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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가 사랑한 나무 장자가 사랑한 나무 | ||
강판권 저/ 민음사 |
"가능성이 있을 때 희망은 존재한다"
심상훈의 Book&Talk
공자가 사랑한 나무 장자가 사랑한 나무/ 강판권 저/ 민음사
“집게손가락 끝에 침을 묻히고 차근차근 페이지를 넘기면서 눈알이 빠질세라 눈여겨 책장을 들어다 보는 숙독은 잠으로 치면 숙면(熟眠)과 같다.”
한국인의 ‘죽음론’과 ‘인생론’을 완성한 한국학의 석학 김열규 교수가 지은 ‘독서’라는 짤막한 제목을 단 책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읽다가 너무 좋아서 연필로 별까지 치면서 밑줄을 쳐두었더랬다. 그러면서 절묘하게 속독과 숙독 사이의 경지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독서 고수의 내공이 부러웠더랬다. 집게손가락 끝에 침을 발라가면서 한가롭게 책 읽기에 몰입했던 날이 그 언제였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나이 탓일까. 마흔 중반이 넘으면서 부터 숙독은 고사하고 숙면을 취한지가 벌써 오래다. 게다가 오월이 시작되고서는 잠 못 이루는 밤이 잇따라 잦다. 왜? 그랬을까.
사월은 그냥 순탄했다. 오히려 내가 참 좋아했던 세 사람을 잃은 오월이야말로 내겐 잔인한 달이다.
이승에서의 세 사람은 장영희, 여운계, 그리고 노무현 이었다. 그렇게 뭇사람들에게 이름이 불리웠다. 앞의 두 분을 나는 직접 만났던 적이 있다. 그러나 제16대 대한민국 대통령을 지낸 노무현 전 대통령 만 직접 보지 못했을 뿐이다. 지난 23일에 그가 죽었다. 앞의 두 분과는 다르게 자살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난 그를 사랑하는 ‘노사모’가 결코 아니다. 심지어 한때는 그의 이름을 경제 때문에 ‘너무혀’로 비꼬았던 적도 있다. 하지만 이제부터 나는 이 책의 제목을 본 따 감히 ‘국민이 사랑한 나무혀’로 그 분을 기억하고자 한다.
책은 2003년에 나왔다. 논픽션상 수상작임에도 불구하고 잘 팔린 책은 아닌 듯하다. 하지만 이건 분명하다. 핫도그나 감자튀김 따위의 인스턴트 음식의 책이 아니라 오래 묵을수록 가치가 더해지는 묵은 ‘된장 맛’이라는 것. 어디 그뿐인가. 책장을 잡는 순간이 곧 집게손가락 끝에 침을 묻히게 되는, 그 시작이라는 ‘숙독의 재미’를 맛보게 될 거라고는 에둘러 말하지 않고서 진실로 장담할 수 있다.
왜? 책(冊)이라 부르는지 아시는가. 한자는 문자를 기록하는 데 쓰인 나무 중에서 가장 오래된 대나무를 엮어 놓은 것을 가리킨다고 한다.(22쪽) 대학생이 제대로 개념을 읽지 않는 한자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大學’이다. 대학은 ‘큰 배움’ 정도로 이해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 대학은 딱히 ‘그렇다’고 동의하진 못하겠다.
책 중에 압권은 이것이다. 요컨대 공부의 개념(42쪽)을 설파하는 대목이 그렇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공부’는 원래 성리학의 개념이란다. 저자는 “불행히도 대한민국에는 진정으로 성리학을 이해하는 사람이 드물다”라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유치원에서 실천하고 있는 성리학적 공부 방법을 대학생은 물론이고 모든 국민들에게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단서는 별도 달았다. ‘성리학적 공부 방법이 유일한 해답일 수는 없다’가 그것이다. 그러나 성리학적 공부 방법은 적어도 놀이와 공부의 구분에서 오는 문제점을 극복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라는 말에는 깊이 공감하는 바 크다. ‘나무와 성’(143쪽)은 꼭 한번쯤 읽어보시라.
저자는 말한다. “가능성이 있을 때 희망이 존재한다.”라고…. 다가오는 유월이 제발 그랬으면.
북칼럼니스트(작은가게연구소장)ylmfa9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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