적 전통을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다. 픽-하고 웃어 넘길 옛날얘기가 아니라 이 비전을 현대에 맞게 세련되게 리폼해서 우리가 만들어 갈 새로운 나라의 지표가 되면 좋겠다. 이번 투표도 선동가의 구호에 흥분하지 말고 존엄한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며 의무를 다해가는 민주시민이 되길 기대해 본다. 그림 설명: 꽃무늬 입은 노동자 “일하다 보면 꽃을 볼 일도 없지만 그래도 꽃 피는 들판을 그려보곤 하지요. 올봄에는 꽃 소식이 늦네요. 꽃이 없으면 아쉽지만 아무려면 어때요. 내 맘속에 그려보면 되지요. 꽃무늬 바지를 입고 일하면 맘도 편하고 푸근해지는 거 같아요. 꽃 피는 세상을 그려봅니다.” -건설노동자 이두수 작가 소개 최근 수년간 일용직 건설 노동자 생활을 하면서 노동 현장의 일상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해 오고 있다. 건설 현장의 안전을 위해서는 규제보다는 노동자의 인문학적 소양 계발이 더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현장에서 몸으로 익힌 절차탁마의 정신을 실생활에 적용하기 위해 다양한 생활실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이두수의 절차탁마] 건설현장에서 생각해 보는  민주주의 축제
  • [이두수의 절차탁마] 이 세상을 살아가는 주체 …'나와 너' 그리고 소통

    건설현장에서 일하다 보면 나와 팀원 관계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이것은 일당이 많고 적음을 넘어 팀원간의 역할분담과 서로의 협조관계가 원만하지 않으면 오랫동안 일을 같이 할 수 없거니와 일에 대한 보람도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것은 노동자와 회사와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노동에 대한 가치문제가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귀결되긴 하지만 같이 일하는 동료들, 즉 ‘나와 너의 관계’는 무엇인가하는 문제는 노사문제나 노노간의 문제뿐만 아니라 일의 성과나 현장의 안전문제까지 연결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주제다. 아시안컵 축구대회에서 불거진 손흥민과 이강인의 갈등에서 벌어진 팀워크의 문제도 결국은 ‘나와 너의 관계’에서 벌어진 문제다. 손흥민은 아버지의 독한 훈련을 잘 버텨낸 것으로 유명하다. 반면 이강인은 어릴 때부터 축구신동으로 자유롭게 자기 기량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에서 성장했다고 듣고 있다. 이런 성장배경과 기질의 차이가 있음에도 한 팀이 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것은 축구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적인 문제와도 연결된다. 총선이 다가오면서 우리 사회는 나와 너, 혹은 내편 니편으로 갈리면서 그 어느 때보다 심한 갈등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이런 것은 인식의 방식문제라고 생각한다. 우리 말의 ‘알다’라는 말은 알에서 왔다고 본다. 새의 알처럼 알은 전체를 포용한 말이다. 알맹이, 알몸, 알통 같은 말을 보면 알은 사물의 핵심과 진수, 알짜배기를 일컫는 말들이다. 무엇을 안다는 것은 대상의 핵심에 접근하는 것이며 그렇다고 한 부분만 아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두루두루 아는 박식한 지식이 우리 말의 앎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그럴까 우리나라 지도자들은 모르는 것이 없다. 반면에 일본어로 알다는 와카루 分かる다. 와카루는 나누는 것이다. 한자어로도 이해 理解、분석 分析 이런 말을 보면 동양권에서도 앎은 분해하는 과정이다. 서양의 근대과학은 사물을 잘게 쪼개어 분석하는 것에서 출발했다. 물질을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단위까지 쪼갠 그 단위를 원자(Atom)라 불렀다. 인간도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단위를 인디비듀얼 Individual이라 했고 이를 개인 個人으로 번역했다. 하지만 동양에선 이렇게 분절화된 개인보다는 인간 人間, 즉 사람人 사이間의 관계에 더 주목했던 거 같다. 주체와 대상 이 세상을 크게 나누어 본다면 나는 주체와 대상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세상은 나와 연결된 관계구조다. 물론 주체가 항상 나일 수는 없지만 한 문장이 주어와 술어의 관계인 것처럼 이 세상도 크게 보면 나와 너라는 주체와 대상의 관계가 아닌가 생각한다. 일상에서 ‘알다’와 비슷하게 사용하는 말이 ‘우리’다. 우리는 ‘나’와 ‘너’라는 개념을 알기 전에 ‘우리’라는 말을 먼저 사용했던 거 같다. 우리 속에 ‘나’와 ‘너’가 있다는 것을 모른 채 우리라는 말을 써왔던 거 같다. 우리라는 말을 하기 전에 우리는 ‘나’와 ‘너’에 대해 먼저 살펴야 한다. 우리라는 말 속에는 나와 너가 있다. 나와 너의 관계성이 바로 우리라는 말이기 때문이다. 이 관계성은 주체와 대상의 관계를 말한다. 주체와 대상 간의 관계가 상호 모순적이냐 아니면 상호 보완적 관계로 보느냐에 따라 주체와 대상은 원수관계가 될 수도 있고 파트너의 관계가 될 수 있다. 모순적 관계라고 하는 것은 상대를 적으로 보는 것이다. 적은 쓰러뜨려야 하고 제거해야 하는 상대다. 그래서 싸움을 벌여야 하고 싸워 이겨야 하는 것이다. 인간의 탄생이 온갖 바이러스와의 싸움이고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도 1등을 놓고 경쟁하고, 사회에 나와서는 최고가 되기 위한 투쟁이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삶은 원래부터 고통이고 전쟁이라고 가르친다. 그런데 상호 보완적 관계라고 한다면 상대는 나를 도와주거나 보완해주는 관계이므로 나에게 필요한 존재다. 상대를 파트너로 보는 것은 너와 내가 전체를 이루는 한 구성원이라는 의식이다. 현장에서 기계를 사용하다 보면 고장이 난다. 고장의 원인은 대개 작은 부속품, 볼트가 빠지거나 퓨즈가 끊어지거나 하는 등 사소하고 작은 것에서 일어난다. 아무리 작아도 그 한 부품이 없거나 망가지면 기계는 작동을 멈춘다. 그래서 작고 사소한 한 부분 한 부분의 파트너가 귀한 것이다. 인간관계에서 상호 보완적인 관계는 가족관계에서 그 모델을 볼 수 있다. 가족간의 관계는 서로 사랑하고 때로는 상대를 위해 희생도 한다. 특히 부모와 자식관계에서는 모든 조건을 초월하기도 한다. 부자관계만이 아니라 남녀간의 관계도 상식과 논리를 초월하기도 하고, 어떤 이념이나 가치, 우정을 위해서는 자신의 생명까지도 버릴 수 있는 비상함도 나타난다. 도종환의 <흔들리며 피는 꽃>을 보면, 꽃나무와 바람은 적대적 관계가 아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며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바람과 꽃나무의 관계를 보자. 꽃나무에게는 바람이 필요한 것이다. 흔들리는 나무는 살아있음이다. 죽은 나무는 흔들리지 않는다. 바람에 나무가 쓰러지고 가지가 찢긴다 해도 나무에겐 바람이 필요하다. 태풍이 피해를 준다고 없앨 수는 없다, 태풍이 불어야 자연은 그만큼 더 건강해지고 다양해지는 것이다.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를 읽어보자.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나와 꽃, 아니면 그 어떤 대상이 나와 이런 사이라면 그와 나는 원수가 될 수 없다. 그가 없이는 나도 존재할 수가 없는 것이다. 주체와 대상은 그런 것이다. 존재하는 모든 관계는 그렇게 상호 보완적인 것이다. 상대를 까부수고 제거해야 할 상대가 아닌 것이다. 주체와 대상이 이렇게 서로를 높여주고 좋은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가 되어 새로운 결과물을 내기 위해서는 목적이 같아야 한다. 공유할 비전이 같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개혁신당의 파국은 정당의 뜻과 이념의 정체성이 맞지 않는 사람들이 비례대표 의석이라도 잡아보려는 꼼수에 불과해 결국 파행을 맞을 수밖에 없었다. “No players is bigger than the club”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는 이 말은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에서 우승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잉글랜드 리그를 최고 자리에 올려놓은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말이다. 그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덕목은 한 선수의 기량이나 인기가 아니라 팀에 대한 지속적인 헌신성이다. 이러한 팀 비전에 구성원들이 하나가 될 때 강한 힘이 나오는 것이다. 수수작용과 소통 건설현장엔 아침에 일을 시작하기 전 TBM이라는 시간을 갖는다. 툴박스 미팅 Tool Box Meeting의 약자로 공정별로 하는 미팅시간이다. 조회시간에 전체가 공유해야 할 현장소장의 훈시를 듣기는 하지만, 티비엠 시간엔 팀장(예전엔 십장이라 했음) 중심으로 당일 할 일에 대한 실무적인 내용을 가지고 간단히 정보를 교환하는 것이다. 어제 한 일은 잘 진행되었는지 체크하고 오늘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그리고 이를 수행하는 데 불안전 요인이 무엇인지 간단히 확인하는 시간이다. 이런 소통의 시간이 비록 짧지만 필요하다. 늘 하던 일도 다시 한번 주의를 환기시키지 않으면 언제든지 사고가 나기 때문이다. 최근 건설현장의 사고도 초심자보다 오래된 숙련노동자들의 사고가 더 많은 것이 이를 말해준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어도 건설현장에서 인명사고는 줄지 않았다. 법으로 규제한다고 안전사고가 줄지 않는다. 구성원들이 어떤 마음으로, 어떤 태도, 어떤 관계로 일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회사가 나의 노동력을 착취하기 위해 일을 시킨다는 소외의식이나, 외국인 노동자들 때문에 내 일을 빼앗겼다는 적대의식으로는 건설 현장에서 신뢰분위기를 쌓을 수 없다. <나와 너>라는 책을 쓴 마르틴 부버의 책이 한때 유행한 적이 있다. 그는 한 사람의 자존감과 정체성을 상실하게 되는 원인이 나와 너 사이의 관계가 깨진 데 있다고 보았다. 나와 너의 대화를 통해 상호관계를 이루는 것이 나의 자존감과 정체성을 회복하는 지름길이며 자아실현의 필수적 과정이라 했다. 이러한 바람직한 관계가 되기 위해서는 나의 시각이 자기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하고 상대를 이질적인 대상으로 보려고 하지 않는 노력이 필요하다. 상대를 나보다 못한 존재로 보거나 나의 지배대상 혹은 소유대상으로 삼는 것은 위험한 생각이다. 나와 너를 물과 불처럼 대립적인 존재라고 속단하는 태도가 나와 너를 가로막는 분계선이 된다. 각자는 상대방에 속하지 않는 고유한 속성을 가지고 있고, 너와 나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데서 상호관계가 시작된다고 그는 설명한다. 사람, 너를 보는 시각 상대를 나의 생각과 나의 목표에 종속시키려는 욕심, 즉 인위를 버리고, 세상에서 가장 연한 물처럼 인애심을 바탕으로 상대의 고유한 기질, 성품, 재능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바탕 위에서 원한마저 덕으로 갚으려는 넉넉한 생각이 세상을 발전시키는 자연스러운 길이다라고 노자는 말했다. 이런 시각에서 사람인人이라는 한자를 다시 써보자.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사선을 긋고 그 밑에 선을 받치듯이 짧은 선을 그어 이것이 ‘사람人’이다 라고 표명한다. 쓰러질 듯 위태로워 보이는 한 사람을 그렇게 강해 보이지도 않는 또 다른 사람이 힘겹게 지탱해주는 형상이다. 이것이 사람인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仁이란 자신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알면서도 쓰러지는 사람의 인생을 일으켜 세워주기 위해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않는 두 번째(二) 사람의 마음이라 볼 수 있지 않을까. 공자는 仁이란 “사랑을 간직하고 있는 어진 마음”이라 개념 짓고 인의 행함은 한 인간이 지닌 개성을 최대한 선하게 성장시키는 일이며 가장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생활방식이라고 했다. 그래서 자신을 죽여야 인을 이룰 수 있다고 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의 가르침도 다르지 않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주체인 나와 너가 가져야 할 덕목인 것이다. 그림 설명: TBM시간에 우리 팀장이 늘 강조하는 말씀은 “오늘 일은 오늘 마감되도록 꼼꼼하게 마무리 잘 하고 철저하게 확인하시오.” 꼼꼼하게, 잘, 철저하게…이렇게 일하기는 쉽지 않다. 어려운 일을 아주 쉽게 말씀하신다. 그렇지만 힘들지 않은 것은 서로의 신뢰관계 때문이다. 이두수 작가 소개 최근 수년간 일용직 건설 노동자 생활을 하면서 노동 현장의 일상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해 오고 있다. 건설 현장의 안전을 위해서는 규제보다는 노동자의 인문학적 소양계발이 더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현장에서 몸으로 익힌 절차탁마의 정신을 실생활에 적용하기 위해 다양한 생활실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이두수의 절차탁마] 이 세상을 살아가는 주체 …나와 너 그리고 소통
  • [이두수의 절차탁마] 인생이란 문장의 주어는 나

    진주어와 가주어 그리고 의미상의 주어 우리말에는 없지만 영어를 공부하다 보면 진주어, 가주어라는 말이 나오고 의미상의 주어라는 말이 나온다. 주어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에 이런 용어가 나온다고 생각한다. 우리말은 주어를 굳이 강조하지 않는다. 말을 한참 듣다가도 그게 누구 말인데? 하고 물어볼 때가 있다. 내 얘기도 아니고 네 얘기도 아닌 그냥 ‘우리’로 퉁 치는 경우도 많다. 이런 언어적 습관 때문인지 행위의 주어가 누구인지 명확하지 않으며 여기서 책임 소재가 발생한다. 사람들은 자기가 책임지고 싶지 않을 때 주어를 흐린다. ‘~카더라’ 하는 것은 말을 전하는 사람들은 주어가 누구인지 혹은 무엇인지 관심조차 없다. 선거철과 표현 요즘 4월에 있을 총선거 준비로 국회의원이 되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자기의 존재감을 나타내기 위해 여러 모임을 만들어 사람들을 모으고 길거리에 나가 사람들을 만나기도 한다. 사람들을 모아 본인 소개를 잘할 수 있는 모임이 출판기념회다. 그래서 그런지 내 주변에도 출판기념회가 여럿 있었다. 평소에 글도 써보고 책을 내 보며 자신의 생각과 비전을 표현해 왔으면 책을 받는 기쁨도 있겠지만, 대부분 후보자들의 출판기념회에서 받아보는 책은 출판기획사가 같은 곳인지 책 내용과 구성이 비슷해 책을 대하는 기분은 그리 좋지 못하다. 책 저자에 대해 신뢰감이 가지 않는데 왜 자꾸 이런 출판기념회를 하는지 모르겠다. 독자를 고려하지 않는 저자의 강압구조인 이런 출판기념회는 오히려 안 하니만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삶은 표현의 과정이다. 나는 ‘표현하다’는 말을 좋아한다. 한자로 써보면 表現, 겉으로 드러내다. 영어의 expression도 밖으로 드러내 놓는 것을 의미한다. 보이지 않는 내적인 성격이나 성질, 즉 자기 생각과 비전, 뜻, 꿈, 야망 이런 것을 겉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그 표현 수단이나 방법에는 글이나 말, 그림, 음악, 행위 등 여러 가지로 나타낼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표현은 창조와 같은 말일 것이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의 창조행위도 신의 보이지 않는 성품이 이 세상과 사람으로 나타내 보인 것이다. 성육의 의미인 incarnation도 결국 보이지 않는 정신이나 뜻이 인간에게 구체화되어 나타나는 것을 의미한다. 나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사람이 왜 사는가를 생각해 보면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내가 세상의 중심이 되어 살아보려 몸부림치는 것이 삶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공부하고, 일하고, 고민하고, 싸우고 하는 내용들이 이타적 삶이든, 자기 중심적인 삶이든 내가 중심이 되고 주체가 되어 살아보려는 발버둥이며 이것이 삶이며 그 축적이 역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이러한 삶을 글로 표현해 본다면 한 문장의 형태로 나타날 것이다. ‘나는 ○○한다’ 혹은 ‘나는 ○○했다’처럼 ‘나’는 문장의 주어가 되고 ‘○○했다’가 동사가 되는 것이다. 내가 주인이 되는 세상이란 의미는 결국 나라는 주어가 무엇을 어떻게 나타낸다고 하는 동사적 표현이다. 문장의 기본 구조는 주어와 술어다. 주어란 서술어가 나타내는 행위나 상태의 주체가 되는 문장 성분을 말한다. 문장은 아무리 간단하여도 주어 하나와 서술어 하나를 갖추어야 함을 원칙으로 한다. 복잡한 문장이라 하더라도 주어-술어라는 틀을 기본으로 하여 확대되어 가므로 주어는 서술어와 함께 문장의 가장 기본이 되는 문장 성분이다. 물론 주어는 인간만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떠한 동작이나 상태의 주체가 될 수 있는 것은 사람이거나 사물이 될 수 있으며 때로는 한 문장 자체가 주어가 될 수도 있다. 문장에서 주어는 술어의 행위나 상태의 주체가 되는 명사를 말하고, 술어의 행위, 동작, 인식을 나타내는 것을 동사라 하고, 상태를 나타내는 말을 형용사라고 지칭한다. 여기서 형용사는 동작의 의미를 전제로 하는 명령이나 청유형으로 활용하지 못한다. 주어는 술어가 있어서 의미가 있는 것이다. 술어와 매칭되지 않는 주어는 가짜 주어다. 주어의 의지는 술어로 나타난다. 주어는 어떤 동사를 쓰느냐에 따라 자신의 역량과 의지와 뜻을 피력할 수 있다. 간혹 형용사를 동사처럼 사용하기도 하는데 이렇게 하면 주어의 의미나 의지가 희석된다. ‘젊다'와 ‘늙다’를 예를 들어보자. 젊다는 한 시기의 상태를 의미하므로 형용사다. 그러나 늙다는 과정이 내포되어 있어 동사다. '젊는다'는 말이 안 되지만 '늙는다'는 말이 된다. 행복하다는 형용사다. 아주 기쁘고 좋은 상태를 말한다. '행복하세요'는 원래 말이 안 되는 것이다. '건강하다'도 몸이 좋고 힘이 넘치는 상태를 말한다. '건강해라'는 말이 안 되는 것이다. '아름답다'의 '아름다우세요'는 아름답다는 감탄의 뜻이지 '아름다우라'고 명령하거나 권하는 것은 아니다. '아이고 참 건강하세요!'는 감탄의 말로는 쓸 수 있지만 '건강하라'고 권면할 수는 없는 것이다. '행복해라'고 명령할 수 없는데 우린 언제부터인가 이런 식의 말을 자주 한다. 행복하자! 건강하자! 이런 말을 쓰는 것은 구호에 익숙하기 때문 아닐까. 아주 이상적인 상태를 설정해 놓고 그것을 이루라고 막 명령하는 거 같은 느낌에서 충돌이 생기는 것이다. 행동으로 나타날 수 없는 것을 행동으로 옮기라고 하는 주어의 그 의도나 의지가 강압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명령을 한다고 해서 그것이 실행되지 않는다. 문장 자체가 틀렸고 현실에서도 그렇다. 반복해서 이런 잘못된 지시나 명령을 내리면 주어의 권위가 형편없이 실추된다. 이는 곧 주어가 가주어나 의미상의 주어가 될 수밖에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주인의 역사 인류 역사를 돌이켜보면 인간이 주인이 된 시대는 그리 길지 않다. 오랫동안 인류 역사라는 문장의 주어는 인간이 아닌 신이었다. 이를 신본주의 시대라고 말한다. 인간의 삶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존재, 동물이나 식물 또는 산이나 바다, 하늘 등 존재하는 모든 것은 오로지 신의 영광 혹은 신의 섭리를 위해 존재할 때 존재 의미가 있었다. 이런 시대가 꽤 길었다. 이런 역사를 통해 지적 역량의 축적과 확대 덕분인지 모르지만 인간의 생각, 인간적 표현이 신을 대신하게 되었고 우선시되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의 시점을 대개 서구의 종교개혁과 르네상스 시기로 보고 있다. 그렇다고 인간이 주어가 되었다고 해서 신을 완전히 배제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인간의 주어적 가치는 신이 부여한 인권이라는 천부인권에서 힘을 받는다. 시천주-사인여천-인내천이라는 동학의 가르침도 이런 궤를 같이한다.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너와 나의 가치를 이렇게 우주적 가치로 존귀하게 여기며 이웃을 평등하게 대하는 사상은 민주주의 시대를 열었다. 이런 사상적·정치적 변화와 더불어 경제와 과학은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세상은 역사상 유례없는 성장을 가져왔다. 그 가운데에서 한국은 정말 전례가 없을 정도로 단기간에 급격한 변화와 발전을 경험하고 있으며 그사이에 모순과 갈등 또한 엄청나게 겪고 있다. 내가 주인이 되어야 우리 말에는 주어가 생략되는 경우가 많다. “좋다”라고 말할 때 누가 좋다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내가 좋은 건지, 네가 좋은 건지 아니면 우리가 좋은 건지 불분명하다. 그래서 사회생활을 잘하려면 실력보다는 상황 파악을 잘해야 출세한다. 보통은 화자의 중심은 내가 된다. 내가 주어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나를 ‘우리’로 대치한다. 사적인 부분도 나 대신 우리를 사용한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사회가 공동 의지나 공동체 의식이 강한 것도 아니다. 내가 생략된 우리는 결국 나의 위치, 나의 지분을 차지하기 위한 분쟁과 분열의 소지만 만들 뿐이다. 주어가 술어의 행위나 상태의 주체가 된다고 하는 것은 주어는 주어의 행위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술어인 동사에도 집중해야 한다. 결국 동사에 의해 주어가 빛나기 때문이다. 동사에 주어의 의지와 의도가 나타난다. 본인은 행동하지 않고 남이 해 놓은 것을 인용하는 것은 이미 누군가에 의해 결과된 상태를 표현하는 것으로 그것은 형용사가 될 뿐이다. 주어에 적합한 동사를 쓸 때 문장이 힘을 얻는 것처럼 주체들은 자기만의 행동규칙이 있어야 한다. 자기의 정책과 디자인이 없으면 행동할 수 없고, 그런 행위가 없으니까 남의 것을 베끼고 남의 말꼬리나 잡고 시간만 때운다. 그것은 나만의 고유한 삶을 살지 않기 때문이다. 주어로서의 확신이 없으니까 자꾸 남과 비교하고 남을 흉내 내려고만 한다. 그러니 사회가 다양하지 못하고 한쪽으로 치우치는 쏠림 현상이 심해지고 자기 의견이 확실하지 못하니까 힘 있는 쪽에 붙어 진영화되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그렇다. 최근에 읽은 책에 이런 말이 있었다. “운명이란 것은 국지적 모래폭풍 같은 거지. 그 폭풍을 피하려고 이리저리 방향을 바꾸지만 그럴 때마다 폭풍도 너를 따라 방향을 바꾸지. 폭풍은 바로 너 자신이야. 그러니까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모래가 귀나 눈에 들어가지 않게 꽉 틀어 막고 그 폭풍 속으로 들어가는 거야. 폭풍이 올 줄 알면서 그 폭풍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열다섯 살 소년의 '터프함'이야.” 또 이런 말도 있다. “비극이란 운명에 발버둥치지만 결국 굴복 당하지. 인간은 그 결과를 알면서도 발버둥치는 거야. 발버둥쳐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역시 발버둥을 치는 거지. 인간의 존엄은 그런 부자유함에서 나온다. 인간의 존귀함은 발버둥치며 자신의 자유를 개척하고 탐색하는 데서 나오지. 그 개척과 탐색으로 인해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해도 후회하지 않는 존재가 인간이다. 그 인간은 부자유함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자유를 추구할 때 존엄과 존귀함을 얻는 것이다. 이것이 '안티고네' 같은 그리스 비극이 제시하는 인간의 정의다. 그리고 이런 인간적 태도의 가장 핵심적 관념은 바로 책임이다.”(영원한 소년의 정신 하루키 읽는 법/ 양자오 저) 세상은 표현하는 자가 주인이다. 세계는 권력자의 것일지 몰라도 삶만큼은 상상하고 읽고 쓰고 말하는 개인들의 것이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문장의 주어는 내가 되는 것이다. 심오한 철학이 설명하는 세계나 신심 어린 종교가 말하는 이상 세계에 대한 추상적 언어를 자신의 구체적인 생활언어로 번역할 수 없다면 그는 자기 삶에 주어가 될 수 없다.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이미지나 추상적 언어가 현실에서 제대로 기능하려면 구체적 자기 언어로 해석할 수 있어야 하고 자기만의 표현력이 있어야 한다. 아무리 그 비전이 이상적이고 아름답게 포장되었다 할지라도 내 삶에서 구체화할 수 없다면 그건 허상에 불과하다. 서양의 근대는 프랑스혁명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인상파 그림에서 시작되었다는 말이 있다. 진정한 의미의 문화적 상호작용이 인상파 그림에서부터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누구나 동일하게 경험하는 세상을 화폭에 똑같이 재현하려던 이전 시대의 그림에 비해 인상파 화가들은 자신의 순간적 내면의 경험을 화폭에 담으려 했다는 것이다. 재현(reprersentation)에서 표현(expression)의 시대로 변한 것이다. 나의 느낌, 나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해보자. 인류 문명은 그렇게 해서 변화·발전해 온 것이기 때문이며, 삶이라는 문장의 주어는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그림 설명: 한라산을 오르다. 삶이란 이렇게 안개와 구름이 뒤덮인 산을 오르는 과정과 비슷하지 않을까. 언제 구름이 비가 되어 내릴지, 눈보라가 되어 몰아칠지 모르지만 묵묵히 산을 오르는 것이다. 언뜻 바람이 불어 안개와 구름이 걷히자 나타나는 아름다운 파란 하늘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한라산을 다녀와 남는 기억은 그 순간뿐이다. 이두수 작가 소개 최근 수년간 일용직 건설 노동자 생활을 하면서 노동 현장의 일상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해 왔다. 현재는 글로벌피스재단에서 한반도 통일과 동북아 평화운동에 관여하고 있다. 건설 현장에서 몸으로 익힌 절차탁마의 정신을 실생활에 적용하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해 진행하고 있다.

    [이두수의 절차탁마] 인생이란 문장의 주어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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