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영길 (발행인)
소제목 : 경제위기 해결할 프로경제 관료 아쉬워
: 역사적 식견과 균형감각 갖춘 인재 등용해야...
일전에 국무총리를 지낸 한덕수 국민경제자문위원을 만나 뵈었다. 때가 때인만큼 세계 금융위기가 화제였다. 우선 한국경제가 상당기간 고전하지 않겠느냐고 낙담 했더니,경제란 상대적인 변수가 많은 고로 크게 낙담할 필요는 없다고 담담해 했다.
어차피 세계경제가 세기(世紀)적 구조조정에 들어갔는데, 한국만 유난스레 잘 될 리도 없고 못 될 리도 없다는 진단이다. 다만 작금의 위기처방이 너무 단세포적이어서 내심 걱정이라고 했다. 전세계의 투자자들이 한국시장을 예의주시하고 있는데도 경제관료들이 너무나 태연자약하게 5공식 부실기업 지원방침을 공언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자신이 투자한 은행이 자신의 돈으로 부실기업을 지원할 경우 어떤 외국인 투자자가 은행에서 돈을 빼내가지 안겠느냐는 반문이다.사실 부실기업에 대한 지원은 산업은행이나 수출입은행, 기업은행 같은 국책은행들에게 그 임무를 맡겨도 된다.그대신 시중은행들에게는 ‘개인 날에 빌려주었던 우산을 비오는 날에 빼앗지 말라’고 조용하게 기술적으로 타이르면 된다.
그런데도 경제관료들이 온통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서서 은행들이 부실기업 지원에 나서라고 윽박지른다.마치 대통령이 한마디 하니 고위관료들이 화음으로 충성하려는듯, 지지배배하는 형국이다.
경제위기에선 모럴 해저드(도덕적해이)보다 더 위험한 것이 오럴 해저드(잦은 말실수)인데도 말이다. 오죽하면 이한구 국회예결위원장이 경제관료들의 구두(口頭)처방이 한국경제를 오히려
IMF(국제통화기금)위기 상황으로 내 몰고 있다고 힐난했겠는가.
국익을 위해 외교적발언의 수위를 능수능란하게 조절할 수 있는 경제관료가 단 한명이라도 아쉬운 시점이다.
지난 1994년 7월 8일에도 한총리와 오찬을 함께 했다. 상공부 기획관리실장 때였다.
당시 화제는 동북아시대의 도래였다. 중국이 개혁개방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일본이 선진경제권으로 진입하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은 동북아시아가 세계경제의 주역으로 떠오르는 조짐을 암시한다고 했다. 기술에 자본까지 갖춘 일본과 공장에 소비시장까지 갖추게 될 중국사이에서 한국의 위상을 고민해야 한다고 서로 의기투합 했었다.
당시의 화두(話頭)였던 세계화에 대한 담론도 이어졌다. 지나친 세계화 정책이 국가명운에 화(禍)가 될 수도 있다는 얘기도 나눴다.
예컨대 미국과 일본,중국과 러시아의 각축속에서 생존해 나가야 하는 한국으로선 지나친 개방정책이나 지나친 폐쇄모드가 곤란하다는 역사적 분석도 내렸다. 결국 국익위주의 경제정책만이 격랑의 한반도에선 생명력이 있다고 결론지었다.
미국 하버드대학 경제학박사 출신의 경제관료였기에 미국편향의 시각을 의심하고 있었는데, 의외로 한국이 100년만에 동북아의 균형추 역할을 할 때가 왔다고 해서 내심 놀라기도 했다.그날 식사 도중에 김일성 북한주석이 사망했다는 긴급뉴스를 접했던 터라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아무튼 경제관료에겐 실무적 지식이나 경험 못지않게 역사적 시각 또한 긴요하다는 생각이 들게한 오찬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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