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천363억원 영업이익, 2007년 765억원 영업이익, 2006년 36억원 영업이익. 2008년 매출 2조4천억원.
최근 서울중앙지방법원이 회생절차(법정관리) 개시 결정을 내린 중견 해운업체 삼선로직스의 영업 실적이다.
1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1983년 설립돼 매출 규모로 해운업계 7위까지 오른 삼선로직스는 3년 연속 흑자라는 성적표를 내고도 결국 법정관리에 들어가게 됐다.
일반 제조업체라면 사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드문 일이 어떻게 일어나게 됐을까.
해운업계에서는 2008년 시황이 고점을 찍고 하강기에 접어드는 징후가 나타났을 때 정부가 해운산업 재편을 시작했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2004년 73개사였던 국내 해운선사는 2005년 세계 해운 시황이 급격하게 치솟으면서 신생 선사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고, 지난해 말에는 2004년의 2배가 넘는 177개로 늘었다.
신생 선사들이 적게는 수억원하는 배를 몇 척씩 가동하며 영업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이른바 용선 관행 때문이다.
배를 빌려 쓰는 용선 제도는 전 세계 해운업계의 관행이지만, 각국 해운업산업의 성숙 정도나 업체에 따라 조금씩 규모가 다르다.
국내에서는 자기 배 한 척 없이 다른 해운업체로부터 용선해서 다시 이를 빌려주는 영세 해운업체와 다단계로 이뤄진 재용선 관행이 해운업 부실의 뇌관이 됐다.
선주협회 관계자는 "사선(社船)을 보유하지 않고 용선을 해 다시 대선 하는 업체가 50여 개 정도 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배를 빌려줬다가 용선료를 제때 받지 못해 애를 먹은 업체들도 꽤 있다"고 말했다.
일본 해운업계는 한 차례 용선만 허용하는 자체 가이드라인을 준수하고 있다.
국토해양부가 파악하는 실태는 국내 해운업계의 용선 규모가 평균 3~4단계이지만, 외국 해운업체들까지 들어와 7~8단계에 걸친 용선도 많다는 게 업계의 얘기다.
2003~2004년 1만5천 달러 안팎이었던 5만~6만t급 건화물선의 용선료는 2008년 한때 6만 달러까지 치솟았다.
원자재 가격이 급상승하면서 배가 부족하기도 했지만, 용선료 일부는 거품이었다는 게 업계와 정부의 시각이다.
끝모르고 치솟았던 운임은 금융위기로 물동량이 줄고, 원자재 시장에서 투기세력이 빠져나가면서 폭락했다.
선주협회 관계자는 "작년 말부터 용선 사슬을 파악해보려고 애썼지만 몇 단계나 걸쳐 있는 곳이 많아 어려웠다. 외국 해운업체들이 디폴트를 선언해버리면 용선해 준 국내 해운업체들은 고스란히 손해를 보게 된다"라고 말했다.
삼선로직스도 지난해 파산한 스위스 아르마다 싱가포르 법인으로부터 4천500만 달러의 용선료를 받지 못했다.
금융권의 압박도 이어졌다.
용선 사슬에 묶여 순간적인 유동성 위기에 빠진 해운업체들은 금융기관 문턱조차 넘지 못했다.
일부 해운업체들은 장기운송계약(COA)으로 들어오는 수입까지 다른 선사들로부터 압류당했지만, 금융권의 보증을 받지 못해 고스란히 현금 흐름이 막힐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중소 해운업체 관계자는 "금융기관에서 고금리를 요구하는 바람에 대출은 엄두도 못냈다"며 "선박은 떼이고 돈은 받지 못하고 대출은 안 되는 동안 어디로부터도 지원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해운업의 위기 신호는 2007년 초부터 나왔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은 1월 초 동향보고서에서 "컨테이너선 시장에서 우리나라 선사들의 입지가 위축될 가능성도 있으며, 선박량 증가에 따른 선사 간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라고 전망했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불어닥친 지난해 9월부터는 해운 시황 전문 기관들이 장기 침체에 대비해야 한다는 경고를 쏟아냈고, 건화물선 시장도 좀처럼 회복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주류를 이뤘다.
이때부터 해운업 옥석 가리기가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한쪽에서 나왔으나 건설, 조선, 자동차 등 다른 산업에 순위가 밀리면서 해운업 구조조정은 이달 들어서야 시동이 걸렸다.
정부는 내달초 해운업 구조조정 방안을 발표하면서 재용선 관행을 규제하고, 일부는 채무조정 프로그램을 운영해 빚을 감면해주는 방안 등을 제시할 예정이지만 업계에서는 실제 시행에 들어갈 때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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