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들어 증권업계의 소액지급결제 서비스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은행과 증권사 간의 고객 유치 경쟁이 불을 뿜고 있다.
증권업계는 지급결제 서비스와 함께 종합자산관리계좌(CMA)와 신용카드의 장점을 두루 갖춘 CMA신용카드까지 선 보이며 공세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에 대해 은행권은 일부 고객 및 자금의 이탈 가능성은 인정하면서도 수신 기반 위축을 걱정할 수준은 아니라고 자신하고 있다.
증권사 CMA가 제시하는 높은 수익률은 정상적인 시장 상황에서 은행 예·적금 금리에 미치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최근과 같은 불황기에는 리스크 관리의 중요성이 강조되기 때문에 CMA 확장세가 꺾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 CMA 인기는 '찻잔 속 태풍'
총 25개 증권사가 금융결제원의 소액지급결제망 가입을 신청한 후 10일 현재 14개 증권사가 지급결제 업무를 개시했다. 증권업계는 지급결제 업무가 가능해진 만큼 시중은행의 급여계좌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은행권은 증권사 지급결제 기능의 안정성에 의문을 나타내고 있다.
전용식 우리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증권사 CMA 잔액이 40조원까지 치솟는 등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안정적인 투자 수단으로 보기는 어렵다"며 "경기가 안 좋을 때 고객이 예금자보호가 안 된다는 점을 우려해 자금을 빼가면 지급결제 시스템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 연구위원은 "자금이 빠져나가면 증권사는 환매조건부채권(RP) 등을 팔아 충당해야 하는데 경기침체로 유동성 위기가 심화하면 지급결제 자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증권사 지점망이 열악해 거래에 불편함을 초래하는 것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증권사는 기본적으로 지점 수가 적기 때문에 은행 급여통장보다 편리성이 떨어진다"며 "은행 거래에 익숙해진 고객들이 이같은 불편을 감수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증권사 CMA가 강조하는 높은 수익률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허점이 많다는 게 은행권의 주장이다.
최근 일부 증권사가 연 5%의 고금리를 제시하고 있지만 이는 1년간 한시적으로 제공되는 이율이며, 대부분의 증권사들이 3~4개월 동안 한시적으로 고금리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고금리를 받으려면 300만원 이상을 입금해야 하는 등 까다로운 조건들이 붙는다"며 "고금리 혜택은 일부 고객들만 누릴 수 있는 게 현실"이라고 전했다.
은행권의 수시입출금식예금(MMDA)와 달리 CMA가 주로 투자하는 머니마켓펀드(MMF)나 환매조건부채권(RP)은 예금자보호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원금 손실을 볼 수 있다는 것도 문제다.
◆ 여신기능 없어 고객유치 한계
최근 대기업 계열 증권사를 중심으로 직장인 급여계좌를 유치하기 위한 작업이 진행 중이지만 증권사 CMA에 여신 기능이 없어 고객들이 쉽게 이탈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반면 은행들은 급여계좌를 개설한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신용대출 한도를 늘려주거나 대출금리를 낮춰주는 등의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급여계좌가 있는 고객에게는 0.2%포인트 가량의 금리 혜택을 준다"며 "오랜 기간 동안 은행 거래를 해 온 고객이라면 CMA로 갈아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호상 외환은행 경제연구실 연구위원은 "미국에서도 지난 1973년 CMA가 출시됐지만 여신 기능이 없다는 한계 때문에 인기를 끌지 못했다"며 "국내 증권사의 CMA도 장기적으로는 미국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아주경제= 이재호 기자 gggtttppp@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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