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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21 THR
브랜드칼럼
주재우 경희대 교수
주재우 경희대 교수 jwc@khu.ac.kr
  • 경희대 국제정치학 교수이며 국내 최초의 미중관계사 책
    『한국인을 위한 미중관계사』와 베스트셀러 『팩트로 읽는 미중의
    한반도전략』의 저자가 실타래와 같은 동북아 국제관계를
    팩트로 풀어주는 이야기.
  • [주재우의 프리즘] 트럼프의 백악관 재입성은 미중 전면전의 시작

    ⑫ 도날드 트럼프의 차기 미 대통령의 당선은 미국의 대중국 선전 포고를 지지하는 미 국민의 선택이었다. 중국 역시 내심 결과를 반기고 있다. 러시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트럼프의 집권으로 미국 사회가 앞으로 더 깊은 분열로 빠져들 것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미국의 양분화는 이들이 영향력 공작을 펼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먹잇감이다. 21세기 초부터 미국을 대상으로 영향력 공작을 적극 전개해 온 중국은 미국 사회가 진보와 보수 진영이 첨예하게 대립각을 세우는, 실질적인 성과를 톡톡히 봤다. 그리고 앞으로 이에 더욱 매진할 수 있는 여건과 조건이 만들어져 저비용, 고효율로 미국을 흔들 태세이다. . 트럼프 취임과 동시에 미국은 중국에 전면전을 선포할 기세다. 헤리티지재단이 지난 7월에 출간한 ‘2025 리더십에 대한 위임: 보수의 약속(2025 Mandate for Leadership: The Conservative Promise, 이하 ‘프로젝트 2025’)’에서 이를 알리고 있다. 동 보고서의 출시와 함께 민주당과 미국 언론은 일제히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정책 청사진이 아니냐는 질문으로 그를 공격했다. 대내적으로 과도할 정도로 강력한 중앙집권제를 권고하면서 대외적으로 중국과의 ‘디커플링’을 적극 추천하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당선되면 미국이 파시스트 또는 독재 정국으로 빠져들 수 있는 우려를 자아내기에 충분한 것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즉각 프로젝트 2025와의 연관성을 부인하고 나섰다. 유세 기간 내내 프로젝트 2025의 저의와 배후를 모른다고 말이다. 심지어 9월 10일 카멜라 해리스와의 첫 TV 토론회에서 전국민에게 이와의 무관함을 공개했다. 흥미로운 것은 유세 기간 동안 그가 구체적인 정책을 밝히지 않고 그만의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식으로 일관한 자세였다. 현안마다 그 정책을 밝히라고 해리스 민주당 대선 후보와 민주당 측, 그리고 언론의 날 선 공격을 받았지만 그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며 당선되면 밝힐 것이라고 즉각적인 답변을 거부했다. 그럼에도 그의 대선 캠프가 각종 현안에 대한 입장을 정리한 이른바 ‘아젠다 47’의 내용은 프로젝트 2025와 상당 부분 중첩되었다. 이도 그럴 것이, 40명의 저자와 편집자 중 18명이 트럼프 1기 내각 인사 출신이고, 1명은 인수위원회, 12명은 인수위원회와 행정부에 모두 발탁된 이들이고, 나머지 267명의 참여자들 중 144명이 1기 선거 캠프, 행정부, 또는 인사위원회에 참여한 이들이기 때문이다. 그의 ‘아젠다 47’이 프로젝트 2025와 일맥상통한 것은 그가 이미 2년 전 헤리티지재단에 대선 준비를 잘해달라는 어조의 기조연설에서도 드러났다. 2022년 4월에 그는 헤리티지재단의 위대함을 치하하고 미국 시민이 미국의 구제 과업을 위탁하면 헤리티지가 (정책) 기초부터 실천 방안까지 잘 마련해줄 것으로 자부했다. 그리고 해리스와의 TV토론 이후 정확히 한 달 만인 10월 10일 그는 라디오 인터뷰에서 당선되면 프로젝트 2025 참가자 중 한 명인 톰 호만(Tom Homan) 전 이민세관단속국장 대행이자 그의 선거 캠페인 고문이 등용될 것을 시사하면서 프로젝트 참가자들의 등용을 암시했다. 프로젝트 2025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정책 청사진이다.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정책 보고서다. 이에 근거하여 트럼프는 취임 이후 국정과 외교를 운영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을 것으로 점지할 수 있다. 이렇게 될 경우, 이는 미국의 대중국 선전 포고인 셈이다. 동 보고서는 취지와 목적은 한 가지다. 중국과의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국내 정책의 혁신과 정부 체계의 개혁을 수반해야 한다. 이에 기초하여 대외적으로 전략적으로 중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태세를 갖춰야 하는 것이다. 그가 ‘경제 안보는 국가안보’라고 예전에 선포한 것에서 볼 수 있듯, 트럼프의 머릿속에는 온통 중국을 이기는 것뿐이다. 프로젝트 2025는 미국이 중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미국의 자강은 물론 대외적으로 동맹과 파트너와의 연대와 협력을 강조하고 있다. 보고서는 군사안보 분야에서뿐 아니라 경제통상 분야에서도 이를 역설하고 있다. 우선 국방과 군사 분야에서 미국의 대중국 전쟁의 핵심은 대만 수호다. 대만을 수호하면서 미국의 전략이익을 지켜내고 이를 위한 제1도련선의 방어가 전제된다고 강조한다. 제1도련선 방어를 위한 강한 동맹 체계의 구축에 나토 및 유럽의 이익 당사국도 이에 끌어드리는 전략을 제안하고 있다. 여기에는 군사적으로 역내 미사일 방어시스템을 증강하고 핵 억지력도 강화하는 방안이 제안되었다. 또한 동맹에게 더 많은 비용 부담(cost-sharing)뿐 아니라 더 큰 분담 부담(burden-sharing)을 역설하고 있다. 중국뿐 아니라 러시아, 이란, 북한 문제에 있어 이들의 더 큰 역할과 기여를 기대하는 대목이다. 북한과 관련해서 보고서는 우리가 독자적으로 북한의 재래식 위협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스스로 갖출 것을 기대하고 있다. 핵위협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으나 핵억지력 강화를 위한 미사일 방어시스템의 확충을 대안으로 제기하고 있어 더 많은 사드 배치를 염두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프로젝트 2025는 경제통상 분야에서 중국과의 관계도 상당한 적대적 관점에서 보고 있다. 코로나를 겪으면서 중국에 대한 의료 물자와 백신 원료에 대한 높은 의존도 때문에 이의 수급에 차질을 빚으며 미국의 코로나사태가 장기화되고 많은 희생이 뒤따랐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미국의 제조업 기반이 열악한 점은 미 국방에 상당한 취약성을 노출시켰다는 것이다. 제조업에 대한 높은 해외 의존도는 ‘민주주의의 화포(the artillery of democracy)’를 무력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즉, 전쟁을 치룰 수 있는 군수물자와 무기를 제대로 공급하지 못할 수준의 위기에 닥친 것으로 보고서는 판단하고 있다. 이런 논리가 경제통상 분야 저변에 확대되면서 전쟁의 프레임이 씌워진 것이다. 그리고 보고서는 트럼프가 2020년에 재선되었다면 추진하려던 중국과의 ‘디커플링’을 다시 추진할 것을 제안했다. 실제로 트럼프가 당시 그런 구상을 가졌다면 실천 가능성의 신빙성도 상당히 높다고 볼 수 있다. 해외 의존도 축소와 관련해 보고서는 또한 미국의 국내 자원 개발을 적극 추진할 것을 추천했다. 더 이상 이 문제가 정쟁에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내무성을 비롯하여 관련 부처들이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는데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글로벌 공급망 재편의 가속화도 수반되어야 한다고 부연한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중국에 진출한 미국 기업의 귀환도 촉구해야겠지만 무엇보다도 동맹과 우방의 협력을 강조하고 있다. 이들을 미국 내에 유입할 수 있는 유인책도 권고하지만 애플사와 같은 중국 내 미국 기업에게도 제재를 가하는 것도 정책 방안으로 제안하고 있다. 미국의 지적재산권 보호와 중국의 미국 기술의 편취와 탈취를 막기 위한 중국 유학생과 전문기술인력의 비자 거부, 그리고 틱톡과 같은 중국앱을 전면 차단하는 것도 권고되었다. 보고서 출판과 아젠다47의 발표 시기를 보면 이에 중국도 이미 내심 대비책을 세우고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중국은 미국에 대한 영향력 공작을 한 층 더 강화할 것이다. 중국의 전략이 가능한 이유를 찾으려면 우리는 트럼프의 1기 시기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민과 밀입국에 대한 대응으로 공권력이 강화된다. 공권력의 강화는 인종차별로 이어졌다. 그리고 무고한 유색인종의 희생이 속출했다. 이에 미 사회는 들끓었다. 그 결과는 ‘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Black Man Lives Matter)’라는 시위로 이어졌다. 시위의 틈바구니 속에 중국의 흑색선전은 물론 시위에 대한 재정적 지원도 이뤄졌다. 이어지는 성소수자의 시위에서도 중국은 역시 영향력 공작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중국으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는 미국 시민단체가 개입하기 시작했고, 이들이 시위의 장기화되는데 일조한 것이다. 중국의 비대칭 전략에 기반한 영향력 공작은 한 층 더 증강될 것이다. 그리고 대만해협에 대한 군사적 도발과 시위도 더욱 강해질 것이다. 트럼프는 공화당 출신답게 대만 수호에 목숨을 건 사람이다. 이렇게 미중 간의 전쟁이 예고된 상황에서 우리의 전략적 선택은 두 가지다. 트럼프와 같이 강한 사람에게 감언이설로 그의 비위를 맞춰주거나 더 강력하게 대응하는 것이다. 트럼프의 일방적인 주문을 모두 수용하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우리가 그만큼 늘어나는 비용을 감래할 수 있다면 말이다. 그렇기 않을 경우 ‘강대강’으로 나가야 한다. 미국이 중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한미동맹은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와의 분업과 공조만으로 미국은 단기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도 강한 레버리지가 있다. 대만해협 수호와 방어에서 한미동맹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존재다. 이런 ‘강대강’ 카드를 활용하기 앞서 우리에게도 책무가 있다. 대만해협 문제와 미국의 대중국 전쟁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하루빨리 정리하는 것이다. 미국은 한미동맹의 기능과 역할, 성격과 목적을 조정하려고 달려들 것이다. 이에 대한 결정만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레버리지를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이다. 주재우 필자 주요 이력 ▷베이징대 국제정치학 박사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중국연구센터장 ▷브루킹스연구소 방문연구원 ▷미국 조지아공과대학 Sam Nunn School of International Affairs Visiting Associate Professor

    [주재우의 프리즘]  트럼프의 백악관 재입성은 미중 전면전의 시작
  • [주재우의 프리즘] 한미동맹 조정의 시간이 다가온다

    '한미동맹과 주한미군 역할 변화의 시간 다가온다'에서 이런 미국의 입장 변화를 시사한 바 있다. 차기 미 행정부는 중국과 북한 문제에 한·미동맹의 역할과 기능, 성격과 목적을 접목하려는 시도가 있을 것이라고 부정하기 어렵다.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지금까지 예외로 남은 동맹은 이제 한·미동맹뿐이기 때문이다. 호주와 뉴질랜드 동맹(ANZUS)과 오커스(AUKUS)의 출범은 중국을 겨냥한 것이 명확해졌다. 이제 한·미동맹의 조정의 시간이 다가올 것이다. 주재우 필자 주요 이력 ▷베이징대 국제정치학 박사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중국연구센터장 ▷브루킹스연구소 방문연구원 ▷미국 조지아공과대학 Sam Nunn School of International Affairs Visiting Associate Professor

    [주재우의 프리즘] 한미동맹 조정의 시간이 다가온다
  • [주재우의 프리즘] 한미동맹과 주한미군 역할 변화의 시간 다가온다

    지난 7월 22일 조 바이든 대통령이 재선을 포기했다. 그의 임기 동안 외교 성과를 평가하기에는 다소 이른 감이 있다. 그러나 한 가지 긍정적인 성과로 평가할 수 있는 부분은 그의 행정부 출범과 함께 적극 추진한 인도·태평양 전략(‘인태전략’)과 쿼드(QUAD), 오커스(AUKUS) 등 일련의 전략을 실현하기 위한 기초를 확립한 점이다. 즉, 역내에 장기간 존재한 양자 중심의 동맹체제를 동맹과 동맹 간 군사 협력 관계로 전환하는 소다자주의 군사 협력체를 수립했다는 점이다. 이는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고 억제하는 데 부족한 능력을 절충하기 위한 인도·태평양 전략 시대의 동맹과의 군사적 ‘통합(integration)’과 ‘확장(extended)’ 목표의 전제조건을 충족시킨 것이다. 중국에 대한 억지력 강화 분위기가 초당적인 상황에서 11월 미 대선 이후 차기 정부도 소다자 중심의 인태전략을 계승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후 한·미 동맹과 주한미군의 역할과 기능 조정에 대한 주문 역시 뒤따를 것이라는 전망이 팽배하다. 미국은 지난 10여 년 동안 양자 중심의 동맹체제를 개편하는 데 집중했다. 그 중심에는 일본이 있고, 일본을 중심으로 역내 동맹국 간의 군사 협력 관계를 확대해 왔다. 이의 발단은 2010년 동중국해의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의 영유권 분쟁의 심화였다. 중국의 군사적 도발과 위협이 강화되면서 미국의 공식 입장 발표를 유발했다. 2014년 4월 미·일 정상회담에서 센카쿠열도가 양국 안보 조약의 대상임을 처음 밝혔다. 이를 토대로 2015년 4월 미·일 방위 가이드라인 2차 개정이 진행되었고, 그 결과 일본자위대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명문화되었다. 2021년 4월 미·일 정상회담 공동문서에는 1969년 이후 52년 만에 처음으로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의 중요성’이라는 내용을 담아냈다. 2022년 5월 미·일 정상은 북한·중국 등 주변국의 미사일 기지를 직접 타격하는 ‘적기지 공격 능력’ 보유도 선언했다. 지난 4월 워싱턴에서 열린 미·일 정상회담에서 양국은 지휘·통제구조의 현대화와 양국 군의 상호운용성 및 계획 개선을 발표했다. 지휘·통제 체계 개편은 평시와 유사시 양국 군 사이 상호운용성·계획을 목표로 한다. 이는 주일미군사령부와 일본이 신설하는 육·해·공 자위대 통합작전사령부 간 작전 역량의 연계 강화를 의미하기 때문에 미·일의 ‘군사적 통합’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구체적 조치로 양국 정상은 미사일 등 첨단 무기의 공동 개발·생산을 추진할 방위산업 협력·획득·지원 포럼(DICAS)의 창설에도 합의했다. 미·일의 군사적 통합과 확장의 기초가 마련된 것이다. 이와 동시에 미국은 동맹 간의 협력을 더욱 강화하는 데 중재 역할을 적극 나섰다. 2007년 3월 ‘안전보장협력에 관한 일·호 공동선언(일·호 안보공동선언)’ 발표 이후 양국의 군사관계는 정체되었다. 2022년 10월에 중국의 군사적 부상 대응을 위한 양국의 새로운 안보 협정이 체결되면서 부활했다. 이에 힘입어 일본의 오커스(AUKUS) 가입에 관한 협상이 올해 4월부터 시작되었다. 현재로서 일본은 첨단 군사기술 분야에서 협력국으로 참여하는 자격을 획득했다. 미국과 일본은 필리핀과도 지난 4월에 첫 3국 정상회담을 했다. 이미 진행된 3국의 연합군사훈련의 당위성과 목적을 정상 차원에서 재확인한 것이다. 이 밖에 일본은 2023년에 영국과 호주와 원활화협정(RAA·상호접근협정)을 각각 체결했다. RAA는 훈련 시 군의 상호 입국 절차 간소화와 시설 사용 및 무기와 탄약 휴대를 허용하는 협정이다. 미국이 이처럼 인태 지역 국가들 간에 군사협력관계를 공고히 하려는 이유와 목적은 당연히 중국의 군사적 부상을 견제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이런 현상적 이유로 그 당위성과 정당성을 설득할 수 없다. 중국과의 이해관계가 미국만큼 중요한 역내 국가들에 중국과 군사적으로 척지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신의 한 수’는 과거 이들이 미국과 체결한 동맹 조약에서 명기한 의무 조항에 있었다. ‘태평양 지역’의 위협과 유사시에 공동 대응하는 조항이었다. 과거에는 군사적 역량을 포함한 역내 국가들의 종합 국력, 중국의 군사적 위협이 부족한 상황에서 이런 조항의 즉각적인 실천이 합리적이지 않았다. 중국이 비록 1960년대에 핵보유국이 되었고 공산혁명 수출에 주력했음에도 재래식 군사력과 국력이 취약했기 때문에 미국의 전략이익에 직접적인 위협 요소가 아니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중국의 군사력은 역내 평화와 안정, 미국의 전략적 이익을 가히 위협할 수준에 달한다. 특히 미국의 역내 ‘항행의 자유’ 전략이익에 말이다. 이의 수호 문제는 중국을 효과적으로 억제하는 문제로 귀결된다. 그런데 작금의 상황이 미국에 불리해진 것만은 사실이다. 군사 분야에서 미국의 수적 열세는 가시화되었고, ‘항행의 자유’를 미국이 독자적으로, 독립적으로 수호할 수 있는 여력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오랫동안 묵혀 두었던 동맹조약의 ‘태평양’ 조항을 꺼내들 수밖에 없었다. 태평양 지역에서의 위협에 대한 공동 대응 조항을 수면 위로 끌어낸 것이다. 가령, 1951년의 미국·필리핀 상호방위조약은 태평양 지역에서 외부의 공격으로 어느 한쪽의 영토 보전, 정치적 독립 또는 안전이 위협을 받을 시 협의를 거쳐(제3조) 헌법적 절차에 따라 공동 위협에 대응하는 것을(제4조) 명시한다. 이런 상황을 당사자의 본토 영토뿐 아니라 태평양 내 관할 섬 지역 또는 태평양 내의 군대, 공공 선박 또는 항공기에 대한 무력 공격으로 상정했다(제5조). 같은 해 체결된 미국·호주·뉴질랜드 방위조약(ANZUS) 역시 태평양 지역에 대한 위협에 공동 대응하는 조항을 포함한다. 동 조약의 제3조는 당사자들이 상기한 바와 같은 위험에 처하면 역시 협의 후 공동 대응하기로 약속했다(제4조). 동 조약의 제5조 역시 그 상황을 당사자의 본토 영토를 포함한 태평양 내의 관할 섬 지역과 태평양 내의 군대, 공공 선박 또는 항공기로 적시했다. 미·일 상호방위조약(1951)은 비록 태평양 지역이 아닌 '극동 지역'을 양국 방위의 지리적 개념으로 설정했다. 당시의 극동 지역의 지리적 개념은 서구의 입장에서 광활하다면 광활하다. 일본의 특수한 지리적 형태와 위치 때문이다. 열도를 중심으로 북서 태평양 지역은 물론 동중국해와 제1도련선과 제2도련선 사이를 포함할 수 있는 유권적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대만과 미국의 방위조약은 미·중 수교로 폐기되었다. 그럼에도 미국이 대만의 방어 의지를 갖는 데는 과거 동 조약에 방위 개념과 인식이 기초하기 때문이다. 1954년 미국과 대만이 체결한 방위 조약은 서태평양 지역을 관할 범위로 설정했다(제5조). 미국의 입장에서 이 지역의 방위 대상은 서태평양에 위치한 미국 관할의 섬 지역을 의미(제6조). 이는 괌과 사이판 등을 암시한 제2도련선에 대한 공동 방위의 의무를 암시하는 대목이다. 우리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1953년에 체결된 한·미 동맹조약도 태평양 지역에 대한 공동의 위협에 대한 대응 조항(제3조)을 포함한다. 이런 맥락에서 대만 유사시에 우리의 입장을 밝힐 것을 미국은 주문한다. 역내 미국 동맹이 대부분 입장을 밝힌 상황에서 이제 미국의 남은 과제는 한·미 동맹을 어떻게 이런 상황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운영할 것인지다. 한·미 동맹의 주된 목적에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의미다. 지금껏 한·미 동맹은 북한을 억제하는 것이 초점이었다. 여기서 탈피하고자 하는 것이 미국이 가진 의도다. 우리의 안보 우려를 확장핵억지력을 실질적으로 절충하기 위해 취한 조치가 핵협의그룹(NCG)의 설립이다. 이의 이면에는 주한미군과 한·미 동맹의 역할과 기능 변화를 꾀하고자 하는 서막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의 어떠한 행정부가 들어서도 우리가 앞으로 대만을 포함한 태평양 지역에서 한·미 동맹과 주한미군에 대한 역할 변화에 대한 입장을 밝혀야 하는 시간은 올 것이다. 큰 맥락에서 정부의 ‘글로벌 중추국’ 외교의 사명이 시험대에 오를 것에 대비해야 할 것이다. 주재우 필자 주요 이력 ▷베이징대 국제정치학 박사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중국연구센터장 ▷브루킹스연구소 방문연구원 ▷미국 조지아공과대학 Sam Nunn School of International Affairs Visiting Associate Professor

    [주재우의 프리즘] 한미동맹과 주한미군 역할 변화의 시간 다가온다
  • [주재우의 프리즘] 심리전 펼치는 북중러…사이버 안보 대비 급하다

    북한과 러시아가 정상회담을 지난 6월 19일에 하면서 북·러 동맹 관계가 복원된 데 대해 우리의 관심은 모두 한 가지 의미에만 함몰되었다. 북한이 러시아와 동맹 관계를 회복하면서 북한이 러시아의 도움을 받아 핵을 포함해 무기체계의 성능과 사양을 향상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모든 관심이 집중되었다. 향후 북·러의 군사적 협력이 북한 무기의 하드웨어(hardware) 개선에 상당히 기여할 것으로 예상하는 분석이 대부분이었다. 21세기를 사는 우리가 간과하는 부분이 하나 있었다. 사이버 공간에서의 이들의 협력 가능성이다. 북한, 중국, 러시아 등은 오랫동안 심리전과 인지전을 펼쳐온 나라들이다. 이의 선두 주자가 중국과 러시아인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북한이 핵 개발로 경제난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가상 세계를 통한 우리에 대한 심리전과 인지전은 그야말로 가성비 최고의 군사 전략 중 하나다. 물리적인 침공 이전에 선제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심리전과 인지전이다. 인류는 전쟁을 일으키기 전에 침공 상대국의 사기와 전투력 의지를 잠식시키기 위한 군사 전술로 이를 오랫동안 이용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국민과 국제사회에 심리전과 인지전으로 먼저 침략한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중국 역시 예외가 아니다. 중국은 이런 전술과 관련하여 1999년에 출판된 <초한전(超限戰)>을 국가 군사 전략의 방편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초한전의 핵심 전술 중 하나가 심리전과 인지전이다. 언론매체와 사이버 공간 및 인터넷을 이용하여 상대국 국민의 사기 저하와 공포심을 유발하는 동시에 가짜뉴스와 허위 정보에 이들이 동조하게 만드는 게 핵심 목적이다. 정보의 ‘홍수 시대’에 살면서 이의 진위를 파악하기가 어려운 실정인 것이 사실이다. 초한전이 이런 상황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것이다. 이른바 ‘영향력 공작’을 통해 대상국 사회 전반 곳곳에 잘못된 정보를 침투시켜 국민들이 오판·오인하게 만들어 사회 전체를 혼란과 동요 속에 빠뜨리려는 것이 초한전의 핵심 전략이다. 그러면서 배가된 이들의 심리적 동요와 공포심을 중국에 동조하게끔 만드는 것이 목표다. 즉, 중국을 두려워하게 만들고 중국에 순응하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를 길들이는 전술이라 할 수 있다. 북한을 포함한 전제주의 국가의 영향력 공작은 평시에 이뤄진다. 그리고 다양한 수단과 방법을 통해 우리를 세뇌하려 한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인터넷을 이용한 가짜뉴스와 허위 정보의 유포다. 특히 중국은 이런 면에서 우리 사회에 깊숙이 침투하고 있다. 자신의 언론매체를 이용하여 우리에게 한국어 번역본을 살포하거나, 인터넷을 통한 신속한 유통 과정을 이용하는 것이다. 중국의 언론 기사가 우리에게 전달되는 데 얼마 걸리지 않는 이점을 이용하는 것이다. 중국은 또한 우리의 언론체계의 허점을 적극 이용한다. 우리나라에서 인터넷 매체의 설립이 용이한 점을 이용하는 것이다. 2명 이상의 명의로 신고만 하면 인터넷 매체로 활동할 수 있는 ‘신고제’의 허점을 이용한다. 우선 중국은 관영매체를 이용해 영향력 공작을 적극 전개 중이다. 중국의 관영매체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높은 신망 정서 때문이다. 중국공산당의 관영지에 게재된 사설이 중국공산당과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만큼 이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대부분의 언론매체가 인용하는 경우도 드물다. 미·중 전략경쟁 시대에 중국 관영지는 거의 매일 미국을 비판하는 사설과 전문가 기고문을 게재한다. 그렇다고 미국의 언론이 이를 덥석 받아먹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이를 숭배하듯 즉각 인용하고 보도한다. 이런 우리 언론의 관성을 중국은 우리에 대한 영향력 공작의 일환으로 이용한다. 특히 중국공산당의 대표적인 관영지 인민일보의 자매지인 환구시보의 논평에 대해 우리는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리고 이에 동조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도 그럴 것이 우리 사회가 그만큼 양분화되었기 때문이다. 친중, 반중, 친미, 반미로 나뉜 우리 사회의 정치 구조를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우리 정치·사회적 구조를 간파한 중국은 환구시보라는 매체를 통해 우리 정부를 비판하는 데 적극적이다. 가령, 한·미 동맹 강화를 외교정책의 기조로 하는 윤석열 정부에 대한 비판과 지적을 일삼고 있다. 그 정도가 심해 우리나라와 국민의 자존심을 해하는 수준임에도 이에 동조하는 세력이 있어 중국은 효과를 보고 있다. 중국은 우리나라의 ‘미국 중시’ 기조가 가시화되는 것에 미국을 ‘배신’ 등 부정적 이미지를 덧씌우면서 미국과 거리를 둘 것을 종용한다. 반도체 동맹 구상이나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등 대중 압박 회피를 위해 미국의 ‘오만과 무시’를 경계할 것을 우리에게 촉구하는 사설도 게재한 바 있다. 2023년 4월 우리 대통령의 대만 관련 발언과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맹목적 미·일 추종’ ‘국격을 잃고 조롱받을 것’ ‘굴욕 외교’ 등으로 우리 대통령과 우리나라를 비난했다(4.23. 사설). 그러면서 우리 ‘외교의 국격이 산산조각 났다’고 조롱했다. 더 나아가 한·미·일 정상회의에 대해 환구시보 사설(2023.8.7.)은 우리가 ‘신냉전 최전선의 보초병’으로 전락했다면서 ‘동북아 지역안보의 함정’에 빠졌다고 지적했다. 8월 19일 사설은 한국과 일본이 ‘미국의 보초병이 된 대가는 엄청날 것’이라고 경고도 했다. 또한 사드 ‘3불’을 부정하는 우리 정부가 대중정책 기조를 ‘상호존중’으로 채택한 데 대해 환구시보 사설(2022.3.11.)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 직후 사드 ‘3불’이 상호존중을 실천한 결과라고 빗대었다. 그러면서 우리가 미·중 경쟁에서 도박할 공간이 없다고 얼음장을 놨다. 미국 주도의 반도체 동맹(칩4) 구상 참여에 대한 우리 정부의 의사 결정에 미국 협박에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훈계조의 사설(2022.7.21.)을 게재했다. 2023년 6월 13일 환구시보 사설은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회담과 관련해 싱하이밍의 무례함을 옹호했다. 중국에 베팅이 필요하다는 그의 말을 전하면서 사설은 우리나라를 ‘미성숙한 소국’ ‘유치원생’으로 비하했다. ‘서울이 중국에 대한 태도를 바로 세워야 과민반응하지 않고 소국의 마음가짐도 버릴 수 있다’며 ‘싱 대사의 말은 충언이자 진언이었으며, 한국 외교는 자존심이 강하면서도 의심이 많아 매우 미성숙하다’고 우리를 노골적으로 비판했다. 이들 사설의 핵심 공략 포인트는 몇 가지로 축약할 수 있다. 하나는 우리의 주권적 의사 결정을 무시하는 동시에 그 결과에 대해 위압적이고 고압적인 언행으로 비판하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변화하는 국제정세에 우리의 국익 변화에 따른 우리의 전략적 선택의 변화의 당위성과 필요성을 부정하는 점이다. 이는 중국이 자신의 공세적이고 위협적인 언행이 국제정세의 변화를 추동한 주된 원인임에도 어떠한 의식도 하지 않는 방증이다. 즉, 우리의 전략적 선택의 조정이 불가피한 점을 이해하려고 들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를 소국으로 보는 중국의 인식이 역력하게 드러난 점이다. 더 나아가 중국은 통일전선전략의 일환으로 우리 언론사회에 침투하면서 여론몰이하는 전략도 구사 중이다. 이의 가장 선도적인 주체가 중국의 홍보회사 하이마이(海賣科技社)와 하이쉰(海訊社) 등이다. 이들은 특정 목적을 지닌 콘텐츠를 마치 한국 언론사의 정상 기사인 양 의도적으로 작성·배포하며, 한국의 여론을 조성하는 데 활용되고 있다는 분석이 있다. 이들이 보도자료를 배포하는 경위로는 타임즈 뉴스와이어라는 뉴스와이어 플랫폼을 활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하이마이 같은 경우, 자체 제작한 한국 언론사 위장 웹사이트 18개를 활용 중으로 알려져 있다. 하이마이의 공식 홈페이지에서도 네이버와 서울프레스, 충청타임스, 부천테크 등 실제 존재하지 않는 한국 지역 언론사에 보도자료가 배포 가능하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이쉰은 불법 개설한 18개 위장 웹사이트에 한국 언론기사가 무단으로 게재되어 있다. 이들이 게시한 글 중 친중, 반미, 반일 성향의 기사는 약 42건으로 총 18개 사이트에 동시 배포되었다. 이들은 또한 이 같은 기사를 신속하게 유포하는 데 SNS도 적극 활용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간첩을 이용한 북한의 영향력 공작 또한 사이버 공간에서 활발하게 이뤄지는 것으로 드러났다. 2023년 <노동단체 침투 지하조직> 사건으로 우리 수사당국이 이들의 PC를 압수 수색하면서 만천하에 공개되었다. 북한 지령문 중에서 유튜브 방송, 페이스북 계정 등 새로운 홍보수단을 제시하면서 노총을 반미투쟁, 보수 세력 공격의 선봉으로 만들고, 개별 조직원의 SNS를 이용해 협박하고 투쟁하라고 지시한 증거가 확보되었다. 또한 노총 홈페이지 게시판, 유튜브 동영상 댓글란도 지령 수수의 도구로 활용할 것을 명령한 것도 드러났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에서 ‘국민이 죽어간다’ ‘이게 나라냐’ ‘퇴진이 추모이다’ 등 항의 투쟁을 집중과 분산의 원칙으로 전개할 것을 지시한 사실도 밝혀졌다. 현재 우리는 정보통신의 시대에 살고 있다. 시대가 변한 만큼 국가 안보의 개념 역시 변하고 있다. 오늘날 안보 개념은 과거와 같이 지리적 차원에서의 영토, 영해, 영공을 침범, 침공, 침략하는 데 대비하는 일차원적이지 않다.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우리의 생활공간은 영토라는 물리적 개념을 초월한 지 오래다. 우리의 일상생활 중 반 이상을 이제 가상공간이라는 또 다른 공간에서 살고 있다. 이런 공간에서 국민의 안전과 안보를 보호하는 것이 국가 안보 개념에 새로이 자리매김 중이다. 인터넷 시대에 일찍이 접어들었지만 우리는 가상공간에서의 안보에 대한 높은 관심도에 비해 대비책 마련에는 소홀했다. 외국은 각자 가상공간에서의 안보를 지켜내기 위한 사이버안보 관련 법안들을 제정한 지 이미 오래다. 중국만 해도 사이버 안보 법안과 관련된 법안을 2015년부터 제정했다. 2015년 7월 1일부터 시행된 <국가안보법>을 시작으로 <네트워크안전법(2017)> <국가정보법(2017)> <비밀법(2020)> <데이터안전법(2021)> <개인정보보호법(2021)> <반간첩법(2023)> <국가기밀보호법(2024)> 등이 대표적이다. 새로운 활동 공간의 창설은 국가 안보에 또 다른 취약점을 의미한다. 정보 탈취와 간첩 행위의 경로, 방식, 방법이 시계 공간의 제약 없이 더 자유롭게 행해질 수 있게 되었다. 즉, 24시간 이러한 행위가 가능해졌다. 인터넷에 접속만 하면 가상공간에서 간첩들은 지령을 수시로 받을 수 있고, 정보를 편리하게 전달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 사회를 가짜뉴스와 허위 정보로 쉽게 동요시킬 수 있다. 과거와 같은 대인 접선 방식이 불필요해진 면이 많아졌다. 잠재적 적국은 사이버 세계에서 간첩 행위 관련 행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되었다. 역으로, 정보통제와 제약이 허술한 사이버 공간에서 우리 국민은 가짜뉴스, 허위 정보의 위협에 쉽게 노출된다. 따라서 평시에 이뤄지는 우리에 대한 전체주의 국가의 영향력 공작 대비책 마련이 시급하다. 우선 국가정보원의 방첩 기능 강화와 대공수사권의 회복이 전제된다. 그리고 관련 법안의 조속한 마련이 필요하다. 주재우 필자 주요 이력 ▷베이징대 국제정치학 박사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중국연구센터장 ▷브루킹스연구소 방문연구원 ▷미국 조지아공과대학 Sam Nunn School of International Affairs Visiting Associate Professor

    [주재우의 프리즘] 심리전 펼치는 북중러…사이버 안보 대비 급하다
  • [주재우의 프리즘] 북.중 수교 75주년 … 김정은·시진핑·푸틴 올해 평양에서 만날까

    북한 비핵화 문제를 두고 중국의 입장 변화가 점점 선명해지는 듯하다. 최근 서울에서 개최된 한·일·중 3국 회의의 공동선언에서도 한반도 비핵화와 관련하여 3국이 ‘서로의 입장을 각각 재강조하였다’며 종전보다 수위가 낮은 발언으로 결정되었다.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지지’ 등과 같은 표현은 사라졌다. 이는 작년 3월부터 중국의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입장이 바뀐 결과에서 비롯된 것이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올해 중국이 북한과 고위급 회담을 연쇄적으로 가졌으나 최소한 공개된 자료만 보더라도 북한 비핵화에 관한 언급은 중국 측에서도 없었다. 중국이 이렇게 북한 비핵화 문제에 관심과 입장이 바뀐 배경에는 복잡한 전략적 셈법이 있다. 여기에는 다양한 요인이 작동한다. 우선 조 바이든 행정부와 윤석열 정부 출범으로 한·미 연합훈련의 재개가 하나의 요인이다. 둘째, 우크라이나 전쟁을 치르는 러시아에 대한 북한의 지속적인 군사적 지원이다. 미국이 이 문제를 작년 1월부터 중국 측에 우려를 표명했다. 그리고 제이크 설리번 미 국가안보보좌관,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등이 왕이 외교부장과 가진 복수의 회담 자리에서 이 문제를 강조했다. 미국은 중국이 북한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특별한 위치(special position)’으로 북한 핵문제와 러시아 지원 문제에 외교적 영향력을 발휘할 것을 촉구하는 뉘앙스의 입장을 전언했다. 셋째, 중국과 러시아의 북한 비핵화 방정식에서 북한 핵개발과 대규모 한·미 군사훈련을 중단하자는 ‘쌍중단’을 삭제한 요인이다. 이는 양국이 작년 3월 모스크바 정상회담의 공동성명에서 드러났다. 종전의 ‘쌍중단’과 북한의 비핵화 프로세스와 한반도 평화협상 프로세스를 병행 추진하자는 ‘쌍궤병행’에서 전자가 사라졌다. 그리고 올해 5월 베이징에서 개최된 중·러 정상회담의 결과물인 공동성명에서는 후자마저 종적을 감추었다. 중·러 양국은 2017년부터 ‘쌍중단’과 ‘쌍궤병행’을 북한 비핵화의 공식 원칙으로 견지해 왔었다. 북한의 도발 중단에 대한 요구가 포함된 ‘쌍중단’이 폐기된 까닭에는 앞서 언급했듯이 한·미 양국의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양국의 연합군사훈련의 재개가 자명한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북한의 도발 행위를 차치하더라도 한·미 연합군사훈련의 재개로 이 원칙은 무용지물이라는 판단을 선제적으로 양국이 한 결과다. 이때부터 중·러 양국은 ‘북한의 정당한 안보 우려’를 이해할 것을 미국과 한국 등 관련국에 촉구하고 나선 것이다. 이들은 ‘쌍궤병행’을 진행하는 것마저 비현실적으로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가장 결정적 요인은 관련국 간의 대화 중단이다. 중·러 양국은 각자의 이유로 대화 중재에 나설 의향도 없어 보인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함몰되었다. 중국은 미국관계에 매몰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은 북한 문제에서 최대한 미국을 자극하지 않는 입장에서 거리를 두는 양상을 보였다. 북한과의 고위급 회담에서도 미국의 요구에 부응하는 발언 기록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북핵문제의 관련국 간의 대화가 중단된 상황에서 비핵화 프로세스나 평화구축 프로세스의 실현 가능성은 정치적으로 비현실적인 문제로 중·러 양국은 판단한 것이다. 그러면서 ‘쌍궤병행’이 이번 중·러 양국 정상회담의 공동성명에서 누락된 것이다. 양국은 한반도 비핵화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대신 강조하고 나섰다. 이는 이전의 ‘당사국 원칙’을 재소환한 것이다. 공동성명은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군사 분야에서의 억지 행위, 북한과의 대립을 조장하고 무력 충돌을 유발하여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키는 행위를 반대한다. (중·러) 양측은 미국이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고 유리한 조건을 조성하며 위협, 제재, 압박 수단을 버리고 북한 및 관련 국가들이 상호 존중과 상호 안보 우려를 고려하는 원칙에 따라 협상 과정을 재개할 것을 촉구”했다. 미국에 북한의 핵무기 개발의 책임이 있으니 미국이 해결에 적극 나서라는 의미다. 이를 공동성명에 포함함으로써 중·러 양국은 북핵 문제에서 한 발 떨어지는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 이런 중·러 양국의 입장 변화는 대북 제재 문제로도 이어졌다. 지난 3월 28일 대북 제재 감시를 위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위원회 산하 전문가 패널의 임기 연장이 러시아의 거부권으로 부결되면서 활동이 중단되었다. 이를 주도한 것이 러시아였다. 중국은 기권표를 던졌다. 미국을 의식한 태도였다. 작년부터 북한에 대한 ‘특수한 위치’ 압박을 받은 중국은 기권표를 던짐으로써 최소한 입장 표명을 공식화하는 것을 거부한 셈이다. 그러나 제재 문제에 대한 중·러 양국의 입장 일치도 한몫한 결과였다. 지난 5월 중·러 정상회담의 공동성명에서 양국은 제재문제에 있어서도 인식을 같이하는 문구를 포함시켰다. 우선 러시아에 대한 미국 및 서구의 제재 문제와 관련해 중·러 양국은 다음과 같은 인식을 공동성명에 담아냈다. “양국은 각국이 자국의 상황과 국민의 의지에 따라 자주적으로 발전 모델과 정치, 경제, 사회 제도를 선택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며, 주권 국가의 내정 간섭을 반대하고, 국제법 근거 없이 안보리의 승인을 받지 않은 일방적인 제재와 ‘장거리 관할권’을 반대하며, 이념적 경계선을 긋는 것을 반대한다.” 양측은 이런 행위를 ‘신식민주의와 패권주의’의 일환으로 비판했다. 북한 제재 문제에 있어서도 양국은 “정치 외교적 수단이 한반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임을 재확인하며, 국제사회가 중·러의 건설적인 공동 제안을 지지할 것을 촉구했다.” 이들은 특히 미국, 한국, 일본 등이 독자적으로 북한에 취한 제재 조치를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서 한 가지 반문할 여지가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되었든, 북한 핵문제가 되었든 중국이 독자 제재의 유효성을 부정하고 나선 점에 대해서 말이다. 주지하듯, 중국은 2013년부터 북한에 독자적인 제재 조치를 취했고 이를 지금까지 유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의 독자적 제재 또한 국제법에 의거한 것이 아니다. 자신의 국가이익, 전략적 관점에서 취한 결과다. 그럼에도 중국이 독자 제재의 유효성을 부정하는 것은 미국의 중국과 북한에 대한 독자 제재의 정당성을 질책하려는 함의가 내포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그러나 흥미로운 사실은 최근 중국과 북한이 가진 연쇄적인 고위급 회담에서는 이런 발언의 행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3월 22일에 북한 노동당 국제부장 김성남의 방중은 세간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2019년 김정은 위원장 방중 이후 중국을 방문한 북한의 첫 고위급 인사였음에도 말이다. 중국의 환대 역시 예상 밖의 수준이었음에도 말이다. 김성남이 예방한 중국 인사들만 해도 화려했다. 중국 전국정치협상회의 주석 왕후닝(王滬寧, 공산당 서열 4위), 중국공산당 중앙서기처 서기 차이치(蔡奇, 서열 5위), 국무위원 겸 외교부 부장 왕이(王毅), 중국공산당 대외연락부 부장 류젠차오(劉建超)까지, 권력의 실세라고 할 수 있는 인물들로 꽉 찼다. 지난 4월 11-13일 중국공산당 서열 3위이자 전국인민대표대회 상임위원장(우리의 국회의장 격) 자오러지(趙樂際)가 평양 방문을 했으나 이 또한 세간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의 방북은 그야말로 2019년 시진핑 국가주석 이후 중국의 첫 고위급 인사의 방문이었는데도 말이다. 그가 김정은과 가진 회담과 관련해서도 북한 핵문제를 포함한 한반도 안보 상황에 관한 논의 내용은 보도되지 않았다. 아마도 중국과 러시아 간의 북핵에 대한 입장 변화가 이런 중국과 북한 사이에 핵문제를 금기시하는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올해 중국과 북한이 수교 75주년을 맞는 해이기 때문에 이들 간의 고위급 인사의 교류가 지도자 간의 상호 방문을 위한 사전 정지작업 차원에서 진행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보인다. 아마도 후자일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이는 것으로 점지되고 있다. 10년 전에는 김정은이 정권을 계승한 지 얼마 안되어 북·중관계가 원활하지 않았다. 그러나 20년 전, 2005년을 상기하면 당시 중국 국가주석 후진타오가 북한을 방문한 사례에서 후자의 가능성을 유추할 수 있겠다. 올해 후반기에 북한의 외교가 분주할 것으로 보인다. 북·중수교 75주년을 경축하기 위한 양국의 지도자 방문이 가능해 보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방북도 기대가 되는 상황이다. 만약 북·중수교 75주년을 맞아 평양에서 북·중·러 3국의 정상이 회담을 갖는다면 북한으로서는 고무적인 외교 행사가 될 것이다. 이에 우리의 대비책 마련이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주재우 필자 주요 이력 ▷베이징대 국제정치학 박사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중국연구센터장 ▷브루킹스연구소 방문연구원 ▷미국 조지아공과대학 Sam Nunn School of International Affairs Visiting Associate Professor

    [주재우의 프리즘] 북.중 수교 75주년 …  김정은·시진핑·푸틴 올해 평양에서 만날까
  • [주재우의 프리즘] 이젠 한중 정상회담을 고려할 때

    이달 26~27일 무렵 한국, 일본, 중국 3국 정상회의가 서울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이를 위한 사전 준비 작업으로 우리 외교장관이 중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만약 예정대로 정상회의가 개최되면 파생되는 모멘텀을 정상회담까지 이어가는 호기로 활용하는 방안을 고려해봄직하겠다. 한·일·중 3국 정상회의는 3국 간의 회담으로 끝나지 않는다. 한·일·중 3국 회의도 여느 다자회담과 같이 양자 간의 회담이 부속으로 열린다. 중국 측에서는 총리가 전통적으로 참석해왔기 때문에 우리 대통령은 중국 정치권력의 2인자인 총리와도 개별적으로 만날 것이다. 물론 기시다 일본 총리와의 회담도 예정된다. 한·일·중 3국 정상회의는 코로나로 인해 2019년 이후 4년 동안 중단되었다. 그래서 이번 회의는 나름의 의미가 있다. 3국 정상이 이후 모두 바뀌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정권 교체가 이뤄지면서 대통령이 바뀌었다. 신조 아베 전 일본 총리가 불상사를 겪으면서 기시다 총리가 새로 지명되었다. 중국의 정상 자격으로 한·일·중 3국 회의에 참여하는 중국의 총리도 변화가 있었다. 2022년 중국공산당 20차 당대회에서 리커창(李克强)이 물러나고 리창(李强)이 ‘선출’되었다. 이번 3국 회의가 우리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에게는 리창 총리와 상견례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2022년 APEC회의에서 회담을 가진 바 있다. 기시다 총리 역시 시진핑 주석과 작년 APEC에서 회담의 시간을 가졌다. 리창 총리는 부임 이후 한국을 처음 방문하는 동시에 우리 대통령도 처음으로 만날 것이다. 그런 자리인 만큼 우리 대통령에 대한 시진핑 주석의 문안 메시지도 같이 가져올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그리고 중국이 우리나라에 전하는 메시지도 같이 가져올 공산이 크다. 한·중 양국의 최고위급 회담이 있은 지 2년여라는 시간이 지난 시점에서 중국의 메시지가 사뭇 궁금해지는 자리가 될 것이다. 이에 우리도 우리만의 의제를 가지고 중국 측에 전할 메시지를 준비해야겠다. 중국 총리 편으로 중국공산당과 시진핑 당 총서기에 전할 메시지를 말이다. 한·일·중 3국 정상회의 의제는 3국 공동의 의제가 논의되고 협의될 것이다. 한·중 양국 회담에서도 양국이 당면한 현안 중심으로 의제가 설정될 예정이다. 이를 조율하기 위해 우리의 외교장관이 방중할 것이며 실무 차원에서는 이미 의사 및 의제 조율을 위한 협의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안다. 이번 회의가 우리의 안방에서 개최되는 만큼 홈코트의 이점을 충분히 활용해야 하겠다. 중국이 내방하는 입장에서 우리 대통령의 메시지에 경청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분명하고 명확하고 정확한 우리 대통령의 메시지가 필요하다. 더욱이 2022년 이후 중국 측은 우리 대통령을 조우하거나 대면할 기회조차 없었다. 이런 와중에서 2023년 우리 대통령의 대만해협에 관한 입장에 대해 중국은 불만에만 가득 차있다. 이런 이유로 작년 APEC 정상회의에서 한·중 양국 정상 간에 약식회담(a pull-aside meeting)이 성사되지 않았다는 후문이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만 문제에서 우리의 입장을 밝힌 이상 중국은 불만이 있겠지만 인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이후 윤 대통령의 입장이 재확인되면서 어찌 보면 대만해협문제에서 우리 정부의 공식입장으로 굳히기에 들어갔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중국도 이제는 우리의 입장이 공식화되어 감을 인지해가고 있는 중일지 모른다. 이런 식으로 우리 대통령, 정부의 입장은 일관되게 반복적으로 명확하고 정확하게 전달되어야 한다. 중국의 입장에서 당연히 불만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윤 대통령이 대만문제에서 밝힌 입장은 우리만의 고유한 입장이 아니다. 대다수의 국가가 내세우는 원칙과 입장에 불과하다. 따라서 중국이 이를 문제 삼아 보복하거나 제재를 가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니다. 더욱이 윤 대통령이 공표한 ‘힘에 의한 (대만의) 현상 변경에 반대’하는 것은 중국을 겨냥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서 대통령이 언급한 ‘힘’은 두 가지 함의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무력(武力)이고 하나는 ‘민주주의의 힘’이다. 즉, 후자는 대만의 민주주의가 독립 또는 분리로 이어지는 결과에 반대하는 의미를 내포한다. 그래서 국제사회는 대만의 분리나 독립 또한 지지하지 않는 입장을 견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중국의 군사적 반격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이번 한·일·중 3국 회의를 맞아서도 우리 대통령 차원에서 중국에 대한 메시지는 분명히 전달될 필요가 있다. 한·일·중 3국 회의가 비(非)정치·군사·안보 분야의 현안과 의제에 집중하는 것이기 때문에 한 가지 메시지만 전하면 된다. 이는 우리 대통령의 방중 의사다. 리창 총리 편에 그의 방중 메시지를 시진핑에게 직접 전하는 메시지가 되겠다. 일각에서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17년과 2019년 두 차례나 중국을 방문했기 때문에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시진핑의 방한이 순서라고 이의를 제기할 수 있겠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서 상호주의 원칙은 국빈방문에 적용된다. 국빈방문에만 국한된다. 왜냐면 국빈방문이야말로 공식적이고 국가적인 행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공식(non-official visit)이 되었든 공식 방문(official visit)이든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진행되지 않는다. 현안과 의제의 시급성이나 긴급함이 대면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 대통령과 우리 대통령의 상호방문이 대칭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던 사실도 이런 현실을 증명한다. 윤 대통령의 방문도 비공식이든 공식이든 국빈방문만 아니면 된다. 물론 취임 후 첫 중국 방문이고 시진핑이 답방하지 않은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용단을 내리면 국빈방문의 수준으로 가야 한다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겠다. 그러나 외교의 생물적 속성 때문에 주어진, 또는 변하는 현실에 따라 유연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외교는 생물이다. 따라서 매우 상황적(situational)이다. 즉, 주어진 상황 또는 상황 변화에 적응하고 또한 스스로 변할 줄 알아야 할 정도로 유연해야 한다. 그리고 외교는 항상 상대가 있다. 혼자서 하는 게 아니고 혼자서 하지도 못하는 게 외교다. 이런 외교의 본질, 속성을 이해하면 우리 외교가 유연해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우선 윤 대통령의 방중은 명분이 있다. 경색된 한·중관계의 개선이라는 정치적 명분 외에도 다양한 명분이 존재한다. 한·중관계 개선이 우리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단순한 논리의 명분도 아니다.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위한 중국의 협조를 모색하기 위한 외교적 명분도 아니다. 북한이 비핵화 협상장으로 나오게 압박을 행사해달라는 명분도 아니다. 우리 대통령의 명분은 중국에 레버리지를 행사하기 위함이다. 우리의 중국 레버리지는 절정에 올랐다. 이런 레버리지를 이용해 우리 국익의 극대화는 물론이고, 우리 국익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적기다. 시진핑은 우리나라를 방문, 답방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그의 답방은 사드 문제의 해결을 전제한다. 그러나 현재로서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시진핑의 중국은 우리나라를 그 어느 때보다 더 필요로 하고 있다. 우리가 생산·제조하는 반도체 때문이다. 중국도 4차 산업 시대에 진입했다. 따라서 중국 경제의 회복도 4차 산업의 발달과 운명을 같이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4차 산업의 심장이 반도체인데 이의 수급이 현재 원활하지 않다. 우리가 미국의 글로벌 공급망 개편에 참여하면서 상위급 반도체의 중국 시장 공급이 통제되고 있다. 이런 상황을 중국은 타파해야 한다. 그런데 미국과는 이 문제를 논의하기가 쉽지 않다. 완강한 미국의 입장과 태도에 중국은 자존심이 상한다. 그래서 우리와 같이 미국의 동맹과 같은 나라와 협력과 협의의 기회를 모색하려 한다. 이런 중국의 속앓이가 우리 대통령의 방중 명분을 자연스럽게 제공한다 할 수 있다. 속앓이 하는 중국에게 윤 대통령의 방문은 마치 구세주가 내려온 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 특히 시진핑이 한국을 방문하지 못하는 이유를 우리가 인지하고 있다는 점을 대통령의 방문 이유로 제기하면 감지덕지할 것이다. 자신이 하지 못하는 상황을 우리가 이해해주고 그가 우리로부터 외교적으로 원하는 바, 즉 정상회담의 기회를 제공받으면 우리의 대중국 레버리지는 한층 더 강화될 것이다. 이렇게 우리 대통령의 방중이 성사되면 시진핑은 우리의 요구를 경청하고 최대한 많이 수용할 수밖에 없다. 윤 대통령이 방중할 경우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고려할 수 있겠다. 첫째, 우리의 외교 원칙이다. 우리의 주권 존중, 우리 영토의 완정(完整) 및 주권 존중, 우리의 정체성과 문화유산 존중, 우리 고유의 가치와 제도 존중, 국제 규범 존중 등과 같이 보편적인 원칙을 제시해야 한다. 이는 우리 외교사에서 전무후무한 순간이 될 것이다. 둘째, 사드 해결의 정치적 선언이다. 사드가 방어체계의 무기라는 사실을 중국은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중국 스스로가 사드와 같은 미사일 방어무기 및 무기 체계를 자체 생산하고 전력 배치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한·미·일 군사관계가 강화되는 것이 중국의 ‘눈엣가시’다. 이 문제가 속도 조율에서부터 정책 조정까지 가능한 점을 중국에 전할 필요가 있다. 더 큰 문제는 사드가 중국 경제를 희생시킬 만한 가치가 없다는 점이다. 중국도 이 점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3불’과 경제제재를 채택한 상황에서 근본적인 탈출구가 필요하다. 그 탈출구를 중국의 경제 회복을 위한 한·중 경제협력의 정상화와 이를 상징하는 윤 대통령의 방중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중관계 개선에 새 장(章)을 여는 장본인이 될 수 있는 명분이다. 한·중관계의 경색 국면을 그 어느 누군가는 깨야 한다. 현 시점에서 시진핑은 할 수 없다. 우리 대통령만이 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는 지금까지 외교를 잘 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방중 용단을 내리면 이런 평가에 쐐기를 박을 수 있다. 더욱이 정무적인 관점에서도 야당 및 이들의 지지자들에게도 어필할 수 있는 행보가 될 것이다. 또한 방중으로 중국과의 관계 개선은 우리의 대중 레버리지 제공은 물론 균형외교까지 섭렵할 수 있는 외교적 기반이 될 것이다. 그리고 남은 임기 동안 우리 국익에 부합하는 외교에 전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국민이 바라는 바이다. 우리 외교사(史)는 대통령의 용단을 또한 기억할 것이다. 이 시점에서 한·일·중 3국 정상회의 개최를 한··중관계 개선과 양국 정상회담으로 이어나갈 수 있는 방안 모색은 전략적으로 바람직하다고 하겠다. 주재우 필자 주요 이력 ▷베이징대 국제정치학 박사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중국연구센터장 ▷브루킹스연구소 방문연구원 ▷미국 조지아공과대학 Sam Nunn School of International Affairs Visiting Associate Professor

    [주재우의 프리즘] 이젠 한중 정상회담을 고려할 때
  • [주재우의 프리즘] 민주당의 위험한 '친중 프레임'

    한.중 운명공동체? 전염병 끝나면?” 참조). 중국은 우리나라가 자신들에게 예속·복속·종속되길 바라고 있다. 이것은 중국이 현재 추진하는 ‘중국몽(중국의 꿈)’의 일환이다. 100년 전에 누리던 중화민족의 부흥과 영예를 회복하는 데 한반도는 화룡점정과 같은 위치에 있다. 그럼 중국은 중앙아시아에서 인도차이나반도에서 동남아를 거쳐 한반도까지 아우르는 중화질서와 조공체계의 옛 영예의 재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미 이들 지역과 국가는 사회주의 국가이거나 사회주의 국가 출신, 그리고 중국의 영향권 내에 예속된 나라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남은 건 대한민국 하나뿐이다. 중국의 영향력 공작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이고 우리나라 정치 지도자가 경각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친북, 종북, 친중, 반미, 반일 세력 간의 정파 싸움의 소용돌이에 빠져 나라가 양분화되면서 또다시 구한말 시대의 말로의 덫에 빠질 수 있다. 우리가 혼란에 빠졌던 100년 전 중국은 쇠퇴한 무력한 나라였다. 국력이 강해진 오늘날의 중국은 이런 기회를 두 번 다시 놓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그들의 노림수다. 주재우 필자 주요 이력 ▷베이징대 국제정치학 박사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중국연구센터장 ▷브루킹스연구소 방문연구원 ▷미국 조지아공과대학 Sam Nunn School of International Affairs Visiting Associate Professor

    [주재우의 프리즘] 민주당의 위험한 친중 프레임
  • [주재우의 프리즘] 설리반이 소개한 바이든 행정부의 對中 핵심 전략

    설리반이 올해 바이든 행정부는 출범 4년 차에 진입했다. 미국의 대통령 후보 경선이 조만간 종결되고, 본격적인 대선 레이스가 시작된다. 미·중 전략경쟁시대에 미국의 대중국 압박 및 견제 전략은 바이든이 재선에 성공하든, 공화당 후보자가 새로운 대통령으로 선출되든 견지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월 30일 제이크 설리번 미 국가안보보좌관은 미외교협회에서 미국의 대중국 전략을 소개하는 자리를 가졌다. 그는 수일 전 태국 방콕에서 만났던 중국 왕이 외교부장과 회담한 내용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자제하고, 그동안 바이든 행정부의 대중국 전략과 잔여 임기 동안 나아갈 방향을 적극적으로 소개했다. 설리번 보좌관은 미국이 중국에 압박과 견제 전략을 펼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중국이 국제질서를 변화시킬 의사가 있고, 또 그러한 경제력, 외교력, 군사력, 기술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중국이 하이테크 부문에서 미국을 위협하는 것은 결정적 요인이다. 그는 평시의 중국이 역사상 최대 수준의 군사력 증강 폭을 보이면서 내부적으로 더 탄압적이고 대외적으로 더 공세적인 행위를 일삼고 있다고 했다. 특히 남중국해와 동중국해, 그리고 대만해협에서 이런 중국의 공세 행위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경제 부문에서 중국은 세계가 중국에 더 의존하게 만드는 동시에 자신의 대외의존도는 축소하려는 노력을 부단히 해왔다고 설명했다. 중국의 이런 움직임에 대한 정당성과 당위성은 하나로 압축된다. 미국의 ‘최종적인 쇠퇴론(terminal decline)’에 기초한 사실을 설리번은 강조했다. 즉, 미국의 제조업이 붕괴하고 미국이 동맹과 파트너에 대한 의지가 약화(undercut)되었다고 중국이 확신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코로나 팬데믹 해결을 하는 데 있어 미국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중국의 이러한 확신이 강해졌다고 그는 부연했다. 중국이 최근 ‘동방이 부상하고 서방이 쇠퇴하는’ 식의 발언을 공공연하게 공개적으로 하는 이유를 덧붙였다. 2013년 봄 시진핑이 국가주석으로 선출된 직후 중국공산당 간부 회의에서 ‘자본주의는 소멸할 것이고 사회주의가 승리’할 것이라고 한 발언과 같은 맥락이다. 이런 배경에서 미국은 트럼프 행정부 때부터 미국의 대중국 압박 및 견제 전략을 채택하였다. 그리고 바이든 행정부는 이를 계승하는 동시에 더욱 견고하고 정교한 정책 전략을 수립하는 데 매진한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의 전략 기조는 세 가지 핵심 키워드로 설명된다. 즉, ‘투자(invest), 정렬(align), 경쟁(compete)’ 등이다. 투자는 미국의 제조업과 산업의 부흥을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투자를 진행하는 동시에 해외투자를 유치하는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미국 기업의 ‘리쇼어링(reshoring)’, 우방 기업의 ‘프렌들리쇼어링(friendly-shoring)’ 전략을 들고나온 이유다. 설리번은 이런 전략적 목적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미 정부의 투자도 적극적으로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대규모 투자가 반도체와 청결에너지 사업에 집중적으로 이뤄진 것을 대표적인 사례로 소개했다. 이들 분야에 대한 미 정부의 투자는 2019년에 비해 20배 증가했다는 것이다. 앞으로 10년 동안 공공과 사영 분야에서도 3조5000억 달러가 더 투자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이런 이유로 미 의회가 통과시킨 인프라건축법안, 반도체과학법, 청결에너지법안, 인플레이션감축법안(IRA) 등을 들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중국의 비(非)시장경제적인 관행을 바로잡는 것은 물론 미국이 과학기술과 경제성장의 동력을 견인하는 입지를 강화하는 데 일조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정렬(align)’ 전략은 트럼프 행정부 시기에 약화된 동맹과 우방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것이다. 기존 자유 국제질서를 수호하는 목적 하나만으로 동맹 관계를 재정비하고 나선 것이다. 그리고 이의 당위성으로 자유 국제질서의 기반인 인권, 자유, 민주주의 등의 가치 수호도 강조되었다. 이러한 미국의 노력의 결과는 ‘인도·태평양 전략’의 출범으로 가시화되었다. 이 밖에 오커스(AUKUS), 쿼드(QUAD) 등이 소다자주의 협의체들이 순조롭게 수립되는 동시에 양자 차원에서도 동맹과 우방과의 관계도 강화된 사실을 자랑스럽게 소개했다. 가령 필리핀, 베트남, 인도, 인도네시아 등 인도·태평양 지역 국가와의 관계가 강화된 결과에 만족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설리번은 한국, 미국, 일본 등과 소다자주의 협의체의 결성을 최고의 결과로 꼽았다. 이렇게 동맹과 우방 국가와의 관계 정렬을 통해 미국은 이들로부터 약 2000억 달러 수준의 투자 약속도 받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인도·태평양 지역과 유럽 지역의 우방을 연결해주면서 디커플링보다는 전략적 의존을 다변화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사실이 고무적이라고 그는 밝혔다. 그는 이런 협력 기반을 통해 민감한 과학기술의 이전 채널은 더 이상 취약점이 아닌 강점으로 전환되었다고 강조했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작년에 미국이 강조하기 시작한 ‘디리스킹(리스크 축소 전략)’이 가능해졌다고 설명했다. 이를 보장하기 위해 미국은 핵심 기술에 대한 수출 통제를 맞춤형으로 더욱 정교하게 만들 수 있었고 해외투자와 관련해서도 유사한 조치를 취할 수 있게 되었다고 강조했다. ‘경쟁(compete)’ 전략 부문에서도 설리번은 중국과의 전략 경쟁의 필연성을 수용하는 입장을 밝혔지만 이것이 전부가 아님을 주장했다. 대신 미국이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의미에서 경쟁의 의미를 부각시켰다. 미국이 주도해야 하는 이유는 한 가지로 설명이 됐다. 미·중 전략 경쟁이 자칫 막대한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그는 미국이 상기한 전략이 효과를 발휘한 결과, 즉 미국 내의 투자가 활성화되고 우방과의 협력의 결과라고 부연했다. 앞으로 중국이 세계의 중대한 국가 중 하나로 당분간 군림할 것이기 때문에 새로운 전략으로 건설적인 경쟁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그의 논리다. 따라서 미국의 대중국 외교는 더 이상 중국을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변화시키는 데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경쟁하면서 공존하는 방식의 외교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설리번은 미·중이 경쟁과 공존이 병행되기 위해서는 갈등, 대립 또는 신냉전과 같은 결과는 피해야 하는 것이 우선 과제임을 강조했다. 그래서 미·중 양국이 경쟁관계를 ‘책임 있게 관리’하는 인식을 공유한 사실을 재확인했다. 이런 인식은 미·중 양국이 ‘오해(misperception)’와 ‘잘못된 소통(miscommunication)’을 최대한 피해야 하는 공감대에 기초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중 양국이 서로의 위치, 전략 이익에 대한 더 명확한 파악과 이해가 전제된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미국은 지금까지 중국에 ‘솔직하게(frank)’, 그리고 ‘진솔하게(candid)’ 대화와 외교에 임했다고 자부한다. 특히 미국은 솔직하고 진솔한 대화로 일관한 것뿐 아니라 사전에 중국 측에 취할 조치에 대한 설명에 소홀하지 않았다고 그는 강조했다. 미국이 취하는 견제 및 압박 조치의 취지, 의도, 목적과 내용을 상세하게 중국 측에 사전에 알리면서 중국의 이해와 양해, 그리고 협조를 모색했다는 것이다. 설리번에 따르면 현재까지 미국의 이런 접근 방식은 유효했다고 한다. 미국은 이런 대화를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방식이 아닌 ‘두 방향 소통’ 방식으로 유지해 왔으며 앞으로도 이를 견지해 나갈 의지가 강하다고 그는 전했다. 일방적인 통보 방식은 중국 측의 오해 소지만 확대시킬 위험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런 양방향 소통 결과가 최근 미·중 양국의 고위급 회담 및 상호 방문의 연쇄적인 결과로 나타났다고 강조했다. 올해 미국의 대중국 압박 정책으로 설리번은 중국의 인권유린, 강제노동과 비확산 문제에 초점이 맞춰질 것이라고 공개했다. 또한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중국의 대러시아 지원 문제도 의제 중의 하나라고 밝혔다. 이 밖에 홍해와 북한 문제 또한 지속적으로 논의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한 중국과의 경쟁을 ‘책임 있게 관리’하기 위한 미 의회와의 공조도 잊지 않고 전했다. 초당적인 협력과 지원이 보장되어야 미국이 더 강하게 우위를 선점할 수 있다는 미국 외교의 역사적 경험에 기초한 전략적 계산에서 비롯된 사고다. 미 의회는 지난 1년 동안 중국 관련 법안을 약 520개 상정한 상황이다. 미 의회가 개회되면서 더 많은 법안이 상정될 것이다. 2022년에 선출된 하원의원의 임기가 올 11월에 만료되는 상황에서 이들의 입법화 노력은 가속화될 것이다. 선례에 따르면 올여름이 그 시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이 모든 법안을 통과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대신 관련 법안을 통합하여 하나의 법안으로 입법할 것이다. 대선 정국에서 민주당과 공화당 후보자들은 중국 때리기로 일관할 것이다. 이들을 각 정당과 의원이 지지하는 모양새는 중국 관련 법안의 입법화로 갖춰질 것이 자명하다. 정치적인 의도와 목적을 가진 미국의 법안에는 ‘구멍’이 많기 마련이다. 신속하게 법안을 처리하다 보니 졸속으로 통과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가령, 2022년에 통과된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반도체과학법’이 대표적인 사례다. 우리는 ‘제2의 반도체과학법’ ‘제2의 인플레이선감축법(IRA)'이 재발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노력을 배가해야 할 것이다. 이런 전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전과 같이 법안 통과와 부칙 설정에 일희일비하면서 과도하게 반응할 필요가 없다. 지금부터 미 의회의 동태를 예의 주시하면서 이들이 520개가 넘는 법안을 어떻게 ‘요리’할 것인지를 면밀히 들여다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들 법안의 최종 형상을 예상하면서 이에 대한 대비책 마련에 집중해야 한다. 입법 법안에 대해서도 면밀하고 세세하게 재검토해야 한다. ‘구멍’이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에게 레버리지가 될 소지와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국에 하듯 미국에 우리한테도 사전 고지와 소통을 요구해야 하겠다. 우리는 미국과 제일 오래된 동맹국가이기 때문에 그러한 권리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욱이 우리가 미국의 대중국 압박 방안에서 핵심적인 위치에 자리 잡고 있다. 이런 사실은 반도체과학법과 인플레이션감축법에서도 명백히 드러났다. 이런 우리의 국제적 위상을 미국에 레버리지로 삼으면서 미국의 향후 행보에 관한 정보 공유를 당당히 요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미국도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는 당당함도 보일 필요가 있다. 미국에 우리는 군사, 안보, 경제안보, 공급망 등에서 필수불가결한 파트너이기 때문이다. 주재우 필자 주요 이력 ▷베이징대 국제정치학 박사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중국연구센터장 ▷브루킹스연구소 방문연구원 ▷미국 조지아공과대학 Sam Nunn School of International Affairs Visiting Associate Professor

    [주재우의 프리즘] 설리반이 소개한 바이든 행정부의 對中 핵심 전략
  • [주재우의 프리즘] 미중 정상회담 이후..…韓국익 극대화 방법 셋

    우리도 대중 전략 조정이 필요한 이유” 참조). 가령, 우리가 생산하고 전 세계에 공급하는 메모리 반도체 약 70% 중에서 40% 이상이 중국 공장에서 생산된다. 그러나 미국의 반도체법으로 중국 내의 우리 반도체 생산공장이 거의 중단되면서 세계 시장에 공급 차질을 빚었다. 특히 중국 시장에 상위급 메모리 반도체의 공급이 거의 중단되면서 중국의 4차산업 발달에 큰 타격을 입히고 있다. IRA 역시 마찬가지다. 세계 이차전지 시장에 우리 기업의 공급 비중은 50%에 육박한다. 그러면서 이차전지의 세계시장 공급 구도는 우리 기업의 것 아니면 중국의 것으로 양분되었다. 우리 기업 이차전지의 상당한 비중이 중국에서 생산, 공급되는 탓이다. 그런데 IRA는 중국제(製) 이차전지의 미국 수입을 불허했다. 세계무역기구(WTO)의 원산지 기준에 따라 중국에서 생산되는 우리의 이차전지는 중국제가 될 수밖에 없다. 이런 구조 속에서 미국은 전기차에 필요한 이차전지 수급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우리 이차전지의 미국 시장 공급이 원활하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미국은 이런 자승자박의 결과를 자국 기업의 회귀라는 ‘리쇼어링’이나 우방 기업의 ‘프렌드쇼어링’ 등의 전략으로 극복하려 한다. 문제는 미국 내 생산공장을 지금부터 착공해도 이차전지는 3~5년, 반도체는 5~8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는 데 있다. 그때까지 대안이 거의 없다는 의미다. 이런 상황을 직시한 미 정부 당국은 동 법안에 예외조항을 부칙으로 하는 이른바 ‘가드레일’ 조항을 마련했다. 지난 3월 IRA 법안에, 10월 반도체 법안에 부칙이 발표되었다. 이번 APEC에서 열리는 미·중 정상회담은 두 나라의 경제 상호의존도가 얼마나 높은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결과라 할 수 있다. 글로벌 공급망에 중국을 배제하고 배척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불가능한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두 나라 정상이 이번 회담에서 모종의 합의안을 도출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이 경우 우리의 외교적 입지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그간 미국과 중국에 상당한 레버리지가 있었다. 경제안보적인 측면에서는 글로벌 공급망 속에서 우리가 중대한 한 축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메모리 반도체를 유일하게 생산, 제고, 공급하는 나라였기 때문이다. 비록 우리가 미국의 원천기술, 네덜란드와 일본에 소재, 부품, 장비 공급을 전적으로 의존하지만, 상위급 메모리 반도체의 생산과 제조를 거의 도맡아 해왔기 때문이다. 이차전지 역시 마찬가지다. 중국기업 제품이 세계시장을 거의 석권하고 있지만 비(非)중국기업 제품을 제외하면 우리가 독보적인 생산, 공급 국가이다. 이런 글로벌 공급망의 구조 각도에서 보면 반도체와 이차전지 분야에서 분업과 협업의 관계가 미국과 우방 사이에서 확실한 자리매김을 했다고 할 수 있다. 분업과 협업의 구조 속에서 우리의 레버리지는 상당히 강했다. 이런 이유로 중국이 우리에게 더 이상 사드 사태 때와 같이 제재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사라졌다는 의미다. 다시 말해, 4차산업 구조 속에서 중추적인 입지를 가진 우리를 중국이 더 이상 함부로 대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를 우리는 더 적극 활용했어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는 이런 상종가를 치던 지경학적 전략가치를 충분히 이용하지 못했다. 미국의 법안에 일희일비했고, 미국 주도의 전략 참여를 검토할 때 중국의 보복을 과하게 의식하며 망설였다. 우리가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정에서 더 많은 지분과 주도권을 챙길 수 있었던 기회를 상실한 것이다. 아직 우리에게 ‘기회의 창’이 완전히 닫힌 것은 아니다. 몇 가지 기회가 있다. 첫째, 개선된 일본과의 관계를 이용해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가입해야 할 것이다. 비록 지난 정부의 결정이었지만, 2022년 4월 15일에 가입을 의결한 바 있다. CPTPP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11개국이 결성한 다자간 자유무역협정(FTA)이다. 미국이 주도했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미국이 탈퇴하자 일본과 호주, 멕시코 등 나머지 국가가 2018년 12월 출범시킨 협의체다. 이에 2021년부터 영국(2월), 중국(9월), 대만(9월), 에콰도르(12월) 등 주요 국가들이 줄지어 가입 신청을 했고 영국이 올해 3월에 가입되었다. CPTPP 회원국의 평균 관세 철폐율은 96.3%에 달한다. 사실상 완전 개방에 가깝다. 우리 경제에서 무역이 75% 이상을 차지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이에 가입하는 것은 현실적인 전략적 선택이다. 시장 다변화가 앞으로 우리 경제의 기본적인 생존 전략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에 따라 지불해야 할 대가도 만만치 않다. 농축산시장의 개방 확대로 우리는 또 한번의 고충을 겪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와 1995년의 WTO 출범, 2008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때도 이런 진통은 한번씩 겪어봤다. 결과는 양면의 동전이었다. 단기적으로 우리의 농축산업이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 우리의 농축산업이 발전을 거듭한 것도 사실이다. 관건은 우리 경제가 발전해야 소비시장도 활성화되어 고급화된 우리의 농축산물을 구매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긴다는 데 있다. 현실은 미국이 일반적으로 다자간 지역 자유무역협정에 배타적이고 비협조적이다. TPP에서 철회한 것이 이의 실증이다. 소수 주변지역, 즉 멕시코와 캐나다, 아니면 경제적으로 중소국과의 FTA만을 선호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미FTA가 미국의 입장에서 고무적이었던 이유가 우리나라 경제 규모만 한 나라와 양자로 맺은 사례가 없기 때문이다. 미국이 추구하는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는 자유무역을 위한 가이드라인 성격에 불과하다. 여기에 우리가 목을 맬 필요는 없다. 원칙에 합의하는 정도로 결론지어질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둘째, 한·미·일 3국의 관계 강화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한 노력이 배가되어야 한다. 한·미·일 3국의 협력이 현재로서는 군사 관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한·미·일 3국의 군사 관계 발전은 해군력이 주도한다. 이는 3국의 군사훈련이 해상에 집중된 사실에서도 입증된다. 육상에서는 아직 할 수 없는 내적 문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현실은 우리의 해군력이 미국과 일본에 비해 열악하다. 준이지스함급 규모만 보더라도 우리가 일본에 현저하게 뒤떨어져 있다. 자칫 잘못하면 우리가 한·미·일 3국 군사 관계에서 도태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는 뜻이다. 이런 현실에서 이번 합참의장으로 해군 장군의 임명은 고무적이다. 앞으로 남은 임기 동안 정부는 해군력 증강 노력을 경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3면이 바다이고 우리의 바다를 자기네 안방처럼 넘나드는 중국 해군을 적극 방어하기 위해서라도 해군력 증강은 필수적이다. 이런 현실적인 관점에서 정부는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더 나아가 이런 설득에는 우리의 항공모함 건조까지 포함되어야 한다. 경항모는 이 같은 현실에 타당하지 않다. 항공모함 한 척만 구비해도 우리 바다에 대한 방어력은 상당히 견고해질 것이다. 서해에 항공모함이 정박해도 동해까지 전투기를 급파할 수 있는 지리적 요건 때문이다. 남해에 정박하면 서해와 동해를 모두 장악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경제안보적인 측면에서 우리 반도체와 이차전지 기업의 국내 사업 확장을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다. 얼마전 전기차 수요가 감소하면서 우리 기업의 미국 공장 설립 계획이 대부분 취소 또는 유보되었다는 기사가 보도되었다. 시장이 이차전지의 수요와 공급을 결정한 결과다. 메모리 반도체 역시 마찬가지다. 상위 반도체의 수요는 앞으로 더 증가할 것이다. 세계 시장에서 우리가 이미 선점한 위치를 더 확대해야 한다. 거의 독점 형태로 가는 것이 마땅하다.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설립하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것을 우리 기업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여기에 비자 문제, 전문가 인력 수급 문제 등 해결되어야 하는 제반 사항이 많은 것도 대만의 파운드리 미국 공장 설립을 통해 이미 기정사실화되었다. 미국의 요구에만 모두 응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대신 우리 기업이 발표한 사업 확장 계획을 우리 정부가 적극 나서서 조기에 신속하게 완성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 도와주는 게 우리 국익에 부합한다. 그러면서 세계의 메모리 반도체와 더 나아가 파운드리까지 공급하겠다는 우리 기업 전략이 실현될 수 있게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대미 협상력은 두 가지 경로를 통해 확보될 수 있다. 하나는 중국 공장에서 생산되는 상위 반도체를 세계 시장 공급용으로 지정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중국 시장 공급용은 우리나라에서 제조된 것을 수출하는 것이다. 중국에 대한 수출 통제력을 미국과 협업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중국에 더 비싼 값으로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반도체를 파는 것이다. 우리 국익을 극대화하는 방안을 모색할 때이다. 주재우 필자 주요 이력 ▷베이징대 국제정치학 박사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중국연구센터장 ▷브루킹스연구소 방문연구원 ▷미국 조지아공과대학 Sam Nunn School of International Affairs Visiting Associate Professor

    [주재우의 프리즘] 미중 정상회담 이후..…韓국익 극대화 방법 셋
  • [주재우의 프리즘] 방중 대신 방러 택한 김정은의 속셈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13일부터 5박 6일 동안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일대를 방문했다. 2020년 초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국경을 봉쇄한 이후 그의 첫 해외 방문국이 중국이 아닌 러시아였기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2018~2019년 2년 동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5차례 정상회담을 한 사실을 고려하면 김정은 위원장이 팬데믹 이후 첫 방문 국가로 중국을 다시 찾을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지난 몇 달 동안 북·중 관계에 이상 조짐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김정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은 그리 놀라운 소식은 아니었다. 우선 김정은이 중국을 선택하지 않은 이유부터 규명할 필요가 있다. 물론 북한 측이 명확한 설명을 하지 않는 상황에서 정확한 근거 자료는 없다. 단지 정황 증거로 이를 유추할 수밖에 없다. 특히 미국과 중국 고위급 인사들 사이에 북한 문제를 두고 나눈 회담 내용에 근거할 수 있다. 올해 2월부터 미국은 북한이 러시아에 탄약과 포탄 등 무기를 제공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리고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같은 달에 왕이 중국 국무위원과 독일 뮌헨에서 회담하면서 두 가지를 요청했다. 하나는 중국이 러시아에 무기를 제공하지 말 것과 하나는 북한도 그렇게 하지 않게 중국이 역할을 해 달라는 것이었다. 제이크 설리번 미국 국가안보보좌관과 블링컨 장관이 각각 5월과 6월에 베이징을 방문했을 때도 이들의 대북 메시지는 일관적이었다. 중국 측 고심이 커졌을 법한 정황도 이후 드러났다. 7월 북한 전승절 기념행사에 중국이 예상외로 당 서열이 낮은 인사를 파견했기 때문이다. 리훙중 중국인민대표자대회 부위원장이자 당 정치국 위원이었다. 그는 당 서열 24위로 정치국 25명 중에서 간신히 턱걸이한 인사였다. 그리고 9월에 있은 북한 노동당 창당 기념행사에 중국은 류궈중 부총리를 참석시켰다. 그는 정치국 위원도 아니었다. 그러면 당 서열 25위에도 끼지 못한 인사라는 뜻이었다. 이렇게 서열이 낮은 인사를 북한의 중대한 기념행사에 파견한 것도 전례에 없던 일이었다. 북한이 기념행사에서 열병식을 한 이후 중국은 줄곧 고위급 인사를 보냈다. 가령 2010년 9월 노동당 창당 행사에는 저우용캉 중앙기율위원회 위원장(서열 9위)이 참석했다. 2013년 전승절에는 리위안차오 부주석(서열 8위)를 파견했다. 2018년 건국 70주년 행사에는 서열 3위였던 리잔수 전국인민대표자대회 위원장이 열병식을 참관했다. 이처럼 북한의 뜻깊은 국가적 행사, 그리고 특히 열병식이 개최될 때 중국 측은 항상 고위급 인사를 보내는 전통이 있었다. 그러나 올해 두 차례 행사에는 이에 못 미치는 인사를 파견함으로써 중국 측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음을 감지할 수 있겠다. 그럼 여기서 우리는 김정은이 러시아를 방문하게 된 동기를 알아볼 필요가 있겠다. 또한 그가 방문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을 알아봐야 한다. 왜냐면 개인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동기와 이득에 대한 분석이 가장 기초적인 작업이기 때문이다. 역으로 우크라이나와 한창 전쟁 중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김정은과 회담을 한 이유를 동기와 이득이라는 관점에서 조망할 필요가 있다. 왜냐면 전쟁 중에 수도인 모스크바에서 6000㎞ 이상 떨어진 극동 러시아 지역까지 와서 회담을 하는 것 자체가 상식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 또한 무언가 노리는 것이 있었을 테니 말이다. 이렇게 김정은과 푸틴의 노림수를 읽음으로써 김정은이 코로나 이후 러시아를 첫 방문국으로 선택한 이유를 규명할 수 있겠다. 야당과 언론에서 지적했듯 김정은의 선택을 추동한 것은 윤석열 정부의 이념외교나 진영외교의 결과도 아니다. 그가 군사시설을 방문했다고 해서 무기 거래를 목표로 푸틴과 회담을 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한·미·일 3국의 군사관계 강화가 북·중·러 3국의 단합을 유발해 대항마로 만들었다는 시각도 있지만 현재로서는 북·중·러 3국의 군사관계는 매우 취약하기 때문에 한·미·일 3국에 대항마가 될 수 없다. 우선 북·중·러 3국 군사관계에서 북한이 약한 고리이기 때문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2007년부터 연례 연합군사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여기에 북한이 동참할 리 만무하다. 북한의 재래식 무기 수준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해상 훈련에 참여하려 해도 현재 북한 함정과 군함 수준으로는 수치스러울 것이다. 북한에는 중·러가 동원하는 이지스함급 군함이 없다. 공군 훈련도 마찬가지다. 주지하듯 북한의 최신예 전투기는 1980년대에 소련에서 제공받은 미그기가 전부다. 둘째, 북한에 군사훈련 참여를 유발하도록 중국과 러시아 그 어느 누구도 현재로서는 무기를 제공할 의사가 없다. 북한은 재래식 무기 향상과 개선을 위해 중국을 찾아간 바 있었다. 북한은 최고지도자 수행 방문단 일원이 아니라 처음으로 단독으로 공군과 해군 사령관을 각각 2007년과 2011년에 베이징에 파견했다. 이 자리에서 이들은 중국 최신예 전투기와 군함 구매를 타진해봤다. 그러나 실패로 돌아가면서 빈손으로 귀국한 바 있다. 이후 북·중 간 재래식 무기 거래설이 나오지 않은 지 오래다. 러시아는 더 말할 나위 없다. 러시아와 무기 거래를 논한 지는 1980년대 이후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북한이 시급히 해소해야 할 당면 과제는 경제다. 코로나 시기 쇄국정책을 펼치면서 북한 경제는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은 주지하는 사실이다. 경제 성장률에서부터 식량 생산까지 총체적인 난국에 처했다. 이는 올해 김정은이 주재한 당 회의에서도 식량과 농업 문제를 강조한 사실에서 유추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에 무기 구매나 거래가 최우선 과제는 아닐 것이라고 가늠할 수 있다. 비록 김정은의 러시아 방문지 대부분이 군사무기 제조·생산시설이었음에도 주된 회담 의제는 경제라는 점이 간과되었다. 특히 북·러 양국이 건설·관광·농업 분야에서 공동 프로젝트를 연내에 추진하기로 합의한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북한 경제난을 위한 김정은의 포석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13일 김정은과 회담할 때 푸틴을 배석한 러시아 인사들을 주목할 필요 또한 있다. 러시아 부총리를 비롯해 산업, 교통, 자원 부처 수장 등이 모두 동석했다. 푸틴은 모두 발언에서 “우리는 분명히 경제협력 문제, 인도주의 성격의 문제, 지역 상황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고 말해 북·러 양국 간 경제협력이 주된 의제였음을 시사했다. 푸틴의 발언을 방증하는 증거 또한 실무급 회담 여러 곳에서 포착되었다. 특히 12일 새벽 러시아 국경역 하산에 도착한 김정은은 코제먀코 연해주 주지사와 만나는 자리에 배석한 러시아 인사들을 보면 이를 가늠할 수 있다. 이 자리에 알렉산데르 코즐로프 러시아 천연자원·환경장관이 배석했다. 코즐로프 장관은 북·러 통상·경제와 과학기술 협력 정부 간 위원회 의장직을 겸하고 있다. 13일 인테르팍스 통신 등에 따르면 코제먀코 주지사는 본인 텔레그램에 “(김 위원장과) 올해 관광·농업 발전과 연계된 공동 프로젝트들을 개시하는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며 “이는 건설과도 연관된 문제”라고 소개했다고 전했다. 더 나아가 북·러 양국은 연해주를 비롯한 극동 지역에서 농업특구를 공동으로 운영하는 방안을 논의했다는 보도가 전해졌다. 특히 나진·하산 프로젝트 재개와 관광·문화 교류 사업 등에 대해서도 심도 있게 의견을 교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북한이 비(非) 군사 영역에서 러시아와 협력을 타진한 이유는 더 현실적이고, 더 수월하고, 북한에 더 이득이 될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무기 거래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푸틴도 전쟁 중에 북한에 무기를 제공할 여력이 없을 것이다. 언론과 전문가들 예측대로 북·러 정상회담이 성사된 이유가 북한에서 포탄과 탄약을 조달하는 것이라면 러시아가 북한에 무기를 제공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어렵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대신 북한이 러시아 측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무기 생산 공장 가동이 전제된다. 이를 위한 에너지원이 확보되어야 할 것이다. 전력도 에너지 동력도 부족한 북한에서 러시아 측 주문을 맞추기 위해서는 러시아에서 에너지 공급을 확보하는 게 우선이다. 그리고 생산에 투입되는 노동자 식량 문제도 해결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이들이 생산에 필요한 노동력을 효율적으로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으로서도 원활한 에너지 자원과 식량 수급은 군사력 발전의 원동력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양상에 현혹돼서는 안 될 것이다. 북한과 러시아가 에너지든, 식량이든, 인프라 구축을 위한 경협이든 물자가 왕래할 때 러시아 첨단 무기 부품과 소재가 포함되어 운송될 가능성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 이들 부품과 소재는 눈속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를 국제사회는 경계해야 하며 우리 당국도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겠다. 주재우 필자 주요 이력 ▷베이징대 국제정치학 박사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중국연구센터장 ▷브루킹스연구소 방문연구원 ▷미국 조지아공과대학 Sam Nunn School of International Affairs Visiting Associate Professor

    [주재우의 프리즘] 방중 대신 방러 택한 김정은의 속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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