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정로 칼럼) 박성택(예술의 전당 사무처장) - 유희, 주술, 노동 그리고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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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07-24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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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근원은 원시시대로 올라간다고 한다. 또한 그 시작은 그 당시 살았던 사람들의 유희, 노동, 주술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알타미라나 라스코 동굴의 벽화를 보면 그 내용을 여실히 증명해 준다.

원시인은 사냥감을 잡아먹고 동굴에 누워 있다가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날 낮에 있었던 사냥과정을 생각하며 벽에 그 장면을 그림으로 옮겼을 것이다. 그리고 사냥의 중요 순간들을 생각하면서 그 과정 중 문제점과 성공요인을 분석하고, 그림을 통해 수렵에 필요한 작전도 수립했을 것이다. 더불어 머릿속의 시뮬레이션과정을 통해 결국 수렵 성공률은 높였을 것이다.
 
과학이 없던 시대의 사냥 성공률을 높여주던 벽화들은 원시인들에게는 풍요를 선물하는 중요한 존재였을 것이다. 그들은 그것을 신통한 존재로 생각하고 동물을 벽화로 만들어 대상물을 공격하는 몸짓을 반복했다고 한다. 현실과 가상의 세계는 구분이 없었다, 동굴 벽화가 실제 사냥감이 되었고 원시인들의 예술은 주술의 대상이 되었다.

그런 과정은 원시벽화에 그려진 집단무(集團舞)에서도 잘 나타난다. 사냥감에 대한 지식을 축적하고 그 과정을 통해 사냥에 필요한 행동을 반복적으로 행함으로써 신체와 근육을 발달시켰고, 결국 성공률도 높여 주었을 것이다. 인류의 이런 행동은 시간이 흐르면서 반복되고, 전승되었다. 주술의 대상이 된 예술은 인간에게 신앙이라는 개념을 마련해 주었다.

또한 그 당시 사람들의 에너지 방출 통로로서 사회의 가장 작은 단위인 집단을 구성하는데 도움을 주었고, 그들이 살아나가는데 필요한 협동심을 길러줬을 것이다. 더 나아가 힘센 자들은 경쟁을 통해 집단을 규합하고 지배와 피지배 계급을 형성, 결국 작은 단위의 사회 구성체를 이루게 됐다.

채집에 의존했던 식량의 양은 자연변화에 따라 민감하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안정적이고 충분한 식량 공급을 위해 지금과 마찬가지로 일정한 기간 동안 축적한 데이터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냥과 농사에 대한 기이도 절실했다. 문자가 없었을 당시 그러한 과정을 담당한 것은 바로 그림이었다. 그림은 원시·고대인들의 생존에 꼭 필요한 식량 보급을 위한 노동기술의 전수를 위한 기록매체였던 것이다. 원시시대의 유희, 주술, 노동을 담은 원시예술은 태고 적에 살던 우리 조상들의 생존수단, 역사기록, 신앙 그 자체였다.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인류는 끊임없이 실생활에 필요한 과학을 발전시켰다. 그 과정 중에 과거의 인류가 맹신하던 주술, 노동에 대한 믿음도 함께 사라져 갔다. 특히 18세기 산업혁명, 시민혁명은 과학이 이 세상을 지배하리라는 것을 예견하였다. 합리성, 객관성을 바탕으로 인간세계를 관장하던 신의 힘을 축소시켰다.

인본주의라는 개념이 인류에게 전파되면서 신이 차지하던 자리도 과학에 내주었다. 하지만 21세기 최첨단 과학이 인류의 삶에 강력한 영향을 행사하는 지금 오히려 유희, 주술, 노동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물론 과거의 신권 회복을 위한 것은 아니다. 신의 자리를 찬탈하고 인간을 기능화 시킨 과학과 현대문명의 위력에 맞서 인간이 얼마나 존엄한지를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예술은 원시시대 그랬던 것처럼 지금도 우리에게 유희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또한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믿음도 제공한다. 생각할 수 있는 힘과 단초를 주어 자연을 닮은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해준다. 과거 신의 지배를 합리화 시켰던 예술이 지금은 그 목적과 형태를 달리해 대중의 삶을 위해 봉사한다. 예술은 과거에 신의 신하였지만 지금은 사람의 친구가 되었다.

인간성의 중요함을 이용한 광고에 실린 ‘나는 중요하다’라는 문구가 기억난다. 예술은 사람을 하나의 기능으로 대할 수 있는 과학문명 시대에 ‘나’라는 존재와 확장된 나인 ‘우리’라는 존재의 중요성에 대해 논하게 해주는 새로운 화두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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