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으로 풀어 본 일상의 가벼움들
심상훈의 Book&Talk
마릴린 먼로의 점에서 소크라테스를 읽다
마이클 라보시에 著/ 문세원 옮김/ 글로세움
제목이 야릇하되 진지하다.
야릇함은 섹시함의 대명사 마릴린 먼로(1926~1962) 때문이다. 진지함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너 자신을 알라”는 명언이 생각난다-를 졸지에 만나서다.
길고도 긴 제목에서 내가 가장 주목하는 문구는 마릴린 먼로가 아니다. 그렇다고 소크라테스는 더더욱 아니다. 그럼 답은 나왔다. 바로 ‘점에서’라는 걸 눈치 챘을 게다.
내 보기엔 ‘점에서’는 ‘눈여겨보니까’와 맥락이 다를 바 없다. ‘눈여겨보니까’는 이기는 습관을 가진 사람들이 즐겨 쓰는 말일 터.
보통 사람은 섹시함만 느끼고 말았을 ‘점에서’ 어떻게 철학을 읽는가. 말이 안 된다. 생뚱맞다. 그러면 읽을 이유가 없다. 하지만 별 쓸모도 없고 알아들을 수도 없는 애매모호한 설명으로 그득한 골치 아픈 학문이라고 치부했던 철학에 관심 있다면 한번쯤 읽어봄직하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책장을 넘기다 보면 책은 어느새 만만해지기 때문이다. 골치 아픈 철학을 담은 내용인데도 술술 잘도 넘어간다. 다루는 철학의 주제가 상아탑에 머물지 않고 일상으로 무사히 내려와서다.
이를테면 ‘아들이냐 딸이냐’(124~127쪽)가 그러하다. 부모가 태어날 아이의 성별을 고르고 싶어 하는 것은 이젠 흔한 일이다. 의학 및 과학의 발전 때문에 두 가지 방법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에릭슨 방법과 마이크로소프트 방법이 첫 번째다. 여아를 만들어내는 X염색체를 가진 정자와 남아를 만들어내는 Y염색체를 가진 정자를 분리해 원하는 정자를 선택해 임신을 하면 부모가 원하는 성별의 아이를 갖게 된다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러는 원하지 않는 성별의 아이를 갖게 되는 일이 여전히 일어나고 있다고 지적한다.
재정적으로 넉넉한 사람들을 위한 방법이 있는데 착상 전 유전진단(PCD)이 두 번째로 그것이다. 이 방법은 여성의 난자를 배양 접시에서 수정시키는 것으로 염색체 검사로 성별을 확인한 다음에 원하는 배아를 선택해 자궁에 착상시킨다. 성공하면 부모가 원하는 성별의 아이를 가질 수 있다고 설명한다.
설명의 요지는 이렇다. 아들이냐 딸이냐, 즉 태아 성별 선택은 여러 가지 도덕적 우려에도 불구하고 낙태나 영아살해를 방지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도덕적으로 마땅히 권장되어야 할 일이라는 것. 이렇게 생뚱맞게 마이클 라보시에는 자칫 무거운 철학적 주제를 일상의 가벼운 철학으로 풀어서 주장한다.
이 밖에도 책은 포르노와 백마 탄 왕자, 용사와 악당의 차이, 보안관이 사라진 인터넷 서부극, 타임머신을 타다, 라는 재미난 소주제로 일상의 모든 부분을 시시콜콜 다룬다. 바탕은 물론 철학 논증이 기본이다.
따라서 비디오게임의 폭력을 규명하는 아리스토텔레스와 기만적인 부시 행정부를 비난하는 소크라테스, 인터넷 해킹을 이야기하는 존 로크, 진정한 사랑을 옹호하는 칸트처럼 위대한 철학자와 눈높이가 수월해진다. 이 점이 돋보인다.
아무튼 철학이란 묻고, 답을 구하고, 의심하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우리는 그 점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북칼럼니스트(작은가게연구소장)ylmfa9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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