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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세페 베르디 | ||
1813~1901 |
기업 경영의 화두가 변하고 있다. 구본무 LG회장은 최근 기업 간담회에서 ‘디자인 LG’를 언급했다. 통상적 수준의 디자인 개선으로는 고객에게 차별화된 ‘감동’을 선사할 수 없음을 강조한 것이다.
세계적인 경제 위기를 겪은 재계 인사들은 ‘디자인’ ‘마케팅’ ‘연구개발’만이 고객에게 감동을 안겨줄 수 있는 핵심 키워드라는데 인식을 같이 한다. 위기 대응을 넘어서 환율하락 등 경영환경의 급속한 변화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됐기 때문이다.
21세기의 경영과 클래식 예술은 고객의 ‘마음’을 뒤흔드는 ‘감동’의 전략이 절실하다는 점에서 맥이 통한다 할 수 있다.
생각의 범주를 뛰어넘는 ‘감동의 신화’
클래식을 오래 들은 사람들은 클래식 속에는 헤비메탈을 들으며 머리를 흔들거나 발라드를 들을 때만 쏟아질 것 같은 눈물이 모두 들어 있다고 한다. 클래식이라는 ‘산’에는 깊이 들어 갈수록 더 많은 것이 담겨 있다는 말이다.
연주그룹 콰르텟엑스의 리더 조윤범은 저서 ‘파워클래식’에서 서양현대음악 기법을 통한 동아시아적 이미지의 표현이라는 평을 받아온 현대음악가 윤이상의 일대기를 수록해 놓았다.
윤이상은 1959년 홀연히 독일로 유학을 떠나 중심음기법을 이용한 ‘일곱 악기를 위한 음악’을 발표한다.
12음기법이 온음과 반음간의 경계를 낸 것이라면 윤이상이 고안한 중심음기법은 한 개의 음이라도 장식을 이용해 변형을 가한 것이다. 서양이 점과 점을 연결해 선을 그리는 방식이었다면 동양은 한 획을 선을 긋더라도 변화를 준다. 음들은 계속해서 미끄러지고 떨면서 수많은 변화를 일으킨다.
서양의 작곡가들은 그의 이런 시도가 12음기법의 아성을 무너뜨릴 만한 놀라운 도전으로 평가했다.
세계적인 지휘자인 금난새는 ‘금난새와 떠나는 클래식 여행’에서 20세기 대표적인 인상파 음악가인 드뷔시를 ‘형식을 거부한 반항아’로 묘사한다.
드뷔시는 파리 음악원에서 별난 학생으로 통했다. 선생님이 가르쳐 주는 것을 따르기 보다는 스스로 만들어 낸 화음을 연주하곤 했던 것이다. 때문에 피아노 연주와 작곡에서는 그 재능을 인정받았지만 화성 부분에서는 번번이 수상의 기회를 잃었다. 그러나 드뷔시는 결국 그 만의 독특한 기법이 돋보이는 칸타타 ‘방탕한 아들’을 작곡해 이탈리아로 유학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로마대상의 영예를 차지하기에 이른다.
악재를 넘어선 ‘인생이라는 무대 위의 나’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피터 드러커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이재규는 저서 ‘CEO를 위한 클래식 작곡가 에프소드’에서 다음과 같은 일화를 소개한다.
드러커는 오페라 ‘팔스타프’라는 곡을 듣고 그 활기참에 큰 감명을 받는다. ‘팔스타프’는 베르디가 80세가 되던 해 완성해 낸 작품이다. 베르디는 그 나이에 왜 또 힘들게 오페라는 작곡하느냐는 물음에 “음악가로서 나는 일생동안 완벽을 추구해 왔다. 나는 한 번 더 완벽에 도전해 볼 의무가 있다”고 답했다. 이 답을 들은 드러커는 ‘완벽을 기하기 위한 노력’을 일생의 길잡이로 삼겠다고 결심한다.
하이든의 제자이기도 한 베토벤의 이야기도 빠질 수 없다. 베토벤은 귀가 거의 들리지 않는 것에 대한 고통을 자신의 ‘하일리겐슈타트 유서’를 통해 드러낸다. 32살에 자살을 결심하고 쓴 것이다. 그러나 유서의 마지막 부분에는 그럼에도 더 많은 창작을 하기 위해서는 살아야겠다는 내용을 적는다. 이후 그가 작곡한 곡들은 역설적이면서도 매우 쾌활하고 낙천적인 느낌을 선사한다. 1808년에 그가 작곡한 교향곡 6번 ‘전원’은 디즈니 애니메이션 ‘판타지아’에서 제우스가 번개를 던지다가 구름을 이불 삼아 잠드는 장면으로 명쾌하게 표현된다.
‘시냇물’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바흐는 말년에 ‘보이지 않는 음악’을 작곡한 것으로 알려진다. 시력이 악화돼 가던 바흐는 자신이 사용했던 음악 기법을 후세에 전달할 교과서를 만들어 낸다. 간단한 멜로디를 시작으로 이를 뒤집어 18개의 예제를 만들어낸다.
그의 마지막 19번째 곡은 천국의 계단을 올라가는 듯한 장대한 선율로 이뤄진다. 그러나 결국 그는 네 개의 단음으로 시작하는 멜로디를 잊지 못한 채 시력을 상실하고 만다.
오늘날에도 바흐의 마지막 작품을 공연하는 연주자들은 미완성인 채로 공연을 마무리 한다. 공연을 본 사람들은 ‘맺어지지 않는’ 심오한 여운에 그 자리에서 한 동안 일어나지 못한다고 전해진다.
인생의 무대 위에 선 클래식 예술가들은 '감동의 순간'을 위해 무대가 완전히 막을 내릴 때까지 한 걸음도 멈추지 않는다.
정진희 기자 snowway@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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