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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수미(57)의 활약은 눈부시다. 웬만한 톱스타의 티켓 파워보다 낫다. 2003년 '오! 해피데이'에 카메오 출연하며 영화계에 뒤늦게 뛰어든 이 배우는 '가문의 위기'의 흥행 성공을 시작으로 '가문의 부활', '맨발의 기봉이', '마파도' 등 숱한 흥행작을 쏟아냈다.
이번엔 치매에 걸린 할머니다. '맨발의 기봉이'에서 정신지체 장애를 갖고있는 다 큰 아들을 둔 시골 노파를 절절하게 연기했던 그는 '흑심모녀'(감독 조남호, 제작 이룸영화사)에서 치매에 걸려 자신이 스무살이라는 착각 속에 사는 간난 역을 맡았다.
'흑심모녀'는 마음은 스무살인 치매 할머니,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엄마(심혜진 분), 스무살 철부지 딸(이다희) 등 세 모녀가 사는 집에 젊은 남자(이상우)가 들어오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렸다. 세 여자 모두 한 남자에게 흑심을 품는 것.
"아무리 '어머니'라는 위치에 있어도 엄마는 여자이고 싶죠. 사랑도 해보고 싶고, 아름다워 보이고 싶고, 소녀시절로 돌아가고 싶어 합니다. 간난이는 그런 엄마들의 마음을 내보여줍니다. 천진난만하게 스무살 정신 세계로 돌아가 한 남자를 진지하게 좋아하죠."
본인은 스무살이라고 생각하는 까닭에 옷도 딸인 심혜진보다 화려하게 입는다. 김수미라는 이름을 떠올리면 웃음부터 빙그레 나오는 관객에게 자칫 치매에 걸려 젊은 남자를 쫓아다니는 모습은 코믹하게만 보일 수 있다.
"오버하지 않으면서 귀엽고 재미있게 보여야죠. 그 중심을 잘 잡아야 하는게 배우로서 제가 할 일이었습니다. 생각없는 할머니이지만 맑은 영혼을 가진 순수한 여자로 표현했고, 진짜로 젊은 남자를 좋아하는 20대라고 생각하고 연기했어요. 하지만 그게 병이잖아요. 병을 앓고 있는데 정작 스스로는 병인 줄도 모르는. 그런 엄마를 지켜보는 딸의 심경은 어떻겠어요. 그래서 진한 슬픔도 묻어납니다. 그래서 '흑심모녀'는 단순한 코미디가 아닌 휴먼 드라마예요."
이번 연기를 하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이 세상에 일어나는 충격적인 일들이 결코 남의 일이 아니라는 걸 알아가게 된다. 그래서 어머니로서 살아가는 여자들이 꼭 봤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쉼없이 영화와 드라마를 하고 있는 김수미는 "잘 자고, 잘 먹고, 운동 열심히 해 체력이 뒷받침해줘 가능하다"고 말한다.
"이 나이 되니까 웬만한 건 느긋해져요. 예전엔 정말 다혈질이었거든요. 사실 병이라는 게 스트레스가 가장 큰 이유인데 이젠 (스트레스를) 조그만 보자기에 싸매서 선반 위에 던져버립니다. 당장 주어진 일을 한 다음 어쨌든 해결해야 하는 일이니까 컨디션 좋을 때 풀어보는 거죠."
말많고 탈많은 연예계를 오랫동안 지켜온 그는 "안전거리를 충분히 확보한다"고도 덧붙였다.
"어떤 일을 당하든 '그럴 수도 있지', '저 사람이 굉장히 급하구나', '내가 돌아가야지' 이렇게 생각해요. 그러니까 부딪힐 일이 별로 없죠. 이런 저를 보면서 '30대였으면 이렇지 않았을 텐데 내가 많이 달라졌구나'라고 생각합니다."
시트콤 '오박사네 사람들'에서 인연을 맺었던 '오! 해피데이'의 윤학렬 감독이 좋아하는 들꽃을 한다발 들고 와 "하루 와서 좀 놀아주세요"라는 말에 즉석에서 승낙해 카메오 출연한 후 영화계의 러브콜이 시작됐다.
단지 코미디 장르 뿐 아니라 '맨발의 기봉이'와 같은 휴먼 드라마에서도 빛을 발하는 연기를 했다.
"관록 때문에 쉼없는 변신이 가능했던 것 같아요. 젊은 배우는 아무리 연기를 잘 하더라도 이렇게 변신하기 힘들죠. 이것저것 다 겪어봤기 때문에 연기의 폭이 자연스럽게 넓어진 것 같습니다."
김수미의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는 '흑심모녀'는 다음달 12일 개봉된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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