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컬렉터가 마음에 드는 그림을 구입할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화랑을 통해서는 물론 옥션이나 아트페어에 직접 참가, 원하는 그림을 선택할 수 있다. 요즘에는 온라인을 통해서도 누구나 손쉽게 구매할 수 있다. 미술품의 유통구조는 몇 년 사이에 크게 다변화되었다.
그렇다면 개인 컬렉터가 소장하고 있는 그림을 다시 시장에 내놓는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대부분의 화랑에서는 이러한 방식의 거래가 전무하거나 극히 제한적이다. 소장품을 위탁 판매하는 옥션의 경우도 연간 판매 작품수를 따져보면 일부에 불과하다.
국내 처음으로 미술시장에서 유통된 작품 실거래 가격을 정리한 ‘2009 미술작품가격’과 투자 상식을 소비자 시각에서 새롭게 조명한 ‘미술시장 뒤집어보기’라는 저서를 연이어 출간하며, 미술시장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박상용 아트마켓애널리스트는 이런 현상에 대해 “되팔 수 없는 그림은 죽은 그림이다”고 정의한다.
- “되팔 수 없는 그림은 죽은 그림이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림은 이제 단순한 감상 대상에서 벗어나 재테크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많은 소비자들이 미술시장에서 작품을 투자 대상으로 구입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작품을 소장한 사람 중에 자신의 소장품이 돈이 되기를 기대하지 않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림값이 오르면 무얼하나. 필요할 때 환금이 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진짜 ‘그림의 떡’일 뿐이다. 많은 컬렉터들이 사두면 돈이 된다는 감언이설에 작품을 구입하지만, 정작 그것을 되팔려고 나서보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절망한다.
그림을 되팔 수 있다는 것은 바로 그림시장의 선순환을 의미한다. 그림은 사다 보면 점차 눈이 뜨이고 좋은 작품에 대한 욕심도 생기게 마련이다. 이럴 때 소장품중 마음에 들지 않는 몇 작품을 되팔고 비용을 더 들이더라도 좋은 작품을 사고 싶어진다.
그러나 지금처럼 그림을 되팔 수 없는 구조속에서는 소장자의 욕심은 어느 선에서 정지될 수 밖에 없다. 아마도 집집마다 감상 가치로만 만족하며 죽어있는 작품이 수 만 점이 넘을 것이다."
- 소비자들은 모두가 되팔기를 원하는가?
"물론 컬렉터중엔 순전히 미술품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림을 구매하는 애호가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작품 구입자들은 그림이 감상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투자의 대상이기를 원한다. ‘투자’를 탓해서는 안된다. 기존 시장의 공급자들은 작품을 팔 때 어떻게든 비싸게 팔려고 하면서, 더욱이 그들 스스로 투자대상이라고 부추기면서도, 정작 소비자가 작품을 되판다거나 투자 운운하면 마치 예술을 폄하하는 것처럼 탓하는데 너무도 이율배반적인 행동이다. 그림은 쓰다 버리는 소모품이 아니다. 그림은 돌고 돌면서 그 가치를 더해가는 생명체라고 본다."
- 미술시장이 활성화되려면 어떤 방안이 마련돼야하나.
"먼저 중저가 시장이 활성화돼야 한다. 그림도 생활문화로 누구나 즐길 수 있어야 하는데 너무 고가 위주로 되어 있다. 유명작가가 아닌 신진작가라도 소액으로 그림을 판매할 수 있는 ‘마이너 시장’이 자리잡아야 한다. 미대 졸업생중에는 경제적인 이유로 붓을 놓는 경우가 많다. 몇 십만원짜리 그림이라도 매달 팔리는 시장이 활성화되면 보다 많은 작가들이 창작에 전념할 수 있을 것이다.
미술계에서는 중저가 그림에 대한 편견이 심하다. 화가들 역시 인터넷을 통해 오프라인보다 싼 가격에 내놓고 싶어도 자존심이나 주위의 시선 때문에 망설인다. 사문서에 불과한 호당 가격에 너무 얽매이기보다는 자신의 그림이 보다 많은 소장자로부터 사랑받고 팔릴 수 있는 게 더 중요하다. 저가로 내놓더라도 좋은 그림은 소비자들이 알아보고, 그만큼 대우를 받게 마련이다.
유통시장의 다변화도 중요하다. 상품 거래에 있어 백화점, 마트, 재래시장 등이 있는 것처럼 그림 유통 구조 자체도 변화가 이뤄져야 한다. 미술시장에서 인터넷 거래도 하나의 훌륭한 시장이다. 화가와 소비자 간의 직거래도 인정해줘야 한다. 직거래는 중간유통 비용을 줄일 수 있기에 화가나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매우 유익한 거래방식이다.
투명성의 확립도 절실하다. 금융상품이나 부동산과는 달리 그림의 거래 내역은 유일하게 공개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그림이 뇌물로 오용되기도 한다. 많은 화가들은 세금을 내고 싶어한다. 과세는 미술시장의 고질적 불신을 해소하는 바로미터다. 과세를 하면 위작 논란에서도 자유로워지고, 보다 많은 새로운 컬렉터들이 믿고 시장을 찾을 것이다.
미술품은 어느 특정 계층의 향유물이 아니다. 은밀하게 주고받는 ‘그들만의 세계’가 아닌 대중 누구나가 편하게 즐기고 소장할 수 있는 대중문화 콘텐츠로서 새롭게 조명 받아야 한다. 누구나 손쉽게 작품을 살 수 있고, 또 그것을 되팔 수 있다면 미술품은 그 가치를 더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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