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태(경주대 교수, 정치커뮤니케이션)
지난해의 끝자락에서는 ‘질서유지권’이라는 것이 발동되어 나랏일을 의논하는 의사당에 당사자들의 출입이 봉쇄되더니 새해 벽두에는 말로만 듣던 ‘경호권’이란 것이 발동되어 끝내 의사당 중앙홀에서 농성 중이던 의원, 보좌관들이 내쫒기고 끌려나는 꼴을 보게 되었다. 참으로 민망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었고, 보지 말아야 될 꼴불견을 마침내 보고야 말았다. 경제가 끝도 없는 나락으로 내려앉자 일거리가 없어 연말연시 장기휴업이 계속되더니 1월 실물경기가 사상 최악이라는 보도가 머리기사로 떠 있다. 중동에 드리운 전쟁의 암운은 ‘이스라엘 지상군 하마스 관통, 이란 헤즈볼라 전쟁개입 불사’, ‘유엔 안보리 휴전촉구성명 채택 실패’ 등 연 일 반갑잖은 소식을 쏟아내고 있다. 이것이 희망을 보고 싶은 새 해 첫 머리에서 듣는 우울한 소식들이다. 구름 끝에 눈보라, 슬픔 뒤에 오는 아픔인 것이다.
무엇이 세상을 이렇게 어둡고 슬프게 하는 것일까. 지난 해 이맘 때 이명박 정부가 정권을 인수하려고 준비하고 있을 때로 돌아가 보면 좀 설익은 정책이나 방침을 쏟아낼 때에는 불안한 가운데 가슴을 졸이기는 하였지만 그래도 새 정부에 거는 기대는 희망을 접어야 할 만큼 최악의 형편은 아니었다고 기억된다. 다만 다소 치밀하지 못한 몇 가지의 굵직한 정책 사업들이 향후 험난한 논란에 휘말릴 것이란 징조는 예견 되었지만.
그런데 결과는 불행하게도 모두가 걱정하고 우려했던 쪽으로 적중되고 말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세계경기추락의 쓰나미가 새 정부와 우리 경제를 강타한 것이다. 준비 없이 앉아서 속절없이 당하고 말았다. 지나친 자신감은 오만을 부르는 법이다. 500만 표 차이라는 절대 우위로 차지한 정권에다, 총선에서 마저 유례없는 다수의석을 차지하고 보니 ‘협상’보다는 ‘밀어붙이기’가 손쉽고 간단했을 것이다. 대통령의 눈은 더 커졌을지 모르나 귀는 더 좁아졌고 정부 여당의 협상 테이블은 점점 더 구석자리로 밀려났다. 대선 경쟁의 뒤탈이 치유되기는커녕 덧이 나서 사사건건에서 나쁜 징조를 드러내고 있다. 이렇게 하여 ‘소통’과 ‘화합’이란 단어가 멀어져 갔다. 민주주의 나라에서 대화와 타협, 그리고 소통과 화합이란 말이 자취를 감추면 무엇으로 정치를 할 것인가. 자라보고 놀란 가슴은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고 일자리 만드는 한국판 뉴딜정책이라며 미처 규정 검토도 끝나기 전 기공식부터 하고 보는 ‘4대강 살리기 사업’도 대운하 건설 밑자리 깔기라고 의심받는 형국이다. 믿음이 없는 환자에게는 비록 화타의 처방이라 하여도 백약이 무효인 것이다, 더구나 100건도 더 되는 법안이 농성과 파탄으로 얼룩진 정기국회에서 곤히 잠들어 있으니 그 민생(民生)이란 말이 무색하다. 검은 구름에 눈보라 까지 몰아치는 새해 벽두이다. 소한, 대한 한파 넘기가 어렵다지만 올 해 만큼 힘든 해도 일찍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희망은 실낱같을지라도 소중한 것이다. 여당은 자기편 들어주지 않는다고 서운해 하지만 국회의장이 직권상정 유보하겠다는 말에 야당의 농성이 풀리는 것이나 워싱턴에 입성한 오바마 차기 미국 대통령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민주 공화 양당 대표와 마주앉아7,750만 달러 경기부양예산을 조기집행 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것이나 다 한 가지로 나랏일 보는 지도자들이 보여주는 희망의 메시지인 것이다.
대화와 협상, 소통과 화합만이 꽁꽁 얼어붙은 정치와 경제, 나아가 민생을 구하는 유일한 처방임을 알았으면 좋겠다. 황소걸음이 천리를 간다고 했던가. 새해 소띠 해에는 느리지만 꾸준히 쉬지 않고 제 갈 길을 가는 소처럼 기다리며 천천히 앞을 보고 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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