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금융위기의 여파로 고통받던 중남미의 소국 자메이카는 올 초 '새로운 은인' 덕에 위기를 넘겼다.
'전통의 우방'인 미국, 영국이 '내 코가 석 자'라며 자메이카의 도움 요청에 난색을 표한 가운데, 뜻밖에도 중국이 1억3800만달러의 차관을 제공한 것이다.
중국이 선뜻 자메이카의 '구원투수'로 나서자, 불과 1년 전만 해도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우려하는 기사를 쏟아내던 자메이카의 언론들은 `관대한 중국'을 칭송하는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중국 주재 자메이카 대사인 코트니 래트레이 역시 한 인터뷰에서 중국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시점에 자메이카에 도움을 주었다면서, 미국이나 영국은 정작 중국보다도 자메이카의 발전 욕구에 대한 이해가 깊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미국, 영국과 같은 '전통의 강호'들이 금융위기로 맥을 못 추는 사이, 국제사회의 '차세대 리더'로 부상하려는 중국의 움직임이 두드러지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WP) 인터넷판이 23일 보도했다.
중국의 '대국 행보'는 비단 제 3세계 국가들에 대한 차관 제공에만 그치지 않는다.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를 비롯한 중국 지도자들은 최근 기회가 있을 때마다 금융위기를 촉발한 서방 위주의 금융 시스템을 비난하면서, 미 달러화를 기축통화로 하는 현재의 금융 시스템을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중국은 또 최근 5개월간 6개국을 상대로 총 950억달러에 달하는 통화 스와프 협정을 체결, 위안화의 영향력을 확대시켰다.
바야흐로, '워싱턴 컨센서스'에 대한 '베이징 컨센서스'의 도전이 시작된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20년전, 미국 경제학자인 존 윌리엄슨이 경제 위기에 처한 중남미 국가들에 대한 해법을 내놓으면서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워싱턴 컨센서스'는 자유무역, 공기업 민영화, 규제 완화 및 정부 재정지출 축소 등을 포함하는 미국식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 미 재무부 등 워싱턴에 본부를 둔 3대 기관의 입장을 대변한다.
반면 중국 칭화(淸華)대의 라모 교수가 지난 2004년 제시한 개념인 '베이징 컨센서스'는 정부 주도의 점진적 시장 개혁을 뜻하는 경제 정책이다.
중국 사회과학원의 청언푸(程恩富) 교수는 '베이징 컨센서스'가 외국과의 무역에 개방적인 동시에 자국 산업의 육성에도 힘쓰는 정책이며, 선(先) 경제발전ㆍ후(後) 정치개혁을 특징으로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세계 경제위기가 확산되면서, 인도를 포함한 더 많은 국가들이 베이징 컨센서스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홍콩 과학기술대의 배리 소트먼 교수 역시 '베이징 컨센서스'가 그동안 서방 국가들로부터 '민주적인 기관들에 대한 압제 없이는 경제 성장을 이뤄낼 수 없는 정책'이라는 비아냥을 들었지만, 최근에는 서방으로부터 '무시당했던' 국가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누리엘 루비니 미 뉴욕대 교수는 세계 금융위기를 계기로 "각국에는 그 국가에 맞는 고유한 경제 정책이 있으며, 어떠한 통화 시스템도 더이상 국제사회에서 독점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는 점이 입증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의 국제 통화 시스템이 당장 새로운 시스템으로 대체될 것이라고 생각지는 않지만, 중국의 위안화가 앞으로 5~10년안에 새 기축통화로 부상할 가능성은 있다고 덧붙였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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