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이 계약이 만료되는 비정규직 직원들을 대상으로 사직서 제출을 강요하고 있다. 비정규직법 개정 및 유예안이 국회에서 표류하고 있는 가운데 향후 예상되는 법적 공방을 피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6일 금융권에 따르면 일부 시중은행은 이달 초 계약이 만료되거나 이미 퇴사한 비정규직 직원들에게 사직서 제출을 요구하고 있다.
A은행은 '계약해지 통보서'를 퇴직한 비정규직 직원들에게 발송한 후 본인 확인을 유도하고 있다. B은행도 퇴직한 비정규직 직원들에게 '사직서'에 서명할 것을 권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노조 관계자는 "C은행이 비정규직법 시행 후 비정규직 직원들의 정규직 전환 기회를 원천 봉쇄하는 것은 법을 악용하는 전형적인 사례"라며 "책임있는 은행이 보일 행태는 아니다"고 지적했다.
은행들이 사직서를 받고 있는 것은 비정규직법 시행으로 쫓겨난 직원들이 법적 조치를 취할 것에 대비한 조치로 보인다. 사직서를 근거로 자발적 퇴사 내지는 노사 간에 합의한 퇴사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차윤석 금융노조 비정규직지부 위원장은 "주요 은행들이 이달 1일부터 계약이 만료되는 직원들에게 사직서에 서명할 것을 재촉하고 있다"며 "이는 향후 발생할 수 있는 법적 공방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퇴직 예정이거나 이미 퇴사한 비정규직 직원들은 사직서 제출 요구를 거부할 경우 사측이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을 수 있다는 불안감에 서명에 응하고 있다.
그러나 사직서 제출 여부와 관계없이 근로기준법 제36조는 근로자가 퇴직한 경우 지급사유가 발생한 때로부터 14일 이내에 임금, 퇴직금 등 일체의 금품을 지급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오히려 퇴사 이유가 불확실한 사직서에 서명할 경우 자발적 퇴사로 인정돼 실업급여 수당을 받지 못하는 등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이에 대해 은행들은 퇴직 처리를 위한 통상적인 절차로 사직서를 받고 있을 뿐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D은행 인사부 관계자는 "계약해지 통보서를 발송한 것은 사실이지만 정상적인 퇴직 절차"라고 설명했다.
E은행 인사팀 관계자도 "근무 중 취득한 고객 정보를 누설하지 않겠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사직서를 받는 것"이라며 "의무 사항은 아니기 때문에 비정규직 직원이 선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가장 많은 인원에게 사직서 제출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진 F측은 "사직서는 물론 유사한 형태의 서류도 발송한 바 없다"고 강하게 부정했다.
아주경제= 이재호 김유경 기자 gggtttppp@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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