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자가 무대에 들어서자 우뢰와 같은 박수와 함성이 터져 나온다. 연주가 시작되고 청중은 음악에 빨려들어 숨소리조차 없는 순간, 지휘자의 손끝 하나하나에 음악이 춤춘다. 작은 체구에 청중을 압도하는 카리스마. 지휘자 여자경(37)씨를 지난 토요일 여의도에서 만났다.
- 지난 16일 예술의전당에서 있었던 교향악축제에서 KBS교향악단 지휘를 맡으셨는데요. 공연 어떠셨습니까?
“아쉬움이 남지만 많이 배우고 감사한 무대였습니다. 상임지휘자가 오랫동안 공석이었기 때문에 KBS만의 색깔이 약해진 상태였고 리허설 기간도 3일밖에 안돼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지휘자의 역할을 하면서 한국 사회의 특성이나 문화 등 여러 가지를 배울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 교향악축제 20년 역사 중 지휘봉을 잡은 첫 여성이신데요. 부담감은 없으셨는지요?
“한국이라서 더 큰 주목을 받는 것 같아요. 여자라서 기회가 안 오기도 하고, 반대로 많이 오기도 하는 것 같지만 여성이라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으면 합니다. 지휘자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리드해야 사람의 마음을 뚫고 들어가는 힘을 발휘합니다. 실력은 기본이고 많은 여건을 갖춰야 하지요. 한마디로 ‘감당’해야 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많게는 100명의 단원들을 감당해야 하고, 리허설이나 연주 중 일어나는 해프닝부터 연주가 끝난 후의 여파까지 모두 감당해야 합니다. 청중들이 보기에는 연주회의 모든 것이 지휘자의 책임처럼 보이거든요. 생리적으로 여성은 감성적일 수 있는데 이런 많은 부분을 받아들이고 감당해 야 하는 것이 힘든 것 같아요. 힘들지만 해내야 하는 것이고요.”
- 처음 작곡을 전공하다 지휘로 바꾸셨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계기가 있으신가요?
“작곡과 지휘는 같은 라인입니다. 지휘라는 건 연습이 없습니다. 악보를 보고 계속 공부하는 것이지요. 작곡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곡을 이해하면 행동은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지요. 지휘는 하나의 음악을 연주하기 위해서 연주자들에게 사인으로 도와주는 것입니다. 어떤 계획이 있어서 지휘자가 됐다기 보다는 자연스럽게 흘러오게 되었습니다. 곡들을 공부하고 싶은 갈증이 있었고, 공부를 가장 깊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지휘인 것 같아요. 하면 할수록 공부할 게 많은 것이 이 분야이기도 하구요. 많이 힘들지만 그럴수록 하고 싶은 일인 것 같아요.”
- 클래식의 대중화와 지휘자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드라마로 ‘베토벤 바이러스’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혹시 보셨는지요?
“요즘에도 이런 지휘자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나를 따라와’ 보다는 ‘우리 같이 가자’가 통하는 시대가 된 것 같습니다. 해와 바람의 나그네 외투 벗기기 내기에서 결국 해가 이기는 이야기처럼 꼭 강하게 나가는 것이 리더십이고 카리스마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진정한 카리스마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특성으로 상대방을 이해시켜 그 사람이 나를 따라올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서로 교감이 되고 단원들이 지휘자와 호흡이 잘 맞는구나 라고 생각해야 되는 것 같아요. 가장 중요한 것이 오케스트라 단원들과의 관계죠. 단원들과의 소통이 잘 이뤄지면 연주도 청중들에게 잘 전달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연주의 평가는 청중에게 맡겨두는 거지요.”
-기업의 경영과 지휘를 비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특별한 리더십이 있으신지요?
“개개인의 연주자들을 존중합니다. 모든 단원들이 프로들이고 자기 자리에 대한 책임감이 있다고 믿습니다. 잘 안 되는 부분은 본인들이 다 알고 있고 한번 정도 지적해 주면 다음 번에는 잘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그친다고 되는 것은 아니죠.”
- 마지막으로 클래식 초보자들이 오케스트라를 즐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요즘에는 기획콘서트가 많이 생긴 것 같아요. ‘천원의 행복’ ‘11시 콘서트’ ‘여자가 행복한 음악회’ 등 대중적인 음악회를 찾아가서 많이 듣고 음악회에 친숙해지다 보면 정기연주회 등 새로운 레퍼토리로 관심이 옮겨가는 것 같아요. 처음부터 어렵고 무거운 음악회보다는 주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음악회랑 친해지면 좋을 것 같아요.”
남성의 영역인 지휘에 한발 한발 다가가기 위해 겸손한 마음과 끊임없는 노력으로 실력을 쌓아가야 한다는 말로 끝맺으며 많이 힘들지만 지휘할 수 있어 너무 행복하다고 덧붙였다. 이번 주에 다시 러시아에 간다는 그는 그동안 바빠서 잘 놀아주지 못한 다섯 살 난 딸과 오늘은 놀아주기로 했다며 환하게 웃었다.
이정아 기자 ljapcc@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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