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비정규직 문제, 정부가 나서라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입력 2009-07-13 08:04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우리 정부가 사실상 비정규직 문제를 기업들의 책임으로 떠넘기고 있다. 정규직 전환 지원에는 아랑곳하지 않는 모양새다.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말본새가 참으로 한심스럽다.

지난 8일 한승수 국무총리는 국무회의에서 “아직 기업들이 대량 해고를 본격화하지 않고 자제하고 있어 다행이지만 (비정규직) 법안 처리가 늦어질수록 해고를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해고 대란을 걱정한다는 한 나라의 총리가 겨우 기업의 눈치나 보고 있다. 해결책을 마련하려 고심하기는커녕 생각 없는 사람처럼 말을 짓거리고 있다. 한숨이 절로 난다.

이미 비정규직법이 시행 중인데도 정부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원인을 국회로 돌려 급한 비를 피하자는 속셈으로도 읽힌다.

이번 일의 핵심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라는 법의 본래 취지를 외면한 것이다. 여기에 해고 대란을 사실로 떠벌린 정부가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한다.

기업들의 눈치를 보며 비정규직법 시행을 어떻게든 피하려 한 정부의 자충수에 다름 아니다. 국회에서 법 개정이 안 돼 비정규직 대량 해고 사태가 우려된다며 정규직 전환을 또 다시 미루자는 논리는 지나가던 개도 웃을 말장난에 불과하다.

결국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목 놓아 외쳤던 정권 초기시절의 구호가 이런 식으로 발현되는 것으로 밖에 해석할 수 없다. 서민 행보를 가속화한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정신세계가 그대로 투영된 사태라는 말이다.

‘서민의 입장을 헤아리겠다’고 하면서 정작 서민들의 마음 곁에는 한 발자국도 가 보지도 않는 현 정부의 부자 편중 정책이 그대로 묻어난다.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겪는 비정규직의 고통은 안중에도 없고, 기업의 입장에서 움직이고 있는 모습을 보며 국민들은 소통 못하는 정부에 대한 반감만 키우고 있다.

기실 기업들이 비정규직 문제에 민감해 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비정규직은 노동자가 불편부당한 것을 말하지 못하게 옥죄는 제도다. 기업 입장에서는 저렴한 값에 너무도 편하게 사람을 부려먹을 수 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계약을 해지해 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업들이 비정규직이라는 달콤한 제도에 길들여지면 기업은 갈수록 고부가가치 창출 능력을 잃게 된다. 국가 경제에도 도움이 안 된다. 경쟁력이 없는 기업이라면 차라리 시장에서 퇴출되는 게 현 정부가 주창하는 ‘시장경제’에도 알맞다.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비정규직 차별을 금지한 국가에서 경제성장률이 높아지는 현상이 일어난 가장 큰이유로 ‘동일 노동 동일 임금 제도”를 꼽는 것도 이 때문이다.

또 한 가지 현 정부가 극도로 예민해 하는 좌파정권 10년에 대한 반감이라면 이는 더더욱 심각한 문제다. 자신들의 입맛대로 국정을 유린해 버릴 속셈이라면 눈 밝은 국민들은 그대로 앉아서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국회 입법조사처가 추가경정예산에 편성한 1185억원의 정규직 전환 지원금 집행이 별도의 법적 근거 없이도 집행할 수 있다는 견해를 내놨다. 불안한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하는 비정규직 입장에서 안정된 직장생활을 할 수 있는 정규직 전환이 국가적으로도 이익이라는 뜻이다. 결국 지원금 집행은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집행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정부가 이를 방치하고 있는 것은 기업의 이득을 보전해 주기 위해 의무를 회피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법치를 금과옥조로 여기는 이명박 정권이니 법에 문제가 있다면 시행 전에 바로잡으면 된다. 시행 이후에도 보완책을 마련해 부족한 부분을 고쳐나가면 될 일이다. 이것이 이명박 정권이 입에 단내 나게 외치는 법치주의에 맞춤한 일이다.

그렇지 않고 머뭇거리거나 예산 집행을 꺼린다면 ‘강부자, 고소영’ 정권이라는 것을 또 다시 국민들의 뇌리 속에 선명하게 각인시키게 될 것이다. ‘백성의 입이 하늘의 소리’라 했다. 북악산 아래 푸른 기왓장 위로 날벼락이 내리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상준 아주경제신문 산업 부국장)
bm2112@ajnews.co.kr
(아주경제=ajnews.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