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경기를 진단하는 권위있는 민간 기구인 전미경제조사국(NBER)이 미국이 지난 1982년 이후 가장 긴 경기 침체에 이미 빠졌다고 1일(이하 현지시각) 공식 발표한 것과 때를 같이해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의 입에서 '제로 금리가 불가피하다'는 발언이 사실상 처음 나와 주목된다.
이런 가운데 유럽중앙은행(ECB)이 4일 통화정책이사회에서 금리를 0.75%포인트 혹은 심지어 1%포인트까지 내릴 것이라는 관측이 갈수록 설득력을 얻고 있으며 같은 날 영국 중앙은행인 뱅크 오브 잉글랜드(BOE)도 큰 폭의 금리 인하를 발표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전세계의 인플레 부담이 급속도로 약화되는 것과 때를 같이하는 이 같은 금리인하 도미노에는 호주와 뉴질랜드, 그리고 한국과 태국 등 다른 아시아 신흥국들도 속속 동참할 것으로 관측된다고 로이터는 1일 내다봤다.
버냉키는 미 텍사스주 오스틴에서 열린 기업인 회의를 위해 미리 준비한 연설에서 "정책 금리를 더 내리는 것이 확실히 실행 가능한 방안"이라고 말했다.
이는 현재 1%란 기록적인 수준으로 떨어진 연방기금 금리를 사실상 제로로 더 떨어뜨릴 것임을 예고한 것으로 금융 위기가 발생한 후 FRB 수장이 공개적으로 '제로 금리'를 언급한 것이 사실상 처음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버냉키는 그러나 "전통적인 정책 금리를 통해 경기를 회복시키는데 분명히 한계가 있다"면서 경제가 더 나빠질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시인했다.
이와 관련해 그는 제로 금리하에서 유동성 공급을 위한 보완책으로 FRB가 장기채권을 매입하는 방법이 효과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FRB는 그간 환매 조건부 방식으로 단기 국채를 사고 팔아 '목표 금리'를 유지하는 통화 정책을 구사해왔기 때문에 장기 국채를 매입할 경우 극히 이례적인 조치가 된다.
이에 대해 채권시장 일각에서는 중앙은행이 통상적으로 단기 자금시장에 개입해 단기 금리를 조절함으로써 장기 금리에 영향을 미치는 방법을 써왔음을 상기시키면서 따라서 이런 정책에서 이탈하는 것이 채권시장을 왜곡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로이터는 지난달 28일 발표된 유로권 인플레가 기록적인 폭으로 하락한 점을 상기시키면서 따라서 4일의 ECB 통화정책이사회에서 금리가 당초 예상을 뛰어넘어 최대 1%포인트까지 떨어질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전했다. 유로 금리는 현재 3.25%이다. 또 BOE도 같은날 소집되는 통화정책회의에서 현재 3%인 기본 금리를 2%로 떨어뜨릴 것으로 시장이 관측하고 있다.
호주 중앙은행도 2일 금리를 최소 0.75%포인트 내릴 것으로 로이터는 내다봤다. 로이터는 이밖에 뉴질랜드도 금리 인하에 동참할 전망이라면서 소비자물가 상승폭이 11월에 4개월째 둔화된 것으로 1일 발표된 한국을 비롯해 태국 등 아시아 신흥국들도 금리인하 도미노에 동참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반면 인도네시아는 인플레가 11월에도 11.6%로 전달과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된 상황에서 여전히 인플레 진정에 통화 정책의 초점이 맞춰지는 대조를 보일 것으로 로이터는 분석했다.
이미 정책 금리를 사실상 제로 수준인 0.3%까지 낮춘 일본은행도 '금리 카드'를 놓고 계속 고민 중인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21일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무담보 콜 금리를 0.3%로 동결한 일본은행은 2일 긴급 회동해 경제 대책을 논의한다. 회의에서는 기업의 차입을 지원하는 방안이 중점 협의될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해 시라카와 마사아키(白川方明) 일본은행 총재는 앞서 정책 금리를 0.5%로 0.3%로 인하한 후 "금리를 더 내리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면서 일본이 또다시 디플레에 빠져들 수 있음을 경고해 금리 카드가 한계에 봉착했음을 사실상 시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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