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 임원들이 퇴임 후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업체나 거래기업 등에 재취업하는 관행을 지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퇴임한 지 7~10년이 되도록 여러 업체를 전전하며 최고경영자(CEO)나 고문 역할을 맡고 있는 인사가 적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심지어 노조가 "퇴임 후 재취업한 전직 임원들 중 3년 이상된 경우 지원을 중단할 것"을 공식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2일 산업은행과 금융노조에 따르면 지난 2000년 퇴임한 전 산은 이사 K씨는 산은캐피탈 사장을 역임한 후 D건설과 K기업에서 각각 감사와 대표이사를 맡았다.
D건설과 K기업은 산은 출신 인사를 기용하는 대가로 산은으로부터 지속적인 지원을 받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그는 성신양회 대표를 맡는 등 9년째 산은 관계 회사 경영에 참여하면서 산은 지원을 이끌어내는 매개 역할을 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지난 1997년 부총재를 역임했던 K씨도 산은이 지분을 27.9% 보유하고 있는 GM대우에서 이사로 재직했다.
벤처비리 의혹 사건에 휘말려 지난 2003년 4월 산은에서 나온 P씨도 산은이 2대 주주(지분율 18.67%)로 있는 동해펄프 관리인으로 재직하고 현재는 동양메이저 상임이사로 근무 중이다.
또 산은 이사 출신인 O씨는 2001년 퇴임과 함께 동부그룹으로 옮겨 현재 그룹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산은은 동부그룹 계열사인 동부제철 지분 10.1%를 가진 2대 주주이며 동부그룹 관련 기업대출 대부분이 산은으로부터 나오고 있다.
지난 1월 단행된 정기인사에서도 퇴임한 산은 임원 4명 중 2명이 산은이 지분을 대거 보유하고 있는 업체로 자리를 옮겼다.
민유성 산업은행장과 코드가 맞지 않아 산은을 떠난 전 재무관리본부장 K씨는 퇴사 후 한 달도 되지 않은 지난달 20일 대우조선해양 사내 이사로 취임했다.
산은은 대우조선 지분 31.26%를 보유한 대주주다. 전 리스크관리본부장 L씨도 지난 2일 산은이 2대 주주(지분율 14.86%)로 있는 쌍용양회의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산은 측은 장기간 근무한 임원들의 노하우를 활용하기 위해 해당 기업에서 임원으로 채용하는 것일 뿐 대가성 인사는 아니라고 해명했다.
산은 관계자는 "각 임원들이 개별적으로 지인들을 통해 재취업하는 것으로 은행 차원에서 지원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금융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산은은 기업 금융을 주로 하기 때문에 거래 기업이나 지분 보유 회사와 돈독한 유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며 "이에 따라 산은 퇴직 임원들이 자연스럽게 관련기업으로 이직하는 사례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산은에서 퇴직한 후 한 차례 정도 예우 차원에서 이직하는 것은 관례로 인정한다 하더라도, 산은과 관계가 있는 여러 기업들을 릴레이식으로 돌면서 경영에 참여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김유경 기자 ykkim@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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