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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노동’이라는 말은 북한이나 좌파 혹은 파업을 하는 시위자들의 붉은 머리띠를 떠오르게 한다. 노동은 '빨갱이'로 비하되고 금기시 돼 왔다. 2002월드컵에서 붉은 물결이 쳤을 때 우리 사회의 레드 콤플렉스가 완화된 것이 아니냐는 말도 나왔다. 그러나 여전히 ‘노동’은 우리 사회에서 외면 받고 있다.
이 레드 콤플렉스 사회에서 꿋꿋이 ‘노동계의 대부’로 살아온 사람이 있다. 그는 한나라당 강성천 의원이다. 강 의원은 한나라당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된 과정은 한편의 영화다. 중학교 중퇴가 학력의 전부였던 그는 1958년 버스 조수로 시작해 1972년 신진운수에서 분회장을 맡은 이래 서울지부장을 거쳐 전국자동차노동조합연맹 위원장까지 37년 간 ‘노조위원장’이었다. 50년 넘게 노동자로 살아온 그는 “자신은 여전히 노동자”라고 말한다.
버스 운전사 시절 부당함을 많이 겪어본 그는 누구보다 노동자들의 마음을 잘 안다. 그는 “그동안 노사가 갈등과 대립이 잦았던 것은 신뢰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필요한 재정과 제도를 마련하기 위해 발로 뛰고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인 강 의원은 민생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새벽 인력시장의 고용현황 및 체감경기를 파악하거나 노동자들을 직접 만난다.
지난달 27일에는 ‘낙동강 정책탐사 투어’를 떠났다. 영주, 상주, 구미, 대구에 이어 달성 도동과 창원 대산 정수장을 방문하는 514㎞의 낙동강 투어 등을 통해 발로 뛰는 현장정치를 실현하고 있다. 또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고통분담과 일자리 나누기, 실업대책과 취약계층에 대한 사회안전망 확충을 위한 법안마련에 힘쓰고 있다.
‘노동계의 대부’로 살아온 그의 삶은 노동조합의 살아있는 역사다. 그보다 노사화합을 추구하는 상생노동운동으로 노·사·정으로부터 얻은 신뢰는 우리 사회의 한 획을 그을만하다.
이보람 기자 boram@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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