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혜성 같은 존재야.” 흔히 뛰어난 능력의 사람이 갑자기 나타났을 때 이렇게 말한다. 정치계에도 혜성 같은 존재가 있다. 정치신인으로 출발했지만 그가 걸어온 이력은 너무 화려해 빛이 난다.
한나라당 박영아 의원은 1979년 대입 예비고사에서 전국 여자수석을 차지한 뒤 서울대 물리학과에 입학했고 미국 펜실베니아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불과 28세에 명지대 교수가 됐다.
그러나 엘리트코스를 밟으며 혜성처럼 학계에 등장한 것과 달리, 박 의원의 교수가 되기까지 과정은 눈물겹다. 물리학과 내에서도 유일한 여학생이었고 학과 내 분위기도 여성을 반기는 분위기는 아니었다고 한다. 당시 과학계는 여성 박사가 쓴 논문은 읽어보려고 하지도 않을 만큼 보수적인 곳이었다. 그러나 박 의원을 가로막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늘 완벽하고 성실하게 일에 임하는 박 의원은 그런 과정을 이겨내고 당당하게 자연과학계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자리까지 올랐다.
박 의원은 한국물리학회 부회장을 거쳐 지난해 3월에는 아시아태평양물리학연합회 여성위원회의 초대위원장으로 당선됐다. 한국 자연과학계에서는 ‘보물’이라고 불릴 만큼 그의 입지는 확고했다.
이런 그가 교수생활을 접고 정치에 뛰어들겠다고 선언했을 때 주변인들은 놀라움으로 가득 찼다. 교수와 연구자로서 착실히 일 해온 그였기에 놀라움은 배가 됐다. 그러나 박 의원이 교수협의회 부회장으로 일하면서 주변인들의 우려와 놀라움은 점차 사라졌다. 늘 해오던 것처럼 정치인도 잘해내리라는 기대가 줄을 이었다.
지인들은 박 의원을 두고 논리정연한 달변가이자 완벽주의자라고 평한다. 사람들의 평가대로 박 의원은 늘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해왔다. 그런 노력의 결실이었는지 국회입성을 선언하고 난 직후 그의 행보는 탄탄대로였다. 지난해 4.9총선에서는 3선의원인 맹형규 의원을 제치고 전략공천을 받았다. 그만큼 한나라당에서도 박 의원에 대한 신뢰가 컸다. 이 때문에 ‘박데렐라’라는 별명도 얻었다. 언론은 정치에 발을 담근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인이 한나라당의 핵심 전략지역인 서울 강남벨트 지역구를 차지한 것에 놀라움을 표했다. 그리고 모두의 기대대로 여의도에 입성했다.
지난 2월 ‘매니페스토 약속대상’ 최우수상까지 수상한 박 의원에게 남은 과제는 아직도 많기만 하다. 그러나 ‘늘 해오던 것처럼’ 박 의원이라면 남은 과제도 완벽하게 소화해낼 것임이 분명하다.
이보람 기자 boram@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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